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학과 진화론자가 졸업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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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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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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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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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역시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비로소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걸까.


매일 아침이 되면 협회가 제공한 건물로 출근해 아침을 먹고 슬라임을 돌보다 점심 먹고 또 슬라임을 돌보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는 거라고는 슬라임들에게 마나를 들이부으면서 녀석들의 덩치를 불려주고, 그 중 일부에게 엘릭서를 들이대면서 먹을건지 말건지 기회를 주는것뿐.


심지어 슬라임은 딱히 배설 활동도 하지 않고, 청소도 자기들끼리 하니 용호가 해야 하는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슬라임에 대한 논문 작성과 슬라임의 관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달만에 슬라임의 진화(제출할 때 협회에 의해 성장으로 강제 정정당했다.) 논문은 작성이 완료됐고, 그렇게 용호의 두번째 졸업 논문은 졸업 논문이 되기도 전에 일반 학술 논문으로 제출되었고 불과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인 10시간만에 어셉트(Accept)되었다.

전혀 바라지 않던 빠름이었다.


용호의 논문이 어셉트되는 것과 동시에 헌터 협회의 성장한 슬라임을 주제로 한 논문과 실험 보고서가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한국 헌터 협회의 행동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평소 급하게 움직일 때라고는 S급 이상의 게이트처럼 위험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가 전부인 협회가 갑자기 특정 몬스터에 대한 자료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무해하기로 유명한 슬라임에 대한 논문을?

메스로 슥 베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스포이드로 톡 찌른 것만으로 젤리가 터져 죽어 실험하는 것조차 어려운 그 슬라임을?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헌터 협회가 발표한 논문에 집중했다.

몬스터에 대해 연구하는 대학 교수도.

돈되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주된 업무인 길드 소속의 우수한 연구자들도.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몸을 쓰는 헌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국 헌터 협회의 논문을 열람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나 반응이 컸던 것은 당연하게도 의료계였다.

그동안 기술 발전과 더불어 게이트 속에서 신물질의 발견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룬 의료계였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정복하지 못했던 질병과 장애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헌터 협회가 제시한 슬라임의 슈퍼 줄기세포 기술은 전세계 의료계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기술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협회의 논문에서 나오는 '성장한 슬라임'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 또한 문제 되는 일은 없었다.

헌터 협회가 발간한 모든 슬라임에 관한 논문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논문이 참고문헌으로 적혀 있었기에.

그리고 그 논문은 헌터가 논문을 발표하기 전 불과 한 시간 전에 발표된 논문이었기에.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헌터 협회가 이렇게 움직이게 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최용호'라는 남자가 쓴 논문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대체 난 무슨 짓을 해버린 거지?"


한편 밖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협회의 건물에서 슬라임들에게 마나나 먹여주고 있던 용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엘릭서... 늘어도 너무 늘었는데...?"


주변에 돌아다니는 평범한 슬라임들과는 별개로 용호의 눈앞에는 20마리에 가까운 황금빛 슬라임이 있었다.

특이점이라면 그 모두가 엘릭서를 먹어치우며 엘릭서 슬라임으로 진화한 개체들이라는 점이었다.


"협회장이 내건 조건은 엘릭서 슬라임 5마리를 넘기면 1마리를 준다는 거였는데."


그 5마리라는 기준은 넘은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물론 엘릭서 슬라임이 잘 만들어질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불과 하루만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이미 용호가 갖고 있던 슬라임 중 한 마리가 엘릭서에 관심을 보이며 섭취하려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번째 엘릭서 슬라임이 만들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얼떨떨한 마음과 더불어 우연이겠지 싶던 것도 잠시.

바로 다음날 엘릭서 슬라임이 만들어낸 엘릭서에 새로운 슬라임이 관심을 보이며 2일 째에 새로운 엘릭서 슬라임이 탄생했고, 그렇게 거의 하루에 한 마리씩은 엘릭서에 관심을 보였기에 불과 한 달이란 시간동안 20마리나 되는 엘릭서 슬라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슬라임을 안 가지러 오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가져가는 건 일반 슬라임뿐.

슬라임을 회수해가는 헌터들에게 엘릭서 슬라임을 보여주고 얘네들은 언제 가져가냐고 묻자 그들은 모르겠다는 말만 하며 그냥 가버리기 일쑤였다.


