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군단으로 자동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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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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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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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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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약도 없다 (2)

DUMMY

모습을 드러낸 것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거미였다.

독처럼 흉흉한 살기를 늘어뜨린,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큰 거미...


“...”


아니... 사람이다.

거대 거미 같은 분위기랄까, 한순간이지만 그런 기백 같은 게 느껴졌을 뿐.


나는 그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3층의 성좌에게 가호를 받은 각성자일 가능성이 높아.

이곳의 성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몬스터부터 보스까지 싹 다 거미인데 성좌라고 다르게 생겼을까.


게다가 그가 내뿜는 분위기는 물론 아이템까지 거미 그 자체였다.

저건 틀림없이 땅거미 여왕의 총애 세트.

입수 방법 불명에 추정가는 세트 총합 약 80억.

전 세계에 다섯 벌밖에 없는 초희귀템이다.


“오늘 당번이 여기서 뭐 해?”


화연이 물었다.


“여긴 내 성좌가 있는 층이다. 내가 있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그러는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을까?”


그가 내 쪽을 보았다.


과연, 갑자기 투구를 씌운 건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나.

하지만 그래서는...


“혹시 옆에 있는 게 그 사람인가? 널 이겼다는...?”


“아닌데.”


화연이 내 앞에 서서 말했다.


“그럼 누구지?”


“당신이 알 바 아니야. 당장 올라가고 싶으니 출입 통제나 풀어.”


역시 이 근처를 봉쇄한 게 저 녀석이군.

자기가 계약한 성좌가 있는 층이면 그런 짓도 가능한 건가.


“큭... 큭큭큭...”


그가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큭... 크하하하하! 꼴이 아주 가관이구나. 흑의 처형자는 어디다 팔아먹고 암흑성전 따위를? 게다가 투구만 옆에 씌워주다니, 어지간히도 급했나? 응?”


“...”


“출입 통제를 풀라고? 어림도 없지! 지나가고 싶으면 날 넘어가라!”


“그래... 죽고 싶단 거군. 그것도 자기 성좌가 있는 층에서.”


화연이 검을 뽑았다.


“...?”


뭔가 이상한데.

왜 이 녀석들은 무조건 싸워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

분명 메시지창에 출입 통제는 10분이라고 했잖아.

그냥 시간만 끌다가 통제가 끝났을 때 나가면 되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화연이 그걸 생각하지 못 했을 리 없는데?


“...미안.”


“뭐?”


“이건 내 실책이야. 저 녀석이 올 걸 생각해야 했어. 여기서 죽는다면 그땐 내 원망을 해도 돼.”


“...”


틀림없다.

장화연은 여기서 반드시 승부를 봐야 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아마 상대방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나랑 메시지창이 다르다?

나는 10분만 있으면 나갈 수 있지만 저 둘에겐 다른 메시지창이 나타났다는 건가?


대체 왜?


“빨리 도망치라니까.”


화연이 작게 말했다.


“하지만 너 장비가...”


지금 그녀의 장비는 평소 입는 흑의 처형자가 아니라 그보다 몇 단계는 낮은 암흑성전.

게다가 풀세트가 아니라 투구 부분을 나에게 줬다.

세트 장비들은 모든 파츠가 갖춰지지 않으면 제 성능을 낼 수 없다.

그 성능의 차이도 흑의 처형자나 땅거미 여왕의 총애처럼 강력한 장비일수록 점점 커진다.


상대가 입은 것은 땅거미 여왕의 총애.

견고한 방어력은 물론, 다종다양한 저항력을 제공하고 특히 중독에 대해서는 완전 면역에 가깝다.


암흑성전과 단순 비교해도 객관적인 성능은 땅거미 여왕의 총애가 우위.

게다가 풀세트도 아닌 시점에서 장비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다.


어디서 본 그림 같은데...


“나도 알아. 안 그래도 불리한데 당신 같은 짐덩이까지 지키면서 싸울 자신 없어. 빨리 가. 어서.”


“말을 해도... 아무튼 죽지 마라.”


일단 나는 그녀의 말대로 물러났다.

그녀가 싸우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복잡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화연을 뒤로 하고 군단과 함께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잠시 후 등 뒤에서 격렬한 전투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녀를 믿는 수밖에.


“...”


조금 조용해졌군.

생각을 정리해 보자.


나만 메시지창이 달랐던 이유, 아마 틀림없이 성좌가 한 일이겠지.

내 성좌를 자처하는 녀석이...


그럼 10분의 시간을 준 이유는?

그냥 버티다가 도망치라고?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화연과 침입자가 죽도록 싸우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


그리고 능력치 조정.

나까지 그 대상에 포함됐다는 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싸움에서 나도 엄연히 당사자라는 뜻.


즉, 내 성좌는 도망치지 말고 이 싸움에 끼어들어 이기라는 건가?

그것도 10분 안에?


