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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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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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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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척이다

DUMMY

내가 새끼 PD 일 때의 이야기다. 


운 좋게 작은 영화사에 취직해 PD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사실 온갖 허드렛일하는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영수증 받아 챙기고 눈으로는 도시락 개수를 세아리는 동시에 다음 로케이션으로 가는 배차를 확인하는, 그야말로 전천후 잡부. 


그때 여러 현장을 돌며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이 표지훈 프로듀서, 훗날 우리 영화사로 스카웃 했던 지훈이 형이었다. 


아직은 이름이 아닌 막내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하던 시절.


“아이고야, 나중에 무~지하게 힘들겠다.”


지훈이 형이 한 배우를 보며 혼잣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그는 내가 쳐다보자 뜨끔했는지 자리를 피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지만 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스크린에서 그 배우를 봤던 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표 피디님. 유락원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현장에서 몇 번 뵀었는데 기억하세요? 

-오, 그럼 그럼! 오랜만이다 진짜. 어쩐 일이야?

-시간 괜찮으시면 술 한잔하실래요? 


대뜸 형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오중석 배우 이번 신작 보셨어요?”


시작은 과거 현장에서 있었던 추억 팔이었지만 업계 사람들 술자리에 일 얘기가 빠질 수 없었다. 


“봤지.”

“어떠셨어요?”


형이 피식 웃었다.


“뭘 떠봐. 뭐가 궁금한데.”

“그냥 이것저것요. 관객은 몇 만 정도 예상하세요?”

“너는? 너부터 말해 봐.”

“350만 명이요.”


간신히 손익 분기점을 넘는 관객 수. 이름 있는 감독과 화려한 캐스팅에는 못 미치는 성적표였다.

하지만 형은 의아하다는 기색 없이 물었다.


“왜?”


그의 눈에 비친 건 흥미. 그래, 그건 흥미롭다는 감정이었다.


“이름값이 있으니 초반 추이는 좋겠지만 얼마 못 갈 겁니다. 오중석만의 연기를 기대하고 간 사람들한테 좋은 평가 받긴 글렀어요.”


화면 속 오중석은 누가 봐도 ‘연기’를 하고 있었다. 후작업으로 어색함을 지우려 노력한 것 같지만, 그래도 완벽히 지우진 못했다. 


“피디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뭘?”

“오중석 배우 저렇게 될 줄 알고 계셨잖아요.”


그는 그제야 내가 왜 대뜸 전화했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유 피디야 들어봐.” 


요약하면 이랬다.

배우에겐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 모든 배우들은 그걸 조금씩 조금씩 끌어 쓰면서 일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배우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깎아내면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그래. 오중석이 그때 그랬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배우가 자신을 버리고 극에 몰입하면 좋은 거 아닌가? 정말 배역 그 자체가 되는 것만큼 좋은 연기가 어딨다고.


“작품엔 당연히 좋지.”


그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근데 몇 작품만 하고 배우 은퇴할 거 아니잖아. 그렇게 빨리 깎아내버리면 뭐가 남겠어?”

“······”

“없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그러니 롱런하는 배우는 배역 안에 ‘나’를 녹여내는 사람이다. 형은 여기까지 말하고 소주 잔을 들었다.


“그냥 개똥철학이야. 귀담아듣지 마.” 


짠. 그 잔에 내 잔을 부딪쳤다. 한 사람의 개똥철학을 내 연기관으로 삼은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 가르침을 준 사람은 지금쯤 어디서 뭐 하고 있으려나. 테이프로 영수증 땜질하고 있나?



*



“아까 촬영장에서 혜지랑 싸웠어?”


모델 촬영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하셨다. 괜찮으니 솔직하게 말해보란다. 


“응? 안 싸웠는데?”

“그래? 근데 혜지가 좀···”


고민하던 어머니가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셨다.


“락원이한테 삐진 것 같던데?”

“에이, 아닐 거야.”


삐지긴 왜 삐져. 상대역도 도와줬구만.

내가 도리질을 치니 어머니가 웃으며 차 문을 열어주셨다.


“별일 아니면 됐구. 자, 출발합니다. 안전벨트 매세요~”

“네에!”


우리 박여사께서는 이제 맘 매니저 역할에 꽤 익숙해지셨다. 처음 촬영 때는 나보고 긴장하지 말라면서 본인이 더 떨었으면서.


이쪽 직군이 그렇다. 뜨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의 헌신이 필요하다.


