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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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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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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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4)

DUMMY

(오늘의 메뉴는 오므라이스! 이곳은 성북동에 한시간 웨이팅은 기본이라는 오므라이스 맛집에 왔습니다! )


“메일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재미있더냐? ”

“그냥 틀어 놓습니다. 너무 조용하면 적적하니까요. ”

“보지도 않을걸? ”

“저는 안 봐도 저리 재미있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

“오므라이스도 맛있어 보이는 겁니다! ”


하릴없는 주말 아침이다.


낮잠을 자는 한이 있어도 아침에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빈둥거리는 성스러운(?) 의식은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들어눕다시피 의자에 기대 폰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저녁까지 다방에 앉아있을 진상 아닌 진상 두 명도 함께 말이다.


“이도는 어디 갔느냐? ”

“방에 계십니다. 요 며칠 뭔가 바쁜 일이 있는지 식사 때가 아니면 통 나오질 않으시더군요. ”

“별난 일이구나 천계에서 내려온 신들은 죄다 세상 구경을 하느라 바쁘던데 어째 제일 빨빨거릴 것 같은 놈이 저리 틀어박혀 있다니. ”


구미호의 말은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조선의 임금이 어디 궐 밖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존재던가?


붕어하신 뒤에도 천계에 계셨으니 현세에 백성들이 사는 모습이 궁금하실 것이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언제든 국정원에서 모시고 가면 된다.


실제로 매일 삼시 세끼로 다 먹지도 못할 진수성찬이 들어가고 있으니 그 정도는 일도 아닐 터.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 모시고 간 다음 날부터 오늘까지 딱 삼 일째 되는 날이다. 두문불출하는 기간치고는 꽤 길지 않은가?


“신목은 거의 다 회복되었으니 이제 정말 천계로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모처럼인데 어디 구경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어디로 말이더냐? ”

“글세요. 첫 방문이 도서관이었는데 또 어디 갈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계룡산이 좋은 겁니다! 산세도 험하고 인간들이 숨어있는 동굴도 많은 겁니다! ”

“아니 거긴 좀······. ”

“서라벌이 어떠냐? 거긴 이도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으니 아마 친숙 할 게다. ”


둘 다 틀렸다.


천계로 가기 전에 좀처럼 할 수 없는 구경을 시켜줘야 하건만 산과 경주유적이 될 말인가?


이럴 땐 역시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선이다.


“가서 물어봐야겠습니다. ”


나는 따듯한 우유 한잔을 탄 쟁반을 들고 전하께서 머무시는 집 현관을 두들겼다.


“마실 것을 조금 들고 왔습니다. ”

“들어오거라. 내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


들어가도 될까 허락을 구한 것이건만 전하께서 손수 문을 열어 나를 맞이해주셨다.


무슨 일이지?


“통 밖에 나오질 않으셔서 걱정되어 와봤습니다. 혹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

“아, 별것 아니다. 요즘 이것 푹 빠져 살고 있느니라. ”


【신 조선기】


정갈하게 쓰인 붓글씨가 인상적인 종이다.


그리고 전하의 손에 들린 종이는 한 장이 아니었다. 전하의 키만 한 한지가 족히 수십 장은 되어봄 직했다.


“글을 쓰셨습니까? ”

“허허. 내 적적하여 써본다는 것이······. ”


학문에 관련된 책이 아님은 제목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이리 쑥스러워하며 일러 주셨고.


성리학의 나라에서 조선의 임금은 으레 그런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세종대왕께서는 풍류를 그 누구보다 멀리 해야 하는 임금이셨다.


전통성이 아닌 능력으로, 무가 아닌 문으로, 조선을 이끄셨니 말이다.


수백 년 만에 현세에 다시 내려와 가장 하고 싶으셨던 일을 하신 것이다.


“읽어 보겠느냐? ”

“그런 영광을 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

“그대도 배움이 깊을 진데 처음 쓴 부족한 글이 눈에 찰지 모르겠구나.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세종대왕께서 직접 쓰신 소설의 첫 독자가 나라니!


대대손손 자랑과 영광으로 여겨야 하건만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못할 일인 것이 한탄스러울 지경이다.


나는 그렇게 전하를 앞에 두고 천천히 글을 읽어내려갔다.


소설의 시작은 태종이 나라를 세울 시점, 이도가 아직 세자로 책봉되기 전이었다.


조선의 역사를 그리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전하의 소설은 그 시작부터 기록된 사실과는 조금 달랐다.


민씨 일가가 죽지 않았다.


정몽주도, 정도전도 그리고 개국의 대업 아래 죽어간 수많은 인물 역시 멀쩡히 살아 벼슬을 하고 있었다.


조정에선 논쟁을 펼칠지언정 그 논쟁 안에는 양반의 권력욕과 재물욕 대신 충심과 백성이 있었다.


꿈같은 이상향이 담긴 글.


이는 세종대왕이 되돌려 바로 잡고 싶은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어떠한가? ”

“재미있습니다. 다소 고루한 지문과 딱딱한 대사가 조선의 궁궐과 더해지니 오히려 현실감이 듭니다. ”

“볼만하다니 다행이구나. ”


그럴 수밖에 없다.


대체역사물의 생명은 고증.


대한민국 작가 그 누구를 데려와도 이 작품보다 고증을 잘 지킬 순 없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 연재를 해도 꽤 준수한 성적이 나올 게 분명했다.


