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휴일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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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생일
작품등록일 :
2024.08.31 23:00
최근연재일 :
2024.09.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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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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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돌다리 두들기기

DUMMY

도형은 빠른 발걸음으로 건물의 좌측 현관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나갈 방법은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다만 그 이후가 문제일 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망했군.’


흉골 아래가 욱신거렸다.


도형이 이 통증을 급하게, 혹은 많은 유산소 운동을 했을 때 주로 느꼈다.


‘벌써 체력이 나가리군. 운동 좀 해둘 걸 그랬나.’


하지만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것들처럼 되기 싫다면.


총을 챙겨야 하나? 아니, 쏴 보기는커녕 영점 조절도 한 적 없다.


‘뭣보다 총알이 없다. 버린다.’


막 좌현관을 나가려던 찰나,


터억-!


누군가 뒤에서 도형의 어깨를 잡아챘다.


‘김 병장.’


“어딜, 어딜 가려고···?”


어지간히도 당황했는지 그는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홍채는 잔뜩 수축되어 있었다.


“여기서 나갈 겁니다.”


도형은 인상을 굳히고 대꾸했다.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왜 의문을 갖는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될 것을.


“가실 겁니까?”


“아니··· 네 말만 듣고 어떻게 결정을 내려!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럼 여 계십쇼. 전 갑니다.”


“확실해? 정말로?”


너의 말이 사실이냐, 네가 본 게 정말 확실하냐.


“예.”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확고한 긍정.


김 병장의 심줄을 진동시킬 만큼 강한 대답이었다.


“제가 미친 걸지도 모릅니다.”


“야, 인마···!”


“하지만 전 확실히 봤습니다. 전 가야겠습니다.”


“······!”


잠시 침묵하고 상념에 잠기려는 병장을, 도형은 닦달하는 것으로 붙들었다.


“침묵할 시간 없습니다.”


“···기다려 줄 수 있어?”


“잘 들어주십쇼.”


도형은 김 병장의 팔을 잡고는 좌현관 밖으로 끌고 나갔다.


“저도 제가 미쳤을 경우의 수를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쩍쩍 갈라져 비포장도로와 동급이 돼버린, 오래된 포장도로를 가리켰다.


“저기로 나갈 겁니다.”


“저긴···?”


어딘데?


그도 짬 좀 먹은 병장이지만 저 길은 가본 적이 없었다. 건너 건너 저기도 일단 밖으로 나가는 통로라는 것만 들었을 뿐, 이마저도 확실치 않았다.


“시간 없습니다. 지금도 늦었습니다. 저기 오르막 커브길. 저기로 오십쇼. 오신다면 설명하겠습니다.”


“···알았어.”


예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저 후임을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저곳에 오는 게 가능할 때까지, 아마 저는 저기 있을 겁니다.”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은 말.


‘저건 또 무슨 말이야···!’


예찬이 봐온 그의 후임은 가끔 추상적인 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도형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다만 너무도 직설적이고 직관적이기에 도리어 그의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때도 있다는 것을.


탁-타다닥-!


김 병장은 후임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곱씹으면서도 생활관을 향해 달렸다.



* * *



무성한 수풀과 그 너머로 보이는 건물과 시설들


도형의 시야가 담긴 모습이다.


도형은 선임에게 말한 오르막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건물과 직각을 이루는 커브길. 관리되지 않아 수풀이 무성한 갓길은 훌륭한 은신 수단이 된다.


도형은 그곳에 무릎을 꿇은 뒤, 상황을 주시했다.


이곳은 고지대에다 시야각도 훌륭해서 생활관 건물과 그 부지, 그리고 훈련장에서 이곳에 도달하는 입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좋군.’


본 것은 모두 전했다. 파악한 것과 내 생각도 전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이제 도형은 그저 자신의 일만 신경 쓰면 그만이었다.


손목을 걷어 시계를 봤다.


‘넉넉잡아서 40분이라 치자. 그것들이 여기까지 도달하는 예측 시간이.’


본부중대에서 훈련장까지 때려 밟은 시간 10분이라 치고, 훈련장에서 생활관까지 15분이라 친다.


도착해서 짐 챙기고 인원들한테 사태 전파한 게 15분이라 친다.