"연락이라도 해야 하나?"


용호는 생각이 난대로 이전에 협회장에게 받은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다.

엘릭서 슬라임 20마리를 준비해뒀다고 .

도대체 언제 가지러 갈거냐면서 말이다.


협회장으로부터 답장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대신 연락을 남긴지 10분만에 용호가 누워 있던 협회 건물에 지난 번에 봤던 협회장이 찾아왔다.


"역시 자네야! 믿고 있었네!"

"네? 끄에엑!"


얼굴을 마주보자마자 용호를 끌어안는 협회장.

전신흉기나 다름없는 전 S급 헌터의 포옹은 솔직하게 말해 살벌하기 그지 없었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나름 힘 조절은 했는지 용호는 겨우 부상은 면한 상태로 협회장의 품에서 벗어났다.


"대, 대체 왜 이러세요?!"

"아니, 우리 사이에 이럴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저희 이제 얼굴 본지 두번째인데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관계의 깊이지."


...관계의 깊이라 할 게 있나?

아무리 잘해봐야 의뢰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최선 아닌가?


"엘릭서 슬라임을 이렇게 빨리 만들어내다니. 기대 이상일세!"

"...? 만들라면서요."

"만들라고는 했지만 기껏해야 한달에 한 마리 정도로 예상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일단 엘릭서이니 만드는 데 시간 좀 걸릴 거라 생각했지."


그렇기에 협회장은 한달이 지난 기간까지 굳이 용호에게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괜히 먼저 연락을 해서 부담을 줬다간 되는 일도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특히 헌터였던 입장에서 초조함이란게 사람을 얼마나 망가지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재촉을 하지 않았다.


"흐흐, 자네가 만들어준 이 엘릭서 슬라임들 덕분에 앞으로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안전해질 거야."

"...그렇군요."

"아, 보수는 자네가 키운 엘릭서 슬라임들 중에서 두 마리를 가져가는 거로 하는 건 어떤가? 처음 5마리를 만들면 1마리 가져가라는 것에 비해 비율은 많이 낮아졌지만 기밀 유지를 위해서는 개인에게 유출할 수 있는 최대치가 있으니."

"기밀 유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엘릭서 슬라임을 이용하는 것은 자네 자유지만 여기서 나오는 엘릭서를 판매하거나 하지는 말게. 그랬다가는 내가 아닌 국정원 쪽 친구들과 만나게 될 테니까."


국정원이라니.

각성자라면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한국 내 조직 1위 아니던가.

소문으로는 국정원에 비공개 S급 헌터가 존재한다고 하던데.


"아, 그리고 엘릭서 슬라임은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되네. 너무 많이 만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곤란해서 말이야."

"어째서죠? 모든 병과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엘릭서를 만들어내는 슬라임의 수는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두 가지 이유만 들어주지. 첫번째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거래를 할 때 이 엘릭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네. 더욱이 타국으로 유출될 가능성도 커지지. 만약 엘릭서 슬라임이 20마리만 있는 현재라면 그 모든 개체를 우리가 관리할 수 있지, 아마 100마리, 좀 더 인력을 투입하면 1,000마리 까지는 우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겠지만 그 이상은 필연적으로 해외로 정보가 새어나가고 유출도 일어나겠지. 그러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용할 수 있는 '엘릭서'라는 협상 카드가 하나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협회장은 국가의 논리로 설명했으나 용호에게 그리 와닿는 설명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는 만능 치료제를 더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슬라임을 이용한 치료 방법도 그러한 이유로 최대한 빠르게 공개했고 말이다.

왜 슬라임을 이용한 치료는 공개해도 되고, 슬라임으로 만들어낸 엘릭서는 공개가 불가능하지?


"...그러면 모든 사람이 엘릭서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수를 늘리는 건요?"

"그 또한 문제가 있지. 그게 내가 말하려던 두번째라네."

"모든 사람이 쉽게 치료할 수 있는게 문제될 게 있나요?"

"그렇지. 모두가 엘릭서 한 모금으로 치료가 된다면 의료계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실직해야 하나? 거기에 누구든지 모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빌런들 또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지. 만약 S급 빌런이 이 엘릭서를 물처럼 마시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 생각해보게.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가 일어나는 건 아니네."

