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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작품등록일 :
2024.09.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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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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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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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선에 AI는 필요없다.

DUMMY

3. 내 조선에 AI는 필요없다.






“연일 비바람이 몰아쳐도 연못에 나가 놀더니······. 세자는 또 한 번 이런 일이 발생했을지,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예, 아바마마.”


서지훈은 언젠가 꿈에서 이런 상황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

언젠가도 아니다.

정확히 연산에 관한 방송 하루 전이었다.


연못에 있던 연꽃이 모두 꺾여 날아가고, 연잎은 사방에 흩어졌다.

온통 흙탕물로 변해 버린 연못의 물은 거센 바람에 사정없이 뒤집어졌다.

그 위에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돛단배를 어린아이의 손으로 띄웠다.

서지훈은 똑똑히 기억한다.

곤룡포를 입은 자가 그런 자신에게 융이라 칭하였다.

거짓말처럼 융의 손을 벗어난 배는 거센 연못의 물과 상관없이 미풍에 돛단배 움직이듯 일렁일 뿐.

전혀 뒤집힘 없이 굳건했다.


그리고 융은 말했었다.


‘이것이 나의 조선이다.’ 라고···.


사흘 내리 누워 있었다.

이미 서지훈의 몸은 세자였다.

아비와 어미의 대화를 들으니, 금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융?

나이는 여덟??


더 듣지 않아도 뻔한 인생이다.

작년에 생모인 윤씨가 사사되었을 것이고.

종합해 보면, 서지훈은 지금 연산이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방송 끝에 후원창에 천조가 떴고, 암전 후 감전됐던 사실만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래도 그렇지.

기왕이면 오래 살고, 왕권 튼튼한 왕도 줄줄이 있는데, 하필···.


정신줄을 놓치는 순간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다.

눈을 뜨고 너무 고민을 많이 탓인지 사흘 내내 고열에 시달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서지훈은 결론을 내렸다.


‘기왕 돌아갈 수 없다면, 제대로 즐겨야지. 인조이 조선 프린스 라이프.’


노비나 걸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어디인가.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스러운 건, 서지훈이 살다 온 21세기 자신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스트리머로서 연산 방송 전 읽은 책과 논문만 서른 권이 넘는다.

연산군의 인간성, 정치, 경제, 그 당시 조선과 세계 정세까지 두루두루.


발췌독이긴 했지만, 그래도 맨땅에 헤딩은 아니라는 거.

직접 겪은 것 이상으로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서지훈 스스로가 걸어 다니는 역사 AI급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전의 극진한 간호로 살아난 뒤, 서지훈은 세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해야 했다.

아무리 여덟 살이라도 일단 병을 털고 일어났다면, 얄짤 없이 폭풍 같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지금 앉아 있는 곳이 시강원(侍講院)이다.

말로만 듣던 세자가 수업을 받는 곳.


21세기를 살다 온 서지훈은 영어와 한글은 자신 있지만, 한문은 7-8급 수준 밖에 안 된다.

문제는 시강원에 앉아 있는 지금이 한문의 시대라는 점이다.

그동안 숱하게 논문을 살폈어도, 한글로 읽었지, 한문으로 읽은 게 아니지 않은가.


스승인 세자사(世子師)가 들어오기 전 최대한 서책을 읽어 봤다.

어떻게든 아는 한자라도 몇 개 챙겨 놓으려고.

그러다 뜻하지 않은 능력을 발견하게 됐다.


‘내가···. 한문을 이렇게 술술 읽을 줄 알아?’


한문을 그냥 읽는 데서 끝난 게 아니다.

이미, 내용을 터득한 것처럼 막힘없이 머릿속에서 정리까지 완벽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할 만하겠는데!’


오늘의 스승은 조지서였다.

연산 즉위 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연산에 의해 참살되었던.


논쟁과 토론에서 한 번도 져 본 일이 없는 서지훈이다.

풍간(諷諫)으로 유명한 조지서와의 만남에 은근 학구적인 기대감이 솟구쳤다.


‘드루와.’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다음 구절을 읽어 보시지요.”

“자왈.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락지자.(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뜻을 말씀해 주시겠나이까.”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학문을 아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중요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혹, 이 구절을 백성을 다스리는 이치와 어떻게 연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논문과 야사에서 읽은 대로, 조지서는 칭찬은 짧게, 그리고 뒤이어 질문 세례를 끝도 없이 난사했다.


서지훈은 자신감 있되 겸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키고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이 사람은 백성을 배불리고, 편안할 수 있도록 다스리는 일을 매일 매시간 겸손되이 숨 쉬는 것처럼 할 것입니다.”


과연 훈학자답게 조지서의 어투는 예의 있고 반듯했다.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 마다 묘하게 드는 반발심에 연산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겉보기엔 여덟 살이지만, 스트리머로서 매운 댓글과 비아냥에 거의 전투적인 8년을 살아왔다.

