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 8. 지저분한 놈 1
나는 트럭 운전사 트레이너(Trainer).
트럭운전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인캡 트레이너(In Cab Trainer) 또는 멘토(Mentor)라고 하기도 한다.
트럭운전은 10단이 넘는 트럭을 운전하고 총중량 8만 파운드의 무게에 길이만 70피트나 되는 트레일러를 끌어야 하는 운전기술도 필요하지만, 트럭운전업무에 관한 규정과 복잡한 서류 절차 등 알아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트럭운전을 시작하려면 이 트레이닝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비로소 북미에서 트럭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나, 울프는 트레이너를 시작한 지 4년째 되어간다.
그동안 숱한 새 운전자들을 교육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케네디언과 함께 좁은 트럭 안에서 2주에서 4주 동안 함께 먹고 자고 운전해야 하는 이런 생활을 해본 한국인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 한다.
더구나 4년 동안 30여 명을 한 명씩 데리고 다니면서 북미대륙을 돌아다녔으니······.
그러다 보니 이놈 저놈 별놈들을 다 만나게 된다.
말 많은 놈, 냄새나는 놈, 똑똑한 놈. 바보 같은 놈, 영리한 놈. 약은 놈. 착한 놈. 불쌍한 놈, 주접떠는 놈, 키 큰 놈. 작은놈. 뚱뚱한 놈, 홀쭉한 놈...,
캐나다 놈, 프랑스 놈, 루마니아 놈, 아이리시 놈, 인도 놈, 자메이카 놈, 영국 놈, 러시아 놈 그리고 ······. 한국 사람도 있었다.
결국은 이런 놈도 다 만나게 되더군요.
지저분한 놈!
아~ 졸라 열 받네요.
지금 완전히 실신 일보 직전입니다.
미안, 미안합니다···.
평소 점잖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울프입니다만, 오늘은 머리 뚜껑이 열리는 관계로 주둥아리가 컨트롤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니콜라이 설레반,
이름 참 좋고 생긴 것도 아인슈타인 박사를 닮았는데 아이큐는 두 자리 겨우 턱걸이했나······.
그것도 소수점을 찍어야 할 정도로 개념 없는 친구가 걸렸어요.
뭐든 꼭 세 번을 이야기해야만 알아들으니 가르치는 내가 환장하겠다 이겁니다.
사람은 착하고 순한데 하는 짓거리는 느려터지고 답답해서 내가 속이 다 터집니다.
어제 가르쳐 준거 오늘 까먹고, 오늘 다시 가르쳐 주면 내일 또 잊어버리고···.
그런데 내일 다시 가르쳐 주면 그때는 잘 알아듣습니다.
이건 뭐야?
장난도 아니고 삼세번이 뭡니까? 삼세번이.
칠판 가득히 풀어써야 하는 4차원 수학 방정식도 아닙니다.
읽기도 힘든 원소주기율표도 아닙니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런 것들입니다.
‘어디 갈 때는 트럭 문을 꼭 잠그고 가라.’
‘진흙 묻은 신발은 꼭 털고 들어와라.’
기저귀 찬 응애들도 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간단한 곳도 못하는 데 복잡한 트럭 일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뭐든 꼭 세 번씩 말해야 알아듣는다니···.
시작부터 뭔가 좀 이상 했지요.
첫날 트럭운전 핸들을 맡기자마자 첫 번째 코너부터 바퀴가 보도블록을 올라타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번 더 올라타고······.
다행인지 3 세 번은 안 했어요.
그러더니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다 너무 넓게 돌아서 중앙 분리대에 걸리자 뒤로 조금 뺀다는 것이 뒤에 따라오던 승용차 범퍼를 찍은 것입니다.
뭐 세게 찍은 것은 아니고 스크래치가 나고 살짝 금이 간 것입니다만 그동안 많은 초보자를 데리고 다녔어도 단 한 번의 접촉사고도 없었는데 이놈은 운전대 맡기자마자 15분 만에 우자작~.
승용차 운전사와 이야기 끝에 경찰을 안 부르고 현찰로 수리비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하네요.
나 같으면 합의는 무슨 합의?
‘이마 네가 너무 바짝 따라 왔잖아!’
하고 일단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니까 큰소리부터 꽝치고는,
‘회사 트럭이니까 회사에 고소해라.’ 했을 텐데, 이놈은 나 하고는 단 한마디 상의도 안 하고 혼자서 그렇게 해결하고 옵디다.
바보 아니면 돈이 남아도는 놈이구나 생각하려 해도, 돈 많은 놈이 트럭운전 시작하겠소?
다음날,
또 후진하다가 옆 트럭을 부욱 긁어 버리네요.
'아 쒸바 미치겠네!"
4년 동안 수많은 초보 운전사들을 데리고 다녔는데도 접촉사고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놈은 벌써 두 번째···.
'오매 환장 하겠네, 정말로'
그래도 재수는 있는 놈이어서, 아무도 본 사람 없고,
그 트럭운전사도 어디 갔는지 자는지 나오지도 않네요.
그냥 모른 척해야지 뭐 어떡하겠소?
오리발 탁 내밀어야지, 더 골치 아프기 전에.
“야! 빨리 튀어”
뺑소니쳤지요.
뭐든 세 번 해야 하는 놈이니까 또 한 번 더 남았네요.
걱정돼요.
세 번째도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도나 해야지 별 방법 있나요?
바보 같고 순둥이 거기에다 운전 초보자니까 이런저런 사고 나는 것까지는 오케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견디기 어려운 게 또 있단 말입니다.
바로 어질러 놓는 습관,
도대체 정리 정돈이란 말은 평생 들어보지 못한 놈 같아요.
나이가 서른둘이나 처먹은 놈이 제 물건 옷 가방 뭐 하나 제대로 지키는 꼴을 볼 수가 없어요.
뭐든 가방에서 한번 꺼내면 그 물건은 절대 다시 그 가방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냥 트럭 바닥에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겁니다.
첫날부터 하나둘 쌓이더니 둘째 날에는 트럭 바닥이 온통 그놈 물건으로 좍 깔리더라고요.
신발, 재킷, 수건, 바인더, 지도책, 옷 보따리 그리고 쓰지도 않는 아이스박스···. 이건 도저히 이해 못 합니다. 음식이라고는 껌 한 개도 가져오지 않은 놈이 큼지막한 아이스박스는 왜 들고 왔나요?
안전화, 안전복, 거기다가 볼펜, 선글라스까지 ,
동전도 떨어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바닥이 하나도 안 보여요, 도대체 발을 디딜 틈도 없고요
한번은 나보고 자기 선글라스 못 봤냐고 묻습디다.
슬쩍 옆 눈으로 보니까 바닥 한구석에 선글라스가 끼어 있어요.
대답했죠.
”몰라“
3일째, 되는 날,
트럭 바닥에 널브러진 놈의 팬티를 바닥에서 발견한 순간,
드디어 파바박 열 받아서 폭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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