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핸드로 너클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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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왼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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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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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허치 상(The Hutch Award)

DUMMY

고율이 야구라는 스포츠를 알게 된 건 코리안 특급 때문이었다.

IMF시절 국민들은 영웅을 찾았고 당연히 고율도 그 영웅들을 티비 속에서 항상 지켜보았기에.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고율은 그저 만화를 보듯이 야구를 보았다.

그저 주인공이 멋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평범한 생활을 이어간 고율.

어느덧 1999년이 되었고 고율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탐구생활 끝나고 그레이트 선가드 보면 딱이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찾은 고율.

티비 프로그램 일정표를 보며 오늘 학교가 끝난 뒤 무엇을 하며 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문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고율.


“응? 퍼펙트 경기?”


일정표 뒷장 스포츠 섹션에서 이상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뉴욕 양키스의 베테랑 투수 데이비드 콘(36)이 메이저리그 사상 16번째로 퍼펙트 경기를 연출했다.]


아주 조그마한 기사.

사진도 없이 그저 몇 줄 끄적인 기사였다.


“아빠! 퍼펙트 경기가 뭐에요?”

퍼펙트 경기라는 단어를 처음 본 고율.

바로 아빠를 향해 소리를 쳤고.


잠시 후.


“우와~ 그럼 이 아저씨가 세상에서 야구 제일 잘하는 선수예요?”


타자들이 투수의 공을 한 번도 못 치는 게 퍼펙트 경기라고 설명을 들은 고율.

그저 고율의 눈높이의 맞춘 약간은 이상한 설명이었지만 고율은 투수가 무적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삼촌한테 브로마이드 좀 보내달라고 하면 안 돼요?”


무적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미국에 있는 막내 삼촌 이야기를 꺼낸 고율.

방 안에 붙어 있는 코리안 특급 브로마이드 옆자리에 데이비드 콘의 브로마이드를 꼭 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빠를 조르기 시작한 고율.


“엄청 멋있네.”


한 달 후 고율은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 콘의 브로마이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선수들에 둘러싸여 두 팔을 번쩍 들고 있는 데이비드 콘.

진짜 만화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에 고율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또 뭐가 있지?”


큰 브로마이드 외에도 여러 가지를 보내준 막내 삼촌.

야구 카드를 비롯해 작은 브로마이드까지 알차게 보내주셨다.

그렇게 소포를 뒤적거리기 시작한 고율.


“응? 허치 상?”


A4 크기의 브로마이드 하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어를 읽을 수 없는 고율이었지만 막내 삼촌은 친절하게 브로마이드에 포스트잇을 하나 붙여 놓으셨다.


[율아. 허치 상은 엄청난 투지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선수에게 주는 상이야. 이 상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야. 우리 율이도 나중에 커서 이 상을 받은 사람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 그러니까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렴.]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삼촌의 말보다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구절에 조금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한 고율.


“주인공?”


수많은 만화 속 주인공들이 자연스레 생각이 났다.

당연히 만화와 현실을 다르다는 것을 아는 나이인 고율.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고율의 가슴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아빠!”


결국 일하고 있는 아빠를 크게 불렀고.


“왜? 또 뭐 사고 쳤어?”

“아빠! 나 야구 할래요!”

“응? 야구?”

“삼촌이 야구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대요.”


어찌 보면 참으로 황당한 계기다.

그저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고율.

그렇게 단순히 팬으로서 관중으로서 보는 야구가 아닌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해가 지나.


“안녕하세요. 4학년 3반 고율입니다.”


고가네 설렁탕집 외동아들은 야구부에 입부를 했다.


*****


그리고.


야구에 있어 주인공은 투수라고 생각을 한 고율.

그러나 생각보다 현실의 벽은 매우 높았다.


“율아. 투수는 어깨가 강해야 해.”

“연습하면 강해지지 않을까요?”

“그건 맞는데. 지금 당장 투수는 못 한다는 거지.”

“... 감독님 저 투수가 진짜 하고 싶어요.”


설렁탕집 아들답게 또래보다는 조금 덩치가 컸던 고율.

손쉽게 야구부에는 들어왔지만 투수로서의 재능은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고율.

감독님을 보며 그렁그렁 눈물을 보였다.


