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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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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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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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과제

DUMMY

방송쟁이, 영화쟁이들이 그렇다.


‘에이,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직도 미신을 믿어?’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놈의 미신으로 점철돼 있다.


포스터 색깔을 황색으로 뽑으면 영화가 말짱 황이 된다더라.

개봉 날 선글라스 쓴 관객이 많으면 앞날이 캄캄해진다더라.

대사가 안 외워질 때는 대본을 찢어서 씹어먹으면 외워진다더라.

영화 두 번 찍고 망한 배우는 그다음부터 안 써준다더라.

점쟁이가 반대하는 작품은 안 들어가는 배우도 있다더라.


이런 카더라가 횡행하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밥그릇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짧으면 수개월, 길면 연 단위로 갈려 나간 사람들의 노동력이 있잖은가.


인간적으로 참 좋고, 친해지고 싶은 동료도 성적이 저조하면 다시는 같이 일 못 하는 바닥이다.

결국은 좋은 동료들과 오래오래 일하고 싶으면 그놈의 돈이 벌려야 한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영화판에서 한 자리 차지했던 우리 에덴도 이런 미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우리 캐스팅 기사 나가는 거 하루만 미루자.’

‘가능은 한데, 왜요?’

‘그날이 손 없는 날이야.’

‘······’


뭐, 이 정도면 애교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들어가면 문상 안 가는 감독도 있는 판국에.


어쨌거나, 첫 촬영을 앞둔 어느 날.


“다들 모이세요!”


대본 리딩장으로 쓰던 회의실 한 편에 고사상이 차려졌다.

알록달록한 음식들 사이 돼지머리가 웃고 있었다.


난 그 입에 돈을 꽂아 넣으면서 빌었다.

무사고, 무펑크, 시청률 대박 이런 건 앞에서 다 빌었을 테니 패스하고.


‘홍세라 작가가 적당히 뒷산만 타고 내려오게 해주세요···’


이건 나만 빌 수 있는 소원이니까.

이 드라마를 봐야 할 불쌍한 캐스팅 담당자들을 굽어살피시어, 이번에는 부디 홍세라 작가가 정신을 차리게 해달라고 빌면서 돗자리에서 내려왔다.



*



가제 ‘쌍생‘은 왕실의 산실청에서 두 명의 남자아이가 한날, 한 시에 태어나며 시작된다.


‘왕실에 쌍생은 절대 불가하다!’


하지만 선왕의 엄포에 태어나자마자 둘 중 하나는 죽을 위기에 처하고.

빈궁(왕세자의 아내)은 늦게 태어난 아이가 출산 중 사망했다고 둘러댄 뒤 아이를 빼돌려 궐 밖으로 내보낸다.

그날 아이를 받은 의녀와 상궁 모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궐에 남은 아이는 어엿한 세손, ‘이겸’으로 자랐다.


유락원이 연기할 ‘이겸’은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엄한 아버지 밑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세손으로 나온다.


‘살이 좀 빠졌나?’


유락원의 리허설이 끝난 뒤, 카메라 뒤에 선 남경모 감독은 현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며 감탄했다.


‘이게 그 없던 서사도 생기는 비주얼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어두운 톤의 편복(便服)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손에 쥐고 있는 국궁은 또 어떻고.

현장에 나와 있는 미술팀의 표정이 유난히 밝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혼을 갈아 제작한 옷이 이겸에게 착 달라붙었다.


“큐!”


즈으으윽—


무표정으로 시위를 당긴 이겸이 미련 없이 손을 놓았다.


터억!


과녁에 명중한 화살.

이겸은 아첨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저기, 빈궁마마 아니십니까?”

“맞는 것 같사옵니다!”


그러던 중, 궁녀의 말에 이겸의 손이 바빠졌다.


날 보고 계신 걸까.

그렇다면 언제부터였을까.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보신 거겠지?

하지만 일부러 보러와 주신 거라면···


시위를 당기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활 줄이 한계까지 늘어났지만 이겸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모자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세요.


팅!


장력을 이기지 못한 활이 땅에 떨어졌고 화살은 과녁 너머로 사라졌다.


