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6,351
추천수 :
386
글자수 :
61,180

작성
24.08.31 22:15
조회
572
추천
33
글자
10쪽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DUMMY

- 똑똑.


이 시간에 누구지?


저녁 9시다.


손님이 오기엔 한참 늦었고 출입문에 큼지막하게 ‘영업 안 합니다.’라는 에이포용지까지 붙여놨으니 문을 두들겨서도 안 된다.


정상적인 사고가 박힌 사람이라면 말이다.


“누구세요? ”

“평범한 인간인 겁니다. ”

“예? ”


과하게 아래쪽에서 들려온 앳된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그냥 문을 닫을 뻔했다.


“인간인 겁니닷! ”


아니다.


이건 분명 사람이 아니다.


일단 바지 비슷한 것을 입고 있긴 했지만, 복슬복슬 한 털이며 길게 튀어나온 주둥아리, 그리고 살랑거리는 꼬리까지.


누가 봐도 이건 너구리다. 심지어 사람 말을 하는.


“아야야얏! 이거 놓는 겁니닷! ”

“진짜네. ”


혹시나 로봇을 가져다 놓고 하는 악질적인 몰래카메라인가 싶어 여기저기 잡고 늘려보았다.


체온도 있고 질감도 영락없이 친구집 고양이를 만지던 그 느낌이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말하는 너구리가 찾아왔다고 신고하면 오기나 할까?


그보다 왜 온 거지?


그렇게 퍼즐처럼 흩어져있던 조각이 하나씩 맞아들어갈 때쯤, 정신을 차려보니 너구리는 이미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다방 안까지 들어와 버린 상태였다.


“그걸 마시고 싶은 겁니다. 따뜻하고 달달 한 그거! ”

“그거라니? ”

“그거 말하는 겁니닷! 구미호가 여기서 먹었던 달달 한 겁니다. ”


- 탁탁.


딴에는 답답했는지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퍽 귀여워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두려움은 상대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이 사람 말까지 함에 응당 방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건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적의가 없는 걸 떠나 너무 귀엽지 않은가?


“잠깐 기다려. ”

“기다리면 만들어 주는 겁니다? ”

“그래. ”


나는 주방으로 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너구리가 말하는 음식이 뭔지 너무나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도.


내가 이 다방에서 남에게 커피를 대접한 적은 딱 한 번뿐이었으니까.


아마 그 정신 나간 청년도 코스어가 아니라 이 너구리와 비슷한 존재였을 터.


구미호라 했으니 괴력난신의 요괴쯤이지 않을까?


그런데 너구리가 커피를 마셔도 되나?


괜한 걱정이다. 너구리의 말대로라면 구미호도 마시고 간 마당이니.


나는 잠시 멈칫했던 손을 다시 부지런히 움직여 구미호에게 내어주었던 커피를 그대로 만들어 들고 나왔다.


“흠흠∼ 호능화미녀∼ 리역작서생∼ 여우는 능히 미녀로 둔갑하고∼ 너구리 역시 서생으로 둔갑하네∼ 흠흠∼ ”


그 짧은 기다림도 너구리에겐 지루했던 모양인지 요상한 춤을 추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이걸 찍어 올리면 단번에 너튜버스타가 될 텐데.


- 딸그락.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기 무섭게 너구리는 춤을 멈추고 의자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앗! 그거인 겁니다! ”

“뜨거우니까 조심히 마셔. ”

“호오오오오! ”


이 커피가 뭐라고 저리 좋아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구미호였던 그 청년도 하루 만에 다시 찾을 정도로 이곳 커피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이전 사장이 남긴 레시피로 만든 커피지만 말이다.


- 호록. 호록.


“맛있어? ”

“이마아아안큼 맛있는 겁니닷! ”


짜리몽땅한 앞발로 용케 커피잔을 들고 마시는 모습을 멍하니 관람하다 불현듯 이 녀석들이 궁금해졌다.


“너희는 다 어디에서 살아? ”

“산에서 사는 겁니다. ”

“그 구미호도? ”

“구미호는 산에서 안 사는 겁니다. 인간들이랑 저 돌로 만든 집에 사는 겁니다. ”

“으흠. 그렇구나. 그럼 얼마나 살았어? ”

“삼천이백살인겁니다. 아, 아닌 겁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인 겁니다! 어, 음. 삼백살인겁니다! ”


심하게 당황하는 걸 보니 더 캐묻긴 힘들 것 같았다.


단편적인 정보지만 그래도 대충 감이 왔다.


오래 살고 신비한 힘을 가진 요괴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던 모양이다.


이 너구리는 처음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감당키 어려운 일에 휘말려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잠시 도망갈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존재들치고는 모두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다.


커다란 귀를 팔랑이며 커피를 마시던 구미호 청년이나 이 너구리나 딱히 적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생사를 가를만한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둘까? ”

“응? 방금 뭐라고 한 겁니까? ”

“아니야. 벌써 다 먹었어? ”


다 먹었다. 마치 설거지라도 한 것마냥 싹싹 핥아서.


“맛있었던 겁니다. 그럼 이제 가보는 겁니다. ”


너구리는 배를 퉁퉁 두들기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해서 가. ”

“참! 깜빡했던 겁니다! 값을 치르라 했는 겁니다! ”

“값? 아, 커피? 그냥 가. 오늘은 내가 공짜로 주는 거야. ”


커피값을 받을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말하는 너구리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직관하는 건 돈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이니까.


다만 오늘이라는 제약이 붙었다.


