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휴일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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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생일
작품등록일 :
2024.08.3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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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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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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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어느 상병의 일기

DUMMY

01,01

나도 드디어 상병을 달았다. 기념으로 짧게나마 일기를 써보려 한다.


당연히 내가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는 건 아니고, 여단장이 써서 검사받으면 일기 30일당 휴가 1일 준다더라.


어차피 검사는 짬을 때리고, 때리고, 때려서 최종적으로는 단기 하사들이 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최 하사님은 잘생기고 몸 좋고 능력 좋고 뛰어나신 분이시니 필시 잘 처리해 주리라. (형 사랑해···)


1,2

이걸로 벌 수 있는 휴가가 최대 3일이란다.


그럼 그렇지. 평소에 휴가 주기 싫어 발악하는 인간들이 뭘 잘못 먹었나 했다. 위에서 오더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듯하다.


하사가 말하길, 우리가 들고 가서 검사받는 방식이고, 자연스럽게 본인이 하게 됐단다. 오면 보지도 않고 도장 찍어줄 테니 대충 하라네.


14

처음 부대에 도착했을 때는 진짜 잘 왔다 싶었지. 연병장에 잘 깔린 러닝 트랙도 있었고, 건물도 삐가번쩍했고···.


안경 쓴 곰 같은 아저씨(계급이 기억 안 난다)와 가벼운 면담을 마치고, 다시 수송 버스에 올랐는데.


그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버스가 아까 그 삐가번쩍하던 건물 쪽으로 안 가고 그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거든. 난 서울에 그런 첩첩산중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싹 다 밀어버리고 건물 올린 줄 알았는데.


그렇게 버스 안을 굴러다니며 산길을 달린 게 어언 30분, 비닐과 목제, 단열재로 얼기설기 보강된 낡은 건물이 보였다.


ㅋ···ㅋㅋㅋ 진짜, 난 보고도 안 믿기던데, 창문이 비닐이더라니까?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인터넷에서 떠들어 재끼는 세상에, 창문이 비닐이더라고. 그나마 비닐하우스에 쓰는 것처럼 좀 두껍긴 하더라.


이 뭔···.


15

내 자대는 예비군 훈련대다. 말 그대로 아저씨들, 예비군 훈련시키는 거. 근데 이 아저씨들 말 진짜 안 들어준다. 진짜 농담 1도 안 섞고, 동으로 가라 하면 서로 가는 수준이라니까?


근데, 이해가 가. 전역했는데 다시 끌고 와서 다시 굴리는데 얼마나 성이 나겠어. 몸 쓰는 건 거의 안 시키지마는, 시간 내서 오는 거부터가 고역이지. 전역한 군인은 부대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는 말이 있는데, 본능적으로 몸과 정신이 둘 다 거부할 거라니까?


나라도 저럴 듯. 지금이야 내가 조교 입장이니 저러지 말아야지···해도, 전역하면 나도 무조건 저럴 거 같다고.


아무튼, 혹서기(여름에 더럽게 더운 시기), 혹한기(겨울에 더럽게 추운 시기)가 훈련을 쉬고. 우리에 유이(唯二)하게 우리 휴가를 쓸 수 있는 시기다.


나머지는 예비군이 몰려 들어와서 휴가 못 나간다. 주말에 외출이나 외박이면 모를까. 근데 그마저도 주말에 훈련 있을 때도 있어.


확실히 한국은 휴전국이 맞아. 와, 진짜 수가 너무 많아.


17

그렇게 고생하는데 우리 소속 연대에서는 우리 취급이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다. 타 중대 놈들이 우리 욕을 그렇게 한다더만?


훈련 대장부터가 우리를 아니꼽게 보는 것 같은데, 우리가 지 직속 부대구만, 우리가 노는 줄 아나?


근데 그럴 법도 한 게, 우리 훈련대에 관한 게 거의 안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한번 부대 배치를 재편하는 일이 있었는데, 소대장이랑 훈련대장이랑 짜고 어찌저찌 잘 숨겼다나? 귀찮은 일 피하려고.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훈련대장이 지금 부여단장됬다는 이야기 듣고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가 빽이 있겠지.