“잠깐, 그럼 저 두 명 다 나랑 똑같은 수준까지 떨어진 거야? 아니면... 내가 강해졌나?”


검증해 볼까.

저 앞에 이미 지나왔던 일반 몬스터의 영역이 보였다.

지금쯤이면 리젠 됐을 것 같은데.


“전원... 아니, 셋 만 저 안으로 들어가 봐.”


“전투 개시.”


내 명령에 고작 세 개의 자동인형이 열댓 마리의 사원 거미로 가득 찬 방을 향해 돌진했다.


***


“집행해줘, 이르칼라.”


화연의 헤일로가 거세게 타오르며 가호의 힘이 깃들었다.


그녀의 가호가 제공하는 능력은 두 가지.

교전 중 공격력 증가, 그리고 최종 공격력에 비례한 공격속도와 이동속도의 증가.


거기에 추가 공격력까지 부여하는 흑의 처형자 세트가 합쳐지면 신속의 영역에 도달한다.

싸울 때 그녀의 속도는 모든 랭커 중 최상위권이다.


물론 그건 흑의 처형자를 입었을 때의 이야기.


“군림하소서, 아리아드네.”


맞은편에 선 김소원에게도 헤일로가 나타났다.


3층의 성좌이자 땅거미 여왕이라고 불리는 아리아드네.

그녀가 내리는 가호는 화연의 가호와 상극이라 할 수 있다.

사용자의 능력치도 상승시키지만, 그 진가는 상대에게 저항이 불가능한 이동속도 감소 디퍼프를 거는 것에 있다.


거기에 그가 장비한 땅거미 여왕의 총애 세트는 이동속도가 감소한 적에게 추가 피해를 준다.

애초에 가호와 함께 각성자에게 하사하는 물건이라 이런 강력한 시너지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호를 발동한 두 각성자의 격돌.

대부분의 경우 승리를 판가름하는 것은 상성의 차이다.

그러나 화연의 속도 증가를 억제하더라도 공격력의 증가는 여전히 남아서 땅거미 세트의 추가 피해와 길항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각성자 본인의 기량.

지금까지 둘의 싸움은 화연의 우세였다.


“...!”


“...!”


두 사람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뛰쳐나가 맞부딪쳤다.

화연의 대검과 소원의 보검이 격돌하면서 어두컴컴한 사원에 강렬한 불똥을 흩뿌렸다.


한 차례의 격돌 후, 둘 다 살짝 거리를 벌렸다.


“...?”


김소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주먹을 강하게 쥐고는 씩 웃었다.


“...머리 좀 굴렸군.”


“...”


“지금 네가 입은 건 질 떨어지는 암흑성전. 게다가 풀세트도 아니지. 아무리 너라도 이 정도 장비의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어. 하지만...”


“...”


“후후후,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아까 도망치게 한 그놈을 능력치 조정 기준에 포함시켰군.”


두 사람이 격돌 후 바로 물러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이상할 정도로 떨어진 능력치에 서로가 당황했다.


체감상으로는 대략 레벨 50~60 수준.

10레벨에 불과한 대성을 포함해 세 각성자가 가진 레벨의 평균치다.


“장비에서 밀리니 서로 능력치를 잔뜩 낮추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나? 과연,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야.”


“...”


물론 화연은 그런 발상을 한 적 없었다.

떨어진 능력치에 당황한 것은 자기도 마찬가지지만,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얼버무리는 것이다.

상대의 착각을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마지막에 실수했구나. 이걸로 네 패배는 확실해졌어!”


“...”


그리고 지금의 선언도 정정하진 않았다.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서로 능력치가 같다면, 아까 그놈을 싸움에 끌어들였어야지. 물론 그래봤자 내가 이기는 건 똑같았겠지만! 애초에 내 층에 들어온 순간 네 패배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


소원이 두 팔을 벌렸다.


“와라, 나의 군단이여!”


그가 소리치는 것과 함께 그의 뒤편에 있던 통로에서 무수한 사원 거미 떼가 쏟아져 나왔다.

사원 거미의 평균적인 레벨은 10을 조금 넘기는 수준.

아무리 능력치가 하락했어도 50레벨의 싸움에서는 고기 방패조차 되지 못 한다.


그러나 김소원이 불러낸 것은 달랐다.

이 층의 주인으로부터 직접 불러낸 그것들에는 여왕의 군세라는 전용 버프가 붙었다.


여왕의 군세.

성좌 아리아드네의 가호를 받은 각성자의 능력치에 비례해서 강해지는 특수한 버프다.


조금이지만 대등했던 싸움이 순식간에 일방적인 포위 섬멸로 변한다.

불합리할 정도의 우위, 이것이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가호 보유자의 강함이다.


“...”


그런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화연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뭐냐.”


소원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싹 사라졌다.


“뭐냐고! 지금 이게 안 보여?! 네가 진다고! 네가 죽을 거란 말이야!”


“...그래서?”


