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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왼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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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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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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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9화 사나이 고율

DUMMY

토마스는 처음이었다.

아니 들어는 봤어도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 봤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그런 경우랑은 달라. 본능이겠지...’


본능이란 단어를 되새기는 토마스.

토마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하며 꼬맹이를 쳐다보았다.

자기보호능력.

정신이 성숙해짐에 따라 컨트롤할 수 있는 신체능력이 발달되기에 점차 의식적인 영역으로 넘어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저 꼬맹인 달랐다.

뼛속에 아예 새겨진 건지는 몰라도 꼬맹이의 생각과 다르게 무의식이 알아서 몸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러니.


‘불편해 보이는 게 없었지.’


아무리 자연스러운 투구 폼일지라도 순리를 역행하는 일.

몸에 부하가 걸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꼬맹이에게 다른 투수들에게 보이는 그런 불편함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제 딴에는 힘들다고는 하지만 남의 고통을 어떻게 알겠는가?

저 꼬맹인 그저 자기가 힘든 게 진짜 힘든 걸로 착각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다만.


‘본능인 건 알겠는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토마스는 아직 퍼즐을 완벽히 맞추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자기보호능력이 강하다 해도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극복이 가능하다.

꼬맹이가 어렸을 때부터 투수를 했다고 들은 토마스로서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잔말 말고 정리하고 따라와. 이야기할 게 많아.”

“아니. 때린 이유는 설명을 해주셔야죠.”

“빨리 안 움직여!”


토마스는 꼬맹이의 살아온 인생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딱!


“앜! 또 왜 때려요?”


토마스는 다시 한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이 먼저 나가게 되었다.


‘이러니 제자리걸음이었지.’


우완에서 좌완으로.

좌완에서 언더로.

꼬맹이의 말을 듣다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익숙함을 끝으로 성장을 해야 하는데 익숙함만 배우다 여기까지 온 꼬맹이.

토마스는 퍼즐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내새끼가 뭘 그리 아파해. 그러니까 몸뚱어리가 그따위지!”


꼬맹이 이 자식은 사나이가 되기엔 한참이나 먼 존재라는 것을.


*****


그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니 무슨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셔야지... 그리고 뭐 하나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하아..’


지팡이에 맞은 곳을 문지르며 운전하기를 잠시.

난 오늘 코치님과의 대화를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사나이가 되길 글렀다면서 혀를 차는 코치님.

몸 사리는 데 특화된 몸뚱어리라 하신다.

훈련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모를까 이것저것 손을 대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상태라고도 하셨고.


‘내가 잡탕이면 그러면 코치님은?’


나보다 더 잡탕인 코치님 아닌가?

물론 이 말은 하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그냥 무시하자 생각을 계속했지만 계속해서 내가 신경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점쟁이도 아니고.. 뭐지?’


[너 제대로 기뻐해 본 적 없지? 그냥 기쁜 거 말고 미치도록 기쁜 느낌말이야. 몸뚱어리가 그래서 그런지 네 정신도 거기에 따라갔을걸.]


[뻔하다. 욱해도 그냥 한번 어깃장 넣고 뒤에 가서 울었지?]


[경기할 때 폭투한 적 있어? 없지? 그게 대범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쫄아서 몸이 알아서 막은 거야.]


이것저것 질문을 하시다 어릴 적 내 모습을 정확하게 집어내시는 코치님.

약간은 소름이 돋았다.


물론.


[넌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성격이 아니야. 톡톡 튀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아.. 재미도 없고 개성도 없고.. 누가 널 주인공으로 쓰면 사람들이 욕할걸? 이딴 게 주인공이냐고.]


인정 못 하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내 성격이 뭐 어때서? 남자답기만 한데.’


쉽게 기뻐하지 않는 건 흥분을 잘 참을 수 있다는 거고.

자기주장이 약해? 그거야 어렸을 때고 지금은 다르다. 타일러와 눈빛 싸움을 하기도 한 나인데..

