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학과 진화론자가 졸업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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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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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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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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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게이트에 들어온지 어느덧 2주차.

다른말로 게이트에서 먹고 자기 시작한지는 일주일 조금 넘은 시점이자 졸업논문 마감일이 일주일 남은 시점.


"야, 괜찮냐?"

"이제 난 글렀어... 난 졸업하지 못할 거야..."


마침내 용호의 멘탈은 완전히 나가버리고 말았다.

지난 2주동안 용호가 행했던 진화 재현 실험은 모두 실패했으며, 더 이상은 진행할 실험 아이디어조차 전부 고갈됐다.


어쩐지 슬라임과 관련된 논문들이 너무 기초적인 것밖에 없을 때부터 의심해봤어야 했다.

다른 게이트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습성이 어떠며, 어느 부위가 어떤 효능이 있고 하는 것까지 전부 연구하는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슬라임에 대한 연구기록이 졸업 논문만 가득하고 박사들과 연구소들이 주제로 선택하지 않으면 답은 뻔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다른 F급 게이트인 복슬토끼 게이트나 들어갈걸."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뽈뽈 거리는 슬라임에 비하면 마찬가지로 F급 몬스터지만 복슬토끼는 풀이라도 뜯어 먹으며 싸우기라도 한다. 지구의 토끼보다 약하지만.


"애초에 왜 슬라임을 고른 거야?"

"슬라임은 종류가 많잖아. E급에 포이즌 슬라임도 있고. D급에 킹슬라임... 아니 그건 그냥 똘똘 뭉친 군집체라 예외지. 어쨌든 종류가 많아서 조건을 갖추면 뭐든 하나로 진화할 줄 알았지. 그거때문에 여기 독도 가져왔다고."

"야야야! 저리 치워라! 미친, 뭘 들이대는 거야?!"


혹시나 하는 김에 독을 슬라임들에게 먹어보라고 들이대기도 해봤지만 슬라임은 오히려 득을 피할 뿐이었고 억지로 먹여도 사방에 흩뿌리면서 몸에 들이길 거부하니 슬라임들이 독을 먹어 포이즌 슬라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설 이전에 액상독부터 먹지 않았다.


덕분에 완전히 방법을 잃고 만 용호는 그저 한숨만 쉬며 졸업에 대해 완전히 해탈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5학년이나 되어서 강의도 없는데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학교를 들락날락거리는 자신의 처량한 모습.


"내년 졸업 논문 주제는 뭐로 하지? 진화 주제는 포기했다가 대학원 졸업하고 박사 달고 써야 하나?"

"야 그것보다 있잖아."

"왜. 지금 내 졸업 논문보다 중요한 게 있어?"

"어... 음... 너 몸에 달라붙은 슬라임들 일주일 전보다 더 커진 거 같지 않아?"

"그런가?"


성현의 지적에 용호는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슬라임들을 바라봤다.

듣고보니 확실히 일주일 전에 봤던 녀석들과 비교하면 슬라임들의 크기가 3배 정도는 커져 있었다.


"그런데 얘네들이 커진게 뭐."

"아니, 뭔가 위험하거나 그런 거 아닌가 하고. 그보다 저 슬라임들이 크기가 커진건 진화 아니야?"

"에이, 이런 건 진화가 아니지. 형체를 유지하면서 덩치가 커지고 성장하는 모습은 다른 게이트 안에서도 줄곧 발견되는 현상이야. 특히 짐승형 몬스터들의 어린 개체를 오랜 시간 추적한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덩치가 커지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많이 관찰되거든."


용호는 진화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성현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고작 덩치가 커진 것은 진화가 아니다!

자고로 진화라 하면 종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전혀 별개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

지금 슬라임의 덩치가 커진 것은 단지 용호가 유인용으로 뿌리고 있는 마나를 먹은 슬라임들이 살이 찐 것에 불과할 뿐이지 진화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대체 네가 생각하는 진화는 뭔데?"

"하다 못해 갖고 있는 마나양이 종의 한계보다 많아진다거나, 불이나 얼음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성질이라도 바뀌어야 진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용호가 그리 단언함과 동시에 그는 슬라임들에게 '지금 대화중이잖아. 좀 떨어져!'라고 익숙하게 명령을 내리며 슬라임들을 움직이게 했다.

용호의 명령을 들은 슬라임들은 용호의 몸에서 떨어져 텐트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슬라임이 사람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이 있던가?'

"아, 거기 펜 좀 갖다줘. 그래, 고마워."

"부르르!"

"...정말로 진화 안 한 거 맞아?"


