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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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su
작품등록일 :
2024.09.01 15:13
최근연재일 :
2024.09.16 15:5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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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2

작성
24.09.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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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3. 소년, 소녀를 만나다.

DUMMY

규헌은 총무실을 나와 복도 끝에 있는 흡연실로 향했다.

맨발이 닿을 때마다 복도 바닥이 삐걱거렸다.


“내가 사는 동네보다 낯선 동네가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유는 그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둘이 갔던 작은 포장마차까지 사랑하게 되죠. 사랑하는 사람이 살던 그 도오오옹-네.

그래서 헤어지면 그 동네 마을 버스-으으으으으...."


정지영의 목소리에 파열음과 함께 버퍼링이 걸렸다.

느끼함을 넘어 기괴함이 느껴졌다.

흡연실에 다다랐다.

규헌은 불길한 기분을 떨쳐내려 흡연실의 여닫이 문을 세게 열었다.


흡연실 안은 마치 거대한 재떨이 같았다.

화생방 훈련 같은 매캐한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흡연실은 규헌에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규헌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가 곧 기분이 좋아졌다.

연기가 흡연실을 하얗게 채웠다.


연기속으로 창문 밖의 네온싸인이 보였다.

규헌은 모기장이 쳐진 창문 밖을 바라봤다.

거리의 상점들은 불을 밝히고 있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남겨진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건가?’


규헌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절멸한 것도 아니고

좀비로 변해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이 사라졌다.


규헌의 방과 총무실이 있는 중앙 복도, 복도 끝은 흡연실.

흡연실에서 규헌이 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기준으로 왼쪽 통로, 오른쪽 통로가 있다.

규헌은 고시원을 더 돌아보고 밖에 나가기로 했다.

규헌은 마지막 담배 입김을 뿜어내고 그걸 휴지통 재떨이에 눌러 껐다.

그리고 말레와 라이터를 휴지통 위에 올려놨다.


규헌은 흡연실을 나와 복도 왼쪽 통로로 들어갔다.

왼쪽 통로 끝에 문 열린 조리실이 보였다. 환풍기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이 있는 건가?’


규헌은 벽에 붙어서 조리실 쪽으로 다가갔다.

조리실의 전등 빛이 가까워지면서 환풍기 소리도 커졌다.

규헌은 몸을 돌려 조리실 안을 살펴봤다.


아무도 없었다.

조리실에는 요리하다가 태운 흔적과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규헌은 프라이팬 위쪽에 돌아가고 있는 환풍기를 껐다.

적막이 흘렀다.

규헌은 문밖을 돌아봤다.

복도가 있고 양옆으로 전등 켜진 방들이 있었고

전등 꺼진 방이 하나 있었다. 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규헌 방이 있는 중앙 복도와 사정이 비슷했다.

문이 찰칵 열리는 소리가 들린 거 같기도 하다.

예민해져서 환청을 들었으리라.

갑자기 허기가 졌다.

규헌은 혹시 라면이라도 있을까 해서 선반을 뒤졌다.


이때 갑자기 복도 쪽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규헌은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작은 몸체가 복도의 어두운 방 안으로 사라졌다.


‘분명히 사람이다.’


몸의 실루엣으로 봤을 때는 여자였다.

그녀는 방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규헌은 설레는 마음과 경계하는 마음이 뒤섞였다.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에서 저게 정말 사람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규헌은 그녀가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방쪽에서 들렸다.


"용기를 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예요. 좋아한다고,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상대방의 답장이

없을 때 참 속이타죠오오오오...내가 맘에 안 드는 걸까아아아 혼자아아아아...."


“저기요, 저 여자분요.”


규헌은 조심스럽게 방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먹을 걸 숨기고 있는 자그마한 다람쥐 같았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규헌은 경계심이 풀렸다.

어느샌가 규헌은 문턱을 넘어 여자 방안까지 발을 걸치고 있었다.


"저기 저도 같은 고시원 사람이거든요. 참 저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뭐 죄다 보이지도 않고."


일단 말을 건네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무안해진 규헌은 방 주위를 살펴보는 척 했다.

규헌이 ‘이쪽 방은 욕실이 없어서 내 방보다 넓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쯤,

갑자기 여자가 규헌에게 칼을 들이밀고 달려들었다.

그녀는 도토리가 아니라 칼을 숨기고 있었다.


규헌이 뒷걸음질치며 여자의 방을 지나 반대편 방으로 고꾸라졌다.

여자는 간신히 칼을 붙들고 문턱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녀는 칼을 겨눈 채 규헌에게 다가갔다.


규현은 넘어진 상태로 굼벵이처럼 방바닥을 밀어댔다.


“살려주세요.”


규헌의 얼굴은 극도의 공포감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여자의 단발머리와 뾰족한 얼굴이 불빛 속에 서서히 드러났다.

깡마른 체구는 칼을 들고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동그란 두 눈만큼은 총명하게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규헌은 저항 의지를 상실하고 눈을 감았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엄마도 생각났다.

엄마의 얼굴과 변태 아줌마의 얼굴이 헷갈리고 있을 때쯤...

칼을 놓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여자 우는건가?'


규헌이 살짝 눈을 떴다.

여자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몸을 들썩였다.

바닥에는 주인 잃은 칼이 패잔병처럼 쓰러져 있었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규헌은 앉은 상태로 몸을 최대한 그녀에게서 떨어뜨렸다.

여자는 꺼이~꺼이~ 한풀이라도 하는 거 같았다.

그러다가 여자가 가만히 규헌을 바라봤다.

젖은 눈가에 일그러진 표정이었지만 묘하게 새침했다.


여자는 규헌을 한참 바라보다가 뭔가에 홀린 듯 방의 전등을 올려보며 말했다.


“여긴 참 환하네.”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그대로 실신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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