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스턴 지키기(4)
15화 벤스턴 지키기(4)
박대식의 빛 화살에 명중당한 리자드 아처 두 마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캬아아악!!!”
남아있는 두 마리의 리자드 아처가 활을 당겼고, 나는 방패를 들어올리며 동료들을 내 뒤로 숨겼다.
“모두 몸 낮추십쇼!”
퉁- 퉁-.
화살 두 개가 내 방패 위를 두드렸고, 나는 어렵지 않게 화살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현주씨, 구기복 아저씨!“
리자드 워리어는 아직 여유롭게 왕좌에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일단 나는 그 사이에 우리에게 달려 온 갑옷 리자드맨들에게 집중했다.
쾅-!
유현주와 구기복 아저씨가 갑옷 리자드맨을 한 마리씩 맡아줬고, 나는 나머지 갑옷 리자드맨 두 마리를 홀딩하면서 다시 날아 올 화살을 견제했다.
첫 번째 사고는 여기서 발생했다.
대규모 전투에 동료들은 흥분했고, 유현주와 구기복 아저씨가 과하게 앞으로 밀고 올라가버린 까닭에 전위(유현주와 구기복 아저씨)와 후위(박대식)의 거리가 너무 벌어져버렸다.
마침 리자드 아처 두 마리는 각각 유현주와 박대식을 노리고 화살을 쏘았고, 벌어져있는 거리탓에 내 방패는 두 화살 모두를 쳐낼 수가 없었다.
“젠장! 현주씨, 위험합니다!”
판단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 박대식이 당한다면, 리자드 아처를 견제 할 수단이 사라진다. 따라서 유현주를 포기하고 박대식을 구하는게 맞았다.
퉁-.
박대식에게 쏘아지던 화살을 방패로 막아내고 내가 바로 유현주를 살폈을 때, 예상치 못 한 장면이 눈에 보였다.
“예..예담씨, 구기복 아저씨가...!”
“크헙...! 하하, 젊은 아가씨 난 괜찮네... 지금 당장 나보단 아가씨가 도움이 되지 않겠나...”
구기복 아저씨는 유현주를 대신해 몸으로 화살을 막았고, 복부가 꿰뚫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유현주는 눈이 흔들리며 구기복 아저씨를 어루만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현주씨, 전투중입니다. 집중하세요!“
나는 박대식의 안전을 확인한 후 쓰러져있는 구기복 아저씨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유현주는 내 외침에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갑옷 리자드맨들을 상대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장전이 끝난 박대식이 빛 화살 두 개를 쏘아보냈다.
”예..예담씨 리..리저드 아처는 모두 처..처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빛 화살 하나에 힘을 집중시키세요!“
내가 구기복 아저씨에게 도착했을 때 유현주가 한 마리의 갑옷 리자드맨을 처치했다.
‘리자드 워리어 하나에 갑옷 리자드 셋.’
우리는 검투사가 당하긴 했지만 나머지 전력은 잘 보존 돼 있었다.
“현주씨, 우선 구기복 아저씨를 안전한 곳으로...!”
나는 갑옷 리자드 세 마리를 방패로 밀어내며 지시를 내렸고, 유현주는 구기복 아저씨를 들어서 박대식 옆까지 이동했다.
“허허... 쿨럭, 짐만 되어서 미안하구만...”
그 동안 나는 내 워해머로 갑옷 리자드맨 한 마리의 머리통을 뭉개놨고, 박대식이 쏘아낸 빛 화살이 다른 갑옷 리자드맨 한 마리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제 남은 것은 리자드 워리어 하나와 갑옷 리자드맨 한 마리. 내가 승리가 눈 앞에 있다고 착각했을 때, 두 번째 사고가 터졌다.
쿠-웅!
왕좌에 앉아서 오만하게 우리를 구경하던 리자드 워리어가 일어났고, 순간적으로 발을 굴러서 도약한 리자드 워리어는 나를 그대로 지나치고 유현주,박대식,구기복 아저씨가 모여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쇄도했다.
“...!”
후-웅, 쾅!
유현주는 다른 동료들을 지키기위해 앞으로 나서서 리자드 워리어가 휘두른 거대한 대검을 자신의 검으로 받아냈고, 그 충격으로 방의 벽 끝까지 날아가고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끄헙-! 하윽... ”
기괴한 모양으로 꺾인 유현주의 팔을 보니, 유현주는 더 이상 전투를 진행 할 수 없었다.
나는 갑옷 리자드맨을 멀리 밀쳐내고 박대식과 구기복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리자드 워리어는 박대식을 노리고 대검을 휘둘렀다.
“으..으아... 으아악!!!”
겁에 질린 박대식은 뒷걸음질을 치다 넘어졌고, 리자드 워리어의 대검이 박대식의 몸통을 두 동강 내버리기 직전, 구기복 아저씨가 복부가 화살에 꿰뚫린 채 리자드 워리어의 대검에 본인의 워해머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흐어어업!!!”
