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흑마법사가 악당을 너무 잘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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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다리순살
작품등록일 :
2024.09.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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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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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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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멍하니 서 있던 박석진이 정신을 차린 건, 찰나의 순간이 지난 뒤였다.

풀려 있던 동공이 빛을 되찾고, 깜빡, 깜빡이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런 뒤 손으로 제 목을 더듬던 박석진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헉, 헉, 허어억······!”


마치 물속에 있었던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는 박석진.

그의 앞에 백운성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자, 아직은 말할 생각이 들지 않겠지? 한 번 더 갔다 오자고.”

“아, 안돼!!”


박석진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움직였으나, 백운성의 손은 놈의 머리통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


조금 전보다 약간 더 긴 침묵이 흘렀다.


“푸하아악!”


다시금 터져 나오는 호흡.

쉴 새 없이 흘러내린 식은땀으로 젖어버린 박석진의 환자복.

그리고 들썩이는 어깨는 그가 짧은 순간에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큭, 크허허어엉.”


급기야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며 통곡이 터져 나왔다.


“제, 제발, 그만! 뭐든지 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거기만은 돌아가지 않게······!”

“그렇다는데.”


백운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눈빛은 김민준과 이미나를 향하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따로 있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심문을 진행하고.”

“···얘 상태는, 괜찮은 건가요?”

“보시다시피. 살짝 겁을 준 것에 불과해.”


백운성이 이미나에게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건 실제로도 딱히 틀린 답변이 아니었다.


박석진이 지니고 있는 악성.

의심의 씨앗이 되었던 그걸 자극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박석진의 트라우마나 공포심 따위가 제멋대로 덩치를 부풀려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겠지.

카르디안도 종종 써먹곤 했던, 효과가 뛰어난 심문법이었다.


이미나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깨물더니 모종의 결심을 굳힌 표정을 떠올렸다.


“석진아, 네가 정말··· 우리를 배신했어?”

“···미나?”


덜덜거리며 떨고 있던 박석진의 눈동자가 구원을 찾아 허공을 헤엄쳤다.

이윽고 익숙한 친구의 모습을 발견한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미나야, 내 말을 좀 들어줘. 우리 10년지기 친구잖아. 아카데미에서 볼꼴 못 볼꼴 다 보면서, 이제 졸업까지 왔잖아···”

“박석진.”


김민준이 길게 늘어지는 말을 단호히 잘라내었다.


“···어?”


뒤를 돌아본 박석진이 마주한 것은, 얼어붙을 듯 차가운 시선.

시선뿐만이 아니라 표정, 말투, 행동.

모든 것이 싸늘하다.

김민준은 늘 그랬다.


박석진은 맥이 탁 풀리는 심정이었다.

동기로써 일말의 정?

저놈은 그런 게 뭐냐고 묻고 치우겠지.

실제로 김민준은 그러한 투로, 침을 뱉듯 물었다.


“왜 빌런의 편에 섰지? 아카데미에서 보낸 시간이 아깝지도 않았냐?”

“···역시. 넌 그럴 줄 알았다.”


박석진이 허탈한 웃음을 흘려내었다.


“김민준, 내가 왜 빌런의 편에 섰냐고? 하하, 씨발. 너는 진짜··· 한 치의 의심조차 없구나. 아주 잘나셨어.”


김민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왜 빌런의 편에 섰냐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다! 네가··· 네가 감히 내 심정을 알아? 안다면, 아카데미에서 보낸 시간이 어떻고 하는 소리를 지껄일 수 없었겠지!

김민준, 너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아. 남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같은 사람인가 의심될 정도로, 냉철하고 무심한 면이 있는 놈이다. 네가 내 부탁을, 절실할 때 내밀었던 내 손을! 단 한 번이라도 잡아줬다면 나는 빌런들의 손을 잡지 않았겠지.

네가 지금처럼,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지만 않았어도! 나는 헌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박석진은 말을 더해갈수록 울화가 치민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금 처한 상황마저 잊을 정도의 분노.

과거의 한 자락을 끄집어내어 불사르는 그 눈동자를 앞에 둔 김민준은,


“웃기는군.”


비아냥거리며 웃었다.


“···뭐?”

“그딴 식으로 남에게 네 미래를 내던지니까 네가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거겠지.”