또 몸이 알아서 쫄아? 그게 아니고 마운드 위에서 안정감이 있는 거다.

상황은 맞춰도 해석은 맞추지 못한 코치님.

난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리며 코치님에 말에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일요일이 지나갔고.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


매번 그렇듯이 북적이는 라커룸 안.


“이번엔 빼지 말라고. 타이거 걸스 애들도 온다고 했다니까.”

“그래. 아직 댄스 신고식 하지도 않았잖아. 이번에 가서 신고식 한 번 해야지.”

“돈 때문이야? 우리가 나눠서 내줄까?”


‘얘네는 운동을 안 하나?’


난 1학년 무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댄스파티에 같이 가자는 선수들.

대학생도 아닌 나에게 도대체 왜 파티에 가자고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특히 오늘따라 열정적인 선수들.

대학 댄스팀인 타이거 걸스 이야기를 하며 날 꼬신다.


“지금 시즌 중 아니야? 선배들이 뭐라고 안 해?”

“1학년만의 특권이지.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

“오늘 진짜 여자애들 많이 온다는 첩보를 받았다니까. 남자라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

“설마... 그런 쪽은 아니지?”

“스톱! 타일러.”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타일러를 쳐다보았고.


“하아.. 간다고 가. 어딘데?”


전혀 갈 마음이 없었던 난 나도 모르게 오케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사나이 고율. 난 남자야.’


아마 ‘남자라면’이라는 타일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한 것 같다.

하룻밤 자고 나면 잊을 줄 알았는데 코치님의 말이 아직도 신경 쓰이는 것 같다.

사나이가 되길 글렀다니?

난 이미 사나이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저우! 마하!(Geaux Maha)”

“저우! 마하!” “저우! 마하!” “저우! 마하!”


어느덧 구호 속 타이거스의 경기가 시작 되었고.


“우리가 최고다! 저우! 마하!”

“타이거스가 최고다!!!”

“가자! 저우! 마하!”


‘무슨 경기보다 더 들떠있어?’


경기가 끝나자 나와 1학년 무리들은 다시 한번 구호를 외치며 힘차게 알렉스 박스 스타디움을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대학 근처의 파티 장소.


‘와아~’


난 점점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댄스파티라고 들었기에 그냥 큰 거실에서 춤이나 추며 놀 줄 알았는데....


‘영화 속 한 장면 같네.’


들어가기도 전에 보이는 풀장.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몸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몸이 좋아 보이는 게 운동부 소속인 듯했고...


“헤이! 고! 그만 보고 빨리 들어오라고!”


타일러는 어느새 걸음이 멈춘 날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주차 잘했나 한 번 본 거야.”

“주차는 무슨. 얼굴 빨개졌어.”

“응?”

“농담인데. 하하. 설마 파티는 처음 아니지?”

“.....”

“진짜?”


내 모습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짓는 타일러.


“어... 그런데 설마... 그건.. 아니지?”

“.....”

“다들 모여 봐!!! 특종이야! 특종!”


...

.....

.......


난 이날 새끼 호랑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


다음날.


[벌써 2개의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습니다. 오늘도 존슨의 너클볼은 펄럭거리며 춤을 춥니다.]


...


[6회 아직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존슨. 이번에도 과감하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서재에 앉아 오래된 라디오 중계를 듣고 있던 토마스.

눈을 감고 있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저주인지 축복인지...’


계속해서 떠오르는 꼬맹이의 얼굴.

꼬맹이가 집을 나선 후로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저주일수도. 축복일 수도 있는 꼬맹이의 재능도 재능이었지만.


‘예상이 빗나가지가 않았어.’


저 몸뚱어리에 걸맞은 성격이라 추측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예상에 놀란 표정을 지은 꼬맹이.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는 게 자신을 웃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무색무취라 보일 법한 꼬맹이의 성격.

부동심을 갖기 딱 좋은 성격이다.


