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쌀먹충은 탑에서도 쌀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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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유
작품등록일 :
2024.08.28 21:25
최근연재일 :
2024.09.0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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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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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신발 장수

DUMMY

정윤식은 손에 칼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큰 결심을 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결을 결심한 무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윤식은 절대 죽을 생각이 없었다.


“살려고 이러는 거지.”


놈이 떠나고 벌써 세 시간 째.

정윤식은 이곳을 벗어나려면 바로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 가슴팍에 붙어있는 황금충인데.

대체 이 생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이번에는 성공할 거야. 6층에서 얻은 어둠 송곳니 검에 스킬까지 부여한다면···!”


잠시 정신을 집중한 정윤식이 [중독 날붙이]까지 사용하자 검의 살상력이 더욱 높아졌다.

이내 웃통을 까고 입술을 꽉 깨문 정윤식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칼을 찔러넣었다.


팅!


선명한 금속음과 함께 찔러넣은 칼이 튕겨져 나왔다.

그것도 모자라서 칼 끄트머리는 이가 나가고 살짝 부러져서 상하기까지 했다.

온 힘을 다한 결과였음에도 칼의 상태만 나빠졌을 뿐, 황금충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정윤식은 절규를 내질렀다.


“크아악! 또 실패했다!”


이놈의 황금충은 대체 뭘로 이루어진 생물인지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신발 장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자식이 도대체 이런 귀물을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일까?


“크윽! 괜찮아! 아직 무기는 많이 남아 있어! 될 때까지 시도하면 분명···!”


똑 똑 똑.


“억!!! 아, 아닙니다. 형님! 이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잠시 스트레칭을 하던 겁니다!”


재호가 돌아왔을까 두려워 애써 변명하는 정윤식이었다.


똑똑똑.


몸을 바들바들 떨던 정윤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재호가 돌아왔다면 이런 식으로 노크를 하지는 않았을테니까.

심호흡한 그는 마음의 대비를 하며 문을 벌컥 열었다.


그 망할 자식이 아니라 생판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얼굴을 보였다.

재호는 기분이 확 나빠져서 인상을 찌푸렸다.


“뭡니까?”

“저···그···여기 원래 살던 방 주인은 없나요?”


남자는 며칠 전 황금충의 후광에 놀라 재호에게 따지러 왔다가, 재호의 괴력에 놀라 달아났던 옆방 투숙객이었다.

그런 괴물이 옆방에 살고 있어서 그동안 옆방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일으켜도 가만히 있던 남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재호의 목소리 대신에 생판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오기에 확인차 찾아온 그였다.


황금충을 제거하기도 바쁜데 옆방 사람까지 찾아와서 귀찮게 굴자 정윤식은 괜스레 짜증이 났다.


“바쁘니까 신경 끄시죠!”


쾅!


“저런 싸가지 없는 노무 쉐끼가···.”


코앞에서 거세게 문이 닫히자 옆방 남자는 똥 씹은 표정으로 가래침을 뱉었다.


“어쨌든 그 괴물 같은 놈은 이제 없다는 거지? 잘됐다. 이 씹새끼. 너 앞으로 조금만 시끄럽게 해봐. 내가 아주 가만 안 둘···.”


불만을 내뱉던 그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단숨에 문고리를 으스러뜨린 그 괴물의 모습이었다.


“시, 시벌! 그 새끼다!”


며칠 전 처음으로 탑 1층에 입장하고 나서야 그는 저 괴물의 정체를 알았다.

늪지 지대에서 신발 장수를 하는 똑같은 지구인이었다.

그리고 저 괴물 자식은 경찰이건 뭐건 신경 쓰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는 미친놈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괴물이 점점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숨어버렸다.


재호는 갑자기 위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여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게 매너가 없어. 매너가.”


잠시 투덜거린 재호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이내 재호의 면전에 욕설이 날아왔다.


“야이 씨발놈아! 내가 신경 끄라고 했···!”


대뜸 욕설을 내뱉고 본 정윤식은 상대가 재호라는걸 알자마자 얼굴이 파리해졌다.

재호는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나 되게 기분 나쁜데 지금?”

“아, 아, 아 그게 아니라요 형님. 옆방 새끼가 자꾸 짜증 나게 아까부터···.”

“뭐, 됐어. 나는 관대하니까. 오늘 작업한 결과물이나 보여줘.”


정윤식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새하얗게 변했다.

오늘 그가 작업한 시간은 고작 두 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몸에서 황금충을 떼어내기 위해서 불로 지지고, 칼을 쑤셔 넣는 등 온갖 수단을 시도해본 기억밖에 없었다.

정윤식이 쭈뼛대는 얼굴로 신발 열 켤레를 내밀었다.


