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쌀먹충은 탑에서도 쌀먹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민들유
작품등록일 :
2024.08.28 21:25
최근연재일 :
2024.09.09 07:2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816
추천수 :
55
글자수 :
87,268

작성
24.09.08 09:40
조회
28
추천
3
글자
13쪽

인계동 사거리 연합

DUMMY

신발 장사를 하면서 깨달은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첫째, 비가 오는 날에는 가죽이 습기를 머금기 때문에 제품이 무겁게 축 처진다. 그러니 날이 흐린 낌새가 보이면 재빨리 가격을 내려서라도 신발을 다 처리해버린다.

둘째, 돈을 보관하는 주머니는 절대 손님 보는 앞에 두지 않는다. 재물이 눈앞에 있으면 불청객이 꼬이기 마련, 또 고객들에게 괜한 미움을 사기 십상이다.

셋째, 사실상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갈대나 수초 같이 칙칙한 색깔 옷을 입은 사람에게 잘해야 해.”

“예? 갈대요?”


친히 장사 노하우를 전수하는 재호에게 정윤식이 의문의 눈동자를 비췄다.

재호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황갈색이나 진한 녹색 옷 입은 사람들 있잖아. 괜히 그런 옷을 입는 게 아니라고. 특수부대도 아닌데 괜히 그런 옷 입었겠냐?”

“그냥 패션이 좀 독특한 사람들 아니에요? 굳이 그런 괴짜들한테 신경 쓸 필요 있어요?”


재호는 오물 덩어리를 보는 듯 그를 내려다봤다.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벌써 몇주째 여기서 장사를 하면서 아직 이런 기본도 못 갖추다니.”

“···누가 언제 장사하고 싶다고나 했나.”

“이 자식 또 방구석 탑숭이로 돌아왔네. 황금충 맛 좀 보여줘?”


재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몸을 부르르 떤 정윤식이 애써 말을 돌렸다.


“그래서 그 옷이 뭐가 중요한데요?”

“전문가들이거든.”

“예?”

“전형적인 늪지 전문가들이야. 1층에서 5층을 배회하면서 수확물을 얻어 나오는 사람들이지. 아마 탑에 소환된 첫날부터 지금까지 쭉 늪지 지대만 오간 사람들일 거야.”

“왜 굳이 그런 짓을 해요? 상층으로 올라가면 되는걸?”


정윤식은 굳이 늪지 지대를 배회하는 이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상층에 올라갈수록 부와 명예에 가까워지는 것이 자명한데, 뭐 하러 습하고 더러운 늪지 지대를 방황한단 말인가?


재호가 그의 의문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여기 소환된 사람들이 다 너처럼 운빨로 좋은 특성 얻은 줄 알아? 게다가 대부분은 타오판 플레이 해본 적도 없는 일반인들이야. 갑자기 탑을 오르라고 하면 잘도 오르겠다.” 

“그래도 계속 늪지 지대에만 머무르면 쭉 가난하게 살 텐데요?”

“아니, 그게 생각보다 수익이 되더라고.”


상층의 고위험 몬스터가 등장하는 땅보다 훨씬 안전한 땅이 늪지 지대다.

게다가 늪지 특유의 축축하고 습한 환경은 풍부한 생명력으로 그곳에 다양한 환경이 구축될 수 있도록 영향을 줬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상층으로 올라가기보다는 늪지에서 획득한 부산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월등히 수월하다.


“···근데 온종일 여관에서 신발만 만들거나 황금충 가지고 놀기만 하면서 그런 사실은 어떻게 아는 거예요?”

“야 인마. 내 예전 직업 까먹었냐?”

“전 직업이라면···아.”


‘악질 쌀먹충이었지.’


