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휴일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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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생일
작품등록일 :
2024.08.31 23:00
최근연재일 :
2024.09.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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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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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찍 일어나는 군인은

DUMMY

다음날.


삐비빅-! 삐비빅-!


손목시계의 알람 소리를 들으며 도형은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 손목시계를 끄고서도 도형은 잠시 그대로 누워있었다.


인간의 문명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지금까지 도형은 그 점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기니 보일러도 꺼졌다. 창고를 뒤져 꺼낸 모포를 네 겹이나 싸매고 잤음에도 온몸이 한기에 절여졌다.


게다가 이 주둔지는 산골짜기에 동쪽에 지어졌고, 도형이 생활하는 관은 북향이다. 한마디로 터가 안 좋다.


방위나 일조량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어졌다는 말이다.


땅값이 비싼 수도권에 전략적 가치가 없는 부대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싸구려 땅을 골랐겠지. 썩을, 공군은 솜이불 준다드만···!’


최근 본 뉴스에서는 육군에도 차차 보급해 나갈 계획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이제 슬슬 이곳이 돌아가는 꼴을 파악한 도형은 알고 있었다.


그가 전역하기 전에 그 이불을 덮어볼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도형은 한기에 굳은 관절을 서서히 피고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군복을 차려입었다. 언제나처럼 카시오 전자시계가 손목에, 목에 걸기 불편한 군번줄은 가슴팍 주머니에 자리했다.


날이 추웠다. px에서 산 가죽장갑에 깔깔이, 방상외피까지.


그를 제외한 모든 소대원은 아직 잠 들어있는 상태였다. 도형이 일찍 일어난 이유는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 7시 기상해서 운전병 선임 한 명과 같이 예비군 훈련장까지 차를 타고 내려가 8시 반까지 대기하다가 오는 것.


만약에, 정말 만약에 갑자기 정상 일과가 시작될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갑작스러운 휴일이 시작된 첫날부터 맡은 일로, 가장 말단인 도형은 고정, 그리고 운전병 둘이서 돌아가며 일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초반에나 그랬고, 어느 날부터 (정확히는 도형이 운전에 익숙해진 다음 날부터) 도형 혼자 이 일을 하고 있었다.


‘운전 면허를 전역하고 딸 걸 그랬나···?’


도형도 면허를 따 두긴 했다. 장롱 면허라 그렇지. 고등학교 졸업 후에 부모님 등쌀에 못 이겨 면허 학원을 등록하고는 정해진 교육 시간마다 집을 나설 때야 스스로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후회되는군··· 역시 인생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부지런한 게 무조건 좋은 건 또 아니란 말이지.’


도형은 속으로 중얼대며 2층 계단을 올랐다.


-일단 아침에 와봐. 몸 상태 보고 갈지 말지 정할게.


운전병을 맡는 두 상병이 했던 말.


‘이 개놈들이, 지들은 편하게 누워있다가 깨면 그만이지. 나는 뭔 고생이야.’


누구든 이곳에 오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개개인의 개성을 죽이고 군이라는 집단에 부품이 되어간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능’ 또한 상당히 녹슬고 마모된다는 것.


그리고 그 지능에는 ‘타인을 위한 배려’를 담당하는 부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도형의 두 선임도 딱히 악의 없이 그냥 한 말이었으리라. 아예 도형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못했을 뿐.


그 사실이 도형을 더더욱 열받게 했다.


‘몸 상태는 개뿔이. 누가 들으면 어디 아픈지 알겠어.’


두 상병의 몸은 매우 튼튼한 편이고 최근 이어지는 휴식으로 아플 이유도 전혀 없었다. 그들이 말한 몸 상태를 본다는 말은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잠 오는지 안 오는지 물으러 오라는 말이잖아!’


내일부터 도형은 그냥 둘을 깨우지 않고 혼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그 인간들 말 안 하면 모를 거 같아. 알아도 오히려 일 안 한다고 좋아하겄지.’


왜 안 깨웠냐고 추궁한다면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았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추궁받을 확률도 0에 수렴하지만. 아니, 한 번이라도 갔으면 몰라! 기가 막혀서···.’


몇 번 더 욕지거리를 속으로 내뱉는 사이, 어느덧 도형은 2층 맨 끝에 있는 1 생활관에 도착했다.


끼익-


최대한 조용히, 소리를 죽이고 문고리를 돌린 도형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 *



부우웅-!


도형은 홀로 간부 차량을 운전해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음···.”


도형은 낮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얼간이들이군.”


1소대 전체가 사라졌다.


“아니, 아예 어젯밤에 들어오지를 않은 건가? 그리고 우리는 그걸 한 놈도 눈치를 못 깠고?”


아무리 군에 오면 지능이 떨어진다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물론 도형의 생각과는 달리 1소대 전원이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시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석 달 규칙적으로 행한다면 습관으로서 몸에 새길 수 있다고 한다.


그 일이 개인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세상일이 항상 그렇게 좋게 좋게 돌아가지만은 않는 법.


최소 반년 이상, 일 년 가까이 생각할 일 없이 명령을 수행하는 병으로 살아온 폐해였다.


물론 신경 쓰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이유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도형은 또 다른 운전병인 권 상병에게로 냅다 뛰어갔다. 8 생활관 문을 열자 거슬리는 냄새가 도형의 코를 뚫고 들어왔다.


술 냄새였다.


‘전역 전날 깐다더니···!’


