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마왕은 아카데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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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제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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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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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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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경매(2)

DUMMY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 되고 있지만, 사실 나는 그다지 계획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마왕이 되기 전에는 그저 발이 닿는대로 움직였으며, 마왕이 된 후에는 디토데닉이 안배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따지자면 내 삶에서 그럴 듯한 계획을 세운 적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세울 필요따위가 없었다.


귀족가에서 살 적에는 가주의 말을 어겨선 안될 규칙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달랐다. 세상의 규칙은 힘이었다.


그러니 샤먼가의 핏줄로 태어나 기본적인 인간보다 마나가 많은 나에게는 이 세상은 그저 계획없이 살아가도 무탈한 세상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이런 관경이 보이는 것이다.


날렵하게 움직인 다크엘프가 저 멀리 달려오는 소드마스터를 검이 아니라 주먹으로 후려치는 이 상황에 나는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그 다크 엘프 아래에는 이미 수십의 기사들이 기절해 있었다. 한껏 인상을 찌푸린 다크엘프가 다가와 말했다.


“죽이지 않았다.”


아. 내가 말한 것을 지킨 것인가? 이상한 부분에서 참 잘지키는 녀석이었다. 근데. 한가지 틀린 점은.


“저 귀족만 안죽이면 그만인데?”


그렇게 말하자 다크엘프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개를 돌리고 벌벌 떠는 마글로츠 남작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다가가자 쿰쿰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아래로 향했고, 그의 바지가 젖어 있었다.


“뭘 그리 놀라. 소드마스터 처맞는거 처음봐?”

“히익!”


아.. 역시 처음볼려나.. 인간중에서 소드마스터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물론 이종족은 다르지만.


슬금슬금 엉덩이 걸음으로 멀어지는 마글로츠 남작을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이미 이 정도 거리에서도 냄새는 지독하니깐.


“어쨌든 우리가 찾는게 있어.”


나는 남작이 놀라 기절하지 않도록 최대한 무해하게 웃으며 말했다.


“새끼 겨울늑대. 당신이 산거지?”

“아..아..그.. 그으...”


남작의 눈동자가 참 요사스럽게 댕글댕글 굴렀다. 그 눈을 찔러 감겨버릴까 생각하다가 그 눈동자가 유난히 무언가를 보는 것을 보고 나도 시선을 옮겼다.


그 곳은 고고하게 앉아 있는 하얀 늑대가 있었다.


“맞아. 새끼를 찾으러 온거야.”

“....”

“남작. 지금 말하는게 좋을꺼야. 정말로.”


진심어린 충고였다.

저 고고한 하얀 늑대가 앉아 있는 이유는 오직 분노를 식히기 위함이었다. 만약 여기에 내가 없었다면, 이 늑대는 이미 남작따위를 한낮의 고기 쪼가리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그.. 그게.. ㅈ..저택에...”

“저택 어디?”

“히끅.. 수..수도! 수도 저택에..!”

“..남작. 주소를 말해야 내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일부로 말을 돌리는 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지만, 남작의 표정은 새파랗게 물들었다. 그 표정을 보고 정색을 하자 이번에는 새 하얀색으로 질렸다.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문득 내가 왜 이딴 쓰레기를 위해 표정을 고민해야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남작.”

“에!”

“우선 주소부터 말하고, 그리고... 가진거 다 내놔.”


일단 삥부터 뜯었다.

범죄자의 삥을 뜯는 것이니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에는 정말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



역시 돈이 최고였다.

남작의 귀중품은 하나같이 전부 귀했으며, 무려 이동스크롤을 4개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스크롤 중 하나를 늑대에게 건냈고, 하나는 다크엘프에게 건넸다.


“좌표 찍어줄테니, 이동해서 와.”


다크 엘프가 이동스크롤를 받아든 채, 되물었다.


“늑대는 이미 구하지 않았나. 나는 은혜를 갚았다.”

“늑대가 한마리라는 이야기는 안했어.”


슬쩍 빠져나갈려는 다크엘프를 잡아챘다.