귀여운 탓에 얼떨결에 또 커피를 내주긴 했지만 저리 좋아하는 걸 보니 공짜로 계속 내어주면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가도 된다는 말에도 너구리는 의외로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안되는 겁니닷! ”

“괜찮다니까. ”

“구미호에게 들은 겁니다. 값을 내지 않으면 인간들이 요괴를 싫어하는 겁니다! ”


- 후두둑.


너구리가 바지춤에서 꺼낸 물건들이 테이블에 쏟아졌다.


나뭇잎, 도토리, 그리고 동글동글한 조약돌.


값을 치르겠다 하고 꺼낸 물건들이다.


“이것 좀 보는 겁니다. 정말 크지 않습니까? 우리 산에서 가장 큰 도토리인 겁니다! 아마 이렇게 큰 도토리는 백 년 동안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또 이 돌은······. ”


그렇게 잡동사니 나름의 가치를 한참 설명하던 너구리는 한껏 의기양양해져 턱이 하늘을 향할 지경이었다.


우스운 일이다.


어쩐지 이 다방을 인수할 때부터 모두가 내게 비싼 것을 그냥 내어주지 못해 안달이지 않은가?


한잔에 500만 원을 덜컥 내는 구미호 못지않게 소중하게 가지고 다닌 듯 보이는 잡동사니를 꺼내준 너구리도 마찬가지다.


“이것만 가져갈게. ”

“아닌 겁니다! 다 가져가는 겁니다! ”

“그럼 이것도 안 받을 건데? ”


내가 고른 것은 나뭇잎이다. 개중에 가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은 너구리의 주머니에 있어봤자 곧 바스러져 못쓰게 될 것처럼 보였다.


“정말 그거면 되는 겁니다? ”

“그렇다니까. 자, 어서 가봐. 많이 늦었어. 아니다! 잠깐만! ”


가로등 불빛도 드문드문한 시골 찻길에 너구리.


나는 슬쩍 불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창고에서 손전등 하나를 꺼내왔다.


“호오오오! 불이 나는 겁니다! ”

“위험하니까 이거 켜고 가. 알겠지? ”


내가 데려다줄까 생각도 해봤으나 요괴들이 사는 곳에 사람이 가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진 않아 부랴부랴 손에 들려준 게 바로 손전등이다.


3200살이나 묵은 너구리의 로드킬 걱정을 하는 나도 어딘가 맛이 간 게 아닐까 싶지만 안전해서 나쁜 건 없으니까.


“그럼 진짜 가보는 겁니다! 호능화미녀∼ 리역작서생∼ 여우는 능히 미녀로 둔갑하고∼ 너구리 역시 서생으로 둔갑하네∼ ”


그렇게 나는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저만치 사라지는 너구리를 한참 바라봤다.


설마 저러고 다니는데 사람들에게 한 번도 들키지 않은 건가?


뭐, 괜찮겠지. 수천 년을 저리 살았다고 했으니.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을 요 며칠 겪다 보니 나도 제법 무덤덤해진 모양이다.


아니, 사실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꽤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연예인, 과학자, 혹은 대통령.


까마득히 어렸던 그 시절 하룻밤 자고 나면 바뀌는 장래희망 속에서는 늘 내가 주인공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차가운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이 되고 부모님의 무거운 어깨를 알게 되면서부터 꿈은 조금씩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아니면 안정적인 공무원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꽤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한 뒤, 이름을 들으면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는 그런 회사에 입사한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은 진정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내린 무수히 많은 결정에는 내 의지가 아닌 처지와 형편이 담겼다.


성적에 맞는 대학을 가야 하니까. 취업하려면 이과가 유리하니까. 전기 화학 기계중 대기업 입사 비중이 높은 학과. 남들 다하는 토익, 토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안에 특별한 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달라졌다.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특별함이 생겼지 않은가?


인외의 존재들이 좋아하는 커피를 탈 줄 안다는 사소한 특별함 말이다.


지금 나는 그 시절 잠시 돌아간 기분이다.


이 낡은 다방처럼 오래전 특별한 꿈을 잊지 않았던 그때로.


“너무 자주만 안 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네. ”


라는 혼잣말이 후회되기까지는 딱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



“흑흑흑······. ”


야심한 새벽, 분명 지금 들린 건 울음소리였다.


제길, 안일했다. 이번엔 진짜 험한 것이 손님으로 온 모양이다.


나는 혹시나 몰라 준비한 호신용 야구방망이를 들고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다.


“흐엉! ”


불을 켜자, 내 인기척을 알아차린 울음소리는 더 선명하고 커졌다.


창문에 달라붙은 작은 무언가.


그 무언가는 앞발로 창문을 탕탕치며 서럽게 외쳤다.


“흐엉! 그걸 마신 뒤로 잠이 안 오는 겁니다! 이틀째 잠을 못 자는 겁니다! 이러다 죽는 겁니다! 흐어어엉! ”

“아.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가 중단 되는 겁니다... +1 24.09.14 125 0 -
13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4) +4 24.09.13 195 21 10쪽
12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3) +4 24.09.12 258 25 10쪽
11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2) +4 24.09.11 318 27 10쪽
10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6 24.09.10 380 28 11쪽
9 개업식은 수라장 (3) +3 24.09.09 391 29 10쪽
8 개업식은 수라장 (2) +3 24.09.08 439 28 10쪽
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4 33 11쪽
6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5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3 33 12쪽
»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73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9 30 10쪽
2 마수걸이 +6 24.08.29 709 33 10쪽
1 작은 일탈 +6 24.08.28 855 3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