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531
추천수 :
267
글자수 :
88,755

작성
24.09.12 23:26
조회
172
추천
15
글자
10쪽

농구가 하고 싶어?

DUMMY

퓨전 사극에 있어 역사적 고증이란 무엇인가. 챙기면 좋고, 안 챙겨도 딱히 상관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증을 아예 밥 말아먹으면 역사 왜곡이지만 어느 정도 선 안에서는 각색이 허용된다. 


마찬가지로 시청자들도 퓨전 사극에서 철저한 고증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조선과 놀랍도록 유사한, 저 어드매에 있는 저세상 조선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계급장과 예법이다. 


1200cc 할리 데이비슨 타고 궐에 출근하는 영의정 : 스팀펑크 조선.

말 위에서 주상 전하에게 목례하는 신하 : 뒤주행. 


깨 털다가 새참으로 라면 먹는 백성 : 조선 트립물.

임금 앞에서 양손 수저질하는 신하 : 크아아아아악···!


뭐 이런 거다.

적어도 기본은 지키고 그 위에 판타지를 얹어야지, 이걸 어기면 근본 없다고 각혈하는 시청자들이 속출한다. 


“발은 정자(丁)와 팔자(八) 사이에 두고 팔꿈치는··· 그렇지. 위로 들리지 않게 아주 살짝만 아래로. 깍지팔이랑 줌팔이 일자로 쭉 뻗는 자세가 좋은 자세야.”


이것이 내가 사극 촬영을 앞두고 활터를 드나드는 이유였다.

한복 잘 차려입고 양궁식 사법으로 활 쏘면 ‘세자 태평양 건너왔냐?’고 논란 생긴다. 


국궁 수업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속성으로 승마 배워야지, 내 요청으로 회사에서 연결해 준 선생님에게 사극 연기 레슨도 받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뻗어서 자기 바빴다.

매일 드나들던 회사는 바빠서 못 간지 며칠 됐다.


“요새 락원이가 아빠보다 더 바쁜 것 같네. 락원아 안 힘들어?”


아빠 나 죽을 것 같아···


“응 괜찮아! 근육통은 시간 지나면 사라질 거래.” 

“아이구. 이리 와봐, 아빠가 마사지해 줄게.” 


음.

사실 내가 아빠 어깨를 주물러드리는 게 맞지만.


“으어어···”


오늘 하루만 불꽃 효자가 되기로 했다. 

말 타고 활 쏘느라 뭉친 온몸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락원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드라마 꼭 잘 됐으면 좋겠다.”

“응, 잘될 거야!” 


내가 나오는 부분까지는.


애석하게도 이 드라마는, 잘나가다가 갑자기 산으로 갈 예정이다. 

그것도 동네 뒷산이 아니라 한라산을 타며 용두사미의 정점을 찍을 예정이었다.



*



사건의 시작은 역시 촉박한 제작 기한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아역은 초반 6화까지만 등장한다.

그리고 6화쯤은 1인 2역으로 촬영해도 방영일을 맞출 수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방영 회차.

성인이 된 ‘이겸’과 ‘바우’를 배우 한 명이 소화하면 펑크가 날 게 뻔했다.

본격적인 촬영 전부터 난관에 봉착한 제작진은 여기서 묘수를 냈다고 했다.


‘일란성 쌍둥이도 자란 환경이 다르면 외모가 달라지잖아요. 개연성 면에서는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A팀, B팀으로 나눠 찍기 위해 ‘이겸’과 ‘바우’를 각각 캐스팅 한 것이다.

나는 이 비하인드를 나중에 알게 됐고 꽤나 괜찮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1인 2역을 밀고 나갔다가 후작업도 제대로 안 된 테이프를 전국에 송출할 바에야, 애초부터 리스크를 없애는 게 맞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성인 이겸과 성인 바우.

두 남자 배우들의 인기가 너무 좋았던 거다. 둘 중 누가 여주인공과 붙어도 케미가 살았다.


여기서 홍세라 작가가 화제성 뽕을 제대로 맞아버렸다.

그녀는 후반 대본 작업을 하다 말고 봇짐을 싸서 터벅터벅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단의 비기.

‘남편 찾기’를 시전했다.


처음부터 홍보를 ‘진짜 남편을 찾아보세요!’로 했으면 뭐가 문제였겠나.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드리프트였다. 