“엄마 안 피곤해?”

“엄마가 피곤할 게 뭐 있어. 락원이가 힘들었지 오늘.”


엄마 고마워요. 회사에서 김 부장 비위 맞추고 있을 아빠도··· 내가 돈 많이 벌어서 꼭 효도할게. 


살다 보니 그게 제일 한스러웠다. 

부모님이 계실 땐 그들의 사랑에 기생했고, 받은 사랑을 따따블로 돌려드릴 수 있을 때는 부모님이 안 계셨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그렇게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네 여보세요?”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핸드폰을 어깨에 끼우곤 자연스럽게 수첩을 꺼냈다.


난 그 옆에서 어린이 성장 발육에 좋다는 캐러멜을 짝짝 씹었다. 섭취 기준을 준수하면 하루에 단 4개만 먹을 수 있는 간식이다. 


하지만 오늘 치는 이미 다 먹었고, 어머니가 통화에 집중하는 사이 몰래 컵홀더에서 한 개 슬쩍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네? 어디시라고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능숙한 매니저를 당황시키는 연락이라. 귀가 쫑긋 선다.


“OGM 드라마 국이요···? 거기 영화 채널 아니에요?”


월척.

기다리던 월척이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



“이야······”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는 오늘도 밥상에 올라와 있는 콩나물 장조림을 보고 살짝 표정이 굳어지셨다.


“락원아 요술 맷돌 알아?”


안다. 바닷물이 짠 이유.

그게 다 어? 바다 밑에 있는 맷돌이 쓸데없이 부지런하게 소금 만들어서 그런 거잖아.


“응 알지! 잘 먹겠습니다!”


난 아버지의 간절한 시선을 못 본 척하고 식탁에 앉았다. 아버지가 허망한 표정으로 의자를 뺐다. 


“우리 집 냉장고엔 콩나물 맷돌 있나 보다···” 

“뭐라고? 못 들었어.”


어머니가 싱크대 수도를 잠그며 묻자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리셨다.


“여보, 락원이한테 연락 온 곳이 어디라고 했지? 교차로의 비밀?”


오, 순발력.


“아니. 비밀의 교차로.”

“아 맞다. 들어도 자꾸 까먹네.”


감정선도 좋다. 어쩌면 우리 집에서 배우가 두 명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치? 좀 헷갈리긴 해.”


그건 일단 되는대로 갖다 붙인 가제라서 그렇다.

만약 내가 아는 드라마가 맞다면 진짜 제목은 따로 있을 거다.


‘오늘도 죽는 남자’

줄여서 오죽남.


오죽남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장르물 태동기에 나온 작품으로,

웰메이드 장르물에 목말랐던 매니아들을 쪽 빨아들이며 OGM 드라마국이 성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작품이었다.

시즌 2를 바라는 시청자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청원까지 했었다.

모종의 이유로 결국 성사되진 않았지만.


“근데 OGM에서 드라마도 만들어?”

“이번이 첫 작품이래.”


아버지는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내가 ‘아버지. 조만간 케이블, 종편이 지상파 3사 멱살 잡고 메치는 세상이 온답니다.’라고 말하고 왕꽃도령 테크트리 타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음.

상상으로만 만족하자.


“그 사람들 OGM 행세하면서 사기 치는 거 아냐?” 


···가 아니라 진짜 왕꽃도령 행세라도 해야 하나? 


“혜지 엄마한테 들었는데 혜지 학원에서도 몇 명 뽑아서 오디션 봤었대.”

“아 그럼 사기는 아니겠네.”


휴우. 다행이다.


그리고 약간의 힌트도 얻었다.

이미 아역 학원에 오디션 공고가 돌았다는 것. 그런데 내 차례까지 돌아왔다는 건 연출진이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그들이 찾는 이미지가 뚜렷할 때다. 연기력은 기본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뽑힌다. 감이 슬슬 잡혔다.


그리고 2% 부족했던 확신은 오디션 장에서 채워졌다.


“안녕, 이름이 뭐야?”

“유락원입니다!”

“만나서 반가워. 여기 가운데 서 볼까?”


천천히 걸어가며 내 앞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사람을 훑어봤다. 먼저 말을 건 사람은 감독, 그렇다면 바로 옆에서 펜 끝을 잘근잘근 씹는 사람은 작가일 터.


머리를 정수리에 틀어 묶은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 자리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은, 찾는 아역이 하나뿐이라는 거다. 나머지 배역은 적임자를 다 찾았고 남은 한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빈칸으로 남아있을 배역이라. 