성현은 몇번을 봐도 슬라임의 상태가 일주일 전과 크게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슬라임이 저렇게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펜을 주워준다는 행위 같은 것을 할 리 없잖아.

아마 90% 확률 이상으로 용호가 자신의 마나를 슬라임들에게 먹인 것이 슬라임을 변하게 만들었겠지.


"응? 콜라가 먹고 싶다고? 뭐, 마실 수 있으면 마셔보든가."

"이제는 슬라임하고 대화까지..."

"뭐왜뭐."

"아냐. 아무것도."


본인이 저렇게 부정하고 있는데 굳이 쑤실 정도로 성현은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기야 자신의 동기들이 전부 졸업할 때 혼자서만 졸업을 하지 못하고 5학년이 돼버린다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되더라도 이상할 건 없지.

그렇게 성현이 용호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던 순간이었다.


"어찌 됐든 말이야. 슬슬 이 게이트에서 나갈까 생각... 응?"

"왜 말을 하다 마냐?"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굳어버린 용호의 모습에 성현이 의아함을 느끼면서 용호의 시선이 가있는 곳을 따라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방금 전 용호가 떨어트려놨던 슬라임이 콜라컵 안에 들어가 있었다.

물론 부피가 꽤 커서 컵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몸이 흘러내리고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어, 저 슬라임 왜 색이 검냐?"

"기포도 있는데?"

"야, 너 이리로 와봐."

"부르르!"


용호의 부름에 뽈뽈뽈 다가오는 슬라임.


"이게 대체 뭔... 아, 얘 설마 아까 전에 네가 콜라 먹였던 그 슬라임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아니 이게 왜..."


들어올린 슬라임의 감촉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슬라임이 들어가 있던 콜라컵을 보자 컵 안에 있던 콜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다.


"혹시 이거 콜라 마시고 진화한게..."

"기다려! 아직 판단을 하기엔 일러. 그냥 콜라를 머금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잖아? 우선은 사실 확인부터 해야해."


말은 최대한 침착하고 냉정하게 했지만 용호의 표정은 이미 기대감에 활짝 펴진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 이번 학기에는 졸업을 하지 못할 거라며 좌절하던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그곳에는 처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보다 더 기쁜 얼굴로 슬라임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만이 남았다.


이 슬라임이 정말로 진화한 것이 맞다면.

단순히 콜라를 머금은 것이 아닌 콜라를 먹음으로써 포이즌 슬라임과 같이 별개의 종으로 진화를 했다면 분명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이 컵에 콜라 다시 채워줄 수 있어?"

"부르르!"


용호의 요청에 알겠다는듯 몸을 떨고는 젤리 중간에 구멍을내 비워져 있던 콜라컵에 콜라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슬라임.


콜라 한 컵에 가득 콜라가 채워진다.

여기까지는 매우 당연한 결과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 컵부터.

새 컵을 슬라임의 눈앞에 두자 슬라임은 잠시 몸을 떨더니 곧 내민 컵을 가득 채울 때까지 젤리에서 콜라를 쏟아냈고 기어이 두번째 컵의 안까지 다 채워버렸다.


"유... 유레카!"

"와씨! 깜짝이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용호는 환호성을 외치며 일어섰다.


"가,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미쳤어?"

"너는 지금 이걸 보고도 그런 감상이 나와? 보라고. 이 슬라임 지금 콜라를 두 컵이나 채웠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아니, 이 슬라임이 마신 콜라는 한 컵인데 뱉어낸 건 두 컵이잖아! 이건 이 슬라임의 성질이 콜라의 것으로 변해서 콜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겼다는 의미가 틀..."

"잠깐. 조금 진정해봐. 이거 콜라가 아닐 수도 있잖아. 아니면 농도가 옅어졌거나."

"직접 마셔보면 되지."

"응?"


흥분한 용호를 진정시키고자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용호를 자극시킨 성현의 말에 용호는 말릴 틈도 없이 슬라임이 채워준 콜라를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이거 진짜 콜라 맞는 거 같은데? 탄산도 가득하고 맛도 그대로야."

"이, 이 미친놈아! 그걸 마시면 어떡해?! 위험할 수도 있는 거잖아!"

"하하하핫!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뭣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추가 실험으로 진화 조건을 확정짓고, 실험 보고서도 쓴 다음에 슬라임이 뱉어낸 콜라의 성분 비교 분석과 일반 슬라임과 진화한 개체의 비교 분석까지 일주일 안에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다고!"


졸업 논문 제출 마감일까지 앞으로 일주일.