다행히 대검의 경로를 구기복 아저씨의 워해머가 바꿔줘서 대검은 박대식의 바로 옆 땅에 박혔지만, 그 충격으로 구기복 아저씨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구기복 아저씨도 전투 불가다.’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방패와 온 몸으로 리자드 워리어를 밀어낸 나는 박대식의 상태를 살폈다.
”대식씨!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예.. 옙!“
박대식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힘겹게 일어났고, 나는 다시 견적을 내보고 박대식에게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빛 화살은 리자드 워리어에게만 쏩시다. 갑옷 리자드맨은 제가 처리 해 보겠습니다.“
내가 지시를 내리는 와중에도 리자드 워리어는 위협적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왔고, 갑옷 리자드맨도 전투에 합류를 완료했다.
‘힘과 속도 모두에서 확연하게 밀린다. 아까 나를 지나쳐 갈 때 눈이 따라가지도 못 했어. 내가 안정적으로 탱킹을 하려면 갑옷 리자드맨을 먼저 처리해야 하지만, 장전에 15초나 걸리는 빛 화살을 갑옷 리자드맨에게 쓰기는 아깝다. 내가 처리해야 해.‘
“대식씨, 빛 화살을 쏠 때 저에게 미리 신호를 주세요.”
“아..알겠습니다. 지..지금은 5초정도 남..남았어요!“
우리 대화가 끝나자마자 리자드 워리어는 나에게 달려들었고, 거대한 대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각-!
방패를 비스듬히 세워서 대검을 흘려보낸 나는 곧 바로 이어지는 리자드 워리어의 발길질에 뒤로 두 바퀴 구르며 나가 떨어졌다.
‘손목이 부러질 것 같다. 나와 힘의 수준이 달라.”
”예,,예담씨!“
”괜찮습니다! 집중하세요!“
나는 다시 방패를 들어올리고 박대식의 앞을 지켰고, 이번에는 갑옷 리자드맨이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다.
캉-.
그것은 리자드 워리어의 대검에 비하면 깃털보다도 가벼운 공격이었고, 갑옷 리자드맨을 끝장내기 위해서 워해머를 들어 올렸을 때 리자드 워리어의 대검이 내 가슴팍을 노리고 찔러들어왔다.
“흡...!”
재빠르게 바닥을 굴러 찌르기를 피한 나에게 리자드 워리어는 천천히 다가왔고,
“예담씨, 준..준비 됐습니다!”
“지금 쏘세요!”
드디어 장전 된 빛 화살이 리자드 워리어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피슝-.
캉!
“아..아니 이게 무..무슨!!“
리자드 워리어는 대검으로 빛 화살을 쳐내는 광경에 박대식은 놀라 굳어버렸지만,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리자드 워리어의 옆에있던 갑옷 리자드맨을 처리했다.
쾅-!
“후... 대식씨, 이제 이대일입니다. 제가 버틸테니 대식씨가 마무리를 해야해요.”
“그..그치만 제 화..화살을 쳐내는데 어..어떡하죠?!”
“제가 탱킹을 하며 시선을 분산시키겠습니다. 머리보단 면적이 큰 몸통을 노려보세요.“
마지막 지시를 내리며 준비를 마친 나는 내 워해머를 땅에 떨어트렸다.
‘어차피 워해머로는 데미지도 줄 수 없다. 탱킹에 전념한다.’
리자드 워리어는 다시 대검을 휘둘러왔고, 나는 때로는 막아내고 때로는 피하며 시간을 끌었다.
“예..예담씨 조..조심하세요! 쏘..쏩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박대식의 첫 번째 빛 화살이 쏘아졌고,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빛 화살은 보기좋게 리자드 워리어의 대검을 들고있던 오른쪽 어깨에 꽂혀 들어갔다.
“다음 빛 화살 준비하세요!”
오른쪽 어깨의 상처가 유효했는지 리자드 워리어의 공격은 훨씬 둔해졌고, 나는 방패를 앞세우고 묵묵히 공격을 받아내며 시간을 끌었다.
“또..또 갑니다!”
두 번째 빛 화살은 리자드 워리어의 왼쪽 무릎에 꽂혀 들어갔고, 기동성을 잃은 리자드 워리어는 한층 상대하기 쉬워졌다.
“대식씨, 마지막 한 발이면 될 것 같습니다!”
“좋..좋아요! 곧 준..준비 됩니다!”
그리고 결국 세 번째 사고가 터졌다.
빛 화살에 위협을 느낀 리자드 워리어는 나를 무시하고 박대식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뒤늦게 방패를 버리고 양손으로 리자드 워리어의 허리를 붙잡았지만 내 힘으로는 리자드 워리어를 제지하기에 역부족이었고, 어떻게든 박대식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리자드맨의 등에 올라타서 눈을 가리고 목을 졸랐다.
졸지에 시야를 잃게 된 리자드 워리어는 되는대로 대검을 휘두르며 발길질을 했고, 불행하게도 박대식은 그 발길질에 휩쓸렸다.
퍼-억.
“대식씨!!!!!”