“허나 끝맺음은 천계에 돌아가서나 할 수 있으니 아쉽구나. 혹, 그 도서관에 들어갈까 싶어 최대한 열심히 써봤건만 이리 오래 걸려버렸으니. ”

“천계로 돌아가시면 다시 오지 못하십니까? ”

“길이 열려있다 하여 때와 자격 없이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천계의 존재가 현세와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


원래는 한낫 인간으로 태어나 지나치게 과한 신안을 뜬 것이 염려되어 오셨다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이신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빨리 돌아가겠다 하셨고 그날이 내가 뽑은 신목이 모두 회복되는 날이었다.


이제 이틀도 남지 않았다.


미완의 소설은 천계에서 마무리 될 것이다.


아니, 잠깐.


“방도가 있습니다. ”

“무슨 방도를 말하는 것이더냐? ”

“천계의 존재가 아니면 되지 않겠습니까? ”

“무슨······. ”


현세와 천계를 오가도 현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평범한 인간이 다녀오면 된다.


이미 한번 경험이 있는 인간이.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프로그램 개발을 업으로 사는 나에겐 꽤 업무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말이다.


프로그래밍의 세계에서도 1과 1을 더하면 2가 되듯 같은 조건이 만족하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현실도 다르지 않다.


천계에 다녀온 절차를 그대로 밟는다면 이전처럼 똑같이 다녀올 수 있다. 물론 해보기 전까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정말 그걸로 천계를 다녀올 수 있겠느냐? ”

“모릅니다. 하지만 천계에 다녀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

“그 말을 저 황지연못에 가서 한번 해 보거라. 아마 이무기놈이 각혈하고 저승으로 갈 게야. ”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승천이 아니라 그냥 잠시 다녀오는 것뿐입니다. ”

“잠시가 천년이 될지 만년이 될지는 네놈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

“하핫. ”

“쯧. 말이나 못 하면.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조건은 간단했다.


조금 년식이 오래된 차, 그리고 지갑에 들어있는 신목잎, 마고신께 대접할 보온병에 담긴 커피.


여기에 조수석에 탄 원래 천계의 존재였던 세종대왕님까지 더하면 끝이다.


- 부웅.


부드럽게 밟는 악셀이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그리고 한번 보아 제법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건물과 전봇대가 사라지고 사방에 계절을 잊은 꽃들이 핀 뒤, 이윽고 차는 도로가 아닌 풀이 무릎까지 자란 들판에 다다랐다.


“정말 이 마차로 천계를 올 수 있었구나. ”

“예, 마고신께서 장난을 치시는 바람에 이리되었습니다. ”


이로서 확실해졌다. 통행증인 신목잎만 있으면 곧장 천계로 올 수 있음을. 일종의 하이패스인 셈이다.


“걱정되진 않느냐? 처음은 우연이라 하고 두 번째는 의도하고 넘어온 것인데. ”

“괜찮습니다. 천계를 떠날 때 또 오라고 하셨으니까요. ”

“마고할망께서? ”

“아, 마침 저기 나와 계시는군요. ”


우리는 차를 세우고 저 멀리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마고신께 인사를 올렸다.


“네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

“아닙니다. 같이 한 시간이 꽤 즐거웠습니다. ”


그렇게 우리는 간단한 인사치레를 끝낸 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한 잔씩 들고 그때처럼 풀이 누운 들판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 한잔이 다 비워질 때까지 시시콜콜한 담소가 오갔다.


너구리 때문에 신목이 쓰러져 전하께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일, 그리고 도서관에 간 일까지.


억겁의 세월을 살아오신 마고신 앞에서 그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말없이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던 첫 방문과는 사뭇 다른 시간이었다.


어쩐지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 온 기분.


사실 손자가 맞기도 했다. 마고신의 눈에는 나와 세종대왕님 모두 아이와 달지 않을 테니.



***



진성의 차가 간 자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담담한 미소가 남았다.


“자주 들른다 했으니 조용한 천계가 제법 시끄럽겠습니다.”

“글쎄다. 커피만 한 잔 주고 휑하니 가버리는데 시끄러울 것이 무어가 있겠느냐? ”

“만남이 짧아도 능히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니 동요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

“네가 소설을 쓴 것처럼? ”

“예, 그저 미련을 털고자 쓴 글인데 저자가 이미 방을 붙여 많은 사람이 보도록 해두었습니다. 저도 저자에게 마음이 동요된 게지요. ”


이도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홀홀, 천계로 와 서책만 읽더니 인제야 하고 싶은 것을 찾은 모양이구나. ”

“감사합니다. 마고할망이시어. ”

“감사는 무슨 네 스스로 천계를 떠났고 그곳에서 변한 것 또한 네 의지인 것을. 해서 이제 후련하더냐? ”

“예, 이제 현세의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걱정은 현세의 생이 끝났을 때 진즉 두고 왔어야 했습니다. ”


하지만 이날까지도 이도는 모르고 있었다.


인기작가가 마땅히 가지게 되는 거대한 고뇌와 근심이라는 파도가 자신을 덮칠 것임을.


그것은 신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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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2) +4 24.09.11 318 27 10쪽
10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6 24.09.10 380 28 11쪽
9 개업식은 수라장 (3) +3 24.09.09 391 29 10쪽
8 개업식은 수라장 (2) +3 24.09.08 439 28 10쪽
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4 33 11쪽
6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5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3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73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9 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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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일탈 +6 24.08.28 855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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