예상 외로 적은 신발을 본 재호의 얼굴이 불편해졌다.


“왜 이거밖에 없지? 내가 준비해둔 초벌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텐데?”

“저,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실력이 딸려서 그런 거지.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 그럼 블랙박스 한번 까보지 뭐.”


재호가 사악하게 웃더니 황금충 모체를 꺼내 들었다.


“춘식이한테 붙여둔 블랙박스, 녹화 중 외부 충격 몇 번 감지 됐어? 아니다. 그냥 오늘 외부 충격 감지된 만큼 춘식이한테 파고들어.”

“형님! 살려주십쇼! 제발!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최대한 생살만 파먹어라. 춘식아 내가 오늘 너의 번뇌를 불태워주마.”

“이, 이럴 수는 없어!”


순식간에 창문으로 뛰어내리기 위해 벽을 타고 도망간 정윤식이었다.

하지만 재호의 명령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모체로부터 전해진 명령이 정윤식의 가슴팍에 박힌 황금충에게 전해졌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끼아아아아악!!!”


그 시각, 재호를 보고 달아났던 옆방 남자는 벽 너머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몸을 벌벌 떨었다.

아까 그 싸가지 없는 놈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살려주십쇼! 아아악!”


“끄르르륵! 끄륵! 끅!”


대체 어떻게 사람을 괴롭히고 있으면 방음 마법을 뚫고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까.


“씨, 씨발! 저 미친 악마 새끼!”


남자는 목소리를 죽이고 벌벌 떨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사를 가겠노라라고 결심했다.

*

간밤의 정화 의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비록 여관 주인에게 경고의 말을 단단히 듣긴 했지만, 춘식이의 생산 능률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초벌본을 재호가 준비하고, 춘식이가 마무리 작업을 거친 결과. 충분히 많은 양의 물량이 준비됐다.


“좋아. 이제 오늘부터 다시 장사 시작하는 거야. 할 수 있지?”

“저만믿고맞겨주십쇼!형님에게목숨을걸겠습니다!”


호흡도 없이 빠르게 충성 맹세를 내뱉는 정윤식이었다.

그날 이후 몇번의 황금충 세례를 더 받은 정윤식은 이전보다 더 싹싹하고 성실하게 변했다.

평생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탑숭이 하나를 새 나라의 일꾼으로 개조시킨 것만 같은 느낌에 재호는 뿌듯했다.


“왔다! 신발 장사다! 저 오늘 도마뱀 다 잡아 왔습니다! 신발 한 켤레 주세요!”

“저게 그 진흙 신발이에요? 나도 하나 줘요!”


이제 더 이상 재호는 1층 늪지 지대에서 장사하지 않았다.

늪지 지대는 모기도 많고 습한데다가 날씨도 더워 장사하기 적절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도 이제 신발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1층이 아니라 제단 바로 앞에서 재호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또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제단 앞에 많이 모일수록 그 주위에 진을 치고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늪지 동물, 늪지 과일, 늪지 식재료 다 팝니다! 오늘 잡아 온 것들이라 전부 싱싱해요!”

“무기 팝니다! 제가 직접 B급 단검에 날을 갈아서 세웠어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혹시 S급 공략자 캐시 파머99의 행적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작은 단서라도 좋으니 골드로 보상하겠습니다!”


덕분에 제단 앞은 시장통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평소처럼 따분하게 제단 앞을 지키던 위병들도 최근에는 군중들이 밀집한 탓에 정신이 없는 나날이었다.


“···고작 소환사 하나 때문에 이렇게 난리가 난 것도 참 신기하구먼.”

“그게 저층 소환사라는 사실이 더 특이한 거죠. 어째 이번 행성은 굉장히 독특한 소환사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아직까진 소환사들의 평균 실력이 4층 늪지 악어와 5층 늪지 버팔로를 잡을 만큼 충분하지 않았기에 신발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신발이 인기를 끌수록 돈이 굴러들어왔지만 그만큼 재호를 향한 적대적인 시선도 많이 늘었다.


“···젊은 놈이 건방지네. 같은 한국인이면서 돈을 저렇게 쓸어가도 되는 거냐고.”

“기회 봤다가 저 새끼 한번 까볼까요 형님?”


혼자라면 사람을 해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잘하지 못하지만, 단체는 좀 더 과감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법이다.

벌써 2주 가까이 탑에 머무르고 나니 대부분은 단체에 소속되거나 함께하는 파트너를 구해 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쓰읍. 아니다. 괜히 시비를 걸 필요는 없지. 그냥 둬.”


재호를 보며 살벌한 눈을 빛내던 두 명의 남자 중, 뺨에 큰 흉터가 있는 남자가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부하는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새끼 딱 보니까 전형적인 장사치에요. 장사만 하느라 탑 오를 생각도 못 해봤을 녀석이라 거의 일반인이나 다름없어요.”