“뭣...?!”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똑바로 말해.”


“...너에게 권리를 주마.”


“권리?”


“그래, 나와 함께 정상으로 갈 권리! 내 밑으로 들어와라! 같이 모든 것의 위에서 군림하는 거다!”


“...”


화연의 무표정이 깨졌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흔치 않게 솔직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극혐.”


“...!!!”


“진짜 기분 나쁘거든.”


“...”


“나보다 레벨도 낮은 허접이 뭐라는 거야?”


“이... 이런 상황에서까지...!? 좋아, 나도 이젠 상관없어! 저 계집을 죽여라!”


정말로 그녀를 죽인다면 배무룡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마도 평생 탑 밖에서는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결과는 떠오르지 않았고,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여왕의 군세가 그녀를 향해 물밀듯이 덮쳤다.


“...칫.”


기량에서, 그리고 심리적으로 화연이 앞서지만 물리적인 병력의 숫자를 뒤집기엔 부족했다.

뾰족한 가시와 독을 품은 거대한 사원 거미들의 파상공세에 화연은 점점 구석으로 몰렸다.

만에 하나 흑의 처형자를 입었다면, 최소한 암흑성전이라도 모든 파츠를 다 가지고 있었다면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대성을 감추는 게 최선이었다.

어쨌든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배무룡이 자주 했던 말이다.


“...”


전부 쓸데없는 잡생각.

싸움 중에 이래선 안 된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최선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


“...”


구석에 몰렸고, 능력치에 비례해서 강해진 몬스터 무리에게 포위당했다.

아무리 공격을 방어해도 전용 버프로 강해진 거미의 독이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틀렸다.

아무런 해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딱 하나, 소원이 말했던 것처럼 대성이 같이 싸웠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결국 부질없는 것.

그를 도망치게 했던 것은 자기 자신.


그렇다면 그걸로 됐다.

스스로에 의해 패배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미안해, 이르칼라...”


[...사과는 받지 않겠어.]


“그렇겠지. 실수했어, 죽을 때까지는...”


[그게 아니야.]


“죽여! 죽여버려! 머리를 잘라서 가지고 와!”


그때 소원의 폭주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다.


“잘린 머리로 뭐하려고?”


“...?”


“...!?”


화연이 깜짝 놀라서 옆에 있는 통로를 보았다.

몬스터에게 가려지기도 했고 그늘진 통로 너머라서 그 모습이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대성이 틀림없었다.


“하핫, 좀 더 일찍 죽으러 돌아오셨나?”


“네가 왜...?!”


“착각하지 마.”


통로의 안쪽, 그늘진 곳에서 대성이 말했다.


“뭐?”


“영웅이 아니라, 장군이다.”


어두운 통로 안쪽에서 자동인형 군단이 쏟아져 나왔다.


“안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네가 화연을 이겼다는 그놈이지? 무슨 개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해보자고. 내 군단과 네 군단, 어느 쪽이 우위인지!”


“그걸 꼭 비교해야 돼?”


대성이 통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당연히 내 쪽이 위겠지.”


독개구리 가면을 쓴 대성이 선언했다.

그 모습을 본 화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극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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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톱니바퀴 (3) +1 24.09.13 1,145 31 12쪽
24 톱니바퀴 (2) 24.09.12 1,278 36 12쪽
23 톱니바퀴 (1) +1 24.09.11 1,380 40 12쪽
22 학습 (2) +1 24.09.10 1,417 30 12쪽
21 학습 (1) +1 24.09.09 1,484 37 12쪽
20 레이드 (2) 24.09.09 1,447 35 11쪽
19 레이드 (1) 24.09.08 1,620 38 12쪽
18 늑대의 영역 (3) +3 24.09.04 1,940 37 13쪽
17 늑대의 영역 (2) 24.09.03 2,046 44 13쪽
16 늑대의 영역 (1) +3 24.09.02 2,237 41 12쪽
15 잠룡 (3) +2 24.09.01 2,353 49 12쪽
14 잠룡 (2) +1 24.08.31 2,528 52 13쪽
13 잠룡 (1) +2 24.08.30 2,763 53 16쪽
12 독도 약도 없다 (3) +2 24.08.29 2,867 55 16쪽
» 독도 약도 없다 (2) +1 24.08.28 2,971 57 12쪽
10 독도 약도 없다 (1) +4 24.08.27 3,287 62 14쪽
9 독식 (3) +4 24.08.26 3,425 70 13쪽
8 독식 (2) +6 24.08.25 3,598 68 14쪽
7 독식 (1) +2 24.08.24 3,879 66 14쪽
6 결투 (3) +3 24.08.23 4,289 74 12쪽
5 결투 (2) +4 24.08.22 4,429 75 12쪽
4 결투 (1) +3 24.08.21 4,640 84 13쪽
3 진화 (2) +3 24.08.20 4,985 89 13쪽
2 진화 (1) +1 24.08.20 5,166 9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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