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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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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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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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면 복이 와요

DUMMY

“아자아자 화이팅!”

“화이팅!”


아들을 교실로 들여보낸 박정혜가 학부모 대기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대기실에 있던 학부모들과 눈짓으로 인사한 뒤 주변을 살폈다.


[우리 아이 배우로 가는 첫걸음, 영인 연기 전문학원에서!]

[좋은 연기학원, 무엇이 다를까요?]

[방학 집중 훈련반 개설 안내]


그녀는 벽에 붙은 포스터와 팜플렛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집과 가까운 곳에 평 좋은 연기 학원이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래서 락원이 연기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자 그길로 상담을 잡았고, 바로 다음 날 첫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아들이 하고 싶다는 건 모두 응원해 줄 생각이었다. 아역배우 생활은 아이는 물론이고 24시간 케어하는 보호자도 힘들다고 들었다. 대기 시간에 차에서 자는 건 일상이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다고.


‘까짓거 한 번 해보자.’


그녀가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을 때 대기실 문이 살짝 열렸다.


“락원이 어머님 계세요?”

“네, 여기요.”

“어머니, 잠시만.”


상담을 진행했던 원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문을 열었다. 자신만 콕 집어 찾는 게 의아했지만 박정혜는 곧장 가방을 챙겨 뒤를 따랐다.

대기실 문이 닫히자마자 원장이 입을 열었다.


“수업 곧 끝날 거예요. 아이 없는 곳에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 뵙자고 했어요.”

“어쩐 일로···?”

“어머니, 락원이 연기학원은 처음이라고 하셨죠?”


원장은 복도에 다른 학부모가 없는지 살피고는 작게 속삭였다.


“첫 수업에 이런 말이 이를 수 있지만 락원이 재능이 아주 뛰어나요. 몰입 좋고 빠져나오는 것도 빠르고요.”

“정말요?”


박정혜는 감탄을 담아 되물으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등록한 원생 엄마니까. 다음 달 재등록 때문에 벌써부터 저러나 했던 거다.


“네, 혹시 발성은 집에서 가르치신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어머, 진짜요? 발성이 웬만한 성인 연기자들보다 딴딴하고 울림통도 좋아요. 어쩜 좋아, 타고났나 보다.”


그런데 가만 듣고 있자니 김영인 원장의 말이 영업인지 진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짜 잘 오셨어요. 락원이 같이 기본기 있는 친구들은 빨리 늘어요. 특히 방학반은 거의 매일 수업하니까 하루하루 몰라보게 달라질 거고요.”


어쨌거나 제 새끼 잘났다는 말이 듣기 싫진 않았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수업이 끝났고 락원이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락원아, 안녕. 내일 보자~”

“네, 안녕히 계세요!”


박정혜는 꾸벅 인사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없었고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이다.


남편은 약속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고 했으니 오늘 저녁은 아들과 둘이 먹어야 한다. 그녀는 첫 수업을 자축할 겸, 락원이 좋아하는 햄버거 가게로 가려고 했다.


“엄마. 나 학원 안 다닐래.”


그런데 학원에선 세상 의젓하게 굴던 아들이, 조수석 안전벨트를 채우자마자 입이 댓발 나와서는 불퉁하게 말하는 것 아닌가.


핸들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왜?”

“그냥. 학원은 별로 재미없어. 혼자 공부할래.”

“수업 시간에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혹시나 싶었다. 원장의 태도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지만, 아들의 말도 들어봐야 하니까.


“응.”


그런데 태연한 표정을 보니 수업 중 꾸중을 듣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랬, 구나.”


참자.

참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그래, 그러자. 원장님한텐 엄마가 말씀드릴게.”


그녀는 집으로 핸들을 틀었다.



*



묘하게 싸한 집안 공기를 모른 척하고 책을 펼쳤다. 물론 진짜 읽으려는 건 아니고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하기 위해서다.

산만해야 정상인 초등학생이, 그것도 얼마 전 유괴 당한 애가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촬영 스케줄보다 병원 스케줄이 먼저 잡힌다.


<WHY? 영화>


다행히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는 시리즈 도서가 훌륭한 가림막이 되어줬다.