나는 이미 이 전에서 마법을 상당히 많이 썼다. 그러니, 무조건 저 다크엘프가 따라와야 한다.


“간사한 인간.”


간사한 건 너 아니냐! 노예될뻔 한 것을 구해줬더니!


다크엘프의 불만족스러운 기색을 뒤로하고, 열심히 좌표 계산을 했다. 이동스크롤은 각 국의 안보와 관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소량을 판매하고 있으며, 공개 된 좌표도 일정 장소를 제외하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의 좌표를 기준 점으로 계산한다면 다른 곳의 좌표값을 알아내는 것 쯤은 별 일도 아니었다. 정확성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내가 먼저 갈 테니, 바로 따라와.”


그 말과 함께 난 손에 든 스크롤를 찢었다. 질길 것처럼 보였던 스크롤은 힘 한번 들이지 않아도 쉽게 찢어졌다.


“히야.. 저택한번 크네..”


웬만한 공작가의 저택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정도의 저택을 보고 있었다.

물론 공작가정도의 위치를 가진 곳이면, 수도의 저택이 아니라 영지의 성도 있겠지만, 졸부에 불과한 남작이 이 정도의 저택을 가졌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대단했다.


그 목을 따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던 마글로츠 남작 영식은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해졌다.


“인간.”

-인간.


인간이 아닌 것들이 인간이라고 불렀다. 스크롤로 이동한 그들을 보니, 어디서 주워 입은 것인지 다크엘프는 피로 흠뻑 젖은 로프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아공간에서 다른걸 하나 꺼내줄려다가 저 모습을 보면 아무도 건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냅두기로 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야. 새끼늑대 대리고 나오기.”


그 말에 인간 아닌 존재들이 고개를 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기울였다.


“안죽이나?”

“응.”

-왜지?

“저들은 죄가 없으니깐.”


아마 저 고용인들 중 새끼 늑대에 아는 사람은 반의 반의 반도 안될 것이다. 아무리 마글로츠 남작이 아둔하고 멍청하고 미쳤다고 한들 노예경매로 구입한 마수를 당당히 자랑하는 놈은 아닐 것이다.


마글로츠 남작은 명백히 가진자였다.

가진 자는 잃는 것을 두려워하니, 잃게 만들 구실점 하나를 쥐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마글로츠 남작을 안좋게 보는 귀족들이 많으니 결코 들어내지 않았을꺼야.’


노예경매 참가는 다른 귀족들도 많이 하니, 그걸 약점잡히지 않을 것을 알고 참가한 것이겠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아주 영리한 인간이었다.


“저들의 대부분은 그냥 아무런 상관 없이 그냥 조금 성격 더러운 주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지.”


그래. 저들은 그저 일을 하는 자일뿐이다.

잘못된 사람이 아닌데 괜한 벌을 받을 필요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릴 권리는 없어. 저들이 노예상이였다면, 이 저택을 폭파해서 모조리 죽였을꺼야.”


죽음을 쉽게 만들면 더 쉬운 방법이 존재했다.

하지만 더 쉬운 방법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내가 회귀하면서 다짐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계획은 은밀하게 새끼늑대를 구하는 것이었고, 나는 투명화 마법을, 다크엘프는 실라페를 소환해서 쥐도새도 모르게 우리를 옮겨주었다. 그리고, 겨울늑대는.


-저쪽에서 아이의 기운이 느껴진다.


탐지를 맡았다.

겨울 늑대는 냉기를 방출한다. 우리는 그 새끼 늑대가 흘린 냉기를 따라 가고 있었다.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었다.

곧 사용인들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더 빨리 움직이자.”


작게 속삭이자 실라페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 안에서 아이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 말에는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느 미친놈이 온실 속에 새끼 겨울늑대를 감금해?


겨울늑대에게 냉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텐데 온실 속에 가두다니, 그 남작을 죽였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온실의 문을 열었다. 서린 냉기가 스쳐갔고, 이내 육중한 몸을 가진 겨울 늑대가 뛰쳐나갔다.


