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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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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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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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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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크

DUMMY

일반적으로 장르물이라 함은 두 가지를 통칭한다.


남녀의 로맨스가 없는 드라마.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물 장르의 드라마. 대중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장에서도 이 둘을 혼용해서 쓴다.


‘오늘도 죽는 남자’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후자였다.

불법 흥신소 사장인 주인공이 고지식한 형사와 얽히며 사건을 추적해나간다는 스토리로, 매 회 새로운 의뢰자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 구조다.


극 분위기에 맞게 참으로 다채로운 인상파 배우들이 자리한 가운데.


“안녕하세요. 하윤재를 연기하는 유락원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역배우들의 우렁찬 인사가 대회의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이들의 얼굴이 사르르 풀어졌다.


“너무 귀엽다아.”

“형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좀···”

“뭐.”

“범죄자 같은데요?”

“뭐 임마?”


와하하. 배우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메이킹 카메라를 잡은 조연출이 이 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그리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본격적인 리딩이 시작되자 180도 돌변했다.


“선생님, 그건 다른 흥신소 가서 물어보세요. 아마 바로 맡아줄 겁니다.” 

“네? 아니, 왜······ 까다로운 일도 다 해결해 준다고 해서 왔는데요?” 

“예, 그러니까요. 미나야 손님 가신다. 문 열어드려라.”


아무리 캐스팅을 공들여 해봤자,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물은 살아 숨 쉬지 않는다. 

대본 리딩은 그 확인 절차에 가까웠다. 배우가 얼마나 캐릭터를 잘 해석해왔는지, 그 해석이 연출과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고 서로 합을 맞추는 자리.


“하품하며 일어나 문 여는 미나. 손님이 나가자 문 앞에 소금을 뿌린다.”


지문을 읽은 구치승 PD가 좌중을 훑어봤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스파크가 튀고 있다. 일단 시작이 좋았다.


대본 리딩 장 분위기는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빠르게 대사만 훑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배우들이 본 촬영에 가까운 열연을 펼칠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프로들이니까 믿고 맡기는 거지만···’


그래도 이들이 만들어 낼 케미스트리를 하루빨리 보고 싶은 것이 연출자의 마음이었다. 

이는 PD, 작가가 요구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 불씨를 지펴주기를 기다릴 뿐.


그리고 마침내, 한 씬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의뢰인의 아들, 9살 초등학생 하윤재는 1화 초반부터 사건의 중심에 서지만 정작 본인은 1화가 끝날 때쯤에야 얼굴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표정, 행동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시청자들의 귀를 잡아채야 한다. 

이 자리에 있는 배우들은 그들이 가진 무기 하나를 내려놓고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아빠···”


그렇기에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나 윤재.”


깨끗한 발성은 둘째 치고 목소리에 흡입력이 있다. 대본에 코를 박고 펜 대를 돌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아빠 언제 와? 벌써 두 밤 지났는데···”


물기 젖은 아이의 목소리가 대회의실 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배우는 감정을 전달하는 동시에 듣기 편한 소리를 내야 한다. 아무리 열연을 펼쳐봤자 듣는 이의 귀에 거슬리면 그건 감정 과잉일 뿐이다. 


윤재는, 락원은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으···으윽······”


담담하던 표정이 일그러진다. 감정이 천천히 고조되고 있었다.

눈꼬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툭, 툭, 대본을 적셨다.


이쯤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단체 환각을 겪었다.

분명 아무런 후작업도 거치지 않은 소리건만, 아이의 목소리에 전화 특유의 노이즈가 겹쳐 들렸다.


“와, 애가 무슨 연기를···”

“살발하다 살발해.”


배우들과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작은 웅성임이 일었다. 그리고 락원의 주변에 앉은 배우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숨죽인 채 지켜봤다.


“아빤 거짓말 쟁이야! 두 밤, 흐으, 두 밤 지나면 온다고 했잖아!!”


‘길게 흐느끼는 윤재.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구치승 PD는 연기에 완전히 몰입한 배우를 위해 지문을 읽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간 감정을 끌고 가던 락원이 소매로 눈물자욱을 닦아냈다.


“아냐. 아빠 나 착하게 있을 테니까··· 내일은··· 꼭 윤재 데리러 와야 돼? 기다릴게!”


비집어 나오는 울음을 참고 씩씩하게 말하는 그 모습은, 이윤희 작가가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만든 하윤재 그 자체였다. 


