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천재 아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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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플
작품등록일 :
2024.08.27 14:44
최근연재일 :
2024.09.16 21:2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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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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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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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엔딩 크레딧

DUMMY

아이는 부부의 기쁨이자 자랑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화목한 가정. 부부는 그들을 똑닮은 아이에게 열 달 동안 고심해 지은 이름을 안겼으며 그들이 가진 것 중 가장 예쁘고 귀한 것을 입히고 먹였다. 


아이는 어디에서나 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였다.


“안녕. 와, 너 진짜 예쁘다. 언니 조카도 딱 너만 한데.” 

“꺄아!”


오동통한 손이 햇살을 한 움큼 쥐었다 놓아주길 반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부가 살풋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아니라 누나.”

“네?”

“우리 애가 좀 예쁘게 생기긴 했죠?”

“어머, 남자애였어요? 와아··· 너무 예뻐서 여자앤 줄 알았어요.” 


부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어코 처음 본 사람에게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천사 같은 아이는 종종 여자아이로 오해받곤 했다. 부부는 그럴 때마다 민망한 듯 웃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이는 부부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장래희망도 매년 바뀌었다. 변신 로봇, 덤프트럭, 발음하기도 힘든 공룡···. 


그리고 마침내,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했다.


“반짝반짝하잖아!”


이유를 묻자 아이는 거실 TV를 가리켰다. 오물을 뒤집어쓴 남자 배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배수로를 헤매고 있었다. 


대체 저 모습 어디가 반짝반짝한 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아들이 처음으로 그린 인간형 장래희망인데. 부부는 그날 밤 맥주 캔을 부딪혔다.


다만 예쁜 아이를 누가 잡아갈지도 모르니, 하루빨리 데뷔시켜 전국에 얼굴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인척의 성화에는 회의적이었다. 


“아역 배우는 현장에서 대접도 제대로 못 받는대요. 그리고 또 모르죠, 내일 갑자기 하기 싫다고 할 수도 있고···.”


그리고 몇 년 후.


부부는 그들이 눈 감는 날까지 이날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살게 됐다. 


“아이 찾았습니다!”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간 집. 손발이 묶인 채, 곰팡이 핀 작은방에서 반지하 천장의 누수를 받아먹으며 목을 축이던 아이가 경찰과 눈을 맞췄다. 그리곤 비로소 안심한 듯이 눈을 감았다. 


실종 이후 20시간 만이었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



*



“유대표, 벌써 취했어?”

“가만있어 봐 형.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시작이고 나발이고 오프닝 시퀀스부터 안 땡기는걸 저보고 어떡하라고요. 스릴러면 또 몰라, 예술 영화에 가깝다며. 그럼 대중성도 나가린데 오프닝부터 유괴? 소재가 너무 매니악해.”


팔짱을 낀 채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프로듀서 표지훈이 술국을 휘휘 저었다. 그리곤 팅팅 불어 터진 순대 하나를 기어이 건져 입에 넣었다. 


“이 순대 같다고. 볼만한 영화가 정 없으면 혹하겠지만 그전에 배 다 차면 숟가락 내려놓고 나가겠지.” 


표지훈은 냉정하게 말하면서도 앞에 앉은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반대 하든, 영화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든 결국 남자가 밀어붙이겠다고 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다른 데는 텐트폴 영화 하나 올려보겠다고 난린데 우리만 예술 영화하다간··· 알지? 길바닥에 텐트 치고 나앉는 수가 있어. 너 형 스카웃할 때 뭐라고 했냐, 호강시켜주겠다며!”

“텐트는 무슨. 제발 오바 좀 하지 마.”

“···너 형한테 농담하는 거지? 진짜 그 책 메이드하겠다고? 다른 제작자도 아니고 유락원이가?” 


표지훈의 간절한 말에도 남자, 영화 제작사 에덴의 대표 유락원은 태연하게 잔을 채우곤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 모습이 마침내 표지훈의 복장을 터트렸다.


‘감이 떨어졌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유락원이 누구던가. 


바야흐로 멀티플렉스를 가진 배급사가 제작까지 손 대며 이에 질세라 제작사는 투자와 배급까지 도맡는 시대.

그런 때에 덩치는 작지만 영화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뻗치는 제작사가 바로 유락원의 에덴이었다.


유락원이 일으킨 신화는 한국 영화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에덴이 선택한 작품은 성공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락원이 선택한 작품은 상업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성공한다는 것이 업계에 기정사실처럼 통했다. 그를 믿고 건실한 제작사에서 당시 영세했던 에덴으로 이직한 표지훈이 산증인이었고.


유락원이 발굴한 중고 신인, 이평화 감독의 상업영화 입봉작이 개봉 첫 주 만에 손익 분기점을 넘은 것이 당장 최근의 일이다. 그러니 제작자로서 감을 잃었다기보다는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유대표 타율 기가 막힌 건 아는데 아닌 건 아닌 거야. 다른 때도 아니고 여름에 올릴 거라며.” 

“형.”

“왜.”


