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흑마법사가 악당을 너무 잘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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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다리순살
작품등록일 :
2024.09.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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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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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백운성은 빠르게 내달렸다.

정비된 등산로를 무시한 채.

오직 감각이 이끄는 대로 직선을 그리며 이동했다.

발달한 육체는 바위 사이를 뛰어넘는 것을 전혀 어렵게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리막이 끝났고, 평평한 잣나무 숲이 펼쳐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백운성은 대치하고 있는 두 명의 사람과 마주쳤다.


“오, 새로운 손님인가.”

“크, 허억······!”


느릿하게 돌아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양복을 갖춰 입은 중년인.

그리고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구르는 청년.


백운성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둘 중 악성을 품고 있는 건 중년인이다.

그런데 청년 쪽이 낯이 익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백운성의 입에서 청년의 정체가 토해졌다.


“A급?”


그리 말을 뱉자 청년이 흐릿한 눈빛으로 백운성을 바라보았다.

정면에서 보니 확실했다.

백운성과 함께 마력 측정을 받았던 청년이다.

D급을 받은 그와 달리 A급을 받고 의기양양해하던 청년.

듣기로는 이름이··· 김민준이라고 했던가.



***



“으윽.”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김민준이 백운성을 덮고 있는 마력 파장을 훑었다.

곧이어 그의 눈동자에 어린 감정은, 실망.


“···아.”


협회에서 파견된 지원군이라 여겼다.

아니면 하다못해 아카데미에서 그를 찾기 위해 올려보낸 동기일지라도.

D급 언저리에 불과한 저 사람보다야 나았겠지.

아마 게이트 경보를 받고 어설프게 산을 오른 이가 아닐까 싶었다.


실망 다음에는 어렴풋한 결심이 김민준의 눈동자에 떠올랐다.

이윽고 이를 악문 그가 백운성을 향해 외쳤다.


“어서, 어서 도망쳐요! 여기는 제가 막고 있을 테니까! 가능하다면, 협회에 지원 요청을 부탁합니다!”

“지원 요청이라. 그렇게 놔둘 성싶나?”


중년인이 지니고 있던 화려한 쥘부채를 펼치고 살랑살랑 부치며 말했다.

그는 빌런 연맹의 간부들 중에서도 마법을 이용한 테러를 특기로 삼는 이승진.

신출귀몰한 행적, 그리고 특유의 무영창 마법 때문에 ‘사일런스’라고도 불리는 자였다.


그렇듯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에 김민준은 이를 악물었으나,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지금껏 이어진 교전에서 본 손해.

그리고 그러면서 느낀 상대의 수준이 자신보다 높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상황을 즐기듯 침묵 속에서 고고한 척 부채를 부치던 사일런스가 별안간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었다.


“그런데, 요즘 것들은 참 버르장머리가 없어.”


그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부채의 끝이 백운성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 끝이 희미하게 일그러지며, 무형의 칼날이 백운성을 향해 날아든다.


“어른이 말을 걸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피해··· 제기랄, 배리어!”


캉!

간발의 차로 막아낸 김민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이었다.


“크악!”


언제 칼날이 날아들었는지, 종아리를 베인 김민준의 신형이 또다시 무너졌다.

제법 깊게 베인 건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김민준의 안색이 암울하게 물들었다.


바로 저게 문제였다.

딜레이도, 시전 동작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영창 마법.

처음 마주했을 때,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날아든 은밀한 공격 또한 그러했다.

그를 마주한 김민준은 막아내기 위해 급히 마력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 속이 진탕되어 싸우는 내내 사일런스의 템포에 끌려다니며 손해를 봐야만 했다.


사일런스가 껄껄 웃었다.


“좋아, 좋아. 이제 거의 다 왔구먼. 짧게 분탕이나 치고 빠지려고 했는데, 주목받는 루키까지 처리할 수 있다니. 운이 좋은 날이야.”


그 말과 함께 떨쳐지는 부채는, 또다시 백운성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어떤가? 자네, 제법 정의감이 넘치는 것 같은데.”

“안돼! 움직여!!”


김민준이 목을 긁으며 발작적으로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서걱-

여태 가만히 서 있던 백운성의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이어서.


툭, 데구르르.

그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잠시 후, 간헐적으로 피를 뿜어내던 몸통마저 바닥에 풀썩 쓰러지는 광경을.

김민준은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푸하하하하!”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진다.


“이거 걸작이구만! 이래서 헌터 나부랭이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자기 목이 썰리는 순간까지도 얼어붙어 있다니. 암만 격차가 커도 그렇지, 발버둥 칠 생각조차 들지 않는 건가? 하긴 목숨을 건 투쟁을 언제 해봤어야지! 매일매일 단순 작업이나 다름 없이, 타성에 젖어 나약한 괴물들이나 도살하는 버러지들 같으니라고.”

“이, 개자식아! 나랑 싸우고 있었잖아!”


김민준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코앞에서 죽었다.

그런데, 손가락조차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그에서 비롯한 무력감이 몰려왔으나.

그보다 더욱 커다란 분노가 다른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듯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빌런들은 숨어서 살아야 하는 사회의 쥐새끼들이라고.

그렇기에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현상금과 공적을 올릴 기회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떠들던 과거의 자신이 앞에 있다면, 김민준은 마법으로 쳐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구랑 싸우고 있었건, 그게 무슨 상관이지? 누가 듣는다면 우리가 일 대 일로 정정당당한 결투라고 하고 있었던 줄 알겠구나, 애송아.”

“닥쳐, 틀딱 새끼야.”

“···말버릇을 조금 교정해 줄 필요가 있겠군.”

“잘난 척 지껄이지 말고 덤비기나 해.”


