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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은
작품등록일 :
2024.09.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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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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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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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

DUMMY

갑자기 되도 않는 애교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쳐다본다. 솔직히 미덥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것저것 따질 상황도 아니고 뾰족한 대책을 학교에서 자신을 위해 강구해 줄리도 만무했다.


교장 선생님 속셈 모르겠나. 오직 날 희생양 삼아 회장님 발차기의 방패막이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게? 네가? 뭐라고 하려고?”

“저한테 그건 맡겨주세요. 진짜예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믿어주세요.”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믿어 달라고? 웃기고 자빠졌네. 남은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를 닥치고 그냥 믿어라? 입장을 바꿔서 너라면 믿겠니?


“그 대신 수학여행 일정은 그대로 소화하는 걸로요.”


하나 내줄 테니 하나 달라, 어찌 보면 딜의 정석 아닌가? 하지만 나한테 줄게 믿을 수가 있어야지.


‘뭘 어떻게 할 건데? 이 자슥아, 선생님을 뭐로 보고는 너 같은 마음을 뭐라 하는지 알아? 놀부 심보라 하는 거야.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하려는.’


결론은 못 믿겠다. 그러니 단호하게,


“그건, 안돼!”

“선생니~ 임.”

“교장 선생님께서 이미 철수하라고 지시하셨어.”

‘선생님, 정말 이렇게 나오실 거예요?’


한별의 요청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아버님은 어떻게 할 건데?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무언지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꼭 뭔가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란 식으로 심드렁하게 말한다.


딴 거 없다. 줄 것은 없고 받기만 하겠다는. 어? 그거 좀 전에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놀부 심보.


이제 지금부터 한별은 천재성을 발휘한다.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하는 수 없죠. 자진해서 동맹을 맺길 거부하시니 강제라도 해야지. 아직 모르세요? 우리는 한배를 탈 수밖에 없는 몸이라고요.’


뭔가 작심한 듯 한 쪽 입꼬리를 스윽, 올리고는 선생님으로서는 기분 나쁠 만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요? 그럼, 저도 어쩔 수 없죠. 다시 여쭤볼게요. 수학여행은 안 된다는 거죠”

“아니, 이 녀석이 까마귀 고기가 아침 병원식에 있었나, 몇 번을 얘기하게끔 해. 왜, 또 못 들었어? 아까처럼? 안돼. 절대 안 돼. 네버, 네버.”


입을 삐죽 내밀어 물고는 고개를 까닥까닥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침대에 있던 전화기를 들어 불편한 손가락으로 띄엄띄엄 초성을 입력한다.


갑자기 뜬금없는 전화, 혹시? 불안이 엄습해 온다.


“어디다, 전화해?”


한별,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한 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아버지한테요.”


아버지에 아만 들어도 놀라 까무러치겠는데 아버지라고 다 말했다.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며 오금이 저려온다.


‘대책을 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아무 대책도 대비도 없이 그냥!’

“아, 왜? 왜왜? 왜? 아, 한별아 왜!”


좀 전 한별의 행동을 컨트롤C 컨트롤V하는 선생님. 하지만 놀라는 선생님에게 눈길 한번 안 주고 핸드폰을 만지며 태연자약하게 말을 건네는 한별.


“왜긴요. 아니, 뭐 수학여행도 못 하고 돌아가는 마당에 아버지한테 자식 된 도리로서 전후 사정 말씀드려야죠. 제가 올라가서 말씀드리면 다친 것 보고 얼마나 놀라시겠어요. 그러니 사전에 말씀드려야죠. 孝,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던 거잖아요.”

‘아~ 나, 이 자식이!”


한별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래서, 뭐라고, 전화해서 뭐라고 말한 건데?”

“뭐라고 말씀드리긴요. 좀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내가, 뭘?”

“교장 선생님께 거짓으로 보고하란 말이냐? 저한테 따지듯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한 점 거짓 없이 그대로.”

“그대로? 그니까, 그대로가 뭔데?”


선생님 숨넘어간다.


“선생님, 주무시는 사이에 여자애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불량배들한테 농락당하고 있는 걸 제가 발견해 막다가 좀 다쳤다. 그래서 수학여행 취.”


바로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 전체적인 사실관계는 맞는데 어느 한 단락이 심하게 귀에 거슬린다. 눈을 똑바로 뜨곤


“야야, 야, 그건 아니지. 그게 진실이야? 그게 팩트냐고? 한별아, 왜 그러니. 누굴 두 번 죽일라고, 왜 한 번으로는 부족해?”

“그럼, 뭐가....?”

