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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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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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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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2)

DUMMY

‘내가 왜 갓난아기가 된 거지? 저자는 왜 갑자기 내 머리를 때린 것이고! ’


이도는 무엇하나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발부터, 은은하게 아려오는 이마의 통증, 그리고 입을 열면 나오는 바보 같은 옹알이까지.


개중에 가장 답답한 것은 단연 말이었다.


주변의 목소리는 명확히 들리건만 입만 열면 ‘아부부, 부빠. ’ 따위의 유아어로 통변되어 나왔다.


이는 이도에게 답답함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까지 선사하는 중이었다.


“신목은 천계에서 신이 내려오는 길이라 했으니 이 아이도 혹시 신이 아니겠습니까? ”

“흐음. 그럴 가능성도 있겠구나. 천계로 가려면 억겁의 세월을 써도 모자랄 수행을 해야한다지만 그 외형으로 어찌 천계의 신선 같은 존재들을 구분하겠느냐? ”


‘그래, 그나마 네가 가장 똑똑하구나. 그것이다! 어서 나를······. ’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도의 바람은 한 끗 차이로 빗나가버렸다.


“다시 신목 속으로 넣어볼까요? ”


‘다시 넣어? 뭘? 설마 나를? ’


멀쩡하게 생긴 청년의 제안은 한번 해볼까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


물음이 끝남과 동시에 몸이 번쩍 들려 신목의 작은 구멍 사이로 쑤셔 넣어졌다.


‘으아악! ’


“응애! ”


“울음소리는 건강한 겁니다! ”

“그것보다 안에 들어가 지질 않는구나. ”

“잠깐! 내가 알아낸 겁니다! ”

“응? 네가? ”

“옛날에도 천계에서 죄를 짓고 현세로 떨어진 요괴가 있었던 겁니다! ”

“천봉원수(天蓬元帥) 저팔계와 권렴대장(捲簾大將) 사오정을 말하는 것이냐? ”


‘아니다! 나는 그런 파렴치한 것들과 다르다! ’

“우빠우! 우꺄! ”


“저것 보는 겁니다! 말도 이상하게 하는 겁니다! 너구리인 나보다 말을 못하는 겁니다! ”

“확실히 그렇긴 한데. ”

“일리가 있습니다. 멀쩡한 신이 천계에서 뭣 하러 이런 아이가 되어 현세로 왔겠습니까? ”

“만약 그런 일로 쫓겨난 것이라면 일이 심각해진다. 차라리 저승으로 보내서 염라에게 판가름해 달라 해야겠구나. 염라의 업경이라면 분명 구분할 수 있을 게야. ”

“예? 죽이신다고요? ”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염라에게 확인을 해달라 보내는 것이지. ”

“그게 그거지 않습니까? ”

“다르대도! 일단 그 아이를 잠깐 이리 주거라. ”


‘저, 저승으로 보내겠다고? ’


천계로 가는 문은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인해 닫혔지만, 저승은 아니었다.


언제라도 누구든지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만 한다면 현세에서 자유롭게 보낼 수도, 갈 수도 있는 세계.


그리고 결행에 옮길 힘과 의지가 있는 구미호는 이미 죄와 업보의 굴레를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저자는 능히 하고야 말 것이다. 이미 천계에 오를 자격을 얻고도 제 스스로 차버린 존재이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정말 죽는다! ’


-화아아악.


이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몸에 품고 있던 도력을 몸 구석구석으로 보냈다.


뼈가 자라고, 근육이 붙었으며 도톰하게 붙어있는 애깃살도 제자리를 찾아 매끄럽게 빠졌다.


“어어? 악귀가 빛나는 겁니다! ”

“이런 빨리 저승으로 보내야겠구나. ”

“나뉸 악귀가 아니댯! ”

“말을 하는군요. ”


“나뉸 이도! 죠션의 임금이었느니랴! ”

“이도라면··· 세종대왕? ”


그것이 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조선의 임금, 세종이 수백 년 만에 현세로 와서 한 첫인사였다.


이 인사 한번을 위해 한 줌만 있어도 세상을 뒤바꿀 힘이었던 도력을 오롯이 쓰여버린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목적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목적으로.



***



“어찌 이리 극악뮤됴한 짓을 저지르려햇느냣. 죠션땅에 그리 오랫둉안 살며 유학의 도를 배유지 못한 게야? ”

“거,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크흠. ”


운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했다. 지금 세종대왕님의 처지가 딱 그러했다.


평생을 모은 도력을 고작 키 몇 뼘 자라는 데 써버렸으니 안타깝고 불쌍하기로 아마 앞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뭐 정작 본인은 그것보다 갓난아이를 죽이려는 구미호에게 더 화가 난 모양이다만.


“구미호가 잘못한 겁니다. ”

“네놈이 원흉인 것이야! 네놈이! ”


그렇다.


따지고 보면 원흉은 이 녀석이다. 너구리에게는 두 가지 죄가 있었다.


하필 천계에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부동의 1,2위를 다투는 세종대왕님이 내려오는 순간에 신목을 쓰러뜨린 죄.


그리고 평소에는 헛소리를 밥 먹듯 하는 주제에 하필 그 순간에 저팔계와 사오정을 들먹여 세종대왕님을 죽음으로 집요하게 몬 죄.


감히 한민족의 국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죄가 중하지만 정작 죗값은 피해자가 받는 웃지 못할 촌극이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더 중요하니까.


