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하이웨이 9
갑자기 트럭이 좌우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지그재그로 운전한다.
‘별 이상한 놈이군. 야간운전에 졸리든지 아니면 무지하게 심심했나보다’
나는 CB라디오를 꺼내 들었다.
“헤이 드라이버 뭐하는 거냐?”
아무 대답이 없다.
“드라이버! 내가 비켜 줄 테니 추월해라.”
그래도 응답이 없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예 속력을 낮추어 천천히 운전하였다.
‘이제는 추월하겠지.’
어럽쇼?’ 그 놈도 따라서 천천히 온다.
좁은 산길이지만 속도제한은 시속 90킬로미터이다, 보통 정상적으로 운전하면 모두 100이상으로 달린다.
그 길은 나는 시속 50킬로미터로 기어가고 있는데 뒤에 트럭도 그 속도로 엉금엉금 따라온다.
깊은 한밤중에 두 대의 트럭이 산속을 나란히 기어가고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나하고 함께 놀자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10여분을 그렇게 따라 오더니 갑자기 속력을 내서 내 트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옆으로 추월하는 그 트럭은 요란한 엔진 소음을 울리며 나를 추월하였다.
‘그럼 그렇지 진작 그럴 것이지’
그놈이 앞에서 달려 나가자, 이제는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겠다 싶어 나도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즉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했다.
나를 추월한 그 트럭이 갑자기 내 앞에서 속력을 줄여 느린 속도로 운전하였다. 이제 순서만 바뀌었을 뿐 두 대의 트럭은 여전히 하이웨이를 천천히 기어가고 있다.
이제는 뒤에 있는 내가 답답해졌다.
“드라이버, 도대체 뭐하는 거냐? 정신 나갔냐?”
CB 라디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치익 칙 무전기의 잡음소리만 되돌아 올뿐 아무 대답이 없다.
장난이라도 이건 지나치다 생각 들어 슬슬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차선을 바꾸어 추월하기 시작했다.
중간쯤 따라 잡기 시작하자 그 트럭은 속력을 내서 같은 속도로 달렸다. 그 트럭이 나보다 반쯤 앞선 채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내가 속력을 줄이면 따라서 줄이고 속력을 내면 같이 속력을 냈다.
불안했다.
오가는 차선이 하나뿐이 이 길에서는 중앙선을 침범한 내가 전적으로 위험하다. 만약 반대쪽에서 오는 차가 있을 경우에는 정면충돌 할 위험이 크다.
일부러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교묘하게 나를 그런 위험에 빠지게 하고있다.
‘이런 개 같은 놈이 있나?’
속이 뒤집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별 도리가 없이 속력을 줄여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추월을 포기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가기만 했다.
한동안을 그렇게 졸졸 뒤따라서 운전해야 할 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앞에 트럭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여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벗어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별 이상한 미친놈도 다 있네.’
장난치곤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라져버렸으니 다행이다. 다시 나 혼자만이 어둠속의 하이웨이에 덩그러니 남았다.
하얀 차선을 따라서 운전하며 이런 저런 상념에 빠졌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에서 트럭의 속도가 빨라졌다.
언덕 아래 급하게 꺾어진 코너를 막 돌아서자마자 어둠속에서 갑자기 시커먼 장애물이 클로즈업 되었다. 콘크리트 벽이 길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기겁을 하고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트럭의 달리는 속도와 관성력에 밀려서 멈출 수가 없었다.
헤드라이트에 비쳐진 콘크리트 벽은 대형 트레일러였다. 아무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트레일러 꽁무니가 바로 눈앞에 클로즈업 되며 그대로 추돌하여 부딪히기 직전, 정신없이 왼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트레일러가 휘청거리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며 곧 트레일러가 뒤집어 질 것 같았다.
아 이제 부딪히는구나!
순간적으로 생각하였으나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온몸이 경직되어 버린 채 핸들만 꽉 붙들고 그대로 달렸다.
종이 한 장 사이만큼으로 아슬아슬하게 그 트럭을 스쳐 지나 차선을 벗어나서 맨땅으로 치달렸다.
트레일러와 트럭이 나뭇가지를 우두둑 스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의자에서 튀어 올라 공중으로 치솟았다. 몇 번을 더 출렁거리고 몹시 흔들렸다.
트럭은 포장된 차선을 훨씬 벗어나 맨땅을 달려 길 가 쪽으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을 치고 100여 미터를 지난 후에야 겨우 멈추었다.
바람에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트럭 안에 있는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려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다.
일단 부딪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것도 잠깐뿐 속에서 부아가 끓어올랐다.
'아니 저런 멍청한 놈의 새끼! 트럭이 고장 났으면 옆에 세워야지 어떻게 길 한가운데에 트럭을 세워 놓는 놈이 어디 있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삼각대를 세워 놓든지 플레어를 사용하든지 해야지 아니면 최소한 스몰라이트라도 켜야지 하마터면 대형사고 날뻔 했잖아.'
뒤를 돌아보니 그 트럭이 어두컴컴한 하이웨이에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대로 서 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한편으로 트럭이 고장이 나서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나는 공구박스을 열고 칼을 꺼내 들었다.
칼이라기보다 단도에 가깝다. 호신용으로 준비 해두었는데 양면에 날이 있지만 가운데가 아주 날카롭게 생긴 것으로 베는 칼이 아니라 찌르는 칼이다.
칼을 주머니에 넣고 트럭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트럭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10여 미터 갔는데 갑자기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환하게 켜졌다.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트럭 위에 주황색의 스몰라이트가 열개 달려 있고 양 옆으로 다섯 개씩, 범퍼에도 나란히 여섯 개의 작은 라이트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바로 그 트럭이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며 약 올리던 바로 그 트럭이 틀림없다. 추월을 못하게 장난치던 그놈이다.
'응? 그럼 고장 난 것도 아냐?'
벌써 멀리 가버린 줄 알았는데 코너에서 길 한복판에 세우고 라이트까지 끄고 내가 충돌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 인거야?
나는 흥분했다.
“큰 사고 날 뻔 했어! 개새끼! 혼내줄 거야! 아니 죽여 버리고 말겠어!"
나는 하이웨이 한복판에 서서 칼을 손에 쥔 채 미친 사람처럼 흔들어대며 트럭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꽈르릉! 꽈르릉! 과르르르르릉!
트럭의 엔진 소리가 밤하늘을 정적을 깨고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바람소리였겠지만 마치 엔진 소리에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길 중앙 한가운데에 그대로 멈추어 섰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갑자기 목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꽈르릉! 꽈르릉! 과르르르릉······.!
그 트럭은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경주용 차처럼 악셀래이터를 계속 밟아대고 있었다.
‘설마 저 녀석이?’
끼이이이익! 트럭은 타이어가 찢어지는 듯 한 파열음을 내더니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무서운 가속도로 내며 달려 왔다.
마치 철로를 달려오는 디젤기관차처럼 나를 향해 똑바로 정면으로 질주 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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