“우린 틀림없이 안 자고 있었어. 그게 팩트지.”


한별 이상하리만큼 바로 수긍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선생님들은 안 주무셨는데 애들이 나가는 걸 몰랐다. 맞죠? 뭐 하시느라 몰랐을까?”


갑자기 아픈 팔로 팔짱을 끼더니


“스흡, 고스톱이라도 치셨나? 아니면 선생님께서 포커를?”

“야!! 야!! 야!!! 우린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정말이야. 내 심장을 꺼내 보일 수도 없고 정말 환장하겠네.”

“그니까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여자애가 한두 명도 아니고 여덟 명이 단체로 우르르 나갔는데 왜 모르셨나, 모르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관리의 책임이.... 아무튼.

‘헉! 관리의 책임? 윽!’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저희 아버지 성격 아시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음... 그러니 애당초 여학생들이 나가는 걸 발견해서 막기만 했어도 내 아들 손이 요 모양 요 꼴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이런 나쁜 놈 물귀신 작전이구나.’

“하하, 한별아, 전화기 일단 내려놔. 내 얘기를 듣고.”


어째 돌아가는 모양새가 자폭 테러범이 폭탄 스위치를 누르려 하는데 애절하게 설득하고 있는 모습인데.


“아뇨, 일분일초라도 먼저 말씀드리는 게 孝죠.”

“아아, 알았으니까 내 얘기 좀 먼저 들어주라 어? 소원이다. 제발~~”


말투가 벌써 애원조로 바뀐 것 같은데. 다행히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보려 전화기는 일단 내려놨다.


“어, 그,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전화기는 내려놨는데 설득할 말은 생각지 못했다. 할 말이 없으니, 속만 까맣게 타고 있는데 탄 연기 속에서 뭔가 나왔다.


“아아, 그러니까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래, 그래. 이거야. 효 중요하지.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고 또 강조했잖니?”

“네, 그러셨죠.”

“그런데 효를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거야. 내가 수업 시간에 얘기했지? 효라는 한자가 상형문자로 자식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업어드리는 모습을 글로 표현한 거라고.”

“네.”


어느새 한별은 관전하는 태도도 변해 있었고 그 모습은 흡사 어서 말씀해 보세요. 설명해 보시라니까요. 깐깐한 면접관 모드였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끊지 마시고.”

“어, 그래. 업어드리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도 효지만 부모님의 근심을 덜어 드리는 것도 효라는 거지. 알지? 알잖아. 이거 무척 중요하다 너. 암, 중요하지.”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하는 1인극을 계속 이어간다.


“근데, 너 너, 네가 지금 전화상으로 말하면 부모님의 근심거리를 아주, 아주 크게 만든다는 거지. 멀리 떨어져 있으시니 널 볼 수 없잖아. 물론 화상통화가 있지만 실물로 볼 수 없으니, 근심은 더하실 거야. 그러니 결론적으로 아주 작은 근심거리를 큰 근심거리로 만들어 불효를 저지르는 행위라는 것이지. 좀 전에 너의 방식은.”

‘헹, 작은 근심거리요? 작은 근심거리로 전체 수학여행을 취소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이 자식아, 너희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면 비행기 편이 없으면 비행기를 전세 내서라도 날아 오실 분이야. 그러니 좀 살려주라, 어.’


둘만 있으니, 속내를 탁 터놓고 말로 해도 되는 데 굳이 복화술로 대화를 이어가는 둘이다.


“너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알죠. 아는데 둘 중에 어떤 거요? 저는 다 알아들었는데 살려달라는 복화술과 전화하면 효가 아니라는 말 둘 중에 어떤 거요?’

‘둘 다지. 이 자식아, 날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어.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했냐!’


선생님은 들어주겠다고 말해 달라고 제발 고개만이라도 끄덕여 달라고 갈구의 눈빛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다음 말이 있어야죠? 설마 놀부 심보 그대로 갖고 계신 건 아니죠?’

“어어, 어, 내가 잊은 게 있네.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아까부터 근심이 떠나지 않더라고 나도 그게 뭔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네가 깨우쳐 줬잖아.”

‘제가요? 제가 뭘?’

“孝, 수학여행을 갑자기 취소한다는 것은 400명 학생의 부모님께 근심거리를 만들어 결국에는 불효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을 불효자로 만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수학여행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 이거야말로 부모님들께 근심거리를 없애주고 효를 행하는 것이다. 맞지?”