결국 로맨스도, 형제간의 우정도 챙기지 못한 드라마에는··· 두 커플 팬들의 개싸움만이 남았다.


개싸움도 그런 개싸움이 없었다.

잘 보던 시청자들마저 지쳐서 나가떨어져 버렸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화까지 세 남녀를 질질 끌고 간 결과. 

관성적으로 마지막 화까지 따라간 드라마 팬, 커플 덕후, 배우 팬. 

이들을 1타 3피로 뻥 터트려버렸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다.


내가 영화도 아닌 드라마 제작 비하인드를 이렇게까지 잘 아는 이유는.


“하, 하하···”


새끼 PD때 배우 캐스팅하겠다고 이 드라마를 20부까지 다 봤다.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쇼잉이었지.


‘와, 그 졸작을 다 보셨어요···?’


그래도 출연 배우로서 상도덕이 있으니 이렇게 말하진 않지만, 날 쳐다보는 눈빛에서 전해져 왔다.


“락원아 갑자기 주먹은 왜 쥐어?”

“···아니, 그냥 좀 긴장돼서.”


그때 생각하니까 열받아서요···


“엑스레이만 찍으면 검사 끝난대. 너무 긴장하지 마, 아들.” 

“응···”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셨다.

난 그 뒤를 따라 털레털레 정형외과로 들어갔다.



*



같은 시각.

드라마 커뮤니티에 한 기사가 올라왔다.


[(단독) 아역배우 유락원, 루미너스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윤재 소속사 생겼네 ㅊㅋㅊㅋ

└우리 윤재 어디갔나 했더니 루미너스로 갔구나..

└루미너스가 어디야? 처음 들어보는데

└원래 예담에 있던 실장이 독립해서 차린 회사임

└ㅇㅎ 예담 파생이면 꽤 옮기겠네

└예담 거쳐서 딴 소속사 간 배우들도 많이 옮길듯

└내배우도 지금 계약 끝나면 루미너스갈 삘 ㅇㅇ


하루에도 몇 건씩 전속 계약 기사, 전속 계약 종료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중에 화제가 되는 건 별로 없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락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래서 루미너스가 어디냐’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잠시 뒤.


[(단독) 유락원, 1인 2역 연기 선보인다··· MBS ‘쌍생(가제)’ 출연 확정.]


드라마국 홍보팀 차원에서 홀드 돼있던 ‘쌍생’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다. 


[‘그윤어’? OGM타고 MBS로 날아갔다.]


[‘오죽남’에서 명품 연기 보여준 유락원, 차기작 ‘쌍생(가제)’으로 안방극장 복귀!] 


└오

└ㄱㄷㄱㄷ

└오죽남 한번 나오고 바로 주연배 아역임?

└ㅇㅇ 필모 알짜배기로 잘 쌓는다

└흠ㅋㅋ

└흠 ㅇㅈㄹ

└애한테까지 추하게 그러지 말자..

└근데 대체 저 가제 언제까지 봐야함?

└ㄹㅇ 캐스팅 끝나면 제목부터 빨리 지어주라.. 쌍생이 뭐냐고요 쌍생이..

└대충 낮달밤해꽃 넣어서 예쁘게 지어줘.. 나 믿는다 ㅅㅂ

└제목 그대로 가면 안봄

└감있으면 바꾸겠지(제발요)



[쌍생  얘들아 일단 우리 한고비 넘겼다]


드까알이긴 한데 캐스팅은 나쁘지 않은듯


└ㄹㅇ 1인 2역 연기 잘못하면 숙연해져서 걱정했는데 캐스팅 잘함

└일단 존잘이어서 몰입 잘될듯

└나 벌써 아련한데

└그건 너무 이른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

└드까알이 뭔데 왜 니네만 아는 이야기하는데

└드라마는 까봐야 안다고ㅋㅋㅋ


“반응 어때?”

“대표님 말대로 캐스팅 엠바고 풀릴 때까지 기다린 보람 있네요. 전속 계약 기사 조회수도 같이 올라가고 있어요.”


홍보팀 직원의 말에 윤준호가 기분 좋게 웃었다.