놀자판에 사리 분별 못하고 결국 깐 모양이었다.


도형은 권 상병이 일어나지 못할 것을 예측했고, 그것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부르면 반응은 했으나, 가볍게 웅얼거릴 뿐. 당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를 조금 더 깨우기 위해 쭈그려 앉은 순간.


-딸그랑-! 데구르르르-


도형의 무릎이 침대 아래 줄지어 세워져 있던 빈 술병들을 건드렸고, 그렇게 굴러 나온 술병의 개수를 본 도형은 깔끔하게 깨우기를 포기했다.


얼핏 봐도 족히 일고여덟은 되는 양.


‘미친것들···!’


도대체 반입은 어떻게 한 거야?


차를 모는 도형의 솜씨는 매우 부드럽고 능숙했다.


사회에서 장롱면허였던 그는 군대에 와서, 특히 근 1주 사이에 운전 실력이 놀랍도록 늘었다. 매일 아침 선임이 때리는 짬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이었다.


그것도 엇나가면 차째로 구르는 비포장 험지에서 연습했으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늘었지만, 전혀 감사하고 싶지 않군.’


아직 겨울인지라 이제 막 하늘이 밝아지는 푸르스름한 새벽이었으나, 시야가 약간이라도 확보되니 전에 선임들이랑 갈 때보다는 운전이 수월했다.



* * *



예비군 훈련장에 이르렀다.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끈 도형은 운전대에 머리를 기댔다.


‘있어 봐··· 생각 좀 해보자.’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1소대가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복귀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도형은 굳은 머리를 최대한 빠르게 돌려가며 몇 가지 가설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본부중대 숙소에서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왜 멀쩡한 생활관을 두고 왜 거기서 잔단 말인가?


‘귀찮아서? 야간 운전이 위험해서?’


하긴, 상당량의 식량을 실었을 테니 위험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훈련장에서 생활관으로 오는 산길에 눈이 들러붙어 있었으니. 그건 완벽히 치우지도 못한다.


하지만 난방도 되지 않을 텐데, 굳이?


아니면 술을 발견하고 퍼마시고는 단체로 뻗었나? 간부 식당이니 비축해 둔 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정신이 박힌 인물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걸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위계질서는 진작에 밥 말아 먹은 소대라 반대 의견을 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근데 제정신 박힌 인간이 없을 수도 있잖아···.’


아침에 8생 인원들의 꼴을 본 도형은 차마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상인이 군대에 들어와서 맛이 가는 건지, 아니면 이미 맛이 간 인간이 들어와서 더 미쳐버리는 건지···.’


다음으로 최악의 경우


‘···단체 탈영···?’


도형은 운전대에 기댄 머리를 들었다가 통통 부딪쳤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선임들은 복무일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굳이 범법을 저지르며 탈영할 이유가 없었다.


그 뒤로도 몇십 개의 가설을 더 세워본 도형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젖혔다.


-피식!


“하, 나도 미쳐가는군.”


도형은 고개를 슬쩍 들고는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전자시계는 8시 3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도형은 다시 한번 사색에 잠겼다.


맡은 일은 8시까지로 끝났다.


도형 혼자고, 차량도 있다.


본부중대를 지나야 나오는 간부 식당. 거리가 만만찮고 뭣보다 귀찮다.


가보느냐.


마느냐.


‘음······.’



* * *



“하··· 일은 절대 사서 하는 게 아니라 했거늘···.”


도형은 훈련장을 떠나 지나 본부중대가 보이는 언덕을 넘고 있었다.


저렇게 중얼거렸고, 나태와 평화, 잠을 사랑하는 도형이었지만 이쯤 되니 그도 너무 심심했다.


들고 온 책도 다 읽은 지 오래였고, 관심 없는 분야 책은 읽기 싫다. 21세기에 TV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이 지내려니 사람의 뇌가 축소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옛날에 부조리가 그리 많았던 건가.’


지금이야 인식이 바뀌어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땠을지 알만했다. 자극이 필요했을 것이다.


본부중대가 가까워지자, 도형은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뗐다. 가속하지 않음으로써 최대한 소음을 줄이려는 것이다.


도형은 조용히 차를 몰아 언덕 아래쪽에 위치한 PX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PX를 운영하는 외부 업체 아줌마가 주차하는 곳. 이곳은 각도상 본부중대 창문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도형이 생각한 가설 중에는 이러한 것도 있었다.


‘간부들이 모종의 이유로 나갔다가 복귀했고, 1소대가 식당을 털다가 잡혀서 본부중대에 잡혀 있다면?’


가능성이 작은 편이긴 했다. 간부가 눈치를 챘다면 그날 밤 바로 쳐들어왔을 테니까.


1소대 인원들이 입을 다물었을 리도 없다.


조금만 확인한다면 금방 들킬 일. 굳이 거짓말을 해서 처벌을 무겁게 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여기 인원들 사이에는 그 정도 의리가 없다.


그래도 세상에는 만약의 경우가 있는 법.


달각-


차에서 내려 문 닫는 것마저도 손잡이를 당긴 상태로 문을 닫은 뒤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되돌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도형은 조용히 본부중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그의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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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찍 일어나는 군인은 24.09.02 23 0 11쪽
3 2-좋은 일 뒤에는 대부분 나쁜 일이 24.09.02 20 0 14쪽
2 1-좋은 일은 의심할 것 24.09.02 20 0 18쪽
1 0-어느 상병의 일기 24.09.02 26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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