내던지듯 말한 김민준은 곧바로 등을 돌렸다.


“형님, 죄송하지만 저놈이랑 같은 공간에 있으니 구역질이 나서··· 뒤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가봐.”


백운성이 손을 휘저었다.

마침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던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김민준은, 곧바로 병실을 나섰다.


박석진이 있는 뒤는, 끝끝내 돌아보지 않은 채로.



***



“같이 가!”


김민준이 문을 열고 나서자, 이미나가 그 뒤로 따라붙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김민준은 휴게실을 발견하곤 그리로 이동했다.


“후우······.”


힘없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주저앉힌 김민준의 입에서 한숨이 새었다.

그 옆에 털썩 소리가 나게 앉은 이미나는 잠자코 함께 침묵을 공유했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미나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왜, 신경 쓰여?”

“···어때 보이는데.”

“겁나 신경 쓰는 거 같아.”

“그럼 그런 거겠지.”

“어?”


이미나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놈이,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이미나를 마주 본 김민준이 힘없이 미소 지었다.


“박석진. 전투력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

“어어.”

“하지만, 놈이 발전하기 위해 정진하는 태도에는, 분명 존경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이 한계를 뛰어넘길 바랐지. 기댈 곳이 있다면, 스스로 그 벽을 넘지 못하리라고 여겼다.”

“······.”


이미나는 헛숨을 삼켰다.

김민준은 어쩐지 화난 것처럼, 혹은 슬픈 것처럼.

또한 지친 것처럼 말을 이었다.


“정말 내가, 박석진을 그렇게까지 벼랑에 몰아넣었던 걸까······?”


***



“아니.”


백운성이 조용히 답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박석진은 흠칫거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저는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모두 말씀드렸···”

“아니잖아.”


백운성이 가만히 웃었다.

고요한 웃음.

잔잔한 미소가 입가를 타고 기분 좋게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박석진은 어쩐지.

저 웃음이 호통이나 고함보다 더욱 두려웠다.


“다시 묻지. 이 열쇠, 어디다 쓰는 물건이냐.”

“저, 저는 모릅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라고요!”

“뭐, 좋아. 그렇다면 빌런 연맹에는 어떻게 접촉했지?”

“접촉은 그쪽에서 먼저 해왔습니다. 저는···”


박석진의 이어지는 답변을 백운성은 빼곡이 머리에 새겼다.

그 후로도 몇 가지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뒤.


백운성은 마침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끄, 끝입니까?”


뒤에서 박석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으나,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백운성은 곧바로 김민준을 찾았다.

김민준은 같이 나간 이미나와 함께 휴게실에 있었다.

어쩐지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민준이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형님! 그··· 자식은 어떻게 됐습니까?”

“병실에.”


백운성은 짤막하게 답했다.


“그렇게 혼자 놔둬도 되는 건가요?”

“되니까 두지 않았을까.”

“되니까 두셨겠지.”


백운성과 김민준의 말이 겹쳤다.

이미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죽이 참 잘 맞네.”

“그렇게 보이냐? 고맙다.”


김민준이 씩 웃었다.

그런 김민준의 어깨를 짚은 손이 있었다.

백운성이었다.


“당분간, 조심해야겠다.”

“아, 저 말씀이십니까? 그렇잖아도 요즘 운수가 좀 흉흉한가 싶어서 사릴까 싶었는데, 형님도 생각이 비슷하신가 보네요. 그래도 명색이 A급이라 어디 가서 처맞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요즘 참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니야.”


백운성의 목소리에서 심각성을 깨달은 김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백운성의 눈동자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빌런 연맹에서 노린 게, 다름 아닌 너 하나였다고 하니까 말이다.”



***



“···제기랄!!”


욕설과 함께 남자가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콰앙!

주먹이 닿은 곳에서부터 쩌적거리며 금이 가는 모습.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남자는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만 진정하지 그래, 고스트?”

“진정?”


고스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홱 돌린 고개의 끝에 자리한 건 태평한 표정의 여자.

그녀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러고 있으면 내가 팔을 고쳐준 걸 후회할 것 같아. 시끄럽거든. 게다가 먼지도 날리고.”

“고작 그딴 이유로··· 아니, 됐다.”