‘와, 씨.’


모니터로 지켜보던 남경모 감독이 벌떡 일어났다.


“컷, 오케이! 바로 다음 슛 갑시다!”

“오케이? 한 큐에 오케이야?”


현장에 있던 대다수, 심지어 유락원도 의아해했지만 감독이 만족했다니까.

거기다 대고 ‘한 번 더 찍어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나사 빠진 사람은 없었다.


“락원아, 카메라 너머에 엄마가 있다고 생각하면 돼.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지고 있는 거야.”

“네.”


그리고 같은 씬을 다른 각도로 다시 땄다.

카메라는 유락원의 뒤통수를 찍고 있었다.


팅!


활이 땅에 떨어졌고, 허둥대는 궁녀들 사이 이겸은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크, 분위기 미쳤고.’


파리한 이겸의 얼굴이 모니터에 꽉 차게 담겼다.

감독은 절로 흥이 나는 것을 억눌렀다. 여기에 필터까지 얹어지면 안 봐도 그림이다.


“아.”


이겸은 떠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유락원은 여기서 감정을 절제했다. 눈물을 보일 타이밍은 아니었다.

버석하게 메마른 눈이 빈자리를 더듬었다.


‘됐다.’


남경모 감독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촬영감독의 표정을 보니 자신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컷, 오케이!”


더 볼 필요가 없었다.


감독이 망설임 없이 소리쳤다.



*



현업에 있으면서 수많은 감독을 만나봤다.

비범한 사람도 많지만 괴짜는 또 어찌나 많은지.

그 중 스탭들이 제일 곤란해하는 건 현장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감독이다.


편집실에서 혼자 예술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현장에서 같은 씬을 따고 또 따고, 심지어 8시간 동안 같은 씬만 촬영하는 감독은 공공의 적이다.


반면 본인이 만족하면 두말없이 물러나는 감독도 있다.

남경모 감독도 그런 부류인 모양이었다.


“남 감독님 스타일이 원래 그래. 오케이컷 나오면 불필요한 컷은 잘 안 찍으셔.”

“원래 그렇다고요?”

“응. 항상 저렇게 작업 하셨대.”


진건이 형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이건 진짜 별일이다.


불필요한 컷이라.

단언컨대 그런 건 없다. 감독 입장에서 촬영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일단 찍어 놓으면 어딘가에는 퀼트처럼 기워 넣을 곳이 생긴다.


갑자기 3초 정도 씬을 늘리고 싶다거나, 갑자기 슬로우를 걸고 싶어졌다거나, 갑자기 오케이컷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걸로 갈아치우고 싶다거나 할 때.


그 말인 즉, 둘 중 하나다.

남경모 감독이 태업하고 있거나, 그의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편집본이 있거나.

아마도 후자겠지.


“와, 감독님 진짜 천재신가 봐요.”

“응?”


진건이 형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날 쳐다봤다.


“스탭 형, 누나들한테 인기 엄청 많으시겠다. 주변 사람들 고생 안 시키는 스타일이잖아요.”

“어, 뭐··· 그렇지?”


미리 편집본을 그려놓고 필요한 씬만 촬영하는 것 VS 촬영본을 직접 보고 갖다 붙이는 것.

감독 입장에서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편하다. 눈으로 확인하면서 편집할 수 있으니까.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어?”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더니.


“감독님이 저렇게 배려해 주시는데 잘해야죠. 잘할 거예요.”

“음···”

“형, 대본 좀 주세요.”


내가 손을 내밀자 진건이 형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움찔거렸다.


“형?”

“어, 여기.”


형에게서 대본을 건네받았다.

밑줄과 형광펜 자국 가득한 내 대본.


‘오죽남’은 단역이라 문제없이 잘 끝났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뽀록날 수도 있다.

이 현장에서 밥값 하려면 대본이라도 보고 있어야지.



*



드라마가 끝나면 스탭 롤이 올라간다.

미술 감독, 음향 감독, 조명 감독, 무술 감독, 또 감독, 감독, 감독.


많고 많은 감독 중, 총연출자를 제외하고 스탭 롤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감독이 있다.