“음... 던지는 손을 바꾸면...”

“네?”


결국 고민을 하던 감독님은 고율에게 투수를 할 수 있던 길을 하나 알려주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이 된 고율.

숟가락을 왼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손을 바꾸는데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고율은 좌완 투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


벽 한 편에 붙여 놓은 한 프린트.

고율은 항상 이 글귀를 보며 파이어볼러를 꿈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벽에 부딪힌 고율.


“율아. 솔직히 말하면 투수로서 고등학교 진학은 힘들어. 지금이라도 포지션 변경을 해야..”

“... 감독님 저 투수가 진짜 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감독님을 향해 그렁그렁 눈물을 보였다.


“음... 요새 옆구리 투수들은 원하는...”

“네?”


결국 중학교 감독님 또한 길 하나를 알려줬고.


[투수에겐 생소함이 타자에겐 익숙함이 가장 큰 무기이다.]


고율은 붙여 놓은 파이어볼러 글귀를 떼며 새로운 글귀를 방 안에 붙였다.


“이왕 갈 거 더 생소하게 가자.”


사이드암이 아닌 언더핸드를 생각한 고율.

희귀성을 무기로 삼기 위해 조금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물론.


“율아...”

“감독님. 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할 수는 있는데...”


반대에 부딪히긴 했다.


“감독님. 저 진짜 투수가 하고 싶어요.”


하지만 고율의 고집을 꺾기엔 막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100%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 전국 유일의 좌완 언더핸드 투수가 된 고율.

나름 희귀성을 무기 삼아 고등학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


솔직히 말하면 고율이 고등학교 야구부에 입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많이 좋았기 때문이다.

1990년생의 고율.

2002 월드컵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전보다는 야구의 인기가 무척이나 시들었기에 전국적으로 야구를 하는 어린 선수들이 팍 줄었다.

티오 자체가 나름 널찍했기에 딱히 진학에 있어 엄청난 경쟁을 겪을 수가 없었다.

또한 때마침 옆구리 투수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보수적이었던 야구 문화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기에.


어쨌든.


아직까진 현실의 벽이란 게 잘 느껴지지 않았던 고율.

하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하자 점점 현실의 벽 너머가 보이지가 않았다.

느린 구속도 구속이었지만 밋밋한 움직임.

제구도 썩...

위닝샷은 전무.

고율은 대기만성이란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지만 팀 내 경쟁에서조차 점점 밀리기 시작하자 고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 시련이 없으면 주인공이 아니잖아.’


어두운 표정과 달리 고율의 마음은 점점 단단해져 갔다.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을 꿈꾸는 게 아닌 이제 자신의 인생에 있어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나이를 먹었기에.

그렇게 고율은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재능이 꽃피우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고율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딱!


“뛰어!!”

“빠졌다고!!!”

“2루!!”


‘응?’


안타를 맞고 잠시 땀을 훔치고 있던 고율.

저 멀리 코치님이 마운드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잠시 후.


“할 수 있습니다.”

“율아.”

“감독님이 2이닝은 무조건...”

“율아.”

“.....”

“고생했어. 내려가서 아이싱 해.”

“네. 알겠습니다.”


연습 경기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라온 고율.

내려가라는 코치님의 말에 잠시 감독님과의 약속을 꺼내들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따가운 것을 느끼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7회 초.

(동현고) 15 : 7 (인천제일고)


분명 고율이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동현고) 1 : 7 (인천제일고) 이었던 점수.

고율은 잠시 간이 전광판을 바라본 뒤 코치님께 공을 건넸다.

그렇게 고율은 마운드를 내려와 덕아웃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최악이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분한 마음을 삭히기 시작했다.


‘빨리 포기하는 것도....’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줄 세워보면 자신은 상위권에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점점 단단해졌던 마음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는 고율.

몇몇 친구들이 야구부를 그만두던 때가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아닌 건 아니라며 최대한 빨리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만할까...’


고율은 생전 처음으로 포기라는 말을 가슴 속에 품었다.


하지만.


방황은 잠시.

집에서 오래 전 떼어 냈던 데이비드 콘의 브로마이드를 우연찮게 본 고율.

허치 상 수상이라는 브로마이드를 오랜만에 보자 다시 가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 포기라는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가는 길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속으로 외쳤고.

