진화하는 군단으로 자동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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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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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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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 (2)

DUMMY

오래된 SF 영화를 보면 금속처럼 단단하면서 동시에 물처럼 흐물거리고 갈라져도 다시 붙은, 그런 수은 덩어리 같은 로봇이나 괴물이 등장하곤 한다.

8층의 액체 금속 슬라임, 혹은 수은 슬라임이라 불리는 몬스터도 그런 부류였다.

속도는 느려터졌지만 방어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불이나 음파처럼 단순한 타격 이외의 공격에는 약했다.

그리고 내 자동인형 군단에겐 그런 수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적응형 특성이 있다.


딱 하나, 그 특성의 약점이라면 진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지만...


“시간은 충분하니까.”


액체 금속 슬라임의 속도는 그야말로 거북이가 기어 오는 정도였다.

원래라면 끈적한 환경 때문에 등반자나 몬스터 양쪽 모두 느려져서 서서히 침입자를 옭아매는 극히 까다로운 환경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 군단에게는 그저 적응형 특성의 예열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몇 번의 일반형 탄환이 나간 후, 서서히 탄환의 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날아가면서 밝게 빛나는 붉은 궤적을 남기며 상대에게 맞는 동시에 작은 불길이 치솟았다.


“불인가.”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


작은 불길이라도 수십 개가 동시에 쏟아지니 액체 금속 슬라임 무리가 단숨에 불에 삼켜졌다.

슬라임들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심하게 움찔거리다가 곧 녹아버린 젤리처럼 퍼지면서 형태를 잃고 사라졌다.


“몬스터는 아무 문제 없겠네. 이것만 어떻게 하면 되겠는데.”


나는 끈적이는 바닥에서 발을 들고 말했다.


8층의 공략은 맵의 중간중간에 있는 이끼에 달려 있다.

물론 그냥 이끼가 아니라 몸에 바르면 일시적으로 강력한 둔화 저항력이 생긴다.

하지만 지속 시간은 3분이고 수량은 많지 않아서 적절한 순간에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숫자도 문제고.”


나는 자동인형 군단을 보았다.

물량은 많을수록 든든하지만, 반대로 보급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건 괜찮아. 고레벨만 쓰는 파밍 방법이 따로 있어.”


“그런 방법이 있다고?”


“그래, 가서 보여줄게.”


슬라임 무리를 몇 번 더 해치우고 나아가자 곧 짙은 녹색 이끼가 잔뜩 낀 바위가 나타났다.

그 앞 바위 앞에는 중간 보스인 거대 슬라임이 보물을 지키는 것처럼 버티고 있었다.


“해치워.”


“교전 개시.”


가볍게 손짓하자 자동인형들이 일제히 불꽃의 포격을 쏟아부었다.

작은 슬라임과 달리 덩치가 커서 뒷줄에 선 자동인형들도 거리낌 없이 원거리 공격을 쏠 수 있었다.


“...!!”


공격받은 거대 슬라임이 몸에서 작은 슬라임을 분열시키려고 했다.

중간보스의 기본 패턴인 분열.

작은 액체 금속 슬라임을 한 번에 10개나 만들어내어 전열을 맡기고, 자기는 뒤에서 슬라임이 아닌 평범한 액체 금속 덩어리를 포탄처럼 쏘아댄다.

거기에 둔화 저항 아이템을 입수하기 전이라면 상당히 까다로운 싸움이 된다.


그러나 군단의 압도적인 화망 앞에 분열이 다 끝나기도 전에 통째로 불길에 삼켜졌다.


중간보스인 거대 슬라임이 소멸하자 그 뒤에 있던 이끼 낀 바위가 나타났다.

바로 앞에서 거대한 불꽃이 튀었는데도 불에 그슬린 곳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이끼를 한 뭉치 떼서 정보를 확인했다.


【미끈한 이끼】

둔화 저항력 80% 증가 (3분)


이끼를 손에 쥐고 갑옷에 가볍게 바르자 민들레처럼 흩어지더니 온몸에 넓게 달라붙었다.


“오우.”


발바닥을 붙잡는 끈적거리던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효과는 확실하군.


그런데 이제...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개 단위로는 있어야 할 텐데.


“이거 다 합쳐도 100명 분량도 안 나올 텐데, 어떻게 할 거야?”


“잘 봐.”


화연이 원래 장비인 흑의 처형자로 갈아입고는 가호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이끼가 낀 바위의 한쪽을 단숨에 내리쳤다.


“이걸 쓰면 돼.”


그녀가 떨어진 돌조각을 집어 들고 내밀었다.

거기서 이끼를 떼자 사라진 부분에서 즉시 새로운 이끼가 나타났다.

빠르게 자라난 게 아니라, 아예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냥 뿅 하고 생겼다.


“무슨 버그 같은 거야?”