그럼 100% 그 역이지.



*



‘이번에도 텄네, 텄어.’


주변 분위기를 읽은 구치승 PD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연 세팅까지 다 끝난 마당에 아역으로 이렇게 골머리 앓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이윤희 작가를 몰래 흘겨봤다.


드라마는 흔히 작가의 예술이라고 한다.

연출의 이름값과 영향력이 세면 저울추가 기울어질 때도 있지만, 둘이 엇비슷하면 대게 작가의 파워가 더 세다.


‘이 작가가 이렇게 고집부리는 성격이 아닌데···’


하지만 이윤희 작가는 기획 단계에서 구치승 PD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의견이 충돌할 때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자신을 설득했고, 구치승 PD의 제안을 수락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일찍이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아역, 그것도 1화에만 잠깐 등장하는 배역에 이렇게 공들일 줄 누가 알았겠나. 


‘···혹시 이러려고 앞에서 양보했었나?’


의심이 살짝 들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비밀을 공유한 사이였다.


’피디님, 고작 10부작 드라마잖아요. 후반부에 반응 오면 이미 늦어요. 우리 채널 특성 고려해서 빠르면 3화, 늦어도 5화에는 가닥이 잡혀야 해요.’

‘이 작가, 진심이야?’


그래. 이윤희 작가는 이 작품의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두고 있다.

무려 방송국의 첫 번째 오리지널 드라마를, 터질지 안 터질지 불확실한 드라마의 시즌제를 꿈꾸고 있다는 거다. 


어디 가서 말해봤자 미친놈 소리 들을 게 뻔하니 이는 자연스레 두 사람만의 비밀이 됐다. 


이윤희 작가의 기행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처음엔 장르물 아닌 척 페이크를 써야 해요. 그래야 일반 시청자들이 채널 돌리다가 찍어 먹기라도 하죠.’ 


그러다 드라마의 주 고객인 매니아 층이 떠나면 어떡하냐는 고치승의 질문에. 


‘으흐흐, 그 사람들은 어차피 30초짜리 티저만 보고도 알아서 올 손님들이에요.’ 


이윤희 작가가 요상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어··· 좀 특이한 양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호흡이 괜찮았다.

그때까지는. 


“피디님?”


잠시 상념에 빠졌던 구치승 PD가 정신을 차렸다.


아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슬슬 얼굴선이 잡힐 나이지만 기본적으로 예쁘장하다. 

그 얼굴에 불안함이 깃들어 있었고 손은 쭈뼛쭈뼛 윗도리를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후배가 뽑아온 프로필엔 주니어 모델 경력 뿐.

구치승은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했다.


“아이고, 미안. 아저씨가 잠깐 딴 생각했네. 준비됐어?” 

“···네.”


구치승은 아이가 작게 대답하자 눈빛으로 신호를 줬다.


‘음?’


그러자, 방금까지 쭈뼛거리던 얼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아이의 얼굴은 한 치의 티끌 없는 웃음으로 말갛게 빛나고 있었다.


그 점이···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하긴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아이의 웃음에 뒷맛이 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저씨, 저 왔어요. 희승이요.”


대사 사이사이를 자연스럽게 비집고 들어가는 호흡. 그리고 여전히 말간 웃음과 부드러운 목소리.


전혀 이상할 이유가 없었지만··· 어쩐지 기묘했다.


“늦게 왔다고 삐지신 건 아니죠?”


그리고 구치승은, 이어진 대사에서 뒤늦게 그 이유를 찾아냈다.


‘눈을··· 계속 뜨고 있어.’


아이는 자신이 신호를 준 뒤로,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 눈이 허공의 한 점을 찍은 뒤 천천히 내려왔다.


“아직도 많이 아프세요?”


염려가 아니다.

저건 확인하는 시선이다.


아이는 시선으로 ‘아저씨’의 키를 표현했다. 상대는 적어도 키 180cm의 장신이다.


그걸 알게 되니 이젠 상황이 궁금해졌다.


‘희승’은 선인인가, 악인인가?


‘아저씨’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허.’


구치승은 이 지점에서 인정했다.


눈 앞에 있는 아이는 천상 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채고 다음 대사를 궁금하게 하는 배우의 얼굴을.


그 증거로 자신도 모르게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찾았어요, 감독님.”


그리고 그건 이윤희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생각하던 윤재예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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