-아가!

“까우웅...”


한눈에 봐도 기력없는 새끼 늑대가 얼어붙은 장미 사이에서 기어나왔다. 겨울늑대는 몸을 낮추고, 냉기를 방출했다. 일 순간 이 온실 안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매섭게 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겨울늑대 품에 안긴 작은 하얀 늑대를 보았다.


하염없이 제 새끼를 핥으며 걱정하는 저 관경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서둘러 도망쳐야 했다.

여기는 수도다. 잘못걸리면 수도 경비병들이 올 것이고, 도망치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안하지만, 서둘러 가야 해.”


내 말에 겨울늑대가 새끼늑대의 목덜미를 물고 실라페 위에 자연스럽게 탔다. 그리고 실라페는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날아놀랐고, 그동안의 속도가 굼뱅이 굴러가는 듯 가던 속도라는 것을 체감했다.


수도 외곽의 숲에 도착한 나는 새삼스럽게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보았다.


이젤키엘과 합심해서 나중에 나를 물리치러 오는 척결자. 다크엘프.

겨울 숲의 수장이자 1급 마수인 겨울 늑대.


모이기 아주 드문 존재들이 모여서 작은 생명을 살렸다. 겨울 늑대의 위에서 작게 색-색-거리며 잠든 새끼늑대를 보니 무언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기쁨?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격한 감정. 그래. 이 감정은 벅참이다.


그들을 빤히 보다 말했다.


“우선, 도와줘서 고마워. 다크엘프.”

“.... 도움은 내가 받았다.”

“그래.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네. 이제 어디가?”

“...일족을 구하러 간다.”

“그래. 가끔 나 보면 인사해.”


내가 웃으며 말하자 순간 실라페가 다크엘프를 대리고 저 멀리 날랐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진 다크엘프를 보다 이번에는 다른 쪽을 보았다.


하얀 늑대.

오직 자식을 구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용감한 아버지.


“나는 아카데미로 가야해.”

-그런가.

“응. 넌 겨울숲으로 갈 거지?”

-그래. 그곳이 나의 보금자리니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고선, 하나 챙겨두었던 스크롤을 내밀었다.


“겨울숲 좌표 계산은 해두었어. 아픈 아이도 있는데 스크롤이 더 편하지?”

-... 고맙다 인간.

“나도 목적이 있어서 널 구한거니깐. 그리 고마워 하지 않아도 돼.”


그 말에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목적이 있더라도 너의 계획에는 내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런 너에게 고마움을 표현 하는 것이다.


그 말에 머쓱하게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왕으로 살다보면 고맙다는 말 듣기 힘들다.

그런 힘든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받은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어쨋든 잘가. 나는 따로 갈 곳이 있어.”

-어디가지?

“아카데미.”

-아카데미? 인간들이 공부하는 곳이라는 건가.

“응. 그렇지.”


늑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다 몸을 숙였다. 거대한 코가 내 시야를 매웠다.


-나는 생명의 숨결 아래 태어난, 순리를 지키는 맹약의 존재.


이런건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데.


-그대가 부른다면 나는 응답하겠다. 나의 진명은 아흐 드 메드 루브카.


이건 책 속에서 본 적 있는 말이었다.


-찰나의 삶 속에서 운명에 맞서는 일에도 함께 할것이다.


수 없이 읽어내려간 고서 속에서 본 이야기.

신수를 다루는 계약자들이 계약할때 신수에게 들었던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


“...이런걸 바라지 않았는데.”


신수는 아주 큰 전력이다.

그 전력을 그저 백작가가 무너지지 않는 전력으로 쓸려고 했지만, 결코 그 전력이 내 소유가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


-나도 인간에게 계약할지 몰랐다.


늑대의 목소리와 함께 스크롤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 늑대가 사라졌다.

거울을 꺼내서 본 얼굴 속 이마에는 하얀 눈 결정 모양의 계약인(印)이 보였다.


작가의말

내일은 오후 10시에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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