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헌터의 혼령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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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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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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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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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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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계약 (2)

DUMMY



─혹시 바로 계약하셨어요?

“아니, 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오, 잘하셨어요. 아, 혹시 형님도 헌챈에서 팁 글 보셨어요?


헌챈, 헌트 채널을 줄인 말이다.

들어본 적이 있다. 사실 들어본 적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는 애용하기까지 했다.


헌챈은 A급 헌터는 물론 B급, 비각성자 헌터가 두루 가입한 커뮤니티다.

비각성자, 달리 말해 잡부 헌터였던 나도 가입해서 자잘한 정보를 얻고는 했다.


그래서 더욱 의아했다. 나는 헌챈에서 그런 정보 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헌챈에 들어가 보았으나, 이소민이 말한 A급 헌터 관련 팁 글은 보이지 않았다. 각성자/비각성자 갈라치기, 잡부 헌터의 하소연 글만 보일 뿐이었다.


“헌챈에 팁글이 있다고? 난 안 보이는데.”

─네? 아, 혹시 아직 A급 헌터 인증 안 하셨어요?

“인증하면 뭐가 달라?”

─인증하면 보이는 비밀 글이 있어요.


가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는 이따금 A급 헌터 인증 회원이 올리던 글을 떠올렸다.


[좆밥 비각성자는 볼 수 없는 게시글입니다.]


그저 각성자/비각성자 갈라치기를 위해서 올린, 별 의미 없는 게시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비각성자는 볼 수 없는 게시글이 진짜로 존재했던 셈이었다.


나는 협회에서 받았던 A급 헌터 면허를 찍어서 운영자에게 인증 확인을 요청했다. 낮이어서 그런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인증이 완료되었으며, 직후 내 앞에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하소연)스쿼드 임의로 못 바꾸나? 폐급 새끼 하나 껴서 분위기 씹창내는 중인데

(팁)마음에 안 드는 평민 새끼들 티 안 나게 죽이는 법

(팁)계약할 때 바로 받지 마라


인증을 마치자 우수수 떠오르는 비밀 글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중에는 이소민이 본 것으로 추정되는 팁 글도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계약할 때 바로 받지 말고 살짝 튕기는 척하라는 것.

계약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나라로 뜰 것처럼 굴면, 협회가 바짝 기면서 계약금을 올리거나 계약서를 헌터에게 유리하게끔 수정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보셨어요?

“어······.”

─저는 협회가 헌터 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어처구니없는 일로 손해배상 청구하기도 하고······.


스쿼드 팀원이 사망하면 그 보험금이며 위로금을 A급 헌터가 부담하게 한다거나, 의무 출동 횟수 2회를 다 채웠는데도 협회 마음에 안 들면 태업이니, 직무 유기니 하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는 위약금을 물린다거나.


그런 저열한 방식으로 협회는 어떻게든 계약금을 회수하려고 한다고, 헌챈에서 그런 억울한 사연을 수도 없이 보았다고 이소민은 말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초장에 계약금 많이 당겨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형님도 아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확실히 그런 것 같네. 고마워.”

─뭘요, 형님! 계약 잘하십쇼!


전화를 끊은 이후에도 나는 헌챈에 있는 글, 특히 A급 헌터만 열람할 수 있는 비밀 글을 보았다.


그중 눈에 띈 건 신인 계약금으로 3년 300억을 받았다는 글. 댓글에 비틱질하지 말라고 달려 있었다.


대충 훑어본 결과 내게 제시된 360억은 3년 차 이상의 베테랑 A급 헌터나 받을 수 있는 수준인 듯했다. 신인이면 200억만 받아도 A++급으로 인정해 주는 모양이었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협회에서는 나를 사실상 S급으로 본 셈이었다.


이걸 헌챈에 자랑하면 무슨 댓글이 달리려나······?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가운데, 나는 흘깃 김준호를 보았다.

나와 함께 헌챈 글을 살피던 김준호의 반투명한 얼굴은 어째서인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값이 각성자끼리는 일종의 지위고 명예네······. 근데 360억이라? 360억······?]


중얼거리는 내용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김준호는 내가 계약금을 많이 받은 것이 못마땅한 건가?