고율은 컴퓨터를 켰다.


[여러분! 좌완 언더핸드 너클볼러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일주일 후.


“율아. 힘든 건 알겠는데.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 보면.”


위닝샷 이야기를 꺼내며 너클볼 이야기를 꺼낸 고율.

인천제일고의 투수 코치는 바로 뒷목을 잡았다.


“코치님 커브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커브가 아니라고는 하지 않자아요. 너클볼에 회전이 조금 걸렸다고 너클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야!”


결국

코치는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

2008년 8월 18일.


“패스하겠습니다.”

“패스하겠습니다.”


서울의 한 장소에선 패스라는 말이 나왔고.


燏(빛날 율)




‘아직 빛나지 않을 뿐이야.’


인천제일고 운동장 구석에선 고율이 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쓰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구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누릴 드래프트.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날이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는 그런 날.


어쨌든.


그렇게 고율은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여름을 눈물과 함께 끝을 냈다.


...

.....

.......

.........

...........


2학기 개강일인 현재.


‘너무 긴 거 같은데.. 소설 형식으로 써서 그런가?’


나 고율.

내 인생에 대해 요약한 글을 보며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진로 상담을 앞두고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쓴 글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리고.


‘그런데 괜찮겠지?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좀..’


다시 한번 글을 훑어보니 드는 생각.

모든 게 미화되었다는 생각에 난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90% 정도는 진실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10%가 날 살짝 부끄럽게 만들었다.


*****


한편.


“선배님 뭐하십니까?”

“응? 서류 좀 보고 있었지. 신고 선수 제안 때문에.”

“그거 전에 끝나신 거 아니십니까?”

“한 선수가 눈에 좀 밟혀서.”

“누구요?”

“인천제일고 고율.”

“네? 누구요?”


인천 썬더스의 사무실 안.

스카우트 팀 팀장인 혁수가 고율의 이름을 꺼내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후배.

후배의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혁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시합 때 가끔 나오던 언더핸드 투수.”

“아.. 그 선수가 우리 체크 리스트에 있었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체크하고 있었지.”

“제가 볼 땐 별로던데. 왜요?”

“아파하질 않더라고.”

“네?”

“선발이든 불펜이든 언더핸드면 보통 공 던지고 난 다음에 무조건 허리근육이 굳어서 쩔뚝이길 마련인데 이 선수는 그렇지가 않더라고.”

“젊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네가 아직 승진을 못 하는 거 아니야. 언더핸드만의 고충이란 게 있다고.”

“하하...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괜한 참견에 잔소리를 듣자 뒷걸음질을 치는 후배.

능청스러운 모습에 혁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결국 시간이 해결할 답이긴 한데.. 계속 하려나?’


촉이라는 게 자신의 신경을 계속 건드린다는 것을 아는 혁수.

그러나 아무리 자료를 보강한다고 해도 회의를 통과하기엔 현재 너무나 부족한 고율이다.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그저 기대한다는 감정 뿐.

혁수는 고율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촉이 말하는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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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4화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 +1 24.09.18 402 6 12쪽
14 013화 용병 고율 +2 24.09.17 512 5 11쪽
13 012화 할아버지의 너클볼 24.09.16 710 9 11쪽
12 011화 피아노 24.09.15 793 6 12쪽
11 010화 본격적인 시작 +3 24.09.14 821 7 14쪽
10 009화 사나이 고율 +3 24.09.13 843 9 11쪽
9 008화 지팡이의 용도 +2 24.09.12 863 8 14쪽
8 007화 잔디 깎는 소년 +1 24.09.11 893 11 15쪽
7 006화 인연의 시작 +1 24.09.10 923 12 16쪽
6 005화 도대체 마이크가 누구야? +2 24.09.09 961 12 15쪽
5 004화 LSU Tigers +1 24.09.08 995 15 12쪽
4 003화 삼촌은 언어 인류학자다 +2 24.09.07 1,045 20 13쪽
3 002화 두 마리 토끼 +3 24.09.06 1,090 16 12쪽
» 001화 허치 상(The Hutch Award) +3 24.09.05 1,232 17 13쪽
1 000화 프롤로그 +5 24.09.05 1,316 1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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