“내가 뭐 한 게 있나, 타이밍이 말도 안 되게 좋았지. 아역이 프로필 돌리기도 전에 지상파 미니시리즈 들어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모니터링하던 직원은 유락원의 사진을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니까요··· 기특해죽겠네, 진짜.”


이렇다 할 건수가 없는데 억지로 보도 자료 돌리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반대로 소재거리만 충분하다면 홍보팀의 업무는 훨씬 쉬워진다.


“아 참, 근데 락원이는 요새 통 안 보이네요?” 

“아아, 이따 오기로 했어.”

“정말요? 오늘은 레슨 없대요?”


윤준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성장판 검사하러 갔어.”

“와아··· 말로만 들었는데. 우리도 아역 배우 키운다는 게 실감 나네요.” 


윤준호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기사 두 건을 같이 묶어서 내보내겠다, 레슨이다 뭐다 바빠서 못 봤던 그의 소속 배우를 오랜만에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것. 


“···락원아 표정이 왜 그래.”


그런 윤준호의 기분은, 며칠 만에 나타난 유락원을 보자 단숨에 가라앉았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저 표정이면 몇 센치지?’


아역 배우들은 어릴 때부터 정기적으로 성장판 검사를 받는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미리미리 관리해줘야 하니. 


일단 윤준호는 상심한 유락원부터 달래기로 했다.


“락원아, 키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키 작아도 할 수 있는 배역이 얼마나 많은데.”


멜로는 좀 힘들겠지만.


“락원이도 알지? 키 작은데 멋있는 배우들 엄청 많잖아.”


멜로는 좀 힘들겠지만.


“···병원에서 뭐라고 했는데?”


윤준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락원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러다 굳게 다문 입이 드디어 열렸다.


“180넘을 거래요.”  


윤준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왜···? 190까지 크고 싶었어?”


그럼 상대 여배우들이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일 텐데. 

키스신 찍을 때마다 다리 벌려야 돼서 힘들 텐데···는 애한테 너무 이른 상상이고. 


하여튼.


‘180이면 충분하잖아?’


의아해하던 윤준호가 물었다.


“락원아··· 농구가 하고 싶어?”

“······”

“미안.”


모를 줄 알고 슬쩍 장난 쳐봤는데 매서운 시선이 날아왔다.

소파에 털썩 앉은 유락원이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커피···”

“뭐라고?”

“커피 마시면 키 안 큰대요···”

“아.”


어쩐지 오랜만에 회사에 왔는데 손에 커피가 없다 했다.

진심으로 걱정했던 윤준호는 잠시 망연자실해졌다.


‘이런 게 애 키우는 마음인가.’ 


그러다 나라 잃은 장수마냥 허탈해하는 유락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 그랬,구나. 아무래도 커피는 성장기,때 안 좋으,니까···”


윤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아래로 볼펜을 떨어트렸다.


“······”


볼펜을 줍기 위해 허리를 꺾은 그는 한참 동안 올라오지 못했다.


작가의말

갑자기 제목이 바뀌어 놀라셨죠..?

유입을 위해 제목을 바꿔보는(온 몸을 비트는) 중이오니, 아무쪼록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제목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입니다> +7 24.09.17 53 0 -
18 여우비 +2 24.09.16 114 11 10쪽
17 조별 과제 +4 24.09.15 154 15 12쪽
16 +2 24.09.13 188 15 10쪽
» 농구가 하고 싶어? +5 24.09.12 173 15 10쪽
14 안 어색했냐고? +1 24.09.11 183 14 10쪽
13 그치만 넌 +2 24.09.10 203 13 10쪽
12 배팅 +2 24.09.09 223 17 11쪽
11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들 +1 24.09.08 225 17 10쪽
10 요즘 애들 24.09.06 225 13 10쪽
9 이상한 흥신소 (2) 24.09.05 237 14 11쪽
8 이상한 흥신소 +2 24.09.04 245 15 11쪽
7 스파크 +3 24.09.03 251 13 13쪽
6 오늘도 죽는 남자 24.09.02 261 13 11쪽
5 월척이다 +1 24.09.01 288 14 13쪽
4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24.08.31 308 16 11쪽
3 참으면 복이 와요 24.08.30 345 16 12쪽
2 낙원에는 글자가 굴러다닌다 +2 24.08.30 409 19 13쪽
1 엔딩 크레딧 +2 24.08.30 497 1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