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헌터의 은밀한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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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르까뮈
작품등록일 :
2024.09.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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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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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면 변하지!

DUMMY

‘여긴 어디지?’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 그리고 중앙아시아 미인 같은 수녀,


오래전부터 혁수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걱정과 기쁨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녀.


금지된 사랑에 괴로워하다 그의 부상 소식을 듣고 수도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만나러 왔겠지.


들킨다면 그녀는 늙은 수녀원장에게 채찍을 맞을 거야.


‘제기랄, 하필! 수녀 따위가 되어서.’


아쉬움에 혁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난 회귀한 게 분명해.’


혁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멀쩡한 얼굴과 몸으로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삶.


망가진 얼굴, 부러진 허리. 그런 몸으로 치열한 경쟁 속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긴 힘들다.


차라리 죽어서 다시 중세의 기사로 태어나는 게 훨씬 이득일 것이다.


기왕이면 마법까지 구사할 수 있는 먼치킨이 된 기사.


하지만, 미나는?


그녀도 분명 여기 어딘가에서 환생했을 거다.


“몇 년도입니까? 1,500년대 경?”


“202X년 대한민국이에요.”


‘젠장, 회귀가 아니었군’


“이제 정신이 드시나?”

차디찬 지성이 줄줄 흐르는 매끈한 미남, 가운뎃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면서 내게 묻는 사내.


분명, 경찰서로 찾아왔던 그 변호사였다.


“그때 뵈었죠? 조너선 박, 법무 인사팀장입니다.”


“팀장님, 제가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죽었던 것 같은데.”


“아뇨,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참, 이제 우리 회사 사원이니 말 편하게 하겠네. 자넨 그냥 날 박 팀장님이라 불러.”


‘이것들이 나만 보면 반말하려고 해. 동안인 게 죄지.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반말은 동안이라서 하는 게 아니지.’


자신이 회사에 일원이 되었다는 소속감에 혁수는 스스로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 불쾌하지 않아.’


코가 내려앉고 척추가 박살 난 중상을 입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자네 얼굴 재건하는 건 현대 의술로 해결했고, 허리는 그걸로 안되니까 이렇게 아그리스를 부른 거지.”


“수녀님은 척추전문의이신가요?”


“풋!”

그녀가 하얗고 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었다.


박 팀장은 고개를 돌려 수녀에게 말했다.


“수녀님, 고단하시죠? 힘 많이 쓰셨을 텐데, 이제 가셔서 좀 쉬세요.”


“네, 조금 피곤하네요. 간만에 힘을 썼더니···.”


박 팀장은 안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수녀에게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얼른 가셔서 쉬세요.”


봉투를 가방에 넣은 아그리스는 혁수에게 다가왔다.

고운 두 손으로 이불을 혁수의 가슴까지 끌어 올려줬다.

상체를 숙인 그녀의 숨결이 혁수의 쇄골에 닿았다.


‘헉!’


그리고 야릇한 눈길을 혁수에게 보냈다.

뜻하지 않은 친절에 그의 얼굴이 발갛게 되었다.


“치유는 비즈니스, 이건 선물. 다음에 봐요.”

윙크를 찡끗하며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에 혁수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녀가 병실 문을 열고 사라지자 박 팀장이 말을 이었다.


“저분은 외주업체랄까. 사실, 수녀도 아니지만···. 뭐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겠지.”


“에, 수녀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왜···.”


“내가 남의 속사정을 함부로 떠벌리는 그런 남자로 보이나?”


수녀가 아니란 소리에 혁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요즘은 말이야. 현대 의학이 발달해서 어지간한 건 다 고치지. 하지만, 혁수 씨가 당한 부상은 현대 의학을 다 동원해도 고치기 힘들어. 보통 사람 같았음 평생을 휠체어 타고 다니게 됐겠지.”


“그럼 저분은 사설 치료사신가요?”


“우린 ‘기적의 여인’이라고 부른다네.”


기적의 여인?

맞아, 저런 지나친 아름다움 자체가 기적이야.


“저분은 어떤 병도 고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야. 그래서, 회삿일 하다 다친 우리 직원 중에서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이들을 가끔 치료해주시지.”


“정말요? 감사합니다! 회사에 죽을 때까지 충성하겠습니다.”


“뭐, 고맙다면 여기다 지장만 살짝씩 찍어주게.”


박 팀장은 누런색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한쪽 눈까지 붕대를 감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죠?”