[미쳤다. 게임 끝났다.]


이윤희 작가는 옆자리에 앉은 구치승 PD의 메모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애써 흥분을 감추며 대본을 넘겼다.


과연 후반부, 그 씬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자신이 써 낸 이야기지만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



1화는 주인공 ‘이태명’의 정체가 밝혀지는 한편, 그의 흔적을 발견한 형사 ‘마정우’가 미심쩍은 냄새를 맡는 것으로 끝났다.


“10분만 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구치승 PD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날 힐끗 쳐다보곤 휴식을 선언했다.


내가 좀 휴식이 필요한 상태긴 했다.

눈은 퉁퉁 부었지, 끝에 가서는 대사에 살짝 쇳소리가 섞이기도 했다.


“엄마 나 잘했어?”

“어어엄청! 엄청 잘했어. 엄마는 락원이가 연기하는 거 아는데도 눈물 나서 혼났어.”


눈시울이 붉어진 어머니가 내 양 볼을 잡고 좌우로 흔드셨다.


그으, 뿌듯하신 건 알겠지만 저도 체면이란 게 있는데요.


“으베에에에—”


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너무 훈훈했다. 난 얌전히 얼굴을 맡기고 덕장에 걸린 미역처럼 흔들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고, 주인공 ‘이태명’ 역을 맡은 배우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우리 윤재는 이름이 뭐라고 했지?”

“락원이요! 유락원입니다!”

“아유, 그래. 락원아. 형 이름은 피준호야. 우리 잘해보자.”

“네에!”


피준호.

극단 출신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대학로 아이돌’이란 별명은, 사실 특색 있는 홍보 포인트를 골몰하던 어느 직장인의 항복 선언 같은 것이다. 


하지만 피준호는 진짜 말 그대로 지난 몇 년 간 대학로의 아이돌로 군림했었다. 

그리고 지상파 미니시리즈로 매체에 데뷔, 이후 여러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오죽남’으로 필모그래피에 첫 번째 주연 작품을 채워 넣게 됐다. 


극단 출신인 만큼 연기력이야 보장돼 있고, 그야말로 연기밖에 모르는 너드 타입이다. 괜찮은 동료라는 뜻.

난 피준호가 내미는 손을 잡고 흔들었다.


“형은 무슨. 일찍 장가갔으면 저만한 아들이 있겠다.” 


옆에서 웃는 덩치 큰 남자는 마 형사 역의 오종우. 짧은 반팔 아래로 울끈불끈한 근육이 존재감을 어필했다.


그 모습을 나만 본 게 아니었나 보다. 


“아하하, 하, 하.”


피준호가 어색하게 웃자 마 형사가 눈썹을 긁적거렸다.


“형, 나 농담한 건데···” 

“그럼. 알지 알지. 하하···”


어색한 두 남자를 뒤로하고, 내 옆에는 이제 이윤희 작가가 와서 섰다. 


“윤재, 아니 락원아. 오늘 진짜 진짜 잘했어. 1화는 락원이만 믿고 가면 되겠다.”


리딩 하는 내내 시선이 뜨겁긴 했다.

오디션 장에서 봤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열의 가득한 모습이었으니.


“윤재라면 꼭 그렇게 울 것 같았거든. 근데 쓰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잔뜩 흥분해서 후기를 쏟아내는 이윤희 작가의 등 뒤로, 구치승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슬슬 두 사람의 캐릭터를 알겠다.


“락원아. 이제 락원이가 나오는 장면은 없는데 어떡할래. 끝까지 보고 갈래?”


이윤희 작가는 총 10분의 휴식시간 동안 7분을 나에게 할애했다. 그리고 슬슬 화장실 갔던 사람들이 회의실로 들어올 때쯤 넌지시 물었다. 


“네! 그래도 돼요?”

“그럼 물론이지. 이따 삼촌들이 삼겹살 구워줄 테니까 그것도 먹고 가.” 

“감사합니다!”


난 어머니에게 눈으로 동의를 구한 다음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봤다.


“근데 삼겹살 먹으러 누구누구 오세요?”

“오늘 리딩 참석하신 분 다 오실거야. 아, 선생님은 안 오시겠다.”

“그렇구나.”


흐음···

과연 그럴까?



*



‘오죽남’의 첫 전체 대본 리딩은 총 4회차의 대본을 읽고 나서야 끝났다.