“그렇죠, 그렇죠. 그거예요. 맞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왔으니 격하게 호응하는 한별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너와 심도 있는 대화가 끝나면 교장 선생님께 전화해서 따지려 했어. 당신이 무슨 결정을 한 줄 아느냐? 400명의 학생 전체를 불효자로 만들려 한 거다.”

“암요. 암요.”

“그러니 무조건 수학여행은 일정대로 진행해야 한다.”


선생님은 말씀하시면서도 점점 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자신이 초라해서 그러는 건지, 비참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에이~ 씨, 처량한 내 신세. 내 목숨줄이 수학여행에 달려 있구나.’

“아~ 하 그러려고 하셨구나.”


한별은 그렇게 영혼 없는 추임새를 이어가며 빠른 다음 행동을 할 것을 부추긴다.


“그뿐이니? 한 번뿐이 없는 수학여행을 취소한다면 친구들이 널 얼마나 원망하겠니? 그지? 그렇지?”

‘역시!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미처 생각 못 한 부분까지 찾아내 주시다니, 그 명석함에 감읍할 따름입니다용. 수학여행을 꼭 진행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찾아 주셨으니 어서, 어서, 실전에 가서 써먹으셔야죠. 다 쓰세요. 다 써, 아껴두면 똥뿐이 안 돼요.’


선생님의 명석함에 호응하며 격하게 탄복해한다.


“그렇죠. 제 말이 그 말이었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이제, 고2가 그 원망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겠냐고요. 애들 원망이 주홍 글씨가 되어 평생 저를 따라다닐 텐데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 한별 날 잡았다. 오버페이스하기로


“그뿐인가요? 몸을 다쳐가면서 여자애들을 구한 사람한테 상은 못 줄망정, 친구들의 수학여행을 무산시켰다는 죄의 멍에를 씌어서는 그 젊은 영혼들의 원망에 짓눌려 제명에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그건 정말 말이 안 되잖아요.”


한별의 오버에 어이가 없어 벙쪄하는 선생님. 입을 벌리곤 아무 말이 없이 바라만 본다. 이제 한별은 오버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니, 이런 상황을 존경받는 우리 선생님이 바라시겠어요? 아니면 저희 부모님이 바라시겠어요?

‘이제 다 됐어요. 빨리 고개 끄덕여 주세요. 어서요. 시간 없어요.’

‘귀신같은 놈! 그 좋은 머리를 이런 데다 써.’


마치 협박범에게 당신의 목숨줄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생각도 못 했던 겁박을 받는 선생님이었다. 비굴한 건지 현실적인 건지 바로 수긍한다. 동맹 맺기로.


‘그래. 내 목숨줄 네가 가지고 있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라.’

“절대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지. 내 지금 교장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당위성을 설명하고 허락받아 올 테니.”


왠지 자신의 목숨줄을 구명 받을 방법을 찾았음에도 협박범에게 강탈당한 것 같은 느낌에 뒤 끝이 영 찜찜하다. 이유가 있다.


수학여행을 지속해야 할 당위성만 찾아냈지 정작 한별이 어떻게 아버님의 반말을 무마할 것인지는 전혀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급히 나가다가 되돌아온다.


“네 핸드폰 내놔.”

“전화 안 해요.”

“안 할 거지?”

“네, 그럼요.”

“알았다. 믿어도 되는 거지?”

“저 아시잖아요. 절 못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OK. 협상 마무리.”


선생님은 허락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한별의 전화라도 막아야겠다는 심산이었지만 그 정도를 모를 한별이 아니었다.


‘저에게는 최후의 보루예요. 제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야 선생님께서 어떻게든 허락받아 오실 거 아녜요. 죄송합니당.’

‘지독한 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


밖으로 나가면서 마침 병실로 들어오던 수현, 향미, 병길과 마주친다.


“선생님, 잠 좀 주무”


인사를 건네는 향미의 목소리를 못 들으신 건지 정신없다는 듯 황급히 나간다.


“와와, 와 저러시노. 한별아,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시나? 얼굴빛이 영 안 좋네. 못 주무셔서 그러나 다친 건 니가 다쳤는데 넌 뽀얗고.”

“아냐, 일은 무슨 일. 화, 화장실 급하신 것 같더라고.”

“아, 화장실. 그건 그렇고 손은 어떠나?”

“멀쩡하지.”

“미친 늠! 멀쯩하기는 어제 피를 한 드럼통은 흘렸다.”


순간 병실을 들어올 때부터 침울해 있던 수현이 눈에 들어온다.


“아고, 입이 방정이다.”


수현은 한별의 눈치를 보다 마지못해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마....마 많이 아프지. 미....미안해.”