불행중 다행으로 발길질에 스쳐서 맞은 박대식은 정신을 잃었지만, 기절했을 뿐이지 아직 살아있었다.
“캬아아아악---!!”
박대식을 전투 불능으로 만든걸 알아차렸는지, 리자드 워리어는 나를 등 뒤에서 떼어놓기위해 발버둥쳤고 나는 어떻게든 버텨가면서 빛 화살에 꿰뚫린 리자드 워리어의 어깨 상처를 손가락으로 후벼팠다.
“으아아아아-악!”
상처가 벌어지면서 리자드 워리어도 대검을 손에서 놓쳤고, 자유로워진 양 손으로 내 팔을 붙잡고 나를 땅에 메어꽂았다.
콰-앙!
땅에 등이 부딪히면서 느껴지는 충격에 입에서 피가 튀어나오고 정신이 아찔해지며 내장이 터지는 것 같았지만 포기 할 수 없었기에 리자드 워리어를 똑바로 응시했다.
“...!“
리자드 워리어와 정면으로 마주한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리자드 워리어의 복부에는 빛 화살이 하나 더 꽂혀있었다. 박대식이 발길질에 차여 날아가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빛 화살을 꽂아 넣은 것이었다.
덕분에 리자드 워리어도 나 못지 않게 만신창이었고, 서로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린 우리는 맨 손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흐아압!!!“
나는 시간을 더 끌지 않고 기습적으로 리자드 워리어의 품으로 파고들어서 상대의 두 다리를 잡고 넘어트리는 더블렉 태클을 시도했다.
“캬아아아악-!”
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리자드 워리어를 보며, 나는 주저없이 리자드 워리어 왼쪽 무릎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후벼팠고 결국 그 놈을 넘어트릴 수 있었다.
“으아아아악!!!”
놈의 위에 올라타는데 성공한 나는 양손으로 녀석의 목을 조르며 내 이마를 녀석의 안면에 마구 박아넣었고,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벗겨진 녀석의 투구를 잡아 들어서 다시 그 놈의 머리통을 수 없이 내려쳤다.
이미 많은 곳을 빛 화살에 꿰뚫린 리자드 워리어는 오래 버티지 못 했고, 얼마가지 않아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순간,
“크르으으으-윽. 인간...”
마무리를 짓기위해 사력을 다하던 내 귀에 리자드 종족의 울음소리가 아닌 분명한 언어가 들렸고,
“탑을... 크르륵...믿지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 뱉은 리자드 워리어는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분명 말을... 했어?’
수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나도 더 이상 깨어있기에는 무리였기에 나는 그대로 죽은 듯이 기절했다.
***
“흐읍...”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동료들은 내 주위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하하, 그 때 내가 바로 딱! 그 놈의 대검을 막아서며 대식군을 구하던게 마치 영웅같지 않았는가!”
“마..맞습니다. 하..하하! 그 놈의 대검도 아..아저씨의 망치는 못..못 이겨낸거죠!”
“어? 예담씨, 일어났어요? 안 그래도 슬슬 깨워야 되나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현주씨,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유현주는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알려줬다.
*
”그러니까, 리자드 워리어가 사라지면서 모두 몸이 회복 되었고, 철창에 갇혀 있던 마을 주민들은 모두 마을로 돌아갔다는 말씀이신거죠?“
”예, 납치 된 마을 주민중에 경비병 몇 명이 포함 돼 있어서 본인들이 인솔하여 마을로 복귀하겠다며 가버렸어요. 주민들이 예담씨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꼭 마을에 들려달라고 당부도 했고요. 하핫.“
”저한테 말입니까? 우리 모두가 같이 구해낸건데 왜 굳이 저에게만...“
”그야 당연히 모두 지켜봤으니까요. 저도 팔이 꺾이고 뼈가 부러져서 움직이지는 못 했지만 주민들 모두와 함께 두 눈으로 예담씨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봤는걸요.“
유현주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나는 싸움에 집중하느라 몰랐었지만 유현주의 말 대로 모두가 내 싸움을 지켜봤을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리자드 워리어의 상처를 쑤셔파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왠지 모를 수치심이 느껴졌다.
”나는 기절하여 보지는 못 했지만 모두 전해들었다네. 마치 신화속에 나오는 영웅의 모습 아닌가! 하하하, 내가 영웅의 동료라니 믿기지가 않는군!“
”저..저를 지켜주시려고 그..그 놈에게 올라타시다니, 너..너무 감사해요. 제..제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박대식은 충분히 본인 몫을 다 해 주었고, 이미 싸움은 이겼기에 굳이 박대식이 자책하게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대식씨가 마지막에 꽂아넣은 빛 화살이 아니었다면 저도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겨낸겁니다. 그런데... 저 흉갑은 뭡니까?“
”아, 안 그래도 말씀드릴라고 했어요. 리자드 워리어가 사라지면서 남긴 물건이에요.“
리자드 워리어가 입고 있던 묵색의 흉갑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빛 화살에 꿰뚫렸던 구멍들은 모두 수복 된 상태로 거의 새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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