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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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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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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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DUMMY

인간이란 동물의 적응력은 어마 무시하다. 애초에 단일종이 열대 우림과 추운 극지방에 고루 분포한 것부터가 넌센스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자리는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나도 바뀐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이를테면 짧은 팔 다리와 한참 낮은 시야.


“너무 귀여워!”


그리고 날 보며 꺅꺅 소리치는 사람들까지, 조금 낮 부끄럽지만 꽤··· 익숙해졌다.


난 검지를 볼에 콕 찍으며 찬찬히 계획을 점검했다.


내 빈틈 없이 완벽한 계획은 이랬다.

광고 대행사에 다니는 수민 이모를 등에 업고 주니어 모델로 데뷔. 그리고 얼마 안 가 캐스팅 담당자의 눈에 띄어 방송, 영화계로 진출한다는, 이른바 아역의 왕도다.


그런데.


“락원이 때문에 삼촌 진짜 못 살겠다, 못 살겠어!!”


이 몸은 대체 왜 캐스팅 담당자가 아닌 애먼 삼촌, 이모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가.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짧은 부부 싸움이 끝난 뒤 두 분은 다시 내 기억 속 잉꼬부부로 돌아왔다.


“다른 애들은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표정에서 다 티 나는데 락원이는 그런 게 없대.”

“진짜?”

“응. OK 컷이 빨리 나오니까 작업 시간도 엄청 줄어든다고 하더라구.”

“와, 그렇겠네.”

“다른 브랜드랑 이미지 겹치는 문제만 아니면 맨날 락원이랑 작업하고 싶대.”

“진짜? 진짜 그렇게 말했어?”

“응. 대박이지?”


아버지는 이미 수십 번 들은 말에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셨다. 그러자 흐흥 웃은 어머니가 예쁘게 깎은 사과를 아버지 입에 쏙 넣었다.


과거로 돌아와 새삼 느끼는 게 있다면, 우리 아버지 유태훈씨가 내 기억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


“와, 우리 락원이 짱이다. 아빠도 회사만 아니면 직접 가서 보는 건데···”


그리고 아버지도 회사 가기 싫은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거다.


“아들, 진짜 커서 배우 할 거야?”


옆에서 사과를 아삭아삭 씹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아빠 김 부장한테 사직서 던질 수 있는 거야?”


찰싹—


아무렴, 그러시라고 대답하려는데 매서운 손이 아버지의 무릎으로 날아왔다.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여보, 우리 인간적으로 칼은 내려놓고 말하자···”


난 슬쩍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애써 무시하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흐음.”


그나저나 슬슬 연락 올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대체 왜?


“내 이미지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통통한 이미지, 마른 이미지, 키 큰 이미지, 키 작은 이미지, 안경 쓴 모범생 이미지, 말썽꾸러기 이미지 등등. 수요는 다양하다.

그러니 그중에 내 자리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


거울을 노려본다고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들어오는 섭외 건을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다 보니 모델 포트폴리오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어머니는 좀 헷갈리는 것 같았다. 당장 유괴 사건이 얼마 전 일이니까.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과 새로운 환경에서 내 정신을 쏙 빼놓는 것. 둘 중 뭐가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내 의지가 워낙 강하니 일단 무한 서포트해 주고 계신다.


“돈 벌면서 경력까지 쌓이는데 무조건 해야지.”


그뿐인가. 내 힘 들이지 않고 여기저기 찌라시를 살포할 수 있다.

정작 미끼를 물어야 할 쪽에서 감감무소식인 게 문제였지만.


“안 되겠다.”


이렇게 된 이상 동종 업계 사람의 의견을 구해야 할 때다.

그래서 다음 날, 스튜디오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혜지에게 물었다.


“있잖아.”

“왜.”

“네 생각에 난 어떤 이미지인 것 같아?”


고혜지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눈을 삐뚜름하게 뜨고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저엉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잉?”


그리고는 요새 한창 TV에 나오는 개그우먼의 유행어를 따라 했다.


“······”


···어릴 때는 왈가닥 캐릭터였냐고.



*



회귀 전, 고혜지와는 오다가다 얼굴 정도 본 사이였다.

서로 연락처는 없지만 마주치면 인사했고, 우리 영화사 작품에 섭외할 생각까진 없지만 썩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고혜지는 언젠가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애초에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탈바꿈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배우는 찾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잊히는 직업이니까.


어쨌거나 내 기억 속에서 우리 둘은 그리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락원이도 음료수 마실래?”

“네, 감사합니다!”

“이리 줘봐. 아줌마가 열어줄게.”


그런데 왜 두 어머니가 출신 초, 중, 고등학교와 나이를 까고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음에도 우린 아직 어색한 거냐고.


고혜지와 나란히 앉아 뚜껑에 캐릭터 피규어 달린 음료수를 쪽쪽 빨며 생각했다. 이게 술이면 분위기라도 풀어질텐···


찰싹—


“뭐야, 왜 그래?”

“···모기 있는 거 같아서.”


가만히 앉아있던 내가 갑자기 뺨을 때리자 고혜지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잡았어?”


아.

그게 궁금하셨구나.


그치, 아무래도 촬영 들어가야 하는 여배우 얼굴에 자국 나면 큰일이니까.