김민준은 투지를 불태웠으나 내심 이길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간 실습을 빙자한 실전을 겪긴 했지만 이처럼 오롯이 혼자였던 적은 없다.

아카데미의 교수, 혹은 선배 헌터, 그것도 아니면 지원해 주는 팀원들이라도.

누군가는 늘 곁에 있었고 그걸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런데 홀로 겪게 된 첫 실전에서 이렇게나 압도적인 실력 차를 느끼게 될 줄이야.

비관적인 상황에 꺾이려는 무릎을 억지로 바로 잡던 김민준의 눈에, 사일런스가 부채를 고쳐잡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김민준은 빠르게 움직였다.


“마력탄, 마력탄, 마력탄!”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마력탄을 연달아 날렸다.

다양한 각도로, 시간 차까지 둬가면서.


그럼에도 사일런스에게 닿지는 않았다.

부채를 펼쳐 일거에 마력탄들을 날려버린 그가 실실대며 웃었다.


“오, 이런 재주도 부릴 줄 알았나? 이것 참, 양파 같은 젊은이구먼. 혹시 우리 빌런 연맹에 들어올 생각은 없고?”

“닥치고 뒈져!”


지닌 바 모든 마력을 끌어모은 일격.

김민준이 상대에게 최소한 엿이라도 먹이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려던 찰나.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군!”


사일런스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으나, 그는 알지 못했다.

김민준이 실제로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며.

사일런스의 등 뒤에 나타난 백운성이 시커먼 칼날을 뽑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촤악-!

데자뷰다.

김민준은 그렇게 느꼈다.

똑같이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졌고.

똑같이 몸통이 쓰러진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대상이 백운성이 아니라.


사일런스의 머리와 몸통이라는 것뿐이었다.



***



“······.”


백운성이 무덤덤한 눈으로 사일런스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강은지 때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

아니, 오히려 절대적인 양으로만 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암흑에너지가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악업을 쌓은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미 죽은 놈이 뭐라 설명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


“어, 어어.”


김민준이 멍청한 소리를 내며 백운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라고 하고는 싶은데, 뭐라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앞에다 대고 백운성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시간 끄느라 수고했습니다.”

“에? 아, 예.”


김민준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백운성은 그러는 와중, 지금 벌어진 일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살아오며 저지른 나쁜 짓과 강함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A급인 김민준이 그만큼 고전하는 것을 본 직후다.

죽어 나자빠진 놈이 적어도 A급과 동수, 혹은 그 이상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러한 놈을 백운성이 단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EX급이 된 그라지만 정면에서 맞붙었다면 암흑에너지의 양이 딸리기에 화력 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택한 방법은 흑마법, ‘분신 생성’과 카르디안의 경험을 통한 암흑에너지의 완벽한 컨트롤.

그 두 가지를 활용해 분신을 남기는 동시에, 밖으로 퍼지는 암흑에너지를 제로에 가깝게 조정하며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물론이거니와, 마력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선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백운성이 분신이 남겨진 자리에 그대로 멍청하게 서 있는 광경이.


실상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천천히 빌런에게 다가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덕분에 백운성 쪽으로는 일말의 신경조차 쏟지 않고 있던 사일런스는 등 뒤에서 칼날을 맞이하고 저승길로 갔으며.

김민준은 목숨을 건졌고.

백운성은 대량의 암흑에너지와 전리품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


그렇다면 그런 빌런을 처리한 공적을, 백운성이 온전히 차지할 수 있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헌터 등급을 곧바로 한 단계 더 올리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백운성은 부정적이라고 보았다.

정황상, A급인 김민준과 C급인 백운성이 함께 전투를 치렀다고 하면 누가 보아도 김민준의 공을 더 높게 칠 수밖에 없을 터.

위치도 CCTV같은 증거가 남지 않는 산속이고.

결국 챙길 수 있는 실속은 빌런이 남긴 전리품 뿐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 권리를 행사하고 자리를 떠나기 위해 백운성이 사일런스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김민준이 퍼뜩 정신을 차린 듯 한층 맑아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 누구세요? 아니지, 일단 감사합니다? 어··· 혹시, 빌런은 아니죠?”

“이런 사람입니다.”


백운성은 길게 말할 것 없이 헌터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에 박힌 사진과 C등급이라는 단어, 그리고 이름이면 그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걸 들여다본 김민준은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C? 아니, 어떻게? 위조··· 는 아니실 테고.”


순간 사나워지는 백운성의 눈초리를 본 김민준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명 D등급 언저리에 가까운 마력 파장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B등급, 아니 A에 가까운 파장을 내뿜고 있지 않은가.


아카데미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먼저 접근해라.’


수석 졸업생인 김민준은 또한 우등생이었고, 그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형님!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먼저 90도로 허리를 푹 숙이며 인사를 크게 복창하고.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죠! 무조건 사례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A등급인 건 아까 알고 계시던데··· 필요하시면 연락주십쇼!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


백운성이 눈을 깜박였다.

떠오르는 생각은, 생긴 거랑 다르게 말이 많다는 것.

그래도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던 백운성이 손을 내밀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김민준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활짝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백운성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백운성이 번호를 입력하고 돌려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김민준은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C등급이시면서 사일런스를 한 방에 쓱싹하신 거에요, 형님? 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사실 어떻게 보면 형님이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게, 자폭 기술 쓰려고 하다가 딱, 눈이 마주친 거라서요. 혹시 무슨 계열 마법이신지···”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스물입니다!”

“내가 형이긴 하네.”

“네! 말 편히 하십쇼 형님!!”

"어."


쓸만한 동생을 얻었다.

사일런스의 품을 뒤지던 백운성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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