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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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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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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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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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여우비

DUMMY

“와, 이게 누구야? 몰라보겠는데?”

“역시 락원이. 얼굴이 받쳐주니까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네.”

“오오오.”


촬영장에 나타난 유락원을 보며 스태프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얼굴에 드러난 웃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락원아, 형 오늘 결혼기념일이다.’ 

‘이모는 락원이만 믿어.’

‘칼퇴 시켜주라 락원아···’


더럽게 빡빡한 촬영 일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숨도 못 쉬게 바쁘진 않았다.

다 빠르게 컷을 뽑아내는 유락원 덕분이었다.


오늘은 약초꾼이 바위 뒤에서 거둬 키운 아이. ‘바우’의 첫 촬영 날이었다.


“영감님, 적당히 하고 들어가자니까요? 제 말 안 들려요?”


약초꾼 남씨 노인은 바우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광주리를 짊어진 채 산을 올랐다.

어쩔 수 없이 바우도 투덜대며 그 뒤를 따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노인네. 이놈의 산 씨를 말리네, 씨를 말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바우는 남씨 노인을 좋아했다.

자신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처지에 갓난아기를 거둬 지금까지 키운 사람이다. 

지금 산을 타는 것도 두 사람이 배 안 곯고 밥 다운 밥을 먹기 위해서였고.


“여기 쑥이요, 영감님! 이따 쑥개떡이나 해 먹지요!”


그 마음을 아는 바우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남씨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쑥개떡 같은 소리 하네. 이 녀석아, 그건 쑥이 아니라 인진호라고 하는 약이다. 눈에 보이는 건 다 캐와!” 

“예에에에—!”


바우가 기운 좋게 호미질했다. 

얼른 캐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우는 조금씩 조금씩, 남씨 노인과 멀어졌다.


“영락 없이 쑥인데 이게 약초라고?” 


중간중간 투덜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인진호가 주머니를 가득 채웠고, 더 들어갈 곳이 없게 되자 바우가 허리를 폈다.


“아이고, 사람 죽겠··· 어?”


그러자 남씨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온 세상에 살구꽃이 만개해 있었다. 

바우는 홀린 듯이 살구나무 사이를 거닐었다. 


“와아···”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서책을 읽는 허연서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흩날리는 꽃잎이 바우의 눈을 잠시 가리었다.


바스락—


그 잠깐을 못 참은 바우가 기척을 내버렸고, 허연서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고 만다.


“어, 어, 잠시만!”


그리고 도망치는 허연서를 바라보며 당황하는 바우.

살구꽃에 파묻힌 바우의 양 볼이 불그스름했다. 때마침 떨어진 꽃잎이 바우의 눈썹 위에 앉았다.


“컷! 오케이!”


남경모 감독이 싱글벙글 웃으며 일어났다. 오늘도 시작이 좋았다.

당황스러운 건 허연서 역을 맡은 배우와 그녀의 매니저였다.


‘한 번에 오케이라고?’


그동안 촬영을 하면서 남경모 감독에게 한 번에 통과된 적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씬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 이래서···’


이들은 그제서야 알았다.

오늘따라 촬영장 분위기가 유독 좋았던 이유를.

그리고 스탭들이 유락원을 보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이유도. 


‘야 이거 잘못하면···’


만에 하나 촬영이 길어지면 옴팡 덮어쓰게 생겼다.

식은땀이 두 사람의 등을 타고 흘렀다.



*



왜, 도대체 왜.


“컷, 오케이! 이번엔 타이트 갑니다!”

“힘들겠지만 지금보다 살짝 속도감 있게 뛰어주세요!”


사극이라면 술래잡기 한 씬은 꼭 들어가 있는 걸까.

이것도 장르적 클리셰 중 하나인가?

어차피 길어봤자 10화 안에 서로 죽고 못 살게(문자 그대로) 될 거면서···

아마 조선 시대에는 술래잡기를 해야만 서로 정분이 났던 모양이다.


···몸이 힘드니까 별생각이 다 드네. 


“락원아, 괜찮아? 안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네. 괜찮아요!”


진건이 형은 땀 흘리는 날 안쓰럽게 쳐다봤다.


지금은 바우를 피해 도망친 허연서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뻔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발을 잘못 디뎌 죽을 뻔하지만, 바우가 손을 잡아서 위로 올려준다. 


낭떠러지 씬은 나중에 세트에서 찍고, 지금은 뛰기만 하면 된대서 안심했었는데.


“근데 형, 연서는 육상 선수래요···?”

“글쎄? 근데 진짜 잘 뛰긴 한다.”


허연서 역을 맡은 배우가 진짜 죽기 살기로 뛰고 있다.

호랑이에 쫓겨도 저것보다는 덜 필사적일 텐데. 

단순히 책 좀 읽다가 도망치는 것치고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감독님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셨다. 


그 말은, 나도 저 속도에 맞춰서 뛰어야 한다는 뜻이다. 


“큐!”


얘야···


“거기 서!”


부탁이니 거기 좀 서다오······



*



“감독님, 오늘 일찍 끝나면 회식 안 합니까?”

“회식은 무슨 회식이야, 바빠 죽겠는데.”