“응.”


대답을 들은 고혜지는 다시 보고 있던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그거 대본이야?”

“응. 학원에서 준 거. 수업 전에 미리 연습하는 거야.”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갑자기 브랜드 관계자가 제품 하나를 덜 챙겨왔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는 중이었다.

길어봤자 10분쯤 되려나? 기특하네. 쪼만한 게 누가 안 시켰는데도 알아서 연습하고.


“내가 상대역 해줄까? 혼자 읽으면 연습이 안 되잖아.”

“음··· 근데 이거 한 부 밖에 없어.”


고혜지는 내 제안이 솔깃한 눈치였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자주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그때마다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다.


“잠시만 줘 봐.”


그럼 막간을 이용해서 점수 좀 따볼까.



*



“네, 부장님. 클라이언트가 제품을 차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해서요. 저는 잠깐 간식 사러 나왔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수민이 바구니에 과자를 골라 넣었다.


“으흥흥~ 무슨 과자를~ 좋아하려나~”


최근 이수민은 가만히 있어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친구 잘 둔 덕을 이렇게 보는구나.


광고 대행사에 다니는 그녀에게 고객은 홍보를 필요로 하는 각종 업체들이다. 그런데 락원이 촬영한 결과물을 받아본 업체들이 하나같이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게다가 사진작가를 포함한 현장 인력은 이미 락원의 팬이 됐다.


“우리 락원이가 좀 귀엽긴 하지.”


찍을 때마다 A컷을 뽑아내는 모델을 어느 관계자가 싫어하겠냐마는.


달칵—


스튜디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이 클라이언트보다 빨리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머리 위로 까만 봉지를 흔들었다.


“얘들아~ 간식 먹자, 간식!”


그런데 구석에서 폰으로 무협지를 읽고 있어야 할 사진작가가 모델들 근처에 서 있고, 이따금씩 ‘우와, 헐, 이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이야, 디렉터님. 우리가 대배우들을 모시고 촬영하고 있었네요.”


사진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니 오늘의 모델 두 명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친구 아들은 목덜미를 긁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음.


무척 황당해 보였다.


“하.”


그녀의 추측대로 고혜지는 기가 막혔다. 상대가 잠시 대본을 읽겠다고 가져갈 때는 설마설마했는데.


“야. 귀찮게 왜 자꾸 불러?”


정말 한 번 보고 대사를 모조리 외워버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대사에 자신의 해석까지 덧붙여서.


학원에서 나눠준 유인물은 그야말로 쪽대본이었다. 한 작품에서 장면을 조각조각 잘라왔고, 그마저도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는 행동 지문은 일부러 빼버렸다.


등장인물의 나이, 성별, 직업이 유일한 힌트인 부실한 대본.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연기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숙제였다.


“······”

“왜 자꾸 부르냐고.”


자신이 다음 대사를 하지 않자 유락원이 없는 대사를 지어내며 쳐다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나한테 그런 거야?”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유락원은 아까부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은 앉아있거나 누워 있는 상태라는 게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등장인물은 초등학생 남녀다. 고혜지는 이 장면에서 자신의 역할을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 중인 푼수 떼기라고 생각했었다.


“···이거 좀 열어 줘.”


그러니 원래였다면 발랄하게 읽었을 테지만··· 왠지 지금은 민망해야 할 것 같았다.

유락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정말 대사처럼 귀찮다기보다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얼굴.


지문에는 물병을 내민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병은 하나뿐이었다.


“고작 이거 열어달라고 부른 거야?”

“그래, 뭐 어쩔래!”


유락원은 음료수 위에 달린 곰탱이를 한참 노려보곤 고개를 푹 숙였다.


“에이씨.”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시울이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감추려는 듯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버렸다.


“넌 이것도 혼자 못 여냐?”


툴툴대는 말과 달리 손길은 섬세했다.

조심스럽게 음료수를 가져간 유락원이 병뚜껑을 열었다. 복잡한 표정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내 입안으로 삼켜버리는 얼굴. 


그리곤 음료수를 다시 돌려주면서 말했다.


“끝이지? 재밌다. 또 다른 장면도 해볼래?”


거기서 긴장이 탁 풀렸다. 그 말은 방금까지 자신이 긴장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고혜지가 어버버 하며 유락원을 쳐다봤다.


‘뭐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네가 생각한 등장인물들은 어떤 관계냐고, 방금 그 눈물은 뭐냐고.

하지만 일단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너 어느 학원 다녀?”


그러자 유락원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안 다녀. 첫 수업만 하고 그만뒀어.”

“왜?”

“그냥.”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신 유락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락원은 웬만하면 학원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더 커 보이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기했던 거고.


그런 안타까움이 섞인 말을, 고혜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했다.


“엄마 엄마. 나 학원 안 다닐래.”

“어? 갑자기? 왜?”

“···그냥.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언젠 지금 학원 너무 좋다며?”


구석에서 박정혜와 대화중이던 고혜지의 엄마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갑자기 얘가 왜 안 하던 행동을 하지?


“헤엑, 헤엑.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촬영 들어가시··· 엥?”


그리고 예상보다 길어진 대기에 차가운 분위기를 예상하고 허겁지겁 달려온 브랜드 관계자.

이 두 사람만이 영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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