타오판을 플레이하던 초창기 시절, 재호는 컨트롤과 피지컬, 상황판단 능력 그 무엇도 남들보다 우월한 점이 없는 평범한 유저였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쌀은 캐야 하던 입장이었고. 상층 몬스터를 잡아 보상을 챙기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거기다 재화를 얻으면 전부 쌀 사 먹는데 썼으니까 캐릭터가 강해지기도 힘들었고.’


그런 재호에게 늪지 지대는 그야말로 천국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골드를 벌어먹기에 이만한 공간이 없었다.


“적당히 과일만 따서 잡화점에 팔아도 돈이 꽤 되고 운 좋게 동물이라도 사냥하면 그날은 대박이지.”


사실 게임을 플레이하던 시절에는 재호를 제외하면 굳이 늪지 지대에만 머무는 유저들이 극히 드물었다.

신발을 소멸시킨다는 늪지 특유의 기믹도 혐오스러웠고, 얻을 걸 다 얻고 난 이후에는 머리를 박아가며 상층 클리어에 도전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이제 여기는 현실이다.

머리를 박아가며 상층에 도전하기에는 목숨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늪지 지대에 머무는 사람이 많은 거야. 저층인데 위험하지도 않고 돈도 꽤 벌 수 있어서.”


재호와 같은 극소수 유저들의 꿀통이었던 늪지 지대가, 이제는 탑에 납치된 일반인들의 일터가 된 것이다.

정윤식이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결국 그렇게 살기만 하면 아무것도 없는 게 없을 텐데 쯧쯧.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지.”

“타오판 상위 10프로 찍었던 방구석 게임 폐인이 할 말인가 그게? 저 사람들 대부분은 열심히 회사 다니거나 학교 다니다가 여기 들어온 건데?”

“아 형님 쪼옴!”


정곡을 찌른 말에 삔또 상한 정윤식이었다.

재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신발이 잘 나갈 수밖에 없다 이 말이다. 늪지에 머무는 사람이 많으니까.”

“근데 참 이상하네요. 제가 탑 제작자였으면 이런 식으로 탑을 설계하진 않았을 텐데. 이러면 저층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지잖아요.”

“···그게 이상한 거지. 마치 우리가 탑에 오르지 못하도록 유혹하면서 붙들어 놓는 것 같지 않아?”


탑을 운영하는 천사와 악마.

그들은 대체 무슨 의도로 지구인들을 납치한 것일까?

호기심이 늘어난 재호였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늪지 전문가들이 중요하다는 거야. 온종일 늪지에만 있는 사람들이니까 우리 신발을 여러 켤레 구매할 수밖에 없거든. 단골이야 단골.”

“아! 그래서 형님이 신발 몇 개는 따로 만들라고 하셨던 거에요? 그 사람들 신발 자주 사게 만들려고? 일부러 몇 개는 밑창 약하게 꿰매두라고 하셨잖···.”


퍽!


“야 이 새끼야! 그런 건 둘만 있을 때 말하라고!”


‘원래 단골 장사는 어장 속 물고기처럼 하는 건데 이 멍청한 놈이!’


이미 붙잡은 물고기에게 질 좋은 떡밥을 뿌리는 어부는 없는 법이었다.


“들은 사람 없지?”

“···형님 추하십니다.” 


혹시나 엿들은 사람이 없나 주변을 살피는 재호였다.

다행히 잠시 장사를 쉬는 시간이어서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그때 정윤식이 제단 앞을 지나가는 한 남자를 보고 눈을 번쩍 떴다.


“형님! 저 사람! 저 사람이 아까 말한 늪지 전문가 아니에요?”

“어디···어? 맞네. 태하 형님이잖아. 저분도 첫날부터 우리 신발을 구매하신 단골이지.”


재호는 그렇게 말하고 정윤식에게 ‘특별히 제작한 신발’ 두어 켤레를 내밀었다.


“자, 가서 팔고 와. 저 형님 최근 우리 꺼 안 산지 꽤 돼서 이제 신발 다 떨어졌을 거야.”

“예이.”