‘분명한 건 얼마 안 남았다. 이건 확실하다.’


휘-잉-!


쯧!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바람까지 불어오니 오한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못 느꼈는데.’


도형은 점퍼를 꺼내려다가 말았다.


이미 깔깔이에 방상외피까지 입고 있다. 이 상태에서 더 걸치면 몸이 둔해질 것이다.


적당히 쌀쌀한 게 좋다. 느슨해지는 것을 막아 줄 테니.


다행히 도형은 방상외피 주머니에 있던 핫팩 두 개를 생각 해냈다. 아침에 생활관을 나설 때 까둔 것이다.


도형은 그 핫팩을 흔들며 반대편 손으로 바지 대퇴부 건빵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 물었다.


당분은 당장 쓸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이 쉽다고 들었다. 조금이나마 열을 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몇 분이 지나고 도형의 시야에 배낭을 메고 건물을 나오는 인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잠깐.’


인원‘들’?


예상을 깨고 건물에서 나온 인원은 셋이었다.


하나가 아니라.



* * *



도형은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셋을 향해 돌아서 다가갔다.


김 병장은 생활복 위에 보급 점퍼를 입고 따로 구입한 군용 배낭을 멘 상태였다.


“그런데 전투복이랑 군화는 왜 양손에 들고 오신 겁니까?”


“네가 안 기다려 줄 거 같아서, 서두르려고. 이제 갈아입어야지.”


도형은 주섬주섬 옷을 벗는 선임을 기가 막힌 듯이 쳐다보았다.


“어우 추워!!”


이 선임은 어째 도형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듯했다. 어찌 보면 도형 본인보다 더.


왜 저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도형도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아니, 제 말이 헛소리로 들리지 않으십니까? 일단 지르긴 했지만 전 아직도 긴가민가합니다. 제가 헛것을 본 게 아닌지.”


“널 믿는 것도 있는데, 날 믿는 거기도 해. 지금까지 널 관찰한 날 믿는 거지. 넌 애가 재미없고 심심하고 냉정하고 정 없는 놈이긴 해도···”


“···.”


“···그런 만큼 현실적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었어.”


“···뭐, 그러시다면야. 그런데 그건 그렇고.”


도형은 김 상병의 뒤를 따라온 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분께서는 뭘 믿고 오신 겁니까? 헛소리로 들으신 줄 알았는데.”


최 병장과 김 상병. 도형이 본부중대에서 빠져나왔을 때 훈련장에서 발전기를 확인하던 이들이었다.


도형의 목소리가 약간 굳어 있었다.


아무리 상황을 몰랐다지만, 자신을 골로 보낼 뻔한 둘을 보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이가 악물렸다.


우드득!


아무래도 도형이 이들을 예전처럼 대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그냥, 감···?”


“혹시 몰라서. 아직도 완전히 믿기지는 않는데··· 훈련장에서 네 얼굴이···. 어우, 그걸 네가 직접 봤어야 해.”


“···그 정도였습니까?”


“어.”


세 선임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오늘 하루 종일 저 후임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게 무서웠다.


평소에도 표정 변화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을 그를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래서, 네 말대로 짐 싸서 나왔어. 이제 어쩔 생각이야?”


옷을 다 갈아입은 김 병장이 물어왔다.


“일단, 저도 제가 믿기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가 미쳐버렸다는 게 더 설득력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 대기할 생각입니다.”


금방이라도 위병소 밖으로 튀어 나갈 기세였던 도형은 어째서인지 대기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대기한다고?”


“예, 여기서 대기할 겁니다. 그것들이 생활관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뭐···?”


“제가 본 그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할 것 아닙니까?”


김 병장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도형이 한 말의 진의를


-저곳에 오는 게 가능할 때까지,


오는 게 불가능 한 일이 생길 것이고.


-저는 저기 있을 겁니다.


나는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지켜보기 위해서.


‘그게 그 뜻이었나···!’


“여기 은신하기 딱 좋습니다. 아래에서는 우리가 안 보입니다. 보다가 제가 목격한 그게 현실이라면,”


도형은 엄지로 오르막길 위를 가리켰다.


“저걸 타고 빠져나갈 겁니다.”


“저기 뭐가 있기에···?”


일행이 있는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경사로 위에는 간부용 SUV가 있었다. 도형이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것이다.