우스갯소리로 소대장이 늘 하는 말 중 하나가 “전쟁이 나도 니들은 여기 짱박혀 있으면 된다!” 였으니 말 다 했지, 뭐.


그래서 이런 이유 덕분에, 나는 내 소대(곧 중대로 승급한다고 중대라고 부르란다. 저 말 나오고 한참 됐는데, 안될 거야 아마··· 2개 소대긴 한데 인원수가 좀 딸려서···)에 만족한다.


솔직히 꿀인 거 같기도 해. 예비군 훈련도 입영 훈련자 아니라 출퇴근 훈련자들만 받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실컷 뺑이쳐라 얼간이 같은 타 중대 놈들아. 사회 나가서 술자리에서 풀 이야기 만들겠답시고 실컷 굴러라, 멍청한 놈들. 나는 편하게 지내다가 전역하련다.


19

오늘 소포로 시킨 베개가 왔다.


더럽게 귀찮았다.


우리 부대는 산에 있다. 우리 생활관은 거의 정상에, 그리고 소포가 있는 위병소는 산 아래, 진입로라고 할만한 지점에 있다.


이게 뭔 소리냐 하면, 소포를 받으러 위병소까지 걸어가기에는 장난 없게 멀다는 거다.


따라서 예비군 훈련 중 점심시간, 예비군 훈련장과 위병소 사이에 있는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수송 버스를 타고 가는 김에 가져오는 게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쯤 되면 숙소를 본부중대 쪽으로 옮겨줄 법도 한데 그걸 안 해준다.


하긴, 이게 우리가 꿀 빠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거의 독립소대급으로 처박혀 있다는 거.


지금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귀찮긴 해도 말이다.


아무튼, 내가 소포 가지러 간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소대장님이 자기 물건도 가져다 달랜다.


귀찮긴 했는데, 그래도 평소에 자기 꿀 빠는 김에 우리도 꿀 빨게 해주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


솔직히 전 군에서도 이런 부사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별다른 훈련은 일절 안 하고 예비군들만 상대하는 거도 이 양반 공이 크다고 들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위병소까지 가서 물건을 받아보니 곧 후회하게 됐다.


아니, 무슨 사이즈가 태극기 함, 원통 모양, 그 정도 급이야. 무게도 또 보통이 아니었다.


소대장은 이 부대를, 정확히는 소대장실을 제집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자기 와이프 눈 피해서 여기다가 캠핑용품 같은 거 주문해서 보관하고 그러던데, 이것도 그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훈련 끝나고 저녁 먹고 복귀하니 소대장이 두 눈 벌겋게 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이 시간이면 그림자도 안 비치는 양반인데, 이거 하나 때문에 기다린 모양이다.


이 양반도 군 생활 상사 달 때까지 해서 그런가···, 나사 몇 개는 빠져있어.


갖다주니 소대장은 며칠은 굶은 짐승처럼 박스를 말 그대로 찢어발겼다. 안에서 나온 것은 나대. 아니, 마체테라고 해야 하나? 칼날 길이가 손을 포함한 내 전완보다 길었다.


도검소지 자격증 같은 거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저건 낫처럼 연장이나 공구 취급이라 괜찮다고 하더라.


암만 봐도 작업용 막칼은 아닌데. 모양도 그렇고 삐가번쩍한 것도 그렇고. 멋들어지게 어디 멜 수 있는 칼집까지 있드만?


저걸 어따 쓰려고 사는지 원···.


110

북 돼지가 동해에 미사일 몇 발을 날렸단다.


아, 멍청한 돼지 새끼. 북을 치던, 장구를 치던, 나 전역하고 하라고 머저리 자식아.


그래도 우리는 예비군 훈련한다. 미사일이 날아올지도 모르는데 예비군 훈련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112

뉴스에서 북한 경제가 그렇게 나쁘다고 꽥꽥댄다. 언제는 쟤들이 풍족했냐? 망하려면 나 군대 오기 전에 망하지 그랬냐.


