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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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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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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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현진건, 29세.

루미너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매니저.


그는 최근 아역 배우를 전담으로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아역배우 매니저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의 업무는 비슷했다.


학교-활터-연기 레슨-집.

학교-승마장-연기 레슨-집.


차에 태우고 내려주고, 또다시 태우고 내려주면 하루가 끝난다.

본격적인 촬영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당분간은 이렇게 흘러갈 예정이다.


다만,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이 하나 있었다.


“안녕, 락원아.”

“형, 안녕하세요!”

“오늘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어?”

“늘 비슷비슷하죠, 뭐.”

“······”

“······”


대화 끝.


‘요즘 애들은 다 이렇게 의젓한가···?’


그의 배우는 너무나 의젓하고, 과묵하고, 심지어 프로페셔널했다.

이걸 어디 가서 고민이라고 말하면 밥 잘 먹고 헛소리한다고 마빡에 숟가락이 날아올 테다.


‘대표님이랑 있을 땐 말 많이 하던데···’


그런데 왜 자신은 차별하는가.

대체 왜.

나도 수다 떠는 거 좋아하는데. 입 닫고 조용히 운전만 하기 심심한데···


‘내 인상이 험악해서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작 유락원은 그가 조용히 운전만 할 수 있게 배려한 거지만, 현진건은 이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내가 불편한가 봐···’


마음이 안 좋았다.

앞으로 밤낮으로 붙어 다녀야 할 배우가 자신을 불편해한다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날 오후.


“락원아, 형이 대본 연습 도와줄까?”


승마 수업이 일찍 끝나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살짝 떴다.

현진건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자 유락원이 들고 있던 대본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주시면 좋죠.”


···란다.


그래주시면 좋죠······


‘내가 동료 매니저랑 얘기하고 있나.’


이게 어디 초등학생이 할 소린가.

안 그래도 불편했던 마음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한 장씩 대본을 넘겨보던 현진건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명절마다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찡얼대던 조카들.

그 조카들이 껌뻑 넘어갔던 실력을 유락원에게도 보여줄 셈이었다.


“28번 씬 해주세요.”

“오케이.”


28번씬은 어린 약초꾼 바우가 산에서 위험에 빠진 여주인공 허연서를 구해준 이후의 장면이다.

허연서의 대사를 눈으로 읽어 내린 현진건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마맛, 내 노리개!”


숨 한 번 들이쉬고.


“오라버니가 잃어버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떠냐.

구연 동화로 쌓아 올린 내 연기 실력이.


“······”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다음 대사가 돌아오지 않았다.

의아해진 현진건이 고개를 들었다.


“······형.”


유락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던 그가 한숨을 뱉듯이 조곤조곤 말했다.


“그냥 읽어주시기만 해도 돼요···”

“···응.”


뒤늦은 수치심이 밀려왔다.


“형, 저 화장실 좀.”

“다녀와···”


유락원이 잠시 자리를 피해줬고, 혼자 남은 현진건은 애꿎은 대본만 돌돌 말았다.



*



그날 저녁.


“대표님, 아직 퇴근 안 하셨네요?”


터덜터덜 회사에 복귀한 현진건이 활짝 열린 대표실 문을 노크했다.


“곧 가려고. 바로 퇴근해도 되는데 왜 들어왔어?”

“뭐 두고 간 게 있어서요. 근데 거기서 뭐 하세요?”


현진건이 오기 전, 윤준호는 대표실 한 편에 있는 책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마침 잘 왔다’는 식으로 윤준호가 손짓했다.


“이리 와서 여기 좀 봐봐.”

“대본이잖아요. 이게 왜요?”


현진건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대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세 칸에 나눠서 정렬된 대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네 생각에는 무슨 기준으로 이렇게 꽂은 거 같아?”

“기준요?”


현진건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윤준호를 쳐다봤다.


“···아니다, 빨리 들어가 봐. 내가 퇴근할 사람 붙잡고 있었네.”


현진건이 떠나고, 대표실에 혼자 남은 윤준호는 책장을 보며 턱을 긁적였다.


“하··· 뭐지? 뭐가 있는데.”


윤준호는 눈을 빛내며 대본을 읽던 유락원을 떠올렸다.

대본이 최신 게임기라도 되는 것처럼 신나할 때는 마냥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유락원이 꽂아둔 대본을 보자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나름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윤 대표 어서 와.”

“아이고, 잘 지내셨습니까.”

“이야. 독립하더니 얼굴이 폈네, 폈어.”

“예담에 있을 때보다 훨씬 보기 좋은데?”


중식당에 마련된 널찍한 룸.

문을 열고 들어간 윤준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디 가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큰일 납니다. 저 아름다운 이별한 거 아시잖아요.”


윤준호를 포함해 기획사 대표들이 모인 자리였다.

미리 앉아있던 사람들은 좋은 건수를 물었다는 듯 킬킬 웃었다.


“그러고 보니 하필 오늘 신 대표가 안 왔네. 윤 대표 보기 불편해서 빠진 거 아냐?”

“안 그래도 오기 전에 신 대표님이랑 통화했어요. 대표님들이 뭐라고 하면 자기한테 전해달라시던데요?”