다른 두 선임도 말을 잇지 못했다.


작정하고 준비한 후임의 저 모습을 보라.


등에 짊어진 저 짐, 게다가 차까지.


이쯤 되니 그들의 불안도 점점 심화되고 있었다.


도형을 믿었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도형의 ‘말’은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도형의 모습은 너무도 확신에 차 있었고, 철저한 준비로 보아 정신에 문제가 생긴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더더욱 이들을 두렵게 했다. 설령 현재 도형이 돌아버렸다 한들,


‘본부중대에 뭔 일이 있긴 한 거 같은데?’


‘얘가 아래에서 뭘 보긴 본 거 같은데···.’


여기까지는 믿음의 정도가 올라온 것이다.


“그, 그런데 도형아, 너 이쪽 길은 어떻게 아는 거야? 가보기라도 한 거냐? 나도 한 번도 안 가본 데를?”


김 병장의 물음에는 김 상병이 대신 답했다.


“아··· 여기 저희 복무하는 동안 딱 한 번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딱 한 번.


훈련대는 혹서기 혹한기를 제외하고, 주말을 제외하고는 모든 날이 예비군 훈련을 진행했다. 대부분 이들은 저 휴가 가능일에 최대한 휴가를 나가는 것을 택하지만, 어디에나 별종들은 있는 법.


도형이 그 별종 중 하나였다. 죽었다 깨나도 안 나가고 버텨 말년 휴가를 노리는 자들. 통칭 원기옥.


휴가 가능 날은 한정되어 있고, 다수가 나가려고 치고받다 보니 작정하면 나가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는 계급마다 써야 할 휴가가 정해져 있지만, 도형이 속해있는 훈련대의 경우는 수도권, 그것도 인구가 미어터지는 서울을 담당하는 예비군 훈련대. 그 점을 참작해 예외적으로 그 제한을 풀어준 것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그들은 강제로 휴가를 나가게 됐다. 당시 본부중대 앞 위병소를 쓰기에는 간부들의 사정으로 문제가 좀 있었기에, 소대장은 뒤편으로 그들을 내보냈다.


“아, 그때 기동 중대장이 우리 걸고넘어졌을 때 말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부스럭-!


선임들이 돌아봤을 때, 도형은 배낭을 뒤지고 있었다.


‘도저히 못 참겠군.’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외피 주머니에 구겨 넣고 곰 장갑(px에서 파는 두툼한 솜 장갑의 은어) 까지 착용하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입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튼, 지켜보다가 이동하겠습니다. 어차피 얼마 안 걸릴 겁니다.”


어느새인가 도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동이 확정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는 것이다, 알아차린 것이다.


도형의 머리는 아직도 의심하고 있을지라도, 그의 본능은 아는 것이다.


그가 본 것이 현실임을.


다시 한번 바람이 불어왔다.


골짜기를 따라 빠르게 흘러온 바람, 일행은 그 바람을 정면에서 맞이해야 했다.


매서운 삭풍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떨었다.



어떤 이들은 삭풍이 머금은 냉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이는 그 바람에 실려 온 냄새 때문에.



정말, 다시는 경험하지 않기를 바랐던, 그저 망상이기를 바랐던 냄새였다.



* * *



김 상병은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브레이크를 최소한으로 하고 최대한 가속하며, 험지에서 가능한 최대 속도로.


차제에, 그리고 일행에게 계속해서 강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어쩌면 느끼지조차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럴 정신은 반쯤 나간 뒤였으니.


그들 중 간신히라도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는 것은, 이미 한번 경험했던 도형뿐이었다.


광인이 된 분대원들과 마주친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마치 영상 재생하듯 도형의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생사가 오가는 위협에 타개책을 찾기 위해, 그의 뇌는 분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차 안은 오직 덜컹거리는 소음만이 가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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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더 많이 일하고 더 고생하지 24.09.02 24 1 15쪽
4 3-일찍 일어나는 군인은 24.09.02 22 0 11쪽
3 2-좋은 일 뒤에는 대부분 나쁜 일이 24.09.02 20 0 14쪽
2 1-좋은 일은 의심할 것 24.09.02 20 0 18쪽
1 0-어느 상병의 일기 24.09.02 24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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