용호에게는 더 이상 시간을 버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당장 혼자서 추가 실험과 실험 보고서를 쓰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이란 시간이 부족할텐데, 다른 연구소나 친구에게 부탁해 성분 분석 의뢰까지 맡길 생각을 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렇다해도 일주일동안 고생하는 것이 5학년이 돼서 반년동안 고생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드, 드디어 완성했다!"


그리고 졸업 논문 제출 마감일 하루 전 날.

용호는 마침내 자신의 졸업 논문의 증거가 되어줄 슬라임 진화 실험 보고서 작성을 끝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실험 결과는 슬라임은 분명히 진화를 하는 몬스터이며 그 진화 조건까지 완벽하게 밝혀냈으니까.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 결과1. 슬라임은 일정량 이상의 마나를 섭취하는 것으로 성장하며, 성장하면서 덩치가 커지고 지능이 높아진다. 다만 마나량은 크게 성장하지 않는다.

실험 결과2. 슬라임은 다 성장한 상태에서 액체를 섭취하는 것으로 그 액체에 해당하는 슬라임으로 진화할 수 있다.

실험 결과3. 슬라임은 개체마다 선호도가 다르다. 자신의 선호도에 맞지 않는 액체는 섭취 불가능하다.

실험 결과4. 진화한 슬라임은 마나만 주입된다면 이론상 섭취한 액체를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실험 결과들이 있지만 학계를 크게 떠들석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이 정도.

사실 이 정도 결과를 냈다면 굳이 몬스터 진화론에 붙여내지 않아도 오로지 슬라임에 관한 연구라는 이름으로 논문을 정리했다면 졸업 논문 정도야 가볍게 통과할 수 있는 성과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기에 용호에게는 보고서는 쓸 수 있더라도 논문을 쓸 시간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기존의 졸업 논문에 새로이 슬라임 진화 실험 보고서를 첨부하여 교수님에게 제출했고, 그것을 본 교수님은 일단은 받아준다면서 용호의 졸업논문을 받아주셨다.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다못해 일주일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차라리 주제를 바꿔서 안전하게 졸업 논문을 새로 작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솔직하게 진화론자인 용호가 봐도 용호가 졸업 논문으로 작성했던 진화론에 관한 논문보다는 이번에 연구하게 된 슬라임의 진화가 더 가치 있어 보였고, 더 좋은 논문 소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작성할 수 없었던 걸 어쩌겠는가.

일단 제출할 수 있는 걸 먼저 제출하는 수밖에.


"그래도 뭐 어때. 일단 졸업하고 나서 대학원에 들어가면 그때 다시 논문 쓰면 되지."


이게 졸업이 확정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여유라는 건가?


교수님이 졸업 논문을 받아줬다는 사실만으로 용호의 심신은 3주 전과 달리 매우 평화로웠다.

그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자고, 게이트에서 데려온 슬라임들과 놀아주며 펫 힐링도 하며 휴식을 취하니 3주동안 했던 고생으로 줄어들었던 수명이 단숨에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슬라임 녀석들... 생각보다 쓸만한데?"


용호는 천장과 벽을 기어다니며 집을 청소하는 슬라임들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실험을 위해 게이트에서 데려온 슬라임들이었지만, 이 녀석들이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삶의 질이 극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선 집안의 먼지와 곰팡이는 전부 빨아들여서 배출해내는 청소 능력은 물론이고.

샴푸와 비눗물을 먹어 진화한 녀석은 아침마다 머리에 달라붙어 샴푸질을 대신해준다.

목이 마르면 콜라 슬라임이 자신의 몸 일부를 빨대처럼 변형시켜 콜라를 직접 빨게 해주니 이 슬라임들을 다시 게이트 안으로 들일 생각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다쳐도 너무 많긴 하지만."


현재 내 집을 돌아다니고 있는 슬라임은 총 20마리로 그 중 진화한 녀석들은 10마리이며 나머지 10마리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액체를 찾지 못해 진화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에 엄마라도 갖다줘야 하나?"


귀여운 동물이나 물건을 좋아하는 엄마라면 분명 이 슬라임들을 좋아할 터.

용호는 그렇게 슬라임의 절반 정도를 엄마에게 떠넘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띠링!


그리고 그때 울리는 핸드폰의 메신저 소리.


"어? 졸업 논문 결과 나왔나?"


졸업 논문 마감일이 지난지도 꽤 됐으니 결과가 나올 때가 되긴 했지.

그런 생각으로 메신저를 확인했다.


-----

귀하의 졸업 논문은 반려되었습니다.

반려 사유 : 첨부한 증거 부적합 및 논문의 근거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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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발."


그날 용호는 며칠만에 내장이 뒤틀리는 감각과 함께 학교에 5700자의 항의 메일을 보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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