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초패권 국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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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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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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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의 가치를 가진 세자 2

DUMMY

5. 천조의 가치를 가진 세자 2






“세자를 들라하라.”


2년 전 여지승람(輿地勝覺)을 편찬한 성종이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잡덕을 군주로 모시면, 신하들은 갈려나가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혈기왕성하여 후궁은 물론이고 가끔 밤에 기방을 드나드는 것만 제외하면 이런 성종의 잡덕스러움과 정치 양상은 비교적 서지훈의 성향과 맥이 비슷했다.


다만···. 이런 성종과 세자 융과는 신료들의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게 아쉬울 뿐.

편전에 모인 대부분의 관심은 이런 잡다한 것에 있지 않다.

오로지, 유교를 바탕으로 한 바른 정치.

즉, 군주가 왕도정치의 원칙을 바로 하며, 유교적 이념에 부합하는 통치를 수행하도록 보좌하는 것이 이들이 모인 근본적인 이유다.


서지훈 보기에 양복을 입었냐, 한복을 입었냐의 차이일 뿐.

진짜 민생이나 발전적인 이야기와 동떨어진 건 21세기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세자 저하 들었사옵니다.”

“오. 세자. 어서 오라.”

“부르셨사옵니까.”


8살 세자 융의 몸 전체를 덮고도 남을 크기의 종이에 그린 대형 선박과 무기.

신료들은 이런 그림을 그리는 세자야 그렇다 치지만, 군왕이 이렇게 편전에 가져와 공론화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세자가 그린 그림이 맞는가?”

“그렇사옵니다.”


그림과 세자를 번갈아 가며 보는 젊은 임금이자 아비의 눈에선 열정이 이글이글했다.


‘그렇지 사나이라면, 이 정도 스케일로 놀아 줘야지.’


세자가 되기 전 서지훈보다 어린 서른 살의 성종은 굉장한 잡덕이었다.

그런 잡덕 임금에게 명나라의 정화가 원정을 떠났을 때 탔던 보선(寶船, Treasure Ship)과 유럽형 캐랙선(Carrack)의 장점만 따와서 만든 배의 설계도를 쥐여 줬으니······.


“그대들은 이런 선박을 본 적이 있는가.”

“신 이조 참판 김종직, 명나라 유학 시절 그림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사옵니다.”

“그렇습니까, 이조 참판.”


김종직이라는 말에 세자 융은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아는 그 김종직?’


서지훈이 아는 김종직이라면, 이런 그림을 보고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할 인물이다.

이미 정화가 서역을 다녀오고 난 뒤에 명나라를 유학했기 때문에 굳이 배가 어떻고 하지 않더라도 명나라 중심적 세계가 다가 아님을 알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 예조 참판 신종호 세자 저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오. 좋소.”

“우리 조선에서는 지금 맹선을 중심으로 물자 이동과 수군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혹, 이 그림에 등장한 선박은 어떤 특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옵니다.”


조선에선 사람들이 뭉쳤다 하면, 파벌 싸움에 그 자체로 대형 군고구마 통과 같은 형국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금 느슨한 곳에서 개별적이 만남을 가질 때면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세자가 아무리 대통을 이어갈 신분이라고는 하나, 어린아이다.

서지훈이 조선에서 눈 뜨기 전, 큰 형 아들내미가 딱 요 나이였다.

유희왕 카드와 헬로 카봇에 환장하던.

당연히 조카와 대화를 나눌 땐, 절반은 ‘우쭈쭈’ 톤이었다.


‘어이구, 우리 태양이 그랬쩌요?’ 이렇게.


그러나, 지금 이조 참판 김종직과 예조판서 신종호의 어투는 무척 격조 있고, 정중했다.


그림 자체가 무척 자세하고 기발하기도 했지만, 이런 그림에서 현재 조선에서 이용되고 있는 선박과의 비교와 목적을 8살에게 물을 줄이야······.


“조선의 맹선은 다양한 크기로 제작하고 있기에 활용도가 높으며 강도가 높고 견고합니다. 이렇게 안정적인 형태로 크기를 소 중 대로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기에 지형과 사용처에 따라 승선 인원과 화물의 수용력 조율에 용이합니다.”

“오호. 우리 조선의 맹선이 그리 우수한가.”

“예, 아바마마.”

“헌데 이런 모양의 선박을 그린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바다로 화물을 나르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상으로 옮기는 것보다 힘을 절약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많은 물자를 한 번에 나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맹선의 아래쪽은 무척 편평합니다.”

“그래야 안정하지 않은가?”