“임 감독님, 앵글 어때요?”

“잠시만··· 오케이. 바로 들어가도 돼.”

“알겠습니다. 자, 슛 들어갑니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촬영감독이다.

타이트한 드라마 현장 특성상, 렌즈와 앵글은 촬영 감독이 알아서 판단하고 알아서 잡아야 한다.

그 덕분에 감독은 오롯이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

사극은 특히나 촬영 감독의 역량이 중요했다.


그렇다면 감독의 능력은 무엇인가.

이 스탭을 어떻게 꾸리느냐가 연출자의 능력이었다.


‘임 감독 안 붙여줬으면 진짜 이번에야말로 퇴사했다···’


남경모 감독의 현장이 잘 굴러가고 있는 이유.

MBS는 편성을 앞당긴 대신 충분한 예산과 드림팀을 붙여줬다.


그 드림팀의 대장 임동현 촬영 감독은 카메라에 달린 모니터에 집중했다.


“큐!”

“···오늘따라 성가시게 구는구나.”


앞을 가로막는 소환(어린 환관)에게 나지막하게 말하는 이겸. 그의 눈에 권태가 서렸다.


‘이거지.’


그가 찾은 최적의 각도다.

아직 젖살 있는 얼굴에서 날카로운 선을 찾아낸 임동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마마께서 알게 되시면 큰 일이···”

“그럴 일은 없다.”


부드럽게 올라가는 입꼬리.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소환의 어깨를 토닥이는 이겸의 눈은 웃지 않았다.

그의 눈에 서서히 노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이쪽으로 고개 조금만··· 그렇지!’


모니터를 보며 애달파하던 임동현 촬영 감독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위태로운 이겸의 옆태가 카메라에 가득 담겼다.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도 내가 나가는 것을 알지 못할 테니.”


소환 역을 맡은 아역 배우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저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자신의 대사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여기서 대사까지 있었다면 분명히 NG를 냈을 테니.


‘어?’


그런데 어깨를 감싸 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 힘이 소환의 고개를 들게 했다.


“네가 입을 다문다면 말이다.”

“······”


소환 역을 맡은 배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컷! 좋습니다!”


이번에도 단번에 넘어갔다.

모니터를 확인하던 남경모 감독이 촬영 감독에게 물었다.


“근데 임 감독님, 혹시 슛 들어가기 전에 따로 디렉션 주셨어요?”

“어떤 거?”

“이 부분이요.”


남경모 감독이 가리킨 것은 화면 속 겁에 질린 소환이었다.


“아까 리허설이랑은 느낌이 좀 다른데···”

“더 좋지?”


“네.”


남경모가 고개를 끄덕이자 임동현 촬영감독이 킬킬 웃었다.


“나 아니야. 그거 락원이가 알아서 한 거야.”

“예? 어떻게요?”


남경모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돌아봤다.

자신은 기가 막히게 연기하는 유락원밖에 보지 못했는데, 거기서 뭘 또 알아서 했단 말인가.


남경모는 보지 못했지만 베테랑 촬영 감독의 눈까지 피할 순 없었다.


“여기. 이때 몰래 신호 주더라고. 모니터로는 안 보였을 거야.”

“진짜요?”

“이 양반아, 뭘 그렇게 놀라.”


남경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임동현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몰랐어? 쟤 타고났어. 난 아까부터 알고 있었구만.”


현진건은 모니터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토독토독. 터치폰 자판을 누르는 손이 바빴다.

윤준호 대표가 첫 촬영 분위기를 알려달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나 : 대표님

나 : 여기 현장 좀 이상해요


그리고 열심히 토독토독 거리고 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대표님?”


-그게 무슨 말이야. 현장이 왜 이상해?


당황한 현진건이 두 손으로 핸드폰을 부여잡았다.


“아니 아니,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요, 좋은 의미로 이상하다고요.”


-좋은 의미로 이상한 건 또 뭐야.


“그러니까··· 조별 과제 희망편?”


-뭐?


현진건이 아역 배우와 이야기하는 유락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다 천재들밖에 없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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