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쌀먹충은 탑에서도 쌀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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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유
작품등록일 :
2024.08.2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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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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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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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의 기적

DUMMY

5시간 넘게 같은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던 재호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마침내 목표로 하던 가죽 신발을 전부 만들었다.

마무리 작업으로 늪 악어 내장을 신발 밑 창에 덧대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아 참! 이왕 하는 건데 장식도 새겨줘야지.”


재호는 유명 브랜드의 신발처럼, 가죽 신발 한 쪽에 금화처럼 생긴 동그란 문양 하나를 새겨 넣었다.


“이러면 약간 더 고급져 보이겠지?”


모든 일을 마친 뒤, 보따리에 신발 수십켤레를 집어넣고 여관에 들렀다.


“아저씨 여기 하룻밤에 얼마에요?”

“40 실버. 식사는 따로 돈 주고 사야 해.”

“에이 이미 시간 늦었는데 좀 깎아주세요. 안 깎아주면 밖에서 자는 사람들처럼 마구간에서 몰래 자고 말죠.”


한창의 실랑이 끝에 재호는 40 실버에 식사까지 제공 받는 조건으로 여관에 들어섰다.

여관 주인은 그런 재호를 보고 가래침을 탁 뱉었다.


“흥! 젊은 놈이 수전노같이 독하군!”


그런 말이 뒤에서 뻔히 들렸지만 재호는 무시하고 올라갔다.

이제 골드나 실버는 게임 머니가 아니라 실제 돈이다.

조금이라도 더 아껴야 완벽한 노후 대비를 할 수 있는 법이다.


재호는 가죽 신발에 몇 가지 작업을 더 해준 뒤에 잠에 들었다.


*

아침이 되자 재호는 여관 수프를 먹고 곧장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밤새 만든 작업물과 함께였다.

가는 길에 바닥에서 무릎을 안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돈이 없어서 노숙하는 지구인들로 보였다.


“아직 탑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구나.”


저들은 눈앞에 닥친 초현실적인 상황을 부정하며 경찰이나 군대가 출동하기만을 기다리는 부류였다.

그래서 상태창이나 인벤토리를 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틀 정도 더 지나면 저 사람들도 현실을 깨닫겠지.”


재호는 최대한 저 사람들이 많이 살아남았으면 했다.

저래 보여도 언제 잠재적인 고객이 될지 모르는 돈줄들이었으니까.


마을 중심의 제단에 다가가자 위병들이 무기를 들었다.

재호는 밤새워 일한 작업물을 등에 짊어지고 말했다.


“탑 등반이 목적입니다.”


재호는 제단에 새겨진 주문진에 올라섰다.

위병들이 뭔가 조작하자 푸른 빛이 재호를 1층으로 인도했다.

1층에 입장하자 고약한 냄새와 푹푹 찌는 더위가 느껴졌다.

이곳이 바로 1층에서 5층까지의 무대가 되는 늪지 지대였다.


[늪지 지대 1층]

[목표 : 늪지 구렁이 10마리 사살]

[제한 시간 : 12시간]

[퇴장 조건 : 사망 혹은 후퇴]


“벌써 사람이 꽤 되잖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재호의 걱정과는 다르게 벌써 탑 등반에 도전하는 이들이 보였다.

아마 타오판을 플레이했던 유저들이거나 현실에 빨리 적응한 사람들이겠지.


쉬이익.


그들 발아래로 팔뚝 반치도 안되는 사이즈의 구렁이들이 지나갔다.

진흙을 헤엄치는 구렁이들은 이빨이 굉장히 날카로워 보였다.


“어엇! 거기로 도망간다! 잡아!”

“왜 이렇게 푹푹 빠지는 거야! 거기 진흙 안 보여?! 눈 크게 뜨고 잡으라고!”

“아오! 왜 이렇게 빨라!”


그들은 첨벙대는 늪지대 위에서 더러운 진흙을 피해 구렁이를 사냥했다.

하지만 격하게 움직이는 구렁이를 잡기 위해서는 진흙 속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한 아저씨가 쫀쫀한 늪지 진흙에 빠진 탓에 신발을 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시팔! 또 빠졌네! 진흙이 왜 이렇게 찐득거리는 거야!”


아저씨는 더러운 수건이나 잎사귀로 발에 묻은 진흙을 닦아냈다.

그때 구렁이 한 마리가 아저씨의 발밑을 지나갔다.


쉬이익!


“악! 물렸어! 나 물렸다고!”


아저씨가 피가 질질 흐르는 발을 부여잡는 모습을 보고 재호가 크게 웃었다.


“하하!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늪지 지대.

이곳이 타오판 유저들에게 불리는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신발 저장소였다.

늪지의 끈적한 진흙 탓에 일정 확률로 늪지가 유저들의 신발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우스겟소리로 늪지 밑에 가라앉은 신발들을 합치면 신발로 탑 하나를 쌓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정도.