휴식 시간을 포함해 다섯 시간의 대장정. 휘몰아치는 배우들의 열연에 오늘 치 심력을 모두 소모한 사람들이 ‘이야, 와, 차함나.’ 같은 소리를 곳곳에서 내고 있었다.


“아차차.”


대본을 갈무리하던 구치승 PD가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 모았다.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드라마는 보안이 생명입니다. 1화 온에어 전까지는 보안 지켜주세요.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PD의 해소 선언에 관계자들은 그대로 대회의실을 빠져나와 상암동 모처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건배 한번 할까요?”

“좋죠! 다들 잔 채우세요!”

“제가 선창하면 다들 죽여보자! 하시면 됩니다.”

“네!”

“자, 오죽남!”

“죽여보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고깃집에 울려 퍼진다. 리딩 분위기가 좋았던 터라 술맛이 더 달았다. 


한 편, 미닫이문 너머 좌식 테이블이 있는 방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선생님. 방석 하나 더 드릴까요?”

“아냐 아냐. 난 신경 쓰지 마.”


당연히 리딩이 종료되자마자 먼저 자리를 뜰 줄 알았던 원로 배우 차인묵이 회식에 참석했다.

주연 배우 몇몇과 주요 제작진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구치승 PD를 쳐다봤다.


‘생 사람 잡지 마, 다들. 내가 모신 거 아니야!’


구치승이 속으로만 항변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건 그도 매한가지였다.

당연히 안 오실 걸 알면서 예의상 참석 여부를 여쭤봤는데 흔쾌히 그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이렇게 눈치 없는 분이 아니신데···’


하지만 그 마음을 절대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다만 차인묵에게 들켜버린 것뿐이다. 


‘그렇게 눈치 안 줘도 금방 간다, 이 녀석들아.’


그러니 빨리 용건만 처리하고 빠져 줄 생각이었다.


“커흠. 큼.”


술병이 몇 바퀴 돌자 차인묵은 화장실 가겠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심심했지?”

“아뇨. 재밌었어요!”

“진짜? 안 힘들었어?”

“네!”


그가 매의 눈으로 아역배우들이 앉은 자리를 훑어봤다.


‘여기쯤 둔 것 같은데··· 찾았다.’ 


그의 눈에 락원이 신줏단지처럼 품고 다니던 대본이 포착됐다. 리딩 내내 아이가 쉬지 않고 글씨를 써 내려가던 대본이 그의 목적이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인 그는, 리딩 내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아이의 곁엔 항상 사람이 가득했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 영 기회가 없었다.


아이는 엉덩이로 대본 끄트머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조금만······ 됐다.’


그 대본을 손가락으로 살살 꺼내던 차인묵이 고개를 들었고.


“······”

“······”


양 볼에 가득 삼겹살을 씹고 있는 락원에게 현장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이거 잠깐 봐도 될까?”

“므에에.”

“······”


부끄러움은 잠시였다.

차인묵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락원의 옆에 자리를 깔고 대본을 보기 시작했다.


[목소리 작지만 힘있게]


[여기선 왜 갑자기? 잘 모르겠다]


[9살이 이건 좀..]


[이 부분은 이따 물어보기]


[터트리는 듯한 소리. 시선은 어디?]


그곳엔 어엿한 배우의 고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신의 씬은 물론이고 그가 출연하지 않는 씬에도 아이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배고프다..]


[재밌다]


[벌써 4화?]


[너무 재밌어]


대본을 훑어보던 차인묵이 시선을 내렸다. 저 멀리서 하루 종일 봤던 정수리가 열심히 고기를 씹고 있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는데, 때마침 밖에서 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상기된 구치승 PD가 잔을 들었다. 


“저희도 짠할까요?”


차인묵의 잔에도 빠르게 맥주가 채워졌다. 락원이 그 잔과 차인묵을 말똥말똥 쳐다봤다.


“줄까?”


끄덕끄덕.


“어디 보자··· 옳지.” 


테이블을 둘러보던 차인묵이 적당한 것을 찾아냈다.


“와아···”


그리고 락원의 맥주잔에 사이다를 콸콸 채워줬다.


“락원이라고 했지? 많이 먹고 가려무나.”

“네에······”


차인묵이 흐뭇하게 웃으며 락원의 머리를 슥슥 빗어줬다. 아이의 관심이 온통 자신의 맥주잔에 쏠려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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