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학과 진화론자가 졸업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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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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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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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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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용호야. 미안하지만 이 논문은 갈아엎어야 할 거 같다."

"네?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미안하지만 이 주제는 아무래도 졸업 논문 주제로 부적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졸업 논문 마감 3주 전.

1년동안 공들여 쓴 졸업 논문이 반려됐다.


심지어 논문의 일부가 아니라 주제 자체를 부정당했다.

논문의 일부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수정하면 될일이지만 주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면 내가 쓴 논문을 살릴 방법이 없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쓴 논문이 쓰레기가 됐다는 소리다.


졸업 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대학생은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졸업요건을 만족하지 못해 이번 학기에 졸업하지 못하게 된다.

즉, 대학교 내내 소문으로만 들었던 환상 속의 짐승인 5학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5학년의 기록이 남아버리면 이제까지 용호가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다 망가진다.

연구소에 취직하거나 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할 때 '왜 제때 졸업 못하셨나요?'라는 결점이 남아버린다.

세상 누가 자기 자신의 이름에 그런 오명을 남기고 싶겠어?


"교수님! 졸업 논문 계획서 낼 때만 해도 그런 얘기는 안 하셨잖아요!"

"그치... 그랬지. 마이너한 분야긴 하지만 확실히 끊임없이 올라오는 주제고. 잘 쓰면 나도 받아주려고 했어. 실제로 잘 썼고."

"그럼 대체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불과 몇 주전에 논문을 확인받았을 때도 이런 말은 없었잖아.

왜 갑자기 논문 심사를 코 앞에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데?


"너한테만 말하는 거지만... 며칠 전에 연락이 와서 나도 어쩔 수 없다. 이번 정권은 근거도 없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주제를 싫어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거든. 거기까지는 뭐 내가 커버 가능했겠지만 운도 없게 네 주제가 딱 그쪽에서 예시로 말한 거여서 빼주려고 해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아, 아니. 고작 정권 하나 바뀌었다고 통과될 논문이 통과가 안된다는게 말이 돼요?"


대체 정권이 바뀐게 뭐길래 내 대학 졸업을 막는 거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순수학 학문의 영역을 건드린단 말인가.

하다못해 내가 다니는 학과가 정치 사상을 연구하거나 정책과 관련되는 학과였다면 나름 납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몬스터학과는 정치, 정책과 전혀 상관 없고 단순히 헌터들이 게이트에 들어가 상대하는 몬스터의 습성과 안전하게 사냥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과다.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학과인데 대체 왜 이 세상은 나를 이렇게 억까한단 말인가.


"스읍, 그나마 이 논문이 통과될 수 있는 법이 딱 하나 있긴 한데."

"네? 그런게 있다고요?"

"그런데 이게 현실성은 없는 거라..."

"일단 알려주세요. 지금 졸업을 못하게 생겼는데 그게 중요하겠어요?"


교수님의 말에 다급히 그 방법을 되묻는다.

지금 내 졸업이 날아가게 생겼고 5학년이 되게 생겼는데 다른게 중요하겠어?


"아까 말한 거 기억해? 이번 정권은 아무 근거 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걸 싫어한다고."

"제 논문이 불안을 조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결국 중요한 건 근거만 있으면 되는 거야.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결국 네가 선택한 주제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까 말이지. 그 증거만 제대로 찾아오면 어떻게든 통과는 될 거 같다."

"네? 그 말은..."

"게이트에 직접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단 소리지."


게이트를 들어가야 한다고?

내가?



***



최용호가 교수님에게 졸업을 하고 싶다면 게이트를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다음 날.

최용호는 결국 하루만에 게이트에 들어가기를 결정했다.

몇 시간이나 현실을 부정해보고 타협도 해보고 자기합리화도 해봤지만 결국 5학년이 되고 싶지 않은 4학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게이트에 들어간다' 하나뿐이었다.


"야이씨, 너는 네가 오자고 해놓고서 늦으면 어떻게 하냐?"

"아, 미안. 서랍장에 있는 헌터 자격증 찾느라 좀 늦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게이트에 들어가는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

결국 게이트에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자마자 최용호는 몇 안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연락한 친구의 이름은 이성현.

최용호와 같은 한국대를 다니고 있으며, 각성계 헌터학과 검사부에 재직한 A급 헌터 자격증 오우너.

2학년 마나 제어 교양 과목 때 만나 친분을 다진 몇 없는 친구 중 하나였다.


