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헌터의 혼령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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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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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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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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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심사 (2)

DUMMY



영상에서는 한 A급 헌터가 괴수를 사냥하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정확히는 불꽃 능력을 쓰는 A급 헌터가 괴수를 사냥하는 장면이었는데, 불꽃 능력이라고 하면 압도적인 화력으로 괴수를 태운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싸울 것 같지만, 영상 속 헌터는 그렇지 않았다.


불꽃 능력으로 검을 만들었다. 불꽃 검.


그것을 마치 중세 시대의 기사처럼 쥐고는, 괴수를 향해 휘둘렀다. 괴수의 몸이 반으로 잘렸다.

절단면은 깔끔하지 않고 외려 투박했으나, 절단면에 남은 화상 자국만은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영상을 본 김준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불꽃으로 왜 굳이 검을 만들어 쓰냐?]

“김준호 씨를 따라 하는 겁니다. 이런 헌터가 많아요.”


모든 헌터가 그런 건 아니지만, 김준호를 따라 한답시고 굳이 검 형태의 공격만을 고집하는 헌터가 많다.


그렇게 해서 ‘나는 김준호의 영웅적인 계보를 잇고 있어요’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김준호를 따라 하면서 인기를 얻은 헌터도 꽤 있다.

그러고 보니, 아예 계시를 통해 김준호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헌터도 있었지······.


“심사관들도 저를 그저 그런 헌터 중 한 명으로 여기는 겁니다.”


싱거운 반응을 보인 것도 아마 이런 까닭일 것이다.


김준호를 따라 하는 헌터가 어디 한둘이었나? 그중 일부는 나름 A급 헌터로 이름을 날렸으나, 대부분은 애초에 A급 헌터가 되지 못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헌터 활동을 그만두고는 했다.


심사관의 눈에는 나 역시 김준호를 따라 하는 어중이떠중이 중 하나로만 보였으리라.


[아니, 그러면. 어떻게 방법이, 방법이 없나?]

“일단 좀 진정하시고······.”

[어떻게 진정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원조인데, 어떻게 심사관이라는 인간들이 원조를 못 알아보고······!]


몹시도 억울하다는 듯 울분을 토하는 김준호의 말을 끊기 위해서라도, 나는 급하게 말했다.


“아직 2차 심사가 남았잖아요.”


김준호는 모르는 듯하지만, 나는 2차 심사가 어떤 것인지 안다. 2차 심사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당연히 알고 있고.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은 심사관들이 저리 밋밋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2차 심사를 치르고 나면 그러지 못하리라.



* * *



─여보세요? 한성빈 헌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헌터 협회 서울 지부의 유민수 팀장이에요. 접때 심사장에서 한 번 봤었죠? 맨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네, 기억합니다.”


사실은 기억이 잘 안 났지만, 그래도 이게 예의일 성싶었다.

아니다,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게 나았을까? 각성자 헌터가 돼서 예의를 차리겠답시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렇지만 유민수 팀장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예의 없게 굴 필요는 없겠지.


─기억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일단 한성빈 헌터는 각성자 헌터로 바로 등록되었고요.


이어질 말을 듣지 않아도,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전화를 드린 건,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각성자 헌터의 혜택과 2차 심사 일정 관련해서 안내를 드리려고······.


혜택이 먼저였다.


일단, A급이 아니더라도 각성자 헌터라면 차를 준단다.

나라에서 각성자 헌터의 쾌적한 이동을 위해 지원해 주는 거라는데, 게이트 출동이나 구조 활동 시에는 구급차처럼 ‘긴급자동차’로 분류된다고 한다. 양보를 안 하면 처벌까지 할 수 있다고.


그러나 긴급 상황이 아니어도 타고 다닐 수는 있는 데다가, 다른 운전자가 보기에는 긴급 상황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운 터라 어지간하면 양보를 해준다는 모양이다.


출근하던 센터와 집이 먼 탓에 어쩔 수 없이 차를 샀고, 그마저도 티코여서 도로 위에서는 그야말로 찐따 취급을 면치 못했던 나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티코를 타고 다닐 때는 창문 열고 ‘운전 개 좆같이 하네. 주방에서 설거지나 해, 이 씹!’까지 외쳤다가, 내 몸을 보고 창문을 황급히 닫는 정신 나간 놈까지 보았다.


내가 덩치가 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헬스 트레이너이지 않은가. 그놈이 보기에 내 근육이 꽤 위협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사람 봐 가면서 대하는 개새끼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리고 각성자 헌터 전용 주택도 있으니까요. 신청하시면 곧바로 거주할 수 있으시고, 계약금과 별개로 게이트 출동 시에는 따로 출동보조금도 나옵니다.


그밖에 마음에 드는 혜택이 많았는데, 비각성자일 적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각성자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각성자 헌터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게 아니라, 법이 알아서 A급 헌터 밑으로 숙이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정말이었다.


협회는 각성자의 뒤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봐주고 있었다.

아니, 사실 과하지는 않지. 이 정도는 받는 것이 옳다. 옳은 일이다.


─참, 2차 심사는 언제쯤이 좋으십니까? 빠르게는 다음 주에 바로 하셔도 되고요. 좀 여유롭게 하고 싶으시면 한두 달쯤 뒤에 보셔도 괜찮습니다.

“다음 주에 바로, 가능할까요?”

─예,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면 다음 주, 정확히는 4월 21일에 2차 심사받으러 오시면 되겠습니다. 주소는 지금 문자로 찍어 보내드릴 테니까요, 확인하시고······.