경제가 나쁘다는데 수령 점마는 잘도 처먹는 모양이다.


저 돼지는 언제 뒤지나. 어릴 적에는 저 몸뚱이 보고 내가 성인 되기 전에 골로 갈 줄 알았는데.


참, 명도 질기다.


114

생활관에 군대에 좀 늦게 들어온 선임이 있다. 상병이고 이제 30 찍은 형인데.


회사 다니다 와서 그런지 사회생활 능력이 만렙이다. 사람 대하는 법, 남에게 티 내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법 등이 전부.


소대장 행정 일도 자발적으로 하길래 왜 사서 고생하나 했더니, 어느샌가 비공식 행정병이 돼서 우리랑 달리 소대장실로 출근한다. 더 큰 이득을 위해 약간에 투자를 한 거지. 솔직히 이 정도로 내가 감탄해 본 일이 있을까 싶다.


소대장이 장기 시키려고 발악을 하는 거 같던데, 어림도 없지. 이 형 집 잘 산다더라고. 군대가 눈에 들어오겠나.


제목이 기억 안 나는데, 군대 이야기를 다룬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 둘 중에서 선임 쪽 상위호환이라 보면 될 것 같다. 걔보다 돈 많고 집안 좋을 듯하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이 형이 요즘 이상하다. 표정이 떨린다고 해야 하나.


115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봤다. 내가 이과라 글에 약해.


어느 최첨단 갑옷을 두른 영웅이 말했지. 어두운 구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만인에게 진심으로 친절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형도 나에게 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물론 입이 무겁다고 쓰고 잘 까먹는다고 읽는 타입인 나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못했다. 어쩌면 이 형도 그런 내 성향을 알고 나와 가까이 지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같은 생활관 후임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형도 사람을 대할 때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 예측이다. 아니,

예측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확신이 든다. 표정이··· 좀 달라 보인다. 떨린다고 해야 할까, 그늘졌다고 해야 할까. 남을 대할 때 쓰는 가면이 보인다고나 할까.


눈치 없는 내가 눈치깔 정도면 저 형한테 뭔 일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근데 저 형한테 ‘무슨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저 형 정도 되는 사람한테 ‘무슨 일’이 되려면 얼마나 큰일이어야 할까?


궁금하긴 한데, 물어볼 정도로 궁금하진 않다. 저 형 의외로 입이 가벼워서 본인이 직접 말할지도 모르고.


116

저번에 말했던 그 선임 형이 물었다. 전쟁이 나면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난 시키는 대로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각 보고 토낄 거라고 말해줬다.


아니, 근데 이 질문을 뭐 저리 진지한 얼굴로 하나 모르겠다. 저 형 진지한 표정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웃는 상이었으니까.


왜 저래 진짜. 날 놀리려고 저러나? 말 나눈 김에 결국 물어봤다. 무슨 일이 있냐고. 요즘 불안해 보인다고.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난 별일 없는데, 너야말로 요즘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흔들리는 눈과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더라.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해?


“아하, 다행입니다. 제가 요즘 좀 잡념이 많긴 합니다. 하하.”



···라고 대답은 했지만 예민하게 군 건 내가 아니라 저 형이지. 고작 저 질문에 저리 과민반응을 한다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지적까지 하면서? 와, 이거 슬슬 쫄리기 시작하네.


생각을 정리 해보자.


본인부터가 일단 잘 산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서울에 본인 소유 자가가 있다. 소대 내, 그리고 소대장 이야기로 봐도 저 형 잘사는 건 확정이고.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제법 큰 회사를 운영한다고 본인이 이야기했겠다···. 정계나 군에도 아버지랑 본인이 인맥이 있는 거 같고.


이 모든 게 과한 생각 같지만 하나로 귀결되는군.


저 형은 아버지 쪽 루트로 뭔가를 들었고, 그게 전쟁이나 큰 사건 혹은 재해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반응이 저런 거고.