"...그렇군요."


하지만 협회장의 두번째 근거는 용호를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일반 슬라임의 슈퍼 줄기세포를 이용한 기술은 어디까지나 현 의료계를 진보시키는 기술일 뿐이지만, 엘릭서라는 것은 의료계를 진보시키기는 커녕 붕괴시키다 못해 그 개념을 지워버리는 물건이었으니까.


더욱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 있는만큼 단점이 있다는 것도 이해했고.

실제로 빌런 문제는 게이트 관련 재해 이상으로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보수로라도 이걸 더욱 제게 맡기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

"허허. 그건 아니네. 왜냐하면 그건 그대를 위한 '투자'이니 말이지."

"투자...요?"

"그래. 자네는 내 능력이 뭔지 알고 있나?"

"유명하죠. 초직감이라는 거."


흡사 미래를 본다고 하기까지 하는 협회장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그의 초직감은 적어도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킬이었다.


"그 직감이 자네는 나와 자주 볼 거 같다고 말해주는군."

"협박도 살벌하네요."

"협박이 아니라 이건 기대일세."


협회장의 기대라.

그건 좀 상당히 무거운 기대였다.

심지어 아직 졸업조차 못한 대학생에게는 더욱 그랬고.


"저, 그런데 초직감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응? 궁금한 거라도 있나?"


하지만 부담은 부담이고.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용호는 조금의 용기를 내어 협회장에게 딱 하나만 그의 초직감을 빌려 한 가지 미래만 알아보고자 했다.


"제가 언제쯤 졸업할 수 있을 거 같나요?"

"으, 으응? 고작 궁금한게 그거라고?"

"저 매우 급해요."

"뭐 그 정도야... 잠깐만 기다려보... 으응?"


갑자기 말꼬리를 올리는 저 반응이 이상하다.


"저... 혹시 나왔나요?"

"자, 잠깐만 기다려보게. 이럴 리 없는데? 잠깐만. 아니 조금만 더..."

"그, 그만! 질문을 바꿀게요. 저 졸업할 수 있는 거죠?"

"..."

"협회장님?"

"크흠. 아 그러고보니 슬라임에게 마나를 제공하는 장치가 곧 개발될 거 같다고 하던데 말이네. 앞으로 한 달만 더 있으면 완성이 돼서 그때부터는 안 나와도 될 거 같은데..."

"저 졸업할 수 있는 거 맞죠...? 그쵸?"

"아무래도 여기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이군. 그럼 난 이만 가볼테니 나중에 신기한 걸 발견하게 되면 꼭 연락하게!"

"협회장님!"


급하게 자리를 뜨며 나가는 협회장.

용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협회장을 보며 애타게 울부짖었지만, 전 S급 헌터의 피지컬로 유유히 빠져나간 그를 붙잡을 방법은 그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



다시금 한 달이 지났다.

협회장이 예고했던대로 용호가 매일 출퇴근 하던 건물에는 에어컨과 생김새가 비슷한 마나 공급기가 설치되었다.

마나 공급기에서는 매 순간마다 내부에 장착된 마석을 소모해 0.1보다 낮은 마나를 생성하고 있었다.


"문제는 크게 어려운게 아니었어요. 1의 마나를 어떻게든 0.1로 나눠서 온전하게 슬라임들에게 준다는 생각이 잘못됐던 거죠. 정답은 비효율이었어요. 저희는 섬세하게 마나를 나눌 필요가 있는게 아니라 쓸모없을 정도로 형편없게 마나를 배출하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덕분에 이 과정 중에 마나 손실이 90% 이상 생겼지만... 그건 차차 개선할 부분이죠."


전문가로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용호에게 뭐라 설명했지만 솔직히 왜 자신에게 이런 설명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예... 그렇군요. 저는 그러면 이제 가봐도 될까요?"

"아, 더 설명을 안 들으셔도 괜찮을까요?"

"제가 딱히 담당자는 아닌지라."


굳이 따지자면 용호는 협회장의 의뢰를 통해 이 시설에서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 보수가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이긴 했지만.


"젠장... 결국 해버렸어."


그리고 의뢰가 끝난 다음날.

수강신청 하루 전날.

용호는 마침내 학교에 휴학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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