게임이 현실이 되고 난 이후에도 늪지의 특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고약해졌다.


“아! 또 신발 빠졌어요!”

“저거 막대기로라도 좀 건져봐!”


게임에서처럼 늪지에 빠진 순간 신발이 확률적으로 소멸되진 않았다.

하지만 애써 신발을 건져내봤자 이미 진흙을 머금어 잔뜩 무거워진 신발을 신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1층 등반자들은 진작에 지구에서 가져온 신발을 잃고 기본 제공 신발까지 잃어버린 이들이 꽤 존재했다.


“하이고! 또 잃어버렸네! 이걸 우짜노!”

“맨발로라도 일단 해봐요!”

“안돼! 구렁이한테 물리면 엄청 따가워! 한동안 걷지도 못한단 말이야!”


구렁이 한 마리를 잡기도 벅찬데 신발까지 신경 쓰다 보니 1층에서부터 고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저들도 언젠가 돈을 모아서 신발을 여러 켤레 구매하면 금방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발바닥에서 피와 진흙이 마를 날이 없겠지.


저벅저벅.


악전고투하는 그들 사이로 누군가 진흙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는 바로 재호였다.

진흙은 신경쓰지도 않고 중앙 늪지 지대로 향하는 재호를 본 사람들이 혀를 길게 찼다.


“아이고. 저 사람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저러면 안 되는데···.”

“굳이 말해줄 필요 있어? 큭큭. 저러다가 알아서 후딱 뛰쳐나올 텐데.”


하지만 이제껏 진흙에 신발을 빠트렸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재호는 제 안방을 거닐듯 늪지를 거닐었다.

재호는 구렁이를 잡을 생각이 없이 보따리를 들고 걸어 다니기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제 모습을 과시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만을 콕 집어서 지나다녔다.


그 모습에 열심히 구렁이를 잡던 사람들이 모두 동작을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 사람은 왜 멀쩡히 돌아다녀? 난 아무리 꽉 묶어도 신발이 벗겨지던데?”

“무게가 꽤 되는 걸 들고도 멀쩡하잖아! 무슨 스킬 아니야?”


적당히 시선이 집중됐다고 생각이 들 때쯤 재호가 가장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등에 짊어진 보따리를 내려놨다.


쿵!


“으흠! 으흠! 자 여러분. 여기 계신 여러분께 제가 오늘 좋은 기회를 하나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재호가 보따리 안에서 신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늘 소개할 상품은 제가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특급 상품인데요! 늪지 지대를 마음껏 오갈 수 있는 프리미엄 신발입니다!”


마치 지하철 1호선의 불법 행상인을 보는듯한 모습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몰려들었다.


“저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걸 신으면 진흙 위에서도 멀쩡히 다닐 수 있다는 거예요?”

“예! 말 그대로입니다! 자! 저를 한번 보십쇼! 읏차!”


재호는 진흙 가득한 늪지 위로 올라가더니 펄쩍펄쩍 뛰었다.

보통 사람들이었으면 진작에 신발이 빠졌을 텐데 재호는 평지에서 뛰듯 멀쩡했다.

모두가 눈을 빛내며 재호에게 다가왔다.

그중 한 아줌마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진짜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에요?”

“미국에 있는 신소재 연구소와 하버드 연구팀이 협업해서 만든 특급 신발입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에요!”

“미국? 그게 진짜예요?”

“그럼요. 폴리우레탄 소재에 고어텍스를 황금비로 섞어서 실리콘 작업을 거친 신발이에요!”

“우와!”


재호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절댔다.

사실 이런 곳에 경찰이 어디 있고 소비자 보호원이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신발을 구매할 대부분의 소비자들도 재호의 신발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관심 없을 것이었다.


‘어차피 당신들은 늪지를 멀쩡히 다닐 수만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조미료를 치고 밑밥을 깔아대는 이유는 단 하나.


“그, 그래서 얼마에요? 나도 그거 하나만 살 수 있겠소?”

“예 그럼요. 단돈 60 실버입니다.”

“뭣! 저기 마을 잡화점에 가면 신발 하나에 15 실버인데! 무슨 이런 바가지가 다 있어!”

“아니 그럼 미국 연구소에서 만든 신발을 꽁으로 가져가려고 했어요? 여기 새겨진 이 문양 안 보여요? 이 고급진 문양 안 보이냐고요!”


그건 바로 이들을 손쉽게 등쳐먹을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무려 4배에 달하는 사악한 가격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그 가격에 그걸 사. 젊은 청년이 경제 관념이 없네!”

“이봐! 그러지 말고 20 실버에 어때? 좀 더 쳐줄 수도 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폐를 사용하던 세상이다.