표지훈은 유락원이 저렇게 웃을 때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대표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그의 속을 홀라당 뒤집어 놓는 말을 곧잘 했으니.


“이에 들깨가루나 빼고 말해. 술맛 떨어지게 진짜.”

“에이씨.”


물로 거칠게 입을 헹군 표지훈이 유락원을 쏘아봤다. 자신도 트집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상대는 유락원이다.


관리라곤 전혀 하지 않아 거칠한 얼굴이지만 기본적으로 미형이다. 아니, 미형의 얼굴을 억지로 세월의 흔적 아래 감추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그를 얄밉다는 듯이 흘겨보던 표지훈이 슬쩍 입을 뗐다.


“하여튼,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방금 말한 거 누구 책인데?”

“한바탕 시원하게 까놓고 이제 와서 그게 궁금해?” 

“니가 찍은 거잖아. 그럼 이유가 있겠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습진 않은 사람.

그가 보는 유락원은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영화에 한해서 실없는 소리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혹여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책.”


고심하던 표지훈에게 유락원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벙 찐 상대에게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유락원 원작 시나리오야.”

“뭐?”

“음, 극본가 자전적 영화로 홍보하면 관객 좀 들지 않을까?”

“···이모 여기 초록색 한 병 더 주세요!”


뚜껑을 따며 상스럽게 시발시발하는 표지훈을 보며 유락원이 킬킬 웃었다. 장난치는 거 아닌데. 진짠데. 


하지만 그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진 않았다. 어차피 당장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한 감독 거 괜찮더라.”


유락원은 이쯤에서 화제를 바꿨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 자리의 용건은 다음 여름 시장에 선보일 에덴의 작품이었다.


“한 감독이 한 둘이냐.”

“한석호 감독 말이야.”

“에이, 진작 다 봤지. 느낌 오는 거 없던데?”

“그거 말고 책 하나 꿍쳐둔 거 있어.”

“···한 감독 이 자식은 내가 보여달라고 할 땐 입 싹 닦더니!” 


그는 다시 시발시발하는 표지훈의 잔에 술을 따르며 기분 좋게 웃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크랭크인을 기다리는 작품과 촬영을 끝내고 후반 작업에 돌입한 작품이 줄지어 있었으며 자신을 믿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일감과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지금이.


그러니 비로소 자신의 삶도 늦게나마 정상 궤도 안으로 들어왔노라고, 유락원은 자만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조금만 참으세요,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이번엔 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날듯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방관의 등에 업힌 락원이 간신히 눈을 떴다. 정신이 몽롱했다. 아마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겠지.


밤늦게까지 책을 뒤적이다 불 꺼진 사무실 한편에서 잠들었던 게 화근일까. 리모델링으로 새것처럼 보이는 사무실은 속을 뜯어보면 낡고 부실한 자재로 가득했다. 작품에 사용된 소품이 한데 모인 소품실(버리긴 찝찝한데 그렇다고 다시 쓸 것 같진 않은 물건들의 무덤)은 또 어떻고. 


어디서 어떤 식으로 불이 났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행히 정신을 잃기 전 구조대에게 발견되었으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불길로 뒤덮인 건물. 잿더미가 되어가는 에덴을 보며 락원이 눈을 감았다.


‘인간들아, 그러니까 사무실은 저층으로 하쟀잖아···.’


“정신 차리세요!”


자신을 깨우는 소방관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믿음직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락원은 이날이 자신의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이 순간 걱정되는 건 부모님에게 들을 책망이다. 더 놀다 오지,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혼내면 어쩌지.


‘너무 보고 싶어서 좀 빨리 왔다고 하면 한대 맞으려나.’ 


큰일이다.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다면 이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차례였다.



─제공, 제작 EDEN


엔딩 크레딧의 가장 상단에 위치한 단 한 줄. 이것은 줄곧 유락원의 성적표였고 삶의 이정표였다. 하지만 그가 진실로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배우 유락원


그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팍팍한 현실에 치여 포기한 꿈이 락원의 숨을 붙잡고 흔들었다.


죽음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이미 보너스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하지만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볼걸. 


하지만 이미 엔딩 크레딧은 올라갔고 상영관에 조명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의식이 옅어진다.


“선생님? 선생님! 정신 차려 보세요!!”


그러니 이제 자신을 그만 놓아줘도 된다고, 당신은 당신의 몫을 해냈노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건물을 탈출한 소방관이 락원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땀을 뚝뚝 흘리며 가슴을 압박했지만 그의 눈은 굳게 닫혀있었다.


“······.”


그리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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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3 l0l
    작성일
    24.09.15 00:54
    No. 1

    오프닝 시퀀스 보고 몰입해서 읽다가 매니악 취향인가 반성했는데 다행히 주인공이네요 ㅋㅋㅋㅋ 글이 밀도있고 좋아요 작가님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재밌어요굿
    작성일
    24.09.16 01:28
    No. 2

    아니 제목 좀 당황스럽네요 ㅋㅋㅋㅋㅋㅋ 도입부 재밌어요 이번 작품도 기대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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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 크레딧 +2 24.08.30 498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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