“그런 셈이지 조건은 가호를 발동한 채로 사용할 것, 그리고 흔한 아이템을 대상으로 사용할 것. 그리고 한 층에서 한 번만 써야 하고, 층을 넘어갈 때는 반드시 두고 가”


조건이 까다롭네.


“비싸고 귀한 거면 성좌가 지랄하나?”


“그럴 가능성이 높아. 이건 어디까지나 층의 관리자가 묵인해 주고 있는 것뿐이니까, 너무 욕심부리면 안 돼. 그리고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랭커끼리만 조용히 쓰는 잡기술이니까.”


“당연하지.”


나는 이끼 낀 돌멩이를 자동인형들에게 넘겨주고 알아서 자기들끼리 바르게 했다.

주먹만 한 돌멩이에 낀 이끼는 100을 훌쩍 넘는 자동인형들에게 전부 돌아가고도 멀쩡했다.


일단 이걸로 둔화 대책은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빨리 넘어가자.”


대책을 세웠을 뿐, 그게 오래 있을 이유는 안 된다.

이런 층은 빨리 넘어가는 게 좋다.


이후에도 액체 금속 슬라임과 중간 보스인 거대 슬라임이 종종 나타났지만 조금도 위협이 되진 않았다.

원래도 적응형 공격으로 약점 속성을 갖추고 있었는데 거기에 둔화 문제까지 해결하니 거칠 게 전혀 없었다.


“너무 쉬운데...”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위기라고 할 게 없었다.


“이상할 거 없어. 그게 정상이니까.”


“그런가.”


“랭커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태생부터 달라. 특성을 한번 개화하기 시작하면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폭주하듯이 빠르게 강해지면서 올라가지. 나도 그랬고, 저 위에서 기다리는 다른 랭커들도 다 마찬가지야.”


“하지만 전부 49층에서 막혔지?”


“그래, 40층 이상부터는 그 성장에도 서서히 제동이 걸리기 시작해. 그리고 50층으로 넘어가기 위해 마정옥을 긁어모으지. 하지만 층수는 한정적이고, 엘리트 몬스터는 전장이라고 해도 오직 하나뿐이야.”


“...전쟁이겠네.”


“맞아, 전쟁. 저 위에는 우리 같은 괴물들이 매일 전쟁을 하고 있어. 전쟁이니까 등통원처럼 서로 손을 잡는 일도 있는 거고.”


랭커를 다섯이나 보유했던 집단.

지금도 네 명은 된다.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군.

우리나라 랭커의 절반 이상이잖아.


한 명은 비공식이긴 해도...


“...잠깐.”


“왜?”


“오늘 아침에 윤성태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깜빡하고 있었다!

국정원 조사원이자 등통원 사냥조, 그리고 비공식 랭커.

그런 엄청난 거물이 오늘 오전에 오기로 했었는데?!


“무시해.”


“뭐?”


“그쪽 사정에 우리가 어울려줄 필요는 없어. 전에 말했지? 그 녀석은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그렇긴 한데...”


경력은 화려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한 곳에 진득하게 붙어 있진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

애초에 국정원과 각성자를 살해하고 다니는 조직의 앞잡이라는 이중 신분을 가진 시점에서 안심할 요소는 전혀 없고.


“어차피 녀석도 각성자고, 사람 찾는 거 하나는 귀신이니까 알아서 찾아올 거야.”


“그래... 그래도 기억하고 있었으면 좀 말해주지 그랬냐?”


“무시하는 게 좋다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됐다, 됐어.”


기억하지 못한 내 죄다.

새로운 장비 아이템이라든지, 갑자기 수십억을 벌었다고 내가 너무 빠졌어.

정신 똑바로 차리자.


지금은 낮은 층이니까 군단에게 맡기면 대충 알아서 다 밀어버리지만, 처음은 어땠나?

툭하면 부서지고, 전멸하고, 여하튼 전투의 보조 이상은 안 됐다.


옛 시절을 잊으면 안 돼.

자만하면 방심하고, 방심은 곧 재앙이다.


“...”


그렇게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나아가자 곧 보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 앞은 보스 몬스터의 영역입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를 토벌해야 합니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은 벽에 기댄 채 버려진 갑옷.

온통 시커멓게 더러워졌고 곳곳에 이끼가 끼었으며, 관절 같은 틈새에서 검은색 점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장식품이나 배경 따위가 아닌, 8층의 보스 몬스터 ‘멜팅 나이트’다.


“...”


그리고 여기에 올 때까지... 레벨이 단 1도 오르지 않았다.

중간보스도 몇 번이나 쓰러뜨렸는데 말이지.

물론 이곳 8층은 구조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이라 일부러 맵을 좀 작게 만든 감이 있었지만, 그걸 고려해도 레벨이 아예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확실히 낮은 층에 오래 있어선 안 되겠어.

전투가 쉽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었지.


“...군단, 보스를 포위해라. 영역에 들어가지 말고 미리 진형을 갖춘 채로 입장한다.”