“일단 천계로 다시 돌아갈 방도를 찾을 때까지는 여기 있으셔야겠군요. ”

“국정원에서 운영하는 안전가옥이 근처에 있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

“아니다. 여기 머물러야 한다. 신목의 기운을 받아야 도력이 빨리 돌아오니 말이다. ”

“상관없느니랴. 읽고 쓰는 데에는 지장이 없댜. ”

“쯧. 예전부터 제 몸 하나 중히 여기질 않더니 어째 천계에 가서도 그 버릇은 그대로구나. 도력 없는 도사는 요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다. 그러니 잔말 말고 여기서 지내거라. ”

“그러면 뒤뜰에 임시 가옥을 지어두겠습니다. ”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법적으로 절차가 까다롭지 않겠습니까? ”

“저희가 진행하면 까다롭지 않습니다. 중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


자신 있게 대답한 백마현 국정원장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국부를 소홀하게 모시지 않겠다는 의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하긴, 중하다면 이보다 중한 일이 없다. 세종대왕께서 살아 돌아오셨으니.


그렇게 우리 집에는 당분간 귀빈이 머물게 되었다.


조금 발음이 어눌하고 어린 조선의 임금, 세종대왕님께서 말이다.



***



천계에서 손님이 온 날부터 이틀이 지난 오늘.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사무실에서 업무 마무리하는 중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직장인은 출근한다 했던가?


내 꼴이 딱 그러했다.


이 근래 정말 천지가 개벽할만한 일을 연달아 겪긴 했지만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관둘 정도로 큰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은퇴 후까지 계산기를 두들겨보면 결국 퇴사는 무리.


나도 마찬가지다. 달에 3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오지만 그래 봤자 또래의 친구들보다 조금 자산이 많을 뿐, 인생 졸업을 논할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다방을 사기전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오늘같이 월차와 휴가를 조금 자주 쓴다는 정도였다.


“어? 김 대리 오늘도 반차야? ”

“네 오늘 조카랑 어디 갈 때가 있어서요. ”


가망을 챙겨 사무실을 나서다 마주친 영업부서 박 과장님이 사뭇 부러운 눈길로 물었다.


초최한 몰골을 보아 아마 어제도 새벽까지 고객과 술을 마신 모양이다.


“휴가도 다 당겨쓰고 그러다 연말에 정말 일 만하겠어. ”

“제가 똑똑한 겁니다. 에 휴가랑 월차 몰아 쓰면 저만 무두절이잖아요. ”

“웃기셔. 어디 직장상사가 쉴 때 그냥 쉬는 거 봤어? 일거리 가득 던지고 가지. 여하튼 어서 가봐. 점심시간 걸리면 차 밀릴라. ”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다행히 이른 퇴근길에 마주친 상사 중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박 과장님이 유일했다.


그렇게 나는 차 뒷좌석에 가방을 던져놓고 집으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불과 그 이틀 사이, 주차장으로 쓰이던 널찍한 공터에 다방에 버금가는 조립식 2층 건물이 올라가 있었다.


나는 새로 지은 건물 현관에 벨 대신 걸린 문고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 똑똑.


“전하, 계십니까? ”

“들어오거라. ”


- 끼이익.


원목으로 된 고풍스러운 현관문이 열리고 실내에는 사극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인테리어가 가득했다.


아마 현대의 문물에 괴리감이 있을까 싶어 국정원에서 섬세하게 준비한 듯 보였다.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

“괜찮다. 천계에서 살던 집보다 더 편안하구나. ”


전보다 훨씬 발음이 좋아지셨다.


3살 정도 됨직한 아이의 몸에 맞는 고급스러운 한복을 어디서 하루 만에 용케 구해왔는지 차림새와 용모, 그리고 사뭇 진중한 어투까지, 영락없는 군주의 모습이다.


“헌데 어쩐 일로 왔느냐? ”

“같이 가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

“나와 갈 곳이 있단 말이더냐? ”

“네, 모처럼이니 세상 구경이라도 시켜드릴까 해서요. ”

“생각이 갸륵하고 깊구나. 그래, 마침 답답하던 차인데 잘 됐구나. ”


첫날에는 어쩔 수 없이 국정원에서 마련해준 임시 거처에서 지내셨고 둘째 날인 오늘에서야 이곳에 지내실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그리고 천계에서 수백 년을 산 선인에게는 아직 모든 게 불편하고 낯설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계속 집안에 계시게 할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준비된 카시트에 세종대왕님을 앉히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행여 멀미가 나실까 싶어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 안에서 세종대왕님은 창밖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는구나. ”

“예, 이곳에 사는 저도 따라가지 못할 지경입니다. 가끔은 천계처럼 잠시 멈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

“이립도 안 되어 보이는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느냐? 모름지기 사람은 끊임없이 꿈틀대고 변화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 본질을 거부하지 말거라. 특히 우리처럼 보는 눈이 다르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

“예, 나름 타협하고 있습니다. ”


순응이 아닌 타협이다.


근래에 나보다 더 격변하는 삶을 사는 존재가 또 있진 않을 테니까.


“다 왔습니다. ”

“여긴 어디더냐? ”

“도서관입니다. 전하께서 만드신 글자로 쓰인 책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


처음엔 세종대왕기념관을 갈까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배운,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께서는 자신의 업적을 기린 동상보다 그대의 백성들이 바라던 삶을 사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았다.


양반의 특권이었던 서책을 산처럼 쌓아두고 보는 그대들의 백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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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3) +4 24.09.12 258 25 10쪽
»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2) +4 24.09.11 319 27 10쪽
10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6 24.09.10 380 28 11쪽
9 개업식은 수라장 (3) +3 24.09.09 391 29 10쪽
8 개업식은 수라장 (2) +3 24.09.08 439 28 10쪽
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4 33 11쪽
6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5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4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73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9 30 10쪽
2 마수걸이 +6 24.08.29 709 33 10쪽
1 작은 일탈 +6 24.08.28 856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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