“뭐, 조금 전 혁수 씨가 했던 맹세를 글로 이쁘게 적은 거.”


“근로계약서 같은 건가? 그래도 약관을 꼼꼼히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 전 맹세가 거짓이었나?”


“아, 아뇨···. 그럴 리가. 전, 진심입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박 팀장은 혁수의 엄지를 끌어다 서류 여기저기에다 마구 지장을 찍어댔다.


한쪽 눈으로 스쳐 보이는 계약서의 문구들은 대충,


······했을 경우 직원은 무한 책임을 진다. 또한,

······했을 경우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가득했다.


혁수의 등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자, 이제 끝났어. 자넨 우리 회사 정식 인턴이야.”


“인턴요? 정규직 아니었던가요?”


“으하하···. 요즘 시대 누가 바로 정규직 뽑아? 일 년 일 시켜보고 괜찮다 싶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아, 일 년이나요······?”


혁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백수였는 데, 인턴이라도 된 게 어딘가?


“인턴 동안은 급여 50%는 공제될 걸세, 그리고, 음 노조 따위 허용 안 하는 회사니까 명심하고.”


“네에? 50%요?”


“그럼, 아까 아그리스가 해준 치료비, 자네 얼굴 성형비 등등 누가 부담하겠나?”

“그건 회사 복지 아니었나요?”


“맞지, 사내 복지, 저리로 길게 길게 빌려주는···.”


왠지 당한 느낌이었다.


혁수는 자기가 마구 찍어댄 지장이 앞으로 그에게 어떤 속박이 될지 이 순간 꿈에도 몰랐다.


정상적인 삶을 되찾게 해준 고마움에만 차 있을 뿐.


“아그리스가 자네 수술한 얼굴 부위도 말끔하게 치유했으니 얼굴 붕대는 풀어도 되네. 참, 성형은 코만 살짝 복원했다고 하더군.”


“그럼 왜 붕대를 미리 안 풀어주시고.”


“그거야 계약서 사인할 때···. 아닐세. 어험!”


갑자기 서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부터 자네는 우리 회사의 수련원에서 연수를 받게 될 걸세.”


“수련원도 있어요?”


“우린 대기업이야! 얕보지 말게. 그나저나, 오늘 밤까진 누구와도 접촉하지 말고 곧장 자네가 살던 곳으로 가서 짐을 챙기게. ‘광명고시원’이라 했나?”


“네 맞아요. 그렇게 할게요.”


“그럼, 저녁에 거기로 데리러 가지.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박 팀장은 미끄러지듯 병실 밖으로 나갔다.


나이는 혁수와 비슷해 보였는데 말투는 60대 말투였다.


역시, 인생 2회차인가?


혁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역시 아픈 부위는 없었다.

뒤통수에 있는 반창고를 서둘러 떼가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사실 코가 자신의 자랑스러운 부위라고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그의 굵직한 코는 평생의 콤플렉스였다.

어쩌지도 못하는 못난 코를 인정해버리면 더 초라해질 것 같아 애써 자랑인 체 해왔다.


부끄러운 자식 같았던 코가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다시 태어나는 거야! 멋지고 날렵한 코로.’


붕대가 사과 껍질처럼 벗겨지자 맨 얼굴이 드러났다.


‘헉! 이럴 수가.’


거울 속 그는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완전히 잘생긴 미남.


길고 그윽한 쌍꺼풀 없는 서글 서글한 눈매,

오뚝한 콧날과 다부지고 예리한 입술.

손이 베일듯한 날카로운 턱선.

반듯한 이마를 살짝 덮어 찰랑거리는 반곱슬 머리칼.


‘이런 얄미운 거짓말쟁이들. 코만 살짝 재건했다 해놓고···.’


다 건드린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잘생겨질 수가.


심지어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린 쾌남 엘리까지 고마웠다.


마치 엘리의 환영이 왼쪽 어깨 위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미소를 짓는 듯했다.


‘쾌남 엘리 붹, 잊지 않겠어.’


하지만 이렇게 다시 태어나게 해준 것은 역시 회사였다.

출근하기 전부터 가슴속의 애사심이 불끈 솟았다.


이제 아그리스가 혁수에게 친절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으하하···.”


기쁨이 터져 나오는 걸 주체하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크게 미치광이처럼 웃어 재꼈다.


“어머, 환자분, 무슨 일이세요?”


간호사들이 급하게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밖에서는 웃음과 비명이 구분되지 않을 괴성이었으니까.