말을 섞기도 귀찮다는 듯, 고스트가 툴툴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시금 멍한 표정으로 돌아가 머리를 꼬고 있는 여자.

그녀를 향해 브로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부탁했다.


“기왕이면 저 벽도 좀 고쳐주지 그래.”

“음? 나?”

“그럼 너 말고 누가 저걸 고칠 수 있지?”

“싫. 어. 인테리어도 심심했는데 마침 잘됐잖아? 요즘 SNS 감성으로는 저런 게 유행이지 않아?”

“···철이 지난 지도 한참 지났지. 게다가 저렇게 부숴놓고 인테리어라고 우기는 술집 따위는 없다고.”

“지금 나보고 유행도 못 쫓아가는 늙은이라는 거야?”


여자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결국 포기하는 쪽은 브로커였다.


“됐다. 유행이라고 치지 뭐. 제대로 영업하는 가게도 아니니까.”

“야호, 역시 나의 승리!”


V자를 그리며 신나 하는 여자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고스트가 문득 입을 열었다.


“···실패한 건, 미안하게 됐다.”

“그러게. 예상하지 못한 실패였어. 최근 기분 나쁘게 예상이 빗나가는 일이 생기는군.”


브로커가 작게 읊조림과 동시에 각진 얼음을 공중에 던져 올렸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에 둥글게 깎아낸 얼음이, 달그락 소리와 함께 컵에 담겼다.

뒤이어 그가 꺼낸 건 [山崎]이라는 한자와 50이라는 숫자가 눈에 띄는 술병.

뚜껑을 열어 컵에 따르자 곧 그윽한 향이 바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야마자키 50년······!”


고스트가 신음처럼 술의 정체를 토했다.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눈이 반짝이고 코가 벌름거리고 있었다.


“고맙다, 브로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가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힌 컵은 평소에도 고스트가 애용하는 것으로, 그의 손에 딱 맞···


“음?”

“기분 나쁘다고 했잖아. 이건 안 줄 거다.”


그렇게 말한 브로커는 보란 듯 잔을 흔들었다.

그렇게 눈으로 즐기고,

코로 가져다 대어 향기까지 양껏 음미한 뒤.

연이어 꿀렁이는 목울대를, 고스트는 닭 쫓던 개처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너무하는군.”

“공들인 패를 날려 먹은 내 심정을 생각해 보지 그래. 이런 걸로라도 위로 받아야지.”


기분 좋게 치미는 열기와 향미를 즐기던 브로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첫째로, 게이트 등급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정보가 샜어. 그리고 박석진, 아카데미에 꽤 공들여서 심어둔 이놈도 날려 먹었지. 그렇다고 김민준을 죽이기를 했나, 아니면 열쇠를 회수하기를 했나?”

“그래서 참고 있잖아.”


고스트가 투덜거렸다.

실제로 그는 인내심이 많지 않았는데, 관자놀이에 혈관이 불룩거리며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참 고맙군 그래.”


브로커는 술을 한 모금 더 들이키며 빈정댔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만, 변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민준과 함께 사일런스를 잡았다던 C등급. 그놈이 문제였어.”

“말했던 대로라면··· 김민준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지? 자네 팔을 자른 것도 그놈이고 말이야. 정황상 그럴싸하기는 해. 자네 성격상 거짓말을 하지도 않을 테고.”

“그래, 그러니까 한 모금만 주면 안 되겠나······?”

“안되지, 안돼. 이건 벌칙이니까.”

“···망할.”


고스트가 침울하게 중얼대며 쾅, 머리를 바 테이블에 박았다.



***



쾅쾅쾅!


“···뭐야.”


집으로 돌아온 백운성은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멀쩡한 초인종을 놔두고 문을 두들기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지?”


손님의 정체가 짐작조차 가지 않았던 탓이다.

딱 하나 있기는 했으나, 김민준이라면 저토록 문을 두들길 리가 없을 터.


쾅쾅쾅쾅!

점차 거세지는 노크 소리에, 결국 백운성은 안마의자를 정지시켰다.

현관을 열고 나온 그가 대문 너머를 살폈다.


“누굽니까?”

“각성 능력 범죄 수사과에서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맥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가, 그렇지 않은 대답을 하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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