배우가 꿈인 주인공 ‘엄지’가 영화감독인 삼촌에게 자신을 영화에 출연시켜달라고 조르는 장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음.”


일단 연기학원을 통해 데뷔한다는 계획은 폐기다.


보통 아역배우의 데뷔 루트는 크게 두 가지, 연기학원과 에이전시다. 이들이 아역 배우 수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작품의 오디션이 열리는지, 그리고 제작진이 어떤 이미지를 찾고 있는지, 이들은 알고 있다.


둘 중 연기 학원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대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서.

촬영장에서 어깨너머로 발성법을 배우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가편을 보며 혼자 감정선을 연구하는 거 말고. 제대로 된 시스템 안에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서.


그런 단꿈에 젖어 잠시 아역 배우 학원이 어떤 곳인지 잊었다.

소위 잘 ‘학습’된, 그들이 생각하는 정답에 가까운 배우를 양성하는 곳. 물론 그게 완전히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연기학원 출신의 걸출한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그게 나한테도 정답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주화입마에나 안 빠지면 다행이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비슷비슷한 연기를 하는 아역이 될 바엔, 나만의 길을 찾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열 번도 더 읽은 책이 그렇게 재밌어? 아주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겠네.”

“응응. 재밌어.”


하루 만에 변덕을 피우는 아들을 보며 말없이 주방으로 갔던 어머니가 방울토마토와 함께 돌아왔다.


“배고프지? 잠깐 먹고 있어. 엄마가 금방 밥해줄게.”

“네에.”


자, 그럼 이제 어쩐다. 날 잡고 에이전시에 프로필이라도 돌려야 하나.


아삭아삭. 방울토마토를 씹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제 엄지는 삼촌에게 아예 자신을 주연으로 한 작품을 새로 써내라며 쌩난리를 치고 있었다.


“와.”


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그래. 잘 아는 업계인 나머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는데 말이다.


그동안 촬영장에서 본 아역들이 모두 연기 학원과 에이전시를 거친 것은 아니다.

조감독 딸의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 촬영감독이 다니는 교회 집사님 딸내미, 심지어 촬영 직전 펑크가 났을 때는 밥차 여사님 따라 촬영장 구경 온 아들까지.

이들은 모두 업계의 고유한 전통, 지인 찬스를 통해 데뷔한 아역들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과 전업주부에게 그런 지인이···


“···있네?”

“응? 엄마 불렀어?”

“아무것도 아니야!”


왜 잊고 있었지? 방송, 영화 업계는 아니지만 좋은 발판이 되어줄 업계에 어머니의 친구가 있었다.


엄지야 고마워. 난 조용히 책을 덮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갔다.


“엄마, 근데 요즘 수민 이모는···”

“아들 잠시만. 응 수민, 전화했었네?”

“나도! 나도 이모한테 인사할래!”


-락원아! 잘생긴 우리 락원이!


쨔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



*



고혜지, 10살.

주니어 모델 5년 차, 아역 배우 3년 차.


나이는 어리지만 애티튜드만큼은 어엿한 프로인 그녀의 꿈은 배우다. 하지만 찍을 수 있는 작품은 적고 아동복 브랜드는 매 시즌 신상을 출시했다. 당연히 모델 활동이 더 잦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제 집만큼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스튜디오에서, 그녀는 현재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찰칵. 찰칵.


“너무 좋다, 우리 다른 포즈 한번 해볼까? 준비한 거 있어?”

“네!”

“아유, 대답도 씩씩하게 잘하네. 이따 끝나고 삼촌이 사탕 줄게!”

“감사합니다!”


우렁차게 대답한 광친아가 자신을 돌아봤다.


“내 어깨에 팔 올릴래?”

“···그러려고 했어.”


샐쭉한 대답이 튀어나갔지만 상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했다. 고혜지도 질세라 광친아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광친아는 그녀가 일일 파트너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풀어쓰면 광고 대행사 직원의 친구 아들.


물론 광고 대행사가 정확히 뭐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른다. 나중에 반 친구들 앞에서 써먹으면 있어 보이니까 기억해둔 거다.