* * *



[차도 줘, 집도 줘, 출동보조금도 나와······? 아직 A급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전화가 끊긴 뒤, 김준호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각성자 헌터를 향한 혜택이 과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출동보조금이며 헌터 전용 차량까지는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어서 알았지만, 헌터 전용 주택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유민수 팀장이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의아했을 것이다.


‘A급 헌터로 보통 2년 정도 계시면, S급 헌터로 승격도 가능한데요. 아무래도 대한민국에 S급 헌터가 적어지는 추세다 보니······. 아!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십사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부담 갖지는 말아주십쇼.’


그러니까, 헌터 협회에서는 등반자, 달리 말해서 S급 헌터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를 사냥하고, 때로는 우두머리 개체를 잡아서 게이트를 닫는 건 A급 헌터의 일이다.


S급 헌터도 게이트 발생으로 출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주 업무는 아니다. S급 헌터의 본업이자 의무는 탑을 등반하는 것.


탑을 등반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게이트 발생 빈도는 잦아지고, 이게 일정 기간을 넘어서면 온 땅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이때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괴수는 평소보다 더 많고, 강하다.


이걸 ‘게이트 폭발’이라고 하는데, 이걸로 망한 나라도 꽤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 멍청한 새끼들.


즉 몇 번이고 게이트를 닫아도, 주기적으로 탑을 등반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게이트는 늘기만 한다는 소리다.

탑을 등반하지 않는 기간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예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요즘 대한민국이 등반자가 필요해서, 헌터 혜택을 대폭 늘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지금 대한민국 탑 진행도가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내가 배운 대로면 30층 이상부터는 8년에 한 번꼴로 등반해야 게이트 폭발을 막을 수 있는데, 대한민국은 6년 전에 탑 37층을 가까스로 등반했다.


[1층 올랐다고? 고작 1층······?]


이 소식을 듣고 김준호는 격분했다. 그마저도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S급 헌터 지원을 받아서 겨우겨우 등반한 것이며, 대한민국은 S급 헌터를 빌린 대가로 일본과 미국에 거액을 내야 했다는 사실까지 말했을 때는 아예 말이 없어졌다.


[37층 등반 당시에 류하린과 윤태성이 나와 같이 죽었다고 했지.]

“네.”

[그러면 오세환하고 용선자 아주머니 남는데. 두 사람은 뭐 했지?]

“용선자 헌터는 은퇴하시고 칩거하는 걸로 알고 있고······. 오세환 헌터도 은퇴하고 국회의원 출마했죠.”

[용선자 아주머니야 나이가 나이니까 그렇다 치고, 오세환이 은퇴를 왜?]

“부상 때문에······. 진짜 몰라요?”

[부상? 오세환이?]


세상사를 모르는 건 혼령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오세환이 부상을 얻었다는 걸 모르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37층에 입성하자마자 괴수의 기습으로 부상을 얻었고, 그 탓에 이렇다 할 전투도 치르지 못한 채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다고, 오세환이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즉 오세환이 부상을 얻은 시점은 아직 김준호가 살아 있을 때라는 말인데, 그러면 김준호가 오세환의 부상 여부를 모를 수가 있나?


“기억은 멀쩡한 거죠?”

[솔직히 드문드문해. 죽고 나서 무슨 깜깜한 공간에 갇혀 있었거든. 14년인지, 몇 년인지도 모를 까마득히 긴 시간을······. 미칠 노릇이었지. 그동안 기억이 좀 없어진 것 같아.]


꽤 무거운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당사자인 김준호는 담담해 보였다.


[그래도 37층 등반 당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오세환은 딱히 다친 적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해.]

“그러면 오세환 헌터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데······. 그럴 필요가 있나?”

[나도 그걸 모르겠네.]


그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더듬는 듯했는데, 곧 눈을 부릅떴다.


[류하린이랑 윤태성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안 되나? 네 각성 능력이 따지고 보면 죽은 사람 보는 거잖아. 나도 보이는데 그 두 사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저라고 죽은 사람이 다 보이는 건 아니니까, 김준호 씨가 특별한 경우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가. 류하린이랑 윤태성도 나 못지않게 특별한데.]


김준호가 혼령으로 남아 있으니, 동료인 류하린과 윤태성도 그럴 가능성은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긴 하죠. 각성 강화하면 뭐가 좀 보일지도······.”

[그래. 일단은 레벨업을 해봐야겠네.]


어차피 탑을 오르자면 ‘레벨업’, 지금은 ‘각성 강화’라고 불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탑이 아니라, 그냥 A급 헌터로 활동하기 위해서도 각성 강화는 필수적이다.


강화를 통해 김준호와 함께 37층에서 죽었다던 류하린과 윤태성도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으나, 글쎄.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될 확률은 낮을 듯했다.

보였을 거라면 진작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만일 각성 능력이 강화된 다음에, 김준호가 바라는 것처럼 류하린과 윤태성마저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김준호와 계약을 맺어서 그의 각성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듯, 류하린과 윤태성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과거 전설적인 S급 헌터 세 명의 각성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인데, 이게 가능하다면 나는 말 그대로 국가권력을 손에 얻게 되지 않겠는가?


“국가권력급 헌터 한성빈이라······.”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김준호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남몰래 중얼거려 보니, 그 어감이 꽤 나쁘지 않다.


가능하다면 류하린과 윤태성과도 만나서 계약을 맺고 싶었다.

이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탑 37층 등반과 김준호의 죽음, 그리고 오세환과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함이지, 절대로 국가권력급 헌터 따위가 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리 행복한 상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벨 소리가 울려서 휴대폰을 꺼냈다가 나는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


“아······.”


센터 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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