줄고소 없이 오직 말발 하나로 333만을 지켜낸 역사 스트리머계의 이순신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조지서 정도의 말투는 전혀 당황스러울 게 없었다.

나이 불문하고, 조선은 서열과 직급이 깡패 아닌가.


대학 시절 이런 부류의 경우를 이미 겪어본 바 있는 서지훈이다.

수강 신청 실수로 F 폭격기 교수의 수업을 전공 필수로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수강 정정 기간까지 놓쳐서.

아무리 교수가 F 폭격기에 미친 깐깐함으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교수가 가르치는 분야를 좋아하고, 심지어 잘하기까지 하면, 표정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수업에서 서지훈은 유일한 A+였다.


세자, 이융이 된 서지훈 앞에 있는 조지서 역시 그러했다.

엄격하고, 집요할 정도로 돌려 까길 잘했다는 기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융을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강하고, 엄격한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학문으로 다가서는 사람에게는 호의(好意)적일 수밖에 없는 법.


외유내강은 21세기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대인관계 전략임을 조지서와의 수업에서 분명하게 깨달았다.


다만, 서지훈은 마냥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은 못 된다.

나름의 성깔이라고 해두자.

서지훈은 조지서의 풍간(諷諫)이 선을 넘을 시, 노빠꾸 뺑이로 보답할 생각이다.


같은 전략으로 서지훈이 대해야 할 인물이 대궐 안에 수두룩이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데 벌써 서지훈의 눈에 거슬리는 인물만 열 명이 넘었다.


***


아직 진성대군이 태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대궐의 온 관심은 세자, 융이었다.

역사적인 사실과 동일하게 흘러간다면, 지난해에 생모인 윤씨가 사사된 일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서지훈은 은근 세자의 눈치를 살피는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 할머니인 인수대비와 아버지인 성종은 세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 애틋했다.


포악한 연산이 만약 지금 나이에 자신의 어머니가 할마마마 때문에 사사된 걸 안다면, 두고두고 복수를 다짐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재임과 동시에 폐위되기 전 2년간 저지른 폭정을 미리 시작했을지도.


다행히 몸은 세자, 이융이었지만, 서지훈에게 그런 복수심은 들지 않았다.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고작 복수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훗날 조선 10대 왕이 될 운명만으로도 서지훈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조용한 대외 정세와 국내의 평화로움.

적장자로서의 정통성.

이런 태평성대의 왕자가 날이 갈수록 전에 없던 영민함까지 갖췄다?


아비인 성종과 중전은 물론이고, 인수대비는 대놓고 세자를 끼고 돌았다.

성종 붕어 이후, 고민의 시간을 갖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손자이자 세자가 아닌가.


한동안은 적당히 주변을 살피며 지켜보는 시간을 가졌다.


태평성대가 좋긴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개혁과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싫지.

발전은 싫으면서 파벌싸움의 씨앗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에 평화스러워지면, 권세 누리고 돈 많은 놈들은 고여서 주둥아리로 정치를 하고, 나라는 썩어가고.


굳이, 읽고 온 논문을 기억해 낼 필요도 없었다.


서지훈은 쓸데없는 힘의 분산 따위에 열을 올리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먼저 떠올렸다

어차피 왕이 아닌 이상, 이 땅에서 세자로서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말하기 좋아하는 놈들에 의해 역모의 올가미를 쓰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을 위한 빌드업이 가장 시급했다.

당분간은 그 대상이 인수대비였다.


대비전 문지방이 닳도록 할마마마를 찾는 세자의 행동 덕에 인수대비는 서서히 폐비 윤씨로 인한 긴장으로부터 무장해제를 했다.


‘꺾지 못하면 녹여라.’


인수대비는 조선 초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인물이다.

서지훈은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자유롭게 넓히기 위해, 인수대비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선을 다해 똘똘하고, 순수해 보여야만 했다.

마치 예전에 짤로 많이 돌아다녔던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망울처럼.


***


“주상전하 듭시오.”


생각한 것보다 성종은 상당한 아들 바보였다.

첫 자식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최근 대궐에서 돌고 있는 소문 때문 이리라.


“아바마마.”

“듣자하니, 근자에 세자가 글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세자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무얼 하고 있었는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사옵니다.”

“그림?”


이 시대, 세자들에겐 시, 서, 화 등의 다양한 예술적 소양 교육이 허락되었다.

자신의 그림을 흥미롭게 보는 성종에게 융은 말했다.


“천자총통을 단 전함이옵니다.”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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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조의 가치를 가진 세자 2 +5 24.09.10 717 18 9쪽
4 천조의 가치를 가진 세자 1 +4 24.09.09 753 20 9쪽
» 내 조선에 AI는 필요없다. +3 24.09.08 798 20 10쪽
2 감전(感電) +3 24.09.07 791 22 8쪽
1 프롤로그 +3 24.09.07 764 2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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