한별은 그런 수현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어제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하면 좋으련만, 이럴 때는 향미처럼 좀 장난스럽고 뻔뻔스러우면 좋으련만, 여려도 너무 여리다.


“괜찮아, 정말이야. 봐봐 손가락도 다 움직이잖아.”


한별은 상당한 통증이 있었지만 전혀 아픈 기색 없이 힘주어 손가락을 움직여 보인다. 하지만 한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현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아아, 그리고 희소식이 있어”

“?”

“의사 선생님이 퇴원해도 좋다 하셨어.”


그제야 수현의 눈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걷혀지며 생기가 돌아 화색 한다.


“정말?”

“그렇다니까. 큰 상처가 아니니까 하루 만에 퇴원하지. 큰 상처인데 하루 만에 퇴원하라 하겠어? 내가 그랬잖아.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구급차 안에서 보여줬던 윙크를 하며 표정을 바꿔 가는 개인기를 다시 선보인다. 수현도 미소로 화답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수현이 한숨도 못 잤다. 덕분에 내도 뜬눈으로 지샜다. 내 눈 봐라! 호수같이 파랗던 눈이 누구 덕분에 지금은 시큼~ 하다.”


양 눈을 손으로 뒤집어 까 굳이 확인까지 시켜준다. 그러자 한별이


“향미야, 원래 네 눈은 좀 시커멨어.”

“뭐라!”

“아, 농담, 농담. 고마워 수현이 위해줘서.”

“말로는 안 된다.”

“알았어.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만 해.”

“내 지금은 필요 읎고, 그, 그는.... 니 마음속에 저~ 장.”


몸을 흔들어 대는 향미, 처음 보는 향미의 애교에 경악하는 병길이다. 자신에게만 인색한, 나한테는 단 한 번도 저런 웃음과 애교를 보여 준 적 없는데,


심히 못마땅하다. 너무나 못마땅하니 고양이 눈을 해서는 한참을 둘은 번갈아 보며 야려 본다.


하지만 향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 병길의 가슴에 염장을 제대로 지르려 한다. 이건 염장 수준을 넘어 썩어 삭히는 수준으로.


“내는 이번에 한별이 다시 봤다.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는 줄만 알았는데 수현이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기까지 카~.”

“아휴, 향미야. 왜 그래 비행기 그만 태워. 어지러우니.”

“그냥, 귀한 집 범생인 줄만 알았는데, 그런 깡다구가 가 있을 줄은 증말 생각도 몬했다. 니란 사람을 무라 하는 줄 아나?”

“?”

“완. 벽. 그 자체다. 남자로서 갖출 거는 증말 다 갖췄다 아이가.”


그다음 두 손 모아 추앙하는 모습에 이번에는 다양한 하트를 날려대니,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병길의 눈에서는 천불이 난다.


하지만 병길의 반응에는 배려 따윈 없었다. 몸동작까지 동원해 오두방정을 떨어대니 얼마나 꼴 보기 싫은지 병길의 눈은 눈꼴셔서 눈알이 빠질 지경이다.


애꿎은 한별에게 시선을 돌려 눈을 흘긴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수현이면 됐지. 향미까지.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했냐!’


추켜세우는 게 끝이 없다. 한별은 그저 멋쩍어하며 뒷머리를 매만지는데


“많이 아플 긴데 수현이 걱정할까 봐. 내색도 안 하는 즈 마음 씀씀이 하므, 두말할 필요 읎이 따~ 악 내 스탈일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한별은 선을 넘는 오버에 경악하며 다치지 않은 왼 손바닥을 펴 격하게 흔들어 그만하라고, 나는 일도 마음에 없다고 정색한다.


병길도 화들짝,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의 칭찬도 모자라 이제는 추파까지, 이건 아니다. 정말 이건 아냐.


“무슨 소리야. 향미야,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너는 내가 있어, 너만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고.”

“누구세요? 본인은 어제부로 내시예요? 모르셨어요? 그런데 무슨 남자?”

“뭐야!”

“하하하.”

“호호호.”


병실에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병길, 오늘 수난의 연속이라. 이래저래 눈꼴셔 눈알 빠져 시각장애인에, 거기에 거시기 떨어진 내시까지. 세 사람은 대차게 웃고 한 사람만 울상이다.



****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통화.


“이 선생, 돌아올 준비 하고 있어?”

“그게....”

“왜? 또 뭔 일이라도 터졌어? 터졌냐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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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클럽 24.09.16 15 0 10쪽
3 환상의 콤비 24.09.15 1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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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학여행 24.09.15 23 0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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