터벅터벅 걸어간 정윤식은 태하 형님의 어깨를 붙잡고 뭐라 뭐라 말을 걸었다.

그런데 어째 태하 형님의 얼굴을 보니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정윤식이 그에게 신발을 내밀어도 절대 구매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함을 느낀 재호가 장사를 하던 목판을 대충 정리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형님! 태하 형님 아니세요? 오랜만입니다!”

“···어? 어! 그래. 재호구나. 반갑다.”

“오늘도 늪지 지대 가시는 거죠? 복장 보니까 사이즈 나오네. 제법 오래 있으실 것 같은데요? 신발 많이 필요하시겠어요. 몇 켤레 드릴까요?”

“아, 아니. 이미 일반 신발로 많이 구해뒀어. 이제 안 사도 돼.”


‘이제’ 안 사도 된다고?

어쩐지 그 말이 앞으로도 계속 재호가 만든 신발을 안 사도 된다는 뜻처럼 들렸다.

재호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에이 왜 이러실까? 일반 신발로는 늪지에서 30분도 못 버티는 거 아시잖아요. 인벤토리 한계도 있을 텐데 그냥 두어개만 사가요.”

“아니 필요 없다니까! 안 살 거라고! 저리 가!”


재호의 넉살 섞인 호객 행위에 과격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얼굴빛이 붉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게 뭔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모욕적인 반응에도 재호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장사의 기본은 서비스 정신이었으니까.


“아이. 왜 이래요 형님. 제가 뭐 섭섭하게 해드린 거 있어요? 원래는 안 되는데 기분이다! 서비스로 한 켤레 더 챙겨드릴게요.”

“필요 없다고! 너희들이랑 엮여서 좋을 게 없···. 어쨌든 저리 꺼져! 앞으로 안 살 거야!”


태하 형님은 재호와 관련된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아차 싶었는지 말을 고쳤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실체가 살짝 드러난 느낌.

최근 장사 수완이 줄어들던 이유를 여기서 찾은 것만 같다.


‘누군가 내가 돈을 못 벌게 방해하고 있다! 그 새끼 때문에 내 돈이 새어 나가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재호의 얼굴이 점점 변했다.

사람 좋던 시골 청년의 얼굴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 같은 얼굴로 말이다.


“엮인다니요?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재호의 말투가 낮고 스산한 목소리로 변했지만, 이태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옆에서 신발을 들고 서 있던 정윤식이 흠칫 놀라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모른다고! 이제 늪지 갈거니까 방해하지 마!”


뒤돌아선 이태하의 어깨를 재호가 거칠게 잡아챘다.

이태하는 욕을 하고 벗어나려 했지만, 어깨에 전해지는 힘이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겁에 질렸다.


“왜, 왜 이래. 갑자기 왜 나를···.”

“···형님. 우리 같이 이득 보고 사는 윈윈 관계 아니었나? 나는 형님한테 신발 공급하고, 형님은 늪지에서 이득 보고. 같이 잘 지내는 그런 사이 아니었어?”


꽈악.


점점 강한 힘이 이태하의 어깨를 눌러왔다.


“근데 오늘 나 섭섭해지려고 하네. 동생 밥벌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기인가? 밥그릇 뺐긴 사람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오늘 보여줘?”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태하였지만 파랗게 질린 얼굴과 흐르는 땀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재호의 눈짓에 정윤식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태하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인계동 사거리 연합! 그 자식들이 그랬어! 너희들이 만든 신발 사면 죽여버리겠다고!”

“무슨 그런 싼 티 나는 이름이 있데요?”


정윤식의 말에 재호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멋진 이름 많은데 그런 이름을 짓다니.


“연합이라···새로 생긴 파벌인가?”


벌써 탑에 소환된지 한 달이 다 되가는 중이다.

슬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도덕과 윤리라는 단어보다 생존과 폭력이 더 진하게 새겨지고 있다는 말.