“그래도 그냥 둬.”


흉터남은 그리 말하며 재호의 옆에 선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호의 말마다 ‘형님!’ 소리를 내는 게 전형적인 꼬붕처럼 보였다.


“저기 저 사람 보여?”

“저 띨빵하게 생긴 놈 말입니까? 뭐 보디가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생긴 것도 얼빵해가지고 무슨 저런 놈을 보디가드랍시고···.”

“저 새끼 13층에서 마주친 적 있어.”

“예? 지금 13층 등반자 백명도 안 되지 않습니까?”

“졸라 쎄더라. 돌이나 벽을 밟고 막 휙휙 날아다니는데 도저히 잡을 수가 없겠더라고.”


‘저 얼간이가 13층 공략자라고?’


아니, 13층에서 목격되었을 뿐이지 그 이상도 등반했을 확률이 있다.

자신조차도 10층의 리자드맨을 죽이지 못해 벌벌거리는데, 저기서 신발 장사나 돕고 있는 멍청한 녀석이 13층 등반자라니···.

남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흉터남을 바라봤다.


“설마 1층부터 10층까지 기록 싸그리 갈아엎었다는 그 캐시 파머인가 뭔가 하는 그 작자가 저 사람 아닙니까?”

“흠, 그건 아닐 거야. S등급으로 랭킹을 도배해놓은 사람이 11층부터는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게 이상하잖아? 아마 캐시파머는 11층 공략을 준비하고 있겠지.”

“아, 역시 그렇겠지요? 그래도 신기하네. 13층 등반자라는 사람이 왜 저기서 저런 일이나 하고 있는 건지···.”


남자의 말에 흉터남이 답했다.


“돈이 되잖아. 장비나 주문서 맞추려면 골드가 필요한데 탑에서 좆뻉이 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지. 아니면 신발 장사를 저 자식이 협박해서 꿀꺽했다거나.”


흉터남의 말에 남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형님, 그 말이 아구가 딱 맞네요! 하긴 저런 사람이 그냥 신발 장사나 돕겠다고 저기서 헛짓거리하고 있을 리가···.”


상식적으로 13층 공략자의 무력이라면 힘없는 신발장수 하나쯤은 얼마든지 구워삶을 수 있으리라.

남자는 자신이 먼저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때 신발 장수 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용서해주십쇼!!!”


13층을 공략한 남자가 신발 장사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판매하던 상품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사소한 이유였다.

고개를 바짝 조아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꼭 누가 보면 야쿠자 두목이라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를···!”


그 웃기지도 않는 광경에 신발을 구매하려던 손님이 오히려 더 머쓱해졌다.

신발 장수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13층 공략자의 어깨를 짚었다.


“허허, 춘식아. 어제 교육이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집에 가서 많이 공부하자.”


13층 공략자의 얼굴에서 혈색이란 혈색이 전부 달아났다.

그 모습을 본 흉터남은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마치 뱀을 앞에 둔 개구리를 보는듯한 느낌.

흉터남의 부하도 괴상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형님. 어쩐지 저 자식이 꼬붕 같아 보이는데요? 기분 탓이겠죠?”

“흠, 아직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조금만 더 지켜보지 뭐.”


열매가 더 무르익을 때까지 지켜보는 보람도 있으니까.

13층 공략자가 저기서 저렇게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을 때, 우리는 더 빨리 탑을 공략해서 강해지면 된다.

그러면 신발 장수고 13층 공략자고 간에 싸그리 죽여버리고 돈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느껴지는 사냥의 희열에 흉터남이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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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급 쌀먹충은 탑에서도 쌀먹합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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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종탑 거주지의 스킨헤드 +1 24.09.09 21 3 14쪽
12 인계동 사거리 연합 +1 24.09.08 29 3 13쪽
11 100골드 보상 +1 24.09.07 29 2 13쪽
» 신발 장수 24.09.06 34 2 13쪽
9 사실 날먹이 맞아 24.09.05 43 2 14쪽
8 안녕, 캐시 파머99 24.09.04 44 2 16쪽
7 나는 쌀먹충이 아니다 24.09.03 56 3 16쪽
6 사다리 걷어차기 +1 24.09.02 74 6 16쪽
5 황금충 24.09.01 76 7 16쪽
4 골드 러쉬의 선물 +1 24.08.31 85 6 15쪽
3 늪지의 기적 24.08.30 96 4 12쪽
2 쌀먹은 날먹이 아니야 24.08.29 106 6 16쪽
1 게임에서 돈 벌지 말고 제발 나가서 일을 해 +1 24.08.28 126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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