하지만 이제는 골드니 실버니 하는 단위가 더 익숙해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더욱 빨리 탑에 적응한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20실버를 제시하는 아저씨에게 재호는 단호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최소가 60실버 입니다. 그 아래는 에누리할 생각 없으니 돌아가시면 됩니다.”

“퉤! 더러워서 안 산다! 그거 없다고 우리가 쩔쩔맬 것 같아?!”

“흥! 구렁이 다섯마리 잡는 데 그거 얼마나 걸린다고!”


몰려왔던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갔다.

몇몇은 떠나면서도 재호에게 눈을 부라리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재호는 괘념치 않았다.

자신들은 모르겠지만 저들은 이미 재호의 통발에 걸려든 물고기들이었으니까.


“흠. 그거 한켤레 주세요.”

“지, 진짜 이거 미국 연구소에서 만든 거 맞죠? 하나 주세요.”

“나도 하나 주쇼. 혹시 현금도 됩니까?”

“한화는 안 받아요. 실버나 골드로만 받습니다.”


게다가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재호는 그들 덕분에 8켤레의 신발을 판매하고 480실버를 얻을 수 있었다.

딸기 사슴 가죽 한장에 40실버, 늪 악어 내장이 하나에 30실버니까 이게 대략···.


‘대박이다!’


이제 고작 신발의 10분의 1 가량이 팔렸을 뿐인데 이 정도 수익이다.

앞으로 쏟아질 골드를 생각하면 입이 절로 찢어졌다.


‘늪지 악어 내장에 이런 효과가 있다는 건 타오판에서도 거의 알지 못하는 고급 정보였지.’


쌀먹을 위해 타오판의 생태계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했던 보람이 느껴진 재호였다.


재호는 그 뒤로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신발을 보여줬다.

대부분은 가격을 보고 재호를 욕했지만 그래도 재호는 3켤레가량 더 신발을 팔았다.

어느 정도 신발이 팔렸다고 생각한 재호는 1층 늪지에만 존재하는 열매나 재료를 몇 개 수집했다.


“대충 오늘 할 일은 다 한 것 같네.”


재호는 그 편한 신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렁이를 사냥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찮은 것을 보듯이 구렁이를 내려다봤다.


“1층 늪지 구렁이. 내장에서 쓴맛이 나고 고기도 얼마 없어서 상점에서 취급도 안 해주는 품목이었지? 나중에 합성 재료로 쓰기에도 쓸모없고. 퀘스트를 주는 엔피시도 없었어. 한마디로 기어 다니는 쓰레기네.”


그렇다면 재호가 굳이 구렁이를 잡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재호는 탑을 필사적으로 등반할 생각도 별로 없었다.


“등반하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최대한 골드를 벌고, 골드를 벌고, 또 골드를 벌다가 올라가야지 으흐흐.”


재호가 중립지대에 가기 위해 상태창을 불러내자 푸른 빛이 몸을 감쌌다.

어느새 재호는 중립지대의 마을로 돌아왔다.


“적어도 내일이나 모레까지는 아직 신발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거야.”


기본 신발의 4배나 되는 가격이다.

신발을 사기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구렁이를 사냥하려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되겠지.


하지만 2층, 3층, 4층, 거기다 5층까지.

탑의 초반이 전부 늪지 지대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재호의 신발은 불티나게 팔릴 것이었다.

그러니 아직은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즐겁게 기다릴 수 있는 재호였다.


“내일모레까지만 참자. 그 뒤부터는 돈을 버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하지만 재호는 알지 못했다.

남이 멋진 명품을 쓰고 있으면 일단 구매하고 보는 한국인의 습성을.

또 무슨 일이든 일단 눈앞에 닥치고 보면 급하게 해결하려고 하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을 얕봤던 것이다.


다음날.


“이봐요! 나도 그거 하나 줘요! 빨리!”

“나는 두 개 주세요!”

“내가 먼저 왔어요! 밀지 마요!”


재호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인파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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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급 쌀먹충은 탑에서도 쌀먹합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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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종탑 거주지의 스킨헤드 +1 24.09.09 21 3 14쪽
12 인계동 사거리 연합 +1 24.09.08 28 3 13쪽
11 100골드 보상 +1 24.09.07 29 2 13쪽
10 신발 장수 24.09.06 33 2 13쪽
9 사실 날먹이 맞아 24.09.05 42 2 14쪽
8 안녕, 캐시 파머99 24.09.04 43 2 16쪽
7 나는 쌀먹충이 아니다 24.09.03 55 3 16쪽
6 사다리 걷어차기 +1 24.09.02 73 6 16쪽
5 황금충 24.09.01 75 7 16쪽
4 골드 러쉬의 선물 +1 24.08.31 84 6 15쪽
» 늪지의 기적 24.08.30 96 4 12쪽
2 쌀먹은 날먹이 아니야 24.08.29 105 6 16쪽
1 게임에서 돈 벌지 말고 제발 나가서 일을 해 +1 24.08.28 126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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