“소자가 연못에서 나무를 깎은 배와 종이배 모두를 띄워 본 결과 이렇게 아래가 뾰족하더라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뜰 수 있습니다. 물론, 추가적인 실험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큰 배와 작은 배는 서로 다른 변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 위에선 방향을 트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물 위에 아무것도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암초가 있고, 섬이 있으며······.”


서지훈은 이대로 두 시간 세 시간 떠들라면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적당히, 임금과 신료들의 눈도 마주쳐 가며, 그들의 대답과 질문을 받아가며.

밥만 준다면, 내일까지도 이대로 떠들 수 있었다.


잡덕인 성종은 물론이고, 김종직과 신종호는 이런 세자 융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세자의 설명대로라면 우리 수군의 해상 기동력이 지금의 서너 배 이상으로 빨라지겠구나.”

“어디까지나 작은 배로만 실험해 본 것이기에 사고(思考)적 틀 안에서만 그러합니다.”


이쯤에서 한 템포 뒤로 물러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지금 분위기가 ‘세자가 좋은 배를 구상해냈다.’ ‘훌륭하다’ ‘우리 수군 만세’라고는 하지만 한 가지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조선은 조선이라는 거.

또한, 지금 세자 융이 그린 걸 단순히 칭찬하는 자리에선 파벌을 내세울 필요도 없을 테니.

허나, 서지훈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김종직과 신종호는 서로 정치적인 노선이 같지는 않다.

그렇기에 나중에 수군을 강화할 수 있다는 명목이 어떤 파에서 어떻게 역으로 나올지 모를 일이다.

막말로 명나라와의 관계를 들고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기에 편전에선 딱 ‘우리 융이가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는 왕자에요’까지만이 적정한 선일 터.


마지막 정리는 스무스하게 시강원에서 배운 유교적 시사 퀴즈로 이들의 추가 질문을 막아 버렸다.


이런 깔끔한 발표와 마무리에 성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나 선박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 유교적인 학문의 정도가 깊은가는 다른 문제였다.


세상의 어느 임금이 신료들간 파벌 싸움에서 자유로울까.

하다못해 대학을 제외한 초중고 같은 교육과정을 12년 배운 21세기의 정치인들마저도 간혹 의견이 틀어지면 주먹다짐까지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편전이 됐든, 정전이 됐든, 마지막에 신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임금의 말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로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것.

똑똑하고, 강한 카리스마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부드럽게 시료들의 입을 닫을 수 있는 임금이야말로 태평성대를 이끌 수 있는 최고 능력자임에 틀림없었다.


***


“왜구가?”

“그렇사옵니다.”

“세자는 그런 소식을 어디에서 들었는고?”

“아바마마께서 고심하시는 모습을 보고 여쭈었더니,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처럼 인수대비와 후원을 거닐던 중, 세자 융은 성종에게서 들었던 동래 앞바다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일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여전히 대가 센 왕실 어른이었으나, 서서히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게 싫었던 탓에 자신을 무척 따르는 세자를 불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세자 외엔 이런 이야길 해 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융 특유의 화법 때문에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인수대비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왜구들은 어찌 되었다고 하누?”

“일부 포로로 잡았으나, 대마도 유력 가문과의 합의로 포로와 약간의 배상금을 나누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일벌백계(一罰百戒)하여 다스리지 않고 그리 스리슬쩍 넘어갔을고?”

“아마도 논어 옹야편의 지지이후유정(知止而后有定)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조선에서 전에 없던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기에 때론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는 이가 내미는 화해의 손을 잡아 줄 아량도 필요하다는 이치가 아닐는지요.”


사실, 이런 크고 작은 왜구와의 일전은 삼포왜란과 같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에 서지훈 역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전산화에 CCTV가 수도 없이 깔린 대한민국에서도 누락되는 기록이 많다.

하물며 조선에서야···. 제대로 벌어진 전쟁이 아니고서야 일일이 기록이 어려울 수도 있고, 후대에 남겨주지 못하고 전쟁통에 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럼 우리 세자는 앞으로 왜와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치고 싶은고?”


후원 소풍 나왔다가 이런 날벼락이 있나···.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정책이나 정치 노선이나 포부를 이야기하는 건 자칫 현 치세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진성대군까지 태어난 마당에 인수대비의 이런 질문 하나하나는 서지훈에게 넘어야 할 산이며 시험대였다.


“소손은 ......”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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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조의 가치를 가진 세자 2 +5 24.09.10 782 19 9쪽
4 천조의 가치를 가진 세자 1 +4 24.09.09 815 22 9쪽
3 내 조선에 AI는 필요없다. +3 24.09.08 863 22 10쪽
2 감전(感電) +3 24.09.07 862 24 8쪽
1 프롤로그 +3 24.09.07 842 2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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