“이런, 신 대표가 심어둔 첩자였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곧바로 음식이 들어왔고 적당히 배를 채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술잔을 들었다.


“윤 대표는 행보가 독특해? 독립하자마자 아역배우부터 영입하고.”

“누가 꼬실까봐 바로 데려왔죠.”


그 ‘누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입맛을 다셨다.


“이번에 MBS 미니 들어간다며.”

“네.”

“어떻게 꽂았어? 우리한테만 살짝 알려줘봐.”


윤준호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자리에 앉은 이들의 면면을 훑었다.


자신을 빼면 총 6명.

이들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사나운 눈초리 셋.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는 눈빛 셋.

심기가 불편한 이들은 윤준호에게 뺏길 것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계약하기 전에 배우 쪽으로 먼저 캐스팅 연락 온 거예요."

“에이, 말도 안 돼.”


윤준호는 미간을 찌푸리는 기획사 대표에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러고 피부과 가서 도통 왜 주름이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보톡스 한 대 놔달라고 하겠지.


“거기 속도 엄청 빠르다면서. 곧 촬영 들어간다던데?”

“네, 오늘 아역들 먼저 리딩 한다더라고요. 지금쯤 하고 있을 거예요.”


속마음이야 어쨌든 윤준호는 태연하게 식사를 마쳤다.


어차피 곧 세 기획사의 간판 배우들은 루미너스로 소속을 옮길 것이다.

이 바닥에 영원한 승리와 패배가 어디 있겠냐마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승자였다.

윤준호는 패자들의 얄팍한 수에 놀아나지 않았다.


“응, 리딩 끝났어?”


적당히 장단만 맞춰주고 자리를 파한 뒤, 현진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방금 막 끝났어요.


“분위기는 어땠어?”


핸드폰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여기저기 양해를 구하며 조용한 곳으로 빠져나온 현진건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락원이 진짜, 와, 와아···


“와는 이정현이고.”


-아, 대표님.


“그러니까 와만 하지 말고 말을 해 봐.”


윤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킬킬 웃었다.

미팅 때 자신이 봤던 유락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당연히 잘 했겠지. 누구 배운데.

그리고 담당 매니저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배우가 못해도 잘 했다고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락원이 진짜 잘했어요. 완전 끝장. 게임 오버.


“그래, 그랬겠지.”


-아니, 대표님 그 정도가 아니었다니까요?


“그럼?”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윤준호는 이런 말 할 거면서 괜히 뜸 들이는 현진건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줬다.


-락원이가 다 씹어 먹었어요.


현진건이 이 전에 맡았던 배우만 서넛이었다.

리딩에 처음 참석한 사람도 아니고, 발연기하는 배우만 맡았던 것도 아니다.


윤준호는 궁금한 게 태산처럼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현장에 카메라 돌고 있었지?”



*



"작가님, 다녀오셨어요?”

“다녀오셨어요···”

“오래 걸릴 것 같으시다더니 금방 오셨네요?”


작업실 문이 열리고 홍세라 작가가 들어오자, 숨 죽은 배추처럼 쩔어있던 보조작가들이 그녀를 반겼다.


숨이 팍 죽었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는 있다.

배추 세 포기의 상태를 확인한 홍세라 작가가 결연하게 말했다.


“우리, 후반부 대본 더 힘줘야겠다.”

“네?”

“이대로 가면 뒷심 딸린다는 소리밖에 못 들어.”


홍세라는 모처럼 의욕이 샘솟았다.


오늘 대본 리딩은 말이 리딩이지, 사실상 아역배우들의 연습을 위한 자리였다.

사극을 처음 찍는 배우는 감도 못 잡고 헤맬 수 있으니, 피차 고생하기 전에 정답지 펼쳐놓고 같이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


그런데 이미 정답을 알고 온 배우가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한 풀이보다 훨씬 더 좋은 풀이 방법을 들고 나타난.


‘흠. 이 장면은 이겸이랑 바우가 같이 나오는 씬인데··· 어떡하지, 나눠서 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남경모 PD에게 유락원이 말했다.


‘그냥 한 번에 읽을게요. 그게 더 편하시지 않을까요?’


편하긴 훨씬 편하지.

연기하는 배우가 불편해서 그렇지.


하지만 유락원은 해냈다.

심지어 우스꽝스럽지도, 전혀 어색하지도 않았다.


리딩장에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자신이 본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을 테니.


편집과 분장이 전혀 없는데도 그 정돈데, 본 촬영에 들어가면 더 날아다니겠지.

홍세라 작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대본만 잘 뽑히면 게임 끝이야.’


이 순간 떠오른 얼굴은 단 한 명뿐이었다.


“빡기호 이 자식 내가 뭉개준다···”


보조작가들은 혹여나 그녀와 눈이 마주칠까 노트북에 코를 박았다.

손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강현미 : 작가님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는데?

-강현미 : 눈 봐봐

-강현미 : 약한 눈이잖아

-이효원 : 저 눈이 어딜 봐서 약해?

-강현미 : 아니 약하다는 게 아니라;;

-송이나 : 먹어야 될 약을 안 드신 게 아닐까요;;

-이효원 :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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