졸업 논문 하나 내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최용호와는 달리 헌터학과에 재적중인 성현은 최소 B급 헌터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졸업 조건이기때문에 몇 달 뒤 졸업이 예정된 놈이다.


'더럽게 부러운 녀석.'


"고작 논문에 쓰일 증거때문에 F급 게이트로 부르다니.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그러냐?"

"네가 뭔데?"

"와나, 이거 어이없는 놈이네. 내가 국가 공인 상위 5퍼 A등급 헌터인데 이런 취급 받아야 해?"

"거, 다행이네. 그러면 뛰어난 능력으로 이 불우한 졸업예정이었던 것을 도와주겠니? 나 지금 너무 정신 나갈거 같거든."

"풉.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네. 진짜 논문 빠꾸당한 거야? 나 농담 아니고 진짜 그런 사람 처음 들어봄."

"아오. 진짜라니까!"


아직도 어제 있던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심지어 최용호가 썼던 논문은 무려 1년이란 시간을 공들여서 작성한 논문이었기에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졸업 논문이 한 학기에 걸쳐 작성되는 것을 고려하면 최용호가 작성했던 논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투자되었는지 알 수 있다.


"에휴, 불쌍하니 이 형님이 특별히 봐준다. 소올직히 A등급 달아서 F급 게이트 들어가는게 폼이 안 나긴 하는데 친구를 위해서 내가 '특별히'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줄 테니 나중에 밥이나 비싼거 쏘기 콜?"

"무한 갈비?"

"NO. 못해도 초밥 뷔페는 가줘야지."

"돈도 많이 벌 녀석이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그냥."

"그래서 못 사줌?"

"사줘야지. 졸업해야 하는데."


결국 그 망할 졸업이 문제다.


지금의 최용호가 졸업만 할 수 있다면 그깟 초밥 뷔페는 고사하고 오마카세까지 사줄 의향이 있다.


"좋았쓰! 그럼 빨리 들어가자고!"

"그래. 이제 슬슬 들어가야지. 3주 안에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야 하니까."


길게 이어지던 잡담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게이트 앞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공무원에게 헌터 자격증을 보여주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와우. 경치 좋은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상쾌하기 그지없는 깨끗한 공기와 드넓은 푸른 초원이었다.

매일 TV나 인터넷 방송으로 보여주던 헌터들과 몬스터가 서로 피튀기며 싸우고 화산이 폭발하며 독에 오염된 늪과는 전혀 다른 아주 평화로운 풍경.


"그야 F급 게이트니까 당연하지. F급이면 일반인도 소풍하러 오는 곳이잖아."


두 사람이 들어간 게이트의 이름은 [끈적이는 점액].

F급 게이트이자 F급 몬스터인 슬라임밖에 나오지 않는 게이트.

누군가는 이런것도 게이트라고 불러야 하냐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와도 될 정도로 안전하고 신청만 하면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게이트였다.


"후, 난 네가 처음에 게이트에 들어가자고 했을 때 드디어 헌터로 활동하나 싶었는데."

"뭐래. 나는 천성 학자 타입이야."

"개소리.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나는 헌터들처럼 몸 쓰면서 다치고 그런거 질색이거든. 할거면 너나 마음껏 하세요."


이성현의 헌터 권유도 벌써 몇년째 듣는 이야기라 최용호은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대체 헌터 안 하겠다는 사람을 왜 그렇게 헌터로 못 만들어서 안달인건지 참.


"자, 이거나 들어."

"응? 이게 뭐냐? 카메라?"

"응. 액션캠은 너무 흔들려서 잘 안찍히잖아. 이게 더 화질도 좋고 증거 영상으로 쓰기 좋아."

"...혹시나 하는데 날 부른 이유가 게이트에서 영상찍으라고 부른거 아니지?"


떨리는 눈빛으로 최용호를 바라보는 이성현.


'얘는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거지?'

"당연히 아니지. 설마 그러겠냐?"

"그, 그치? 난 또 네가 나를 그냥 카메라맨으로 부..."

"영상도 찍고 잡일도 좀 도와달라고 부른거지."

"나 갈래."

"아, 왜!"


등을 돌려 게이트 출구로 향하는 성현의 어깨를 붙잡는다.


"너 그걸 몰라서 묻냐?"

"아니, 카메라맨이 뭐가 어때서!"

"세상에 A급 헌터를 카메라맨으로 부려먹는 사람이 어딨어!"