이곳은 언제나 새로운 파벌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였다.


“그래! 나뿐만 아니라. 다른 늪지 전문가들한테도 협박을 했더라고! 난 진짜 이 이상은 몰라!”

“그놈들 어디 거주하는 놈들인데요?”

“중앙부 종탑 거주지! 거기서 제일 쎈 파벌이야! 이제 보내줘! 그놈들이 몰래 보고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다급한 이태하의 표정에 재호는 그를 놓아줬다.

놓아주면서도 이태하에게 신발을 건넨 재호였다.

이태하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이건 왜 주는 건데? 난 못산다니까.”

“그냥 드리는 겁니다 형님. 편안한 늪지 파밍 되셔야죠.”

“안돼! 이거 신다가 걸리면 그놈들한테 작살날지도 몰라!”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으니까.”


재호의 의미심장한 말에 이태하는 질겁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너랑 친분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 절대 그놈들이랑은 엮이지 마! 그냥 피하라고! 보통 독한 녀석들이 아니라고!”


이태하를 돌려보낸 재호는 정윤식에게 말했다.


“종탑 거주지로 가자.”

“예?! 아니 지금 거기 가면 나 좀 제발 잡아가쇼 하는 꼴이잖아요! 거긴 위병도 없는 곳이라고요!”


중립지대 중앙부 종탑 거주지.

1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동일한 시기에 푸른 탑에 입주했지만, 그들의 삶의 형태까지 모두 같진 않았다.

재호처럼 여관에 머물며 주민들과 적절한 상호작용을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주민들을 적대시하면서 같은 한국인들끼리 똘똘 뭉쳐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했다.

중앙부 종탑 거주지는 그런 한국인들이 모여서 종탑을 중심으로 만든 새로운 형태의 거주지였다.


“그러니까 조심해서 가야지. 일단 가서 사이즈만 보고 오자고.”


재호는 적당히 더러운 후드를 하나 구해서 정윤식과 뒤집어 썼다.

중립지대를 걸어가던 그들의 눈에 어느새 종탑 거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종탑을 중심으로 길게 세워둔 거대한 목책이 보인다.

주민과 위병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세운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저렇게나 거대한 목책을 세우는데도 위병들은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냥 별 신기한 종족을 다 본다는 듯이 희한한 눈으로 한국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자 이제 들어가자. 여차하면 거기 두목만 죽이고 빠져나와 버리자고.”

“예? 저희 둘이서 무슨 수로···.”


정윤식은 기겁을 했지만 재호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태껏 재호와 함께 지내며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나 미친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하긴 황금 벌레로 사람 생살을 갉아먹는 고문을 시키는 것 부터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진짜 미쳤어. 돈과 관련된 일이면 완전히 눈이 돌아버리잖아···!’


황금충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하는 정윤식을 두고 먼저 종탑 거주지로 향하는 재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거물급 쌀먹충은 탑에서도 쌀먹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종탑 거주지의 스킨헤드 +1 24.09.09 21 3 14쪽
» 인계동 사거리 연합 +1 24.09.08 29 3 13쪽
11 100골드 보상 +1 24.09.07 29 2 13쪽
10 신발 장수 24.09.06 33 2 13쪽
9 사실 날먹이 맞아 24.09.05 43 2 14쪽
8 안녕, 캐시 파머99 24.09.04 44 2 16쪽
7 나는 쌀먹충이 아니다 24.09.03 56 3 16쪽
6 사다리 걷어차기 +1 24.09.02 74 6 16쪽
5 황금충 24.09.01 76 7 16쪽
4 골드 러쉬의 선물 +1 24.08.31 84 6 15쪽
3 늪지의 기적 24.08.30 96 4 12쪽
2 쌀먹은 날먹이 아니야 24.08.29 106 6 16쪽
1 게임에서 돈 벌지 말고 제발 나가서 일을 해 +1 24.08.28 126 9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