[빠졌습니다. 존슨의 폭투.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때마침 나오는 중계진의 목소리.


‘욕심이라...’


꼬맹이라면 과연 저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한 토마스였다.


또한.


‘내가 꼬맹이었으면...’


아주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자신에게 꼬맹이의 재능과 성격이 있었다면 결국 붙잡지 못한 그것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늘인 줄 알았던 메이저리그의 마운드.

거기가 시작점인 걸 알았을 땐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 위의 하늘을 오르기엔.


‘궁금하네.’


죽어가는 뇌세포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오랜만에 느끼는 호기심.


결국.


“낸시! 꼬맹이 연락처 좀 알려줘!”


호기심을 참지 못한 토마스.

낸시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


그 주 일요일.

다시 찾은 알렉산드리아.


“더 낮게!”

“더요?”

“그래.”


...


“더 낮게!”

“.... 저기. 코치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

“여기서 더 낮으면 다치지 않을까요?”


‘진짜 이해를 못 하겠네.’


코치님께 갑작스레 연락을 받고 찾은 알렉산드리아.

코치님은 테스트 하나 해보자면서 날 끌고 파인빌 타이거스의 연습 장소를 다시 찾았다.

뭐 하나 가르쳐주시려나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 나.

그러나 코치님은 그저 릴리스 포인트를 낮추라고만 하신다.

그러고선 낮게. 더 낮게를 외치시는 코치님.

이러다 땅에 손에 쓸릴 지경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 질문을 했는데.


“안 다쳐.”

“네?”

“안 다친다고. 네 몸뚱어리가 알아서 막을 거야.”


‘미치겠네. 진짜.’


황당한 답변을 하신다.

아무리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고는 하지만 너무 나가셨다.

솔직한 말로 몸이 쫄아서 나를 보호하려고 하면 수비는 어떻게 하겠는가?

엄청나게 빠른 타구가 날 향해서 오면 몸이 알아서 피해야 하는데.

나름 수비는 탄탄하다고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코치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알아들었으면 빨리 준비해.”

“알았어요.”


어쩔 수 없이 보여드려야겠다.


‘많이 아프진 않겠지?’


난 살짝 까진 모습을 보여주면 코치님도 생각을 달리 하실 거라 믿었고.

그렇게 투구 플레이를 밟으며 땅을 흘낏 쳐다본 난 힘차게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그렇지. 그렇게 하라고.”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슬아슬하게 지면 위를 스쳐 지나가는 내 손.


“다시 한 번만 해볼게요.”


‘할 수 있어. 고율. 넌 사나이잖아. 바닥에 긁혀서 피 좀 흘리는 게 뭐 대수야.’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순 없던 난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차게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

.....

.......


그리고.


난 이날 진짜 사나이가 될 수 없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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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013화 용병 고율 +2 24.09.17 527 5 11쪽
13 012화 할아버지의 너클볼 24.09.16 730 9 11쪽
12 011화 피아노 24.09.15 803 6 12쪽
11 010화 본격적인 시작 +3 24.09.14 832 7 14쪽
» 009화 사나이 고율 +3 24.09.13 856 9 11쪽
9 008화 지팡이의 용도 +2 24.09.12 875 8 14쪽
8 007화 잔디 깎는 소년 +1 24.09.11 904 11 15쪽
7 006화 인연의 시작 +1 24.09.10 937 12 16쪽
6 005화 도대체 마이크가 누구야? +2 24.09.09 976 12 15쪽
5 004화 LSU Tigers +1 24.09.08 1,011 15 12쪽
4 003화 삼촌은 언어 인류학자다 +2 24.09.07 1,059 20 13쪽
3 002화 두 마리 토끼 +3 24.09.06 1,105 16 12쪽
2 001화 허치 상(The Hutch Award) +3 24.09.05 1,248 17 13쪽
1 000화 프롤로그 +5 24.09.05 1,335 1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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