전설적인 S급 헌터이자 구국의 영웅 취급을 받는 그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으나, 가능성이 없지도 않았다.

심사장에서 김준호는 인정 욕구에 미쳐 있는 듯한 모습을 내게 스스럼없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괜히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김준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야, 더 받자.]

“네? 더 받자고요?”

[1년 뒤, 탑 등반을 대가로 450억.]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게 될지······.”

[무조건 돼. 대한민국은 지금 등반자가 없어서 급한 상황이라고 했지? 그걸 협상 카드로 쓰자고. 아예 처음에 그냥 500억을 부르자. 최대 500억, 최소 450억인 거지.]


확실히 대한민국은 등반자가 없어서 초조한 와중이긴 했다.

A급 헌터들은 그저 A급 헌터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까닭이다. 굳이 S급 헌터가 돼서 탑을 오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들 그냥 A급 헌터로만 머무는 것이다.


[헌챈인지 뭔지, 여기 보니까 계약금으로 급을 나누잖아. 원피스 현상금 마냥······. 100억 대는 아예 100억 따리라고 얕잡아 보는 새끼들도 있고. 그냥 무조건 높게 받는 게 맞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360억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많이 받아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더구나 계약금이 단순히 돈의 개념이 아니라, A급 헌터 사이의 경쟁 요소라면 더더욱 많이 받는 게 나았다. 어디 가서 무시는 안 당할 정도는 받아야지 않겠는가.


그리 마음이 굳은 순간, 나는 바로 핸드폰을 들어서 유민수 팀장에게 전화했다. 뚜르르······ 신호음이 한 번 들렸을 뿐인데 유민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한성빈 헌터님! 혹시 계약서에 수정 요청하실 게 있으신지.

“계약서랑 계약금, 둘 다 바꾸고 싶은데요.”

─계약금이요? 계약금은 360억 이상으로는 사실······. 저희도 맥시멈이라고 생각하고 부른 것이라······.


유민수는 기다렸다는 듯 난처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기다렸다는 듯 다음 말을 꺼냈다.


“1년 뒤 대한민국의 S급 헌터로 탑 등반을 약속드릴 테니, 계약금으로 500억 어떱니까?”

[굿.]


김준호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


유민수는 말이 없어졌다.



* * *



대한민국은 전례가 없는 S급 헌터 난에 시달리고 있다.


14년 전 김준호, 류하린, 윤태성, 세 명의 전설적인 S급 헌터의 사망이 가져온 파장이었다.


그들은 국민적 영웅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강자 반열에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 사실에 마땅히 자부심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은 더없이 충격적이었다.



(하소연)김준호 류하린 윤태성 데리고도 등반이 안 되는데 내가 S급 헌터해서 뭐하냐? 등반은커녕 개죽음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A급 헌터의 속내는 대부분 이러했다.

김준호, 류하린, 윤태성이라는 거물을 데리고도 37층 등반을 실패한 마당에, 내가 S급 헌터가 된들 뭐가 달라지냐는 것이다.


S급 헌터가 되어 등반을 시작하면 국가적 지원과 명예를 얻을 수 있긴 하다. 한 층 등반에 성공하면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죽음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은 S급 헌터가 되기보다, A급 헌터에 머물러서 안전하게 돈과 권력을 얻기를 바랐다. 사회학에서 이르길 ‘각성 권력’이라고 부르는, 각성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성질의 그 권력 말이다.


그렇다고 A급 헌터의 계약금이며 대우를 낮추자니, 다른 나라에서 각성자를 채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S급 헌터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각성자는 귀하다. 몹시, 너무나도 귀하다.


─1년 뒤 대한민국의 S급 헌터로 탑 등반을 약속드릴 테니, 계약금으로 500억 어떱니까?


유민수 팀장의 가슴이 뛰었다.


일전에 협회의 한 사원이 A급 헌터를 설득해서 S급 헌터가 되게 한 일이 있었다.

그 사원은 단숨에 대리로 승진했고, 2주쯤 지났을 때는 팀장을 달았다.

S급 헌터를 만든다는 건 이런 뜻이었다.


유민수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출세의 기회.

그리고 그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제가 지금 한성빈 헌터님 사는 근처로 가도 괜찮을까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서요.”

─그럴까요?