"부려먹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야이, 너는 A급 헌터가 그렇게 한가한줄 아냐?"

"너는 지금 한가하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리 성현이 A급 헌터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지만 아직 졸업식을 치루지 못한 성현의 현재 신분은 대학생이다.

심지어 학점도 다 채워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한가한 예비졸업생.


"너 길드 들어가기로 한 것도 졸업하고 나서 아냐?"


성현이 길드에 스카웃됐지만 그마저도 내년 봄에 들어가는 계약이다.

즉 용호의 눈앞에 있는 성현은 12월인 지금부터 내년 3월까지는 그야말로 생백수나 다름 없는 상황.


사실 용호는 굳이 'A급 헌터'인 성현을 데리고 올 필요가 없었다.

그냥 시간이 빈 사람이 '성현'이었기에 그를 데리고 왔을 뿐.


"그보다 말이야."

"불리하니 말 돌리긴."

"...너는 대체 졸업 논문 주제가 뭐길래 게이트까지 와서 증거를 찾지 않으면 받아주지도 않는다는 거야?"

"응? 내가 말한 적 없던가?"


도와달라 해놓고 정작 무엇을 도와달라는지 한번도 말한적이 없단 사실에 멋쩍어 뒷목을 문지른다.

아니, 정말 얘기한적 없었나?


"몬스터 진화론에 대한 논문이었어."

"진화론? 아, 돌연변이가 발생해서 생존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살아남고 그 돌연변이 개체가 진화된 개체가 되는 그 뭐시기? 이상하네. 그 논문이 왜 통과가 안됐지? 그거 이미 게이트의 환경이 바뀔 때마다 같은 종의 몬스터의 외형이 변하는 거로 증명되는 거 아님?"


진화론.

그것은 생명체가 오랜 시간동안 변이를 일으키면서 생존에 유리한 부분은 발달하고 필요없거나 불리한 요소는 퇴화한다는 인류가 밝혀낸 거대한 진리 중 하나.


"그건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 진화론이고. 말했잖아. 몬스터 진화론이라고."


하지만 그가 논문 주제로 삼은 진화론은 다윈이 주장했던 진화론이 아니다.

오히려 진화라는 단어를 공유할 뿐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이론.


오직 몬스터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 주장하기에 부르기를 '몬스터 진화론'.

대부분의 이론이 그렇듯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간결하게 말하면 몬스터가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진화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침팬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로 진화했다는 그런 진화가 아니라 한 개체가 특정한 계기를 통해 종족 자체가 달라지면서 힘이 강해진다는 이론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린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에 나타나는 포X몬이나 디X몬의 진화와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몬스터 진화론은 게임, 소설, 애니메이션 가릴 것 없이 창작물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단골 소재지만...


"너 설마 '그 진화론자'냐?"

"듣는 그 진화론자 기분 나쁘게 왜 그러냐?"

"그야 당연하지. 너는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알고보니 지구평면설을 주장하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겠냐?"


정작 몬스터 진화론의 현실은 지구평면설과 거의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야이, 아무리 그래도 지구평면설하고 몬스터 진화론을 비교해?"

"너도 진화론이 왜 그런 취급받는지는 알잖아. 몬스터가 진화한다고 해놓고서 정작 그 누구도 진화하는 모습을 확인한 적 없는거."


진화론이 학계에서 마이너한 장르임과 동시에 터무니없는 이론이라 취급되는 가장 큰 이유.

진화론자들이 몬스터들의 진화를 주장하는 것에 반해 그 누구도 몬스터가 진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컸다.


"뭐래? 진화하는 건 본 사람 있거든?"

"누군데. 말해봐."

"누구긴 바로 나지."

"뭐? 네가 몬스터가 진화한 걸 봤다고?"


성현은 용호의 말이 터무니없이 들렸다.

아니, 게이트가 나타나고 50년 동안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몬스터의 진화를 직접 봤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성현은 용호의 말이 마치 지구 평면설을 주장하는 일반인이 자기가 직접 우주에 가서 지구가 평평한 것을 봤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야, 너 애초에 게이트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런데 네가 몬스터 진화를 어떻게 봐? 구라잖아."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용호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었다.

그렇기에 성현은 용호의 말이 단순한 허세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음 이어진 용호의 말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구라 아니거든? 예전에 게이트 생성에 휘말렸을 때 몬스터가 진화하는 거 본 적 있어."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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