“에이. 시간 되는 사람은 모여서 회식 가시죠? 오늘 아니면 언제 회식하겠어요?”


스탭의 말에 남경모 감독이 마지못한 척 입을 열었다.


“그럼 인원 조사 한번 해보던가.”

“오예! 맡겨만 주십시오!”


안 그래도 고생하는 스탭들한테 밥 먹일 궁리를 하던 차였다. 

유락원이 오케이 컷을 쭉쭉 뽑아내니 촬영에 가속이 붙었다.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촬영감독은 또 어떻고. 현장에 차질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면 해지기 전에 끝나겠는데?’ 


남경모 감독이 탄력 붙은 스탭들을 둘러봤다. 그의 콧잔등에 물방울이 톡 떨어졌다.


“···어?”


등골이 싸했다.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좆됐다···’


남경모 감독이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감독님. 비 오는데요?”

“에이씨, 오늘 비 안 온다며!”

“일정 짤 때는 안 온다고 했는데···”

“일단 접자, 접고 안으로 들어가!”


방금까지 맑았던 날씨가 끄물끄물 어두워졌다.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우리 드라마 대박 나려고 이러나 봐요, 하하···” 


한 스탭이 애써 말했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없었다.


야외 촬영이 잦은 사극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루 이틀 촬영이 밀리는 정도는 감안할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진 촬영이 연쇄적으로 밀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현장이 살얼음판으로 변한다.


“하 씨. 안 그래도 시간 없어 죽겠는데.”


남경모 감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럴 때 깔끔하게 접고, 들어가서 막걸리나 퍼마시자고 말할 수 있다면 좀 좋겠냐마는. 

촉박한 제작 기한 때문에 그마저도 힘들었다.


지금은 그나마 방영 전이라 일말의 여유라도 있지, 후반부는 거의 생방송으로 그날 찍어서 그날 내보내야 할 게 뻔했다. 


“소나기 같긴 한데···”

“해 떨어지고 비 그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남은 씬이 하나뿐이라는 것. 

문제는 그 씬이 바우가 난리 통에 사라진 허연서의 노리개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장면이라는 것이었다.


“락원이도 얼른 안에 들어가 있어. 비 그치면 형이 부를게.”

“여기가 시원하고 좋은데요? 비 오는 거 구경할래요.”


유락원은 현진건의 옆에 서서 스탭들의 표정을 살폈다.

짜증, 당황, 당혹, 초조.

그런 스탭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촬영일 하루 밀릴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던 걸 생각하면 공감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른 스탭들과 함께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 외에는.


“락원아, 손 줘봐.”

“어머, 너무 귀엽다!”

“반대쪽 손에도 끼워줄게.”


그런 유락원의 곁으로 스탭들이 모여들었다. 

미술팀 스탭들은 민들레를 꺾어 꽃반지와 꽃팔찌를 만들어주고, 홍보팀 직원은 그 모습을 현장 스냅으로 남겼다. 


“락원아, 여기 봐! 김치!”


스탭들 사이에 섞여 민들레를 찾던 유락원이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두 손가락에 작은 꽃반지가 반짝였다.


그 모습을 임동현 촬영감독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방수 비닐을 씌운 카메라 앞으로 다가갔다.


“감독님? 어디 가세요?”

“잠깐 뭐 좀 확인 좀 해보게.”


촬영 감독은 뭐에 홀린 듯이 카메라를 잡았다. 그리고 렌즈를 바꿔 끼우고 앵글을 조절했다. 


그 사이.


“어?”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여전히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 위로 햇빛이 들었다.


“감독···”

“남 감독! 남 감독 어디 갔어?”


조연출이 남경모를 부르기 전, 임동현 촬영감독이 한 발 빨리 소리쳤다.


“임 감독님, 왜요?”

“거기 모니터 좀 봐봐!”


그 말에 남경모 감독이 현장에 설치된 모니터로 다가갔다.

언제부터 카메라를 잡고 있던 건지, 유락원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

긴 속눈썹을 타고 빗방울이 톡 하고 떨어졌다. 빛에 반사된 빗방울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연한 화장 뒤로 아이의 투명한 피부가 그대로 비쳤다.


‘누가 변태 아니랄까 봐.’ 


모니터를 확인한 남경모 감독이 피식 웃었다.


“남 감독 어때? 죽이지!!”


그리고 신나서 소리치는 임동현 촬영감독에게 머리 위로 큰 원으로 그렸다.


“조연출 어딨어, 빨리 가서 다 모이라고 해. 바로 촬영 들어간다.”

“예?”

“서둘러, 비 그치기 전에 이 씬 끝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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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상한 흥신소 +2 24.09.04 245 15 11쪽
7 스파크 +3 24.09.03 251 13 13쪽
6 오늘도 죽는 남자 24.09.02 261 13 11쪽
5 월척이다 +1 24.09.01 289 14 13쪽
4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24.08.31 309 16 11쪽
3 참으면 복이 와요 24.08.30 346 16 12쪽
2 낙원에는 글자가 굴러다닌다 +2 24.08.30 409 19 13쪽
1 엔딩 크레딧 +2 24.08.30 498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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