···ㅋㅋㅋ설마.


지랄도 풍년이다. 나도 참 어릴 적부터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했지.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가 무너지면 어찌하나, 지진이 나면 어찌하나···.


이번에도 그런 걸 거다.


117

저 형 불안해하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진다. 다리를 떨거나, 손을 뜯거나 하는 거 말이다. 아, 저번 적었던 내 가설이 틀렸으면 좋겠다.


다른 가설로는 저 형에 금수저라는 말이 오해나 허세에서 비롯된 거짓이었고, 서민 범주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거나 하는 경우가 있겠군. 뭐, 스포츠 토토 빚을 졌다던가.


근데 저 형이 쓰는 화장품 비용만 봐도 저게 쌩 거짓은 아닐 거 같단 말이지. px에서 파는 건 안 쓰고 인터넷으로 사서 쓰던데 그 비용이···.


아, 뉴스에서 휴전선에 주둔하던 북한 병력이 안 보인다고 주절댔다.


이걸 보면 전쟁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전쟁 날 거면 휴전선 인근에 모이든가 할 테니까. 뭐, 또 열병식이라도 하는 갑지.


저거 할 때 미국이 핵 한번 쏴주면 우리가 깔끔하게 이기는 거 아닌가.


118

아, 젠장 이제 다른 소대원들도 하나둘 저 형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씨부레. 이건 진짜로 뭔가 있다. 그게 크던, 작던 뭔가 있긴 하다고.


혹시 몰라서 이틀간 저 형 옆에 딱 붙어 있었는데, 모든 행동이 평상시 그대로다.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계속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그렇다고 폰으로 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화면을 켜지도 않고 만지작대기만 했다. 뭔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듯이.


아마 이 형은 내가 관찰했던 것도 모르고 있을 거다. 평소라면 당연하게 눈치챘을 텐데.


오늘 엄마한테 전화해서 동생이랑 고향 집에 좀 미리 내려가라고 말했다. 곧 있으면 또 설날이 아닌가.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군적금에 박는 금액 제외하고 내가 따로 든 적금에서 100 긴급 출금해서 보냈다.


내가 얼마나 돈을 좋아하는지 잘 아는 엄마이니, 이쯤 되면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내일 당장 내려가겠다 했고, 명절이 끝나고도 일주일 정도 더 머물라 했으니, 이 정도면 안심이다.


친가, 외가 모두 같은 지역이고, 외가는 무엇보다 해군본부 바로 옆에 딱 붙어 있다. 진짜 물리적으로. 전쟁이 나더라고 가장 안전할 것이다.


별일 없으면 지금까지 몇 번이고 있었던 내 주접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겠지.


-어차피 적금은 대부분 부모님께 드리려고 했다. 나는 절대 아깝지 않다, 진짜로. 정말이다.


119

저 형이 급하게 휴가를 신청했다. 원래부터 호감이 있었고. 그 형 요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아는 소대장은 바로 휴가를 위로 올려줬다.


어차피 저 형은 예비군 훈련 때도 조교가 아닌 행정병 비슷하게 소대장실에서 일했으니, 허용이 뜬 모양이다. 형은 빠르게 짐을 쌌다. 내일 나간단다. 이게 된다고? 하루 만에···?


120

아침에 나는 예비군들 훈련장으로 가기 위한 수송 버스를 기다리고, 그 형은 휴가자 호명을 기다렸다.


분대원들이 세탁기 가고, 양치하러 가고 하다 보니, 타이밍이 맞아 잠깐이지만 단둘이 생활관에 있게 되었다.


그때 형이 조용히 내게 말했다. 몸조심하라고. 그게 뭔 소리냐고 물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미친, 티가 나는데 이걸 속이려고 하네, 제기랄. 뭔 개소린지···.


하필 그 타이밍에 내 맞선임이 들어와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도움 안 되는 새끼. 그 형은 결국 호명되어 위병소로 향하는 수송 버스를 탔다.