그리하여 한성빈의 집 근처 카페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유민수 팀장은 본론부터 꺼냈다.


“1년 뒤 탑 등반을 약조해 주신다면야, 550억까지 가능합니다.”


확신을 담아 말했다.


S급 헌터가 되겠다는 훌륭한 각성자에게 계약금을 많이 퍼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계약을 견고히 하기 위함이 컸다.


1년 뒤 한성빈이 돌연 변심해서, S급 헌터가 되기 싫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550억을 받고서는 그리 말할 수 없으리라. 토해내야 할 계약금과 위약금이 두려워서라고 한성빈은 반드시 S급 헌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550억을 정말 줄 수 있기는 한가?


줄 수 있다. 한성빈이 1년 뒤 S급 헌터가 되겠노라고 약조하였으므로 국가의 지원을 크게 받을 수 있으리라. 550억쯤은 충분히 내어줄 수 있다.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받아들일까?


표정을 살폈다. 과할 정도로 담담하고 침착하다. 550억을 들은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돈에 관심이 없는 타입인가? 이력서를 보건대 부유한 가정은 아닌 듯했는데.


하기야, S급 헌터가 되겠다고 말하는 남자다. 돈보다는 명예, 정의에 관심을 가지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쪽으로 공략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인정 욕구나 명예욕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설득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 후회하는 가운데 한성빈이 말했다.

유민수 팀장의 입꼬리가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함박웃음을 짓고 싶었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아직은 구두 계약에 불과할 뿐, 계약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으니까.


“여기, 계약서입니다. 찬찬히 읽어보시고······.”


한성빈은 정말 찬찬히, 계약서의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보듯 면밀하게 보았다. 한 페이지를 몇 분이나 뚫어져라 보기도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보기와 다르게 신중한 성격인 모양이다.

오히려 좋다. S급 헌터로서는 저런 성격이 낫다.


그리고 마침내 서명했다. ‘한성빈’, 그 이름이 서명란에 분명히 적혔다.

유민수 팀장은 계약서를 다시금 꼼꼼히 살폈다. 누락이 된 부분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확인했을 때, 그는 비로소 웃으며 한성빈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성빈 헌터님.”


유민수는 과할 정도로 감사를 표했다.


S급 헌터가 되어 나라를 지키기로 한 것, 그 과감한 용기와 애국심에 감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유민수 팀장은 한성빈 덕분에 앞길이 창창해졌다. 그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 * *




<550억 ‘과하다’ vs ‘이 정도는 해야’ 갑론을박>

<‘김준호의 재림’? 괴물 신인의 몸값 550억······ ‘역대 최고가’>

<요원했던 38층 등반, 마침내 이뤄지나?>



이번 일을 다루는 기사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인이 3년 계약금으로 550억을 챙기다니, 십여 년간 지속된 초인플레이션을 감안하고도 이는 이례적인 금액이 아닌가?


협회는 계약금을 발표하면서, S급 헌터가 되기로 한 A급 헌터의 이름이 한성빈이라는 것 또한 밝혔으나 사람들은 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허깨비김 : 나랏돈 550억을 받아먹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활약을 보여야 하겠지요. 젊은 청년이 분에 겨운 힘을 얻었으나, 애국심을 발휘하며 국민을 지키는 데에 그 힘을 쓰면 참 좋겠습니다.

└씨협발회롬 : 틀니는 물론이고 팔다리까지 싹 자르고 싶은 말투네ㅋㅋㅋㅋ

김진명 : 550억 벌려면 도대체 뭘 해야 하냐?

└꼬님헌 : 헌터. 아니면 자식 낳아서 헌터로 키우든가. 월급쟁이로는 불가능



비각성자는 물론, 비각성자까지도 그 이례적인 액수에 꽂힌 와중이었다.

550억이라는 액수가 가져오는 충격이 비교적 덜해질 즈음, 헌챈에는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하소연)한성빈 헌터는 어느 스쿼드에서 데려가려나? 저 정도면 씹A급인 거 같은데



A급 헌터 2명, B급 헌터 하나, 베테랑 비각성자 헌터 하나로 이뤄지는 게이트 출동 팀.

공식적 명칭으로는 ‘스쿼드’인데, 과연 어떤 스쿼드에서 한성빈을 갖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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