“아, 아닙니다. 후후···.”

마음을 가라앉히려 목소리를 깔았다.


“다, 다행이시네요.”

눈길이 마주친 간호사들의 볼은 빨개지고, 눈에서 선망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여자들에게서 이런 눈길을 받아보는 거.


“아니야!”

갑자기 고개를 휘저으며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간호사들이 깜짝 놀랐다.


‘나에게 이런 눈길을 준 사람이 있었지.’


‘바로 미나!’


‘못난 코를 갖고 있을 때도 사랑해 줬었는데, 잊고 있었다니···.’


“간호사님들, 저는 괜찮으니 그만 나가보시죠.”


“네에~ 혹시라도 불편하신 거 있으시면 벨을 눌러주세요.”


“아닙니다. 지금 너무 편아안합니다.”


얼른 퇴원해서 고시원으로 가야겠다.

퇴원 절차를 밟는 동안에도 전화번호를 요청하는 간호사들에게 살짝 시달렸다.


‘오늘 밤까지 누구와도 접촉하지 말고···.’

박 팀장의 말이 생각나서 물론 알려주지 않았다.


버스에서 할머니를 만난 이후 그의 몸에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 그는 힘을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아차! 그래, 할머니! 할머니가 준 책이 있었지.’


‘뭐든,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 봐야 하는데.’


비록 한자로 되어있어서 읽지 못했지만, 지금 달려가서 그 힘이 비밀을 풀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바뀐 혁수의 모습이 그를 괴롭혔다. 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를 보며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여인들.


‘젠장, 불편해. 오토바이라도 사야겠어. 이런 얼굴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구.’


“네에? 제 짐을 다 가져갔다고요?”


“근데, 총각 맞나? 얼굴이 우짜다 그리 됐노?”


“축농증 치료하니까 코가 날렵해지고, 그러다 보니 눈매와 턱선도 교정돼서···.”


“옴마야! 참말로 잘 생깃데이! 딸 있음 냉큼 주고 싶다야.”


“아주머니,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근데, 제 짐을 누가 가져갔다고요?”


“시커먼 양복 입은 사람들이 눈앞에다가 뭐 신분증 같은 거 뜩 들이대드만, 다 가져가더라고.”


“아니, 그래도 제 짐인데 그걸 다 가져가게 하시면···.”


“내사 마 총각이 이리 빨리 나올 줄 알았나? 잡아갈 땐 뭐, 바로 총살시킬 죄인 맹크로 잡아갔다 아이가.”


‘후···.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한테 더 따져봐야 소용이 없겠지.’


“혹시라도 명함 같은 거라도 안 남기던가요?”


“몰라! 뭐 내보고 국가를 위해 헌신 어쩌고 하면서 개나발만 불고 갔다고. 그랄끄면 금리나 좀 낮춰 주든가···, 시부럴··· 시부럴···.”


도대체, 누가 내 짐들을 가져간 거지?

방에는 정말 팬티 한 장 남은 게 없었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오직 혁수의 가방.


미나가 생일 선물로 사준 가방.

그리고 안에 선물로 받은 책.

그것 만이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고시원 방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빈손으로 들어간 고시원은 빈손으로 나왔다.


-빵, 빵빵!


약속대로 박 실장의 차가 고시원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짐은 좀 챙겼나?”


“아뇨, 양복 입은 사람들이 와서 다 가져갔다고···.”


“그래? 국정원 놈들, 호들갑들은···. 그래 뭐 중요한 거라도 있었나?”


“구, 국정원 요?”


혁수는 할머니에게 받은 책 이야기하려다 입을 닫았다. 왠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은 휴게소에서 먹을걸세.”


“휴게소요?”


“연수원, 강원도에 있어.”


“네에? 강원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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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 원장 가족의 몰락 NEW 16시간 전 6 0 12쪽
10 부부의 세계 24.09.17 6 0 11쪽
9 환영의 신부 24.09.16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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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상한 사무실 24.09.14 8 0 12쪽
6 평범한 신입 사원 연수 24.09.13 6 0 11쪽
» 취업하면 변하지! 24.09.12 11 0 12쪽
4 백 실장의 습격 24.09.11 12 1 12쪽
3 경찰서의 불청객들 24.09.10 12 1 11쪽
2 성혈(聖血)의 빛 24.09.09 14 1 12쪽
1 눈물 그리고 피 24.09.09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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