어쨌거나, 그녀는 오늘 큰마음을 먹고 촬영에 임했다. 현장에서 만난 파트너는 오늘이 첫 촬영이라고 했다.


자신의 첫 촬영은 어땠더라. 조명이 엄청 뜨거웠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머지는 엄마에게 들어서 아는 거다. 어린애가 너무 잘해서 현장이 뒤집어졌다나 어쨌다나.

크고 나서 그날의 결과물을 보니 아무래도 엄마의 거짓말에 속은 것 같지만.


“···지야. 혜지야?”

“어, 어?”

“같이 찍는 건 끝났고 이젠 나만 찍는대.”


주변을 둘러본 고혜지의 양 볼이 화르륵 불 타올랐다. 촬영 중에 감히 멍을 때리다니.


이게 다 광친아 때문이다. 선배로서 넓은 아량을 발휘해 촬영을 리드하려고 했는데, 리드는커녕 집중하지도 못했다.


찰칵. 찰칵.


“와아···”


이어진 락원의 독사진 촬영. 고혜지는 셔터음에 맞춰 기계적으로 포즈를 뽑아내는 파트너를 보며 질려 했다.


그녀는 몰랐다.

광친아의 몸속에 스튜디오 대여 시간 안에 작업을 마쳐주려는 사회인의 영혼이 갇혀 있다는걸.

그리고 두 사람이 (일방적이지만) 구면이라는 것도.


“정혜야, 니 아들 천잰가봐···”


한편, 구석에서 촬영을 지켜보던 박정혜는 대학 친구의 말에 입꼬리를 옴싹거렸다. 긴장을 풀면 어디까지 찢어질지 몰랐다.


“천재는 무슨. 다 저 정도는 하지 않나?”

“저어기 포토님 표정 안 보여? 퇴근 시간 앞당겨져서 입 찢어지려고 하시네.”


박정혜는 신들린 듯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작가의 표정을 확인한 뒤에야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그치? 내 눈에만 괜찮은 거 아니지?”

“참 나. 내 주변 경상도 사람들은 다 좋다는 말을 괜찮다고 하더라? 자, 어머니 여기 와서 직접 보셔요. 상의랑 하의, 그리고 신발까지 한 컷에 잘 보이지? 근데 표정은 막 깨물어 주고 싶고? 어머니, 현장에서는 저런 애들을 천재라고 한답니다.” 


퇴근 전 관계자에게 인사하러 간 고혜지의 엄마와 고혜지도 이수민의 말을 들었다. 모니터를 보며 한바탕 열변을 토하던 이수민이 빠르게 표정을 갈아 끼웠다.


“참, 혜지는 먼저 와서 단독컷 찍었죠?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에도 에이전시 통해서 연락드릴게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고도 두 모녀가 가만히 서 있자 이수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 뒤로 박정혜가 빼꼼 나타났다.


“저기... 락원이 어머님.”

“예?”

“실례가 아니라면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촬영장에 혜지 또래 친구가 많이 없어서요. 다음에 마주치면 인사해요 우리.”


고혜지의 엄마는 딸이 소매를 쭉쭉 잡아당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끝마쳤다. 그 모습을 보던 박정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물론이죠.”


그녀가 핸드폰을 건네받자 고혜지는 이제 경기를 일으키려고 했다. 박정혜가 자그마한 터치폰 화면을 누르며 쿡쿡 웃었다. 


“엄마, 내가 친구가 없긴 왜 없어! 나, 나 친구 많잖아!”

“쉬이, 우리 딸 착하지이. 가만 있어요오?”


고혜지의 어깨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처졌다. 끝음을 늘린 말은 가만있지 않으면 착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경고였다.


번호 교환을 마친 두 어머니는 아예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근데 아까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혹시 경상도 분이세요?”

“네, 부산이요.”

“어머, 저돈데! 부산 어디요?”

“구포 쪽이요. 혹시 어디···?”

“저는 사상이요. 어쩜 너무 반갑다, 진짜.”


촬영이 끝나고 모니터로 원본을 확인하던 이수민이 그 모습을 보고 킥킥 웃었다.


“······”

“······”


신이 난 두 부산 여자 옆, 입에 막대 사탕을 문 락원과 혼이 탈출한 고혜지가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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