하, 젠장. 뭔 일이지, 진짜 전쟁이라도 나나?


122

명절이다.


별일 없는 거 같다.


ㅋㅋㅋ··· 이거 뻘쭘하게스리. 다행이지, 뭐.


아, 내 백만 원. 어차피 드릴 거긴 했는데. 그래도 좀 묘하네, 기분이. 절대 아깝다는 건 아니고.


명절 시작 전에, 소대원들 전원이 버스 타고 본부중대 px까지 내려가서 미친 듯이 장을 봐왔다.


명절에는 결식 잡는 소대장들도 없을 텐데. 우리가 미쳤다고 버스로 2~30분 걸리는 식당까지 가서 밥을 먹겠는가?


당연히 소대원들 전원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불침번도 정해져 있긴 한데, 의미 없는 수준이다. 불침번의 의의가 외부 침입이나 돌발행동하는 내부 인원을 잡기 위함인데, 대부분 깨어 있으니. 뭐든 할 테면 해보라지.


햐, 근데 우리 소대 개판이긴 하다. 당직간부가 어째 하나가 없을 수가 있나. 뭐, 좋으면 장땡이지.


-어디서 뭘 잘못 건드렸는지 통화가 되지 않고 Tv, 휴대폰 데이터도 끊겼다. 자주 있던 일이니, 곧 복구될 것이다.


125

오늘 기적이 일어났다.


어제가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쯤 되니 여기저기서 욕설과 한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들어온 욕보다도 많지 않을까 싶다.


오늘 우리는 평소 일과대로 복장을 갖추고 아침 식사를 위해 버스에 올랐다. 식사를 하고 바로 현장 올라가서 예비군 맞을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간부가 안 왔지만, 소대장님 지각이야 종종 있던 일이니 우린 예정대로 이동했다.


누가 확인하지도 않았으니.


그런데 식당은 굳게 닫혀있었다. 평소 통제를 해주던 교관님(군무원)들 사무실에 가도 마찬가지. 출근을 안 한 것이다.


우리는 이상함을 느끼며 다시 예비군 훈련장으로 올라와 9시까지, 장장 3시간을 대기하다가 빠르게 회의를 진행했다.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의견은 하나로 굳혀졌다.


사실 오늘까지 쉬는 건데 우리가 몰랐다는 것.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쉰다고 해도 식당은 열어야 하지 않나? 보통 빵식(시리얼+빵) 이라도 내줄 텐데.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날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군 생활 불변의 법칙 제1항. 일을 만들지 말 것.


우리는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할 방법도 없었다. 폰은 보관함에 있었으니까) 잠시 대기 한 뒤(대략 30분), 다시 조용히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시 축제가 시작되었다.


혹시 모르니 환복은 하지 않은 채로.


126

오늘까지 쉬는 날이란 말인가? 교관님들이 공지를 잊은 모양이다. 축제는 계속되었다.


127

아직도 여전히 폰과 Tv는 먹통이다. 이유가 뭘까? 하지만 다들 폰에는 질릴 만큼 질렸던지라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요즘 특히 다들 풋살(유사 축구)에 미쳐있다.


이 날씨에 춥지도 않은지. 체력도 좋다.


그거 말고도 시간 때울 일은 많았다. 독서(도서관 만든답시고 어디선가 가져온 대량의 책들이 창고 하나에 가득하다. 그러나 도서관은 결국 만들어지지 않았다), 헬스, 조깅, 수면, 각종 보드게임, 각종 카드 게임, 남는 자제로 만든 각종 전통 놀이(자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석 치기, 딱지, 투호 놀이 구슬치기)


몇몇 생활관에서는 몰래 반입한 콘솔 게임기까지(이마저도 다들 질려서 안 한다).


써놓고 보니 정말 많군. 사람은 어떻게든 놀거리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128

우리는 확실히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오늘도 소대장들과 전문하사들, 그리고 군무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여전히 Tv와 인터넷 통화가 되지 않는다.


129

뭔가 이상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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