“음? 이번엔 처음부터 직접 지휘하려고? 7층은 별개라고 쳐도, 6층은 처음부터 끝까지 네 부하들에게 맡겼잖아?”


화연이 물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약한 녀석을 상대로 시간을 써봤자 낭비일 뿐이야.”


“...”


“뭐?”


“아니, 너도 이제야 좀 이쪽과 닮아간다 싶어서.”


“선생님이라고 불러줄까?”


“극혐.”


잡담하는 동안 군단의 포위 진형이 완성되었다.

보스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자 갑옷이 스스로 덜그럭거리더니 부자연스럽게 일어나며 검을 뽑았다.

검에 이빨은 모조리 빠졌고 녹투성이라 박물관 같은 곳에 전시될 법한 물건이다.

하지만 손잡이에서 액체 금속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어 단순한 골동품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보스 ‘멜팅 나이트’가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 끝에서 흐르던 액체 금속이 채찍처럼 뻗어 나와 포위하는 군단을 후려쳤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 그리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며 귀를 찢는다.


멜팅 나이트의 일격에 자동인형들이 무더기로 날아갔다.

7층의 크라운 때와 비슷하게 전투불능에 빠진 군단원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이 아니군...”


크라운은 단순히 넉백에 치중된 공격이라 맞는 것 자체에 데미지는 없었다.

하지만 멜팅 나이트의 액체 금속으로 된 채찍은 자동인형의 방패를 찢고 갑옷에도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초과 회복 능력이 아니었다면 일격에 파괴당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


“자리를 지키면서 원거리 공격으로 반격해.”


“교전 개시.”


자동인형들이 일제히 불타는 탄환을 퍼부었다.

아무리 강력한 보스라도 쏟아지는 포격에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뿐, 계속 채찍을 휘둘러 자동인형의 숫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


예상되는 결과는... 무난한 승리.

아무리 보스의 공격이 강해도 이쪽에는 압도적인 숫자가 있다.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라.


“...포위 간격을 넓혀. 그리고 적응형 탄을 초기화해라. 다시 일반형부터 쏴.”


서로 간격이 벌어지면서 멜팅 나이트의 채찍에 휩쓸리는 숫자도 줄었다.


하지만 불타는 탄환들은 곧장 처음의 파란색 일반 공격으로 변하자 보스가 주춤거리던 것이 사라졌다.

결국 멜팅 나이트의 채찍질은 더욱 매섭게, 더 빠른 속도로 군단원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냥 보고 있어.”


그리고 잠시 후 새롭게 진화한 포격이 시작됐다.

날아가는 탄환은 이전보다 더 작고, 가늘어졌으며, 더 긴 불꽃의 궤적을 만들었다.


새로운 종류의 탄환에 맞은 보스가 첫 번째 포격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점액이 끝없이 흘러나오던 갑옷의 관절 부분에서 불똥이 튀고 고통스러운 듯 계속 움찔거렸다.


“역시.”


지금까지 일반 몬스터와 중간 보스를 쓰러뜨린 공격이지만, 보스를 상대로는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았던 거야.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차이를 만드는 건 저 갑옷이겠지.


멜팅 나이트에 새롭게 적응한 포격의 순수한 화력은 아마도 약해졌다.

그 대신 관통력이 증가했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피해를 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싸움은 금방 끝났다.

갑옷 곳곳에 구멍이 뚫린 멜팅 나이트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안에 있던 점액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과 함께 갑옷의 부위들도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스 몬스터 ‘멜팅 나이트’를 쓰러뜨렸습니다.]


[9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레벨이 증가하였습니다.]


[군단 진화 17단계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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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학습 (1) +1 24.09.09 1,485 38 12쪽
20 레이드 (2) 24.09.09 1,447 36 11쪽
19 레이드 (1) 24.09.08 1,620 38 12쪽
18 늑대의 영역 (3) +3 24.09.04 1,940 37 13쪽
17 늑대의 영역 (2) 24.09.03 2,046 44 13쪽
16 늑대의 영역 (1) +3 24.09.02 2,237 41 12쪽
15 잠룡 (3) +2 24.09.01 2,353 49 12쪽
14 잠룡 (2) +1 24.08.31 2,531 52 13쪽
13 잠룡 (1) +2 24.08.30 2,766 53 16쪽
12 독도 약도 없다 (3) +2 24.08.29 2,868 55 16쪽
11 독도 약도 없다 (2) +1 24.08.28 2,971 57 12쪽
10 독도 약도 없다 (1) +4 24.08.27 3,288 62 14쪽
9 독식 (3) +4 24.08.26 3,426 70 13쪽
8 독식 (2) +6 24.08.25 3,598 68 14쪽
7 독식 (1) +2 24.08.24 3,879 66 14쪽
6 결투 (3) +3 24.08.23 4,289 74 12쪽
5 결투 (2) +4 24.08.22 4,429 75 12쪽
4 결투 (1) +3 24.08.21 4,641 84 13쪽
3 진화 (2) +3 24.08.20 4,986 8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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