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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최근연재일 :
2016.05.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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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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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그리고 적응 - 4

DUMMY

해는 기울어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푸르던 하늘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킨과 표정연기를 공부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낮이었는데 벌서 시간이 이렇게 된 모양이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내 뺨을 훑고 지나갔다. 깨끗한 공기가 좀 전까지 어지럽던 머리를 정화해주는 것 같았다.


“역시 답답한 방 안보단 밖이 훨씬 좋네.”


“저, 드레이크님.”


한참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 마주보고 서있던 킨이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부름에 공기를 폐 속으로 빨아들이는 걸 멈췄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왜? 갑자기 망설여져?”


“···예.”


“걱정 마. 치명타만 아니면 상관없으니까. 그건 너도 알잖아?”


넓은 안젤라의 집 앞마당. 킨은 지금 상황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통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표정엔 망설임이 배여 있었다.


킨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봤고, 내가 굽히지 않을 걸 깨달았는지 그녀는 내키지 않는 손놀림으로,



자신의 활의 시위를 당겼다.



“그렇긴 하지만, 고통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못내 염려가 됐는지 킨의 걱정스러워하는 어투로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판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안젤라의 창고에서 꺼낸 목검과 방패를 고쳐 잡았다. 아마 전투용으로 만들 언데드에게 쥐어줄 생각으로 구비해놓은 것 같았지만, 좀 쓴다고 군소린 하진 않겠지.


“어차피 난 시체야. 망가지면 안젤라가 다시 재생시켜주면 돼. 그리고 어차피 몸 망가지면 욕을 먹는 건 나잖아? 그러니까 염려 말고 싸우라고. 뭐, 내 수준이 너하고 싸운다고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리고 지금 활시위를 당겼다는 건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거 아니야?”


부활할 때부터 전투를 치러온 킨. 하지만 정반대로 부활할 때부터 집안일을 해온 나. 상성부터 차이가 심했다. 킨이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이미 시체가 된 몸. 어디 하나 잘린다고 해도 다시 붙이면 그만인 몸이었다. 아프기야 하겠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으니까.


“그냥 대련해준다고 생각해. 아니면 어린애랑 놀아준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봐온 사람 중에서 킨만큼 전투에 특출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장난 식으로 배운다고 쳐도 킨에게 배울 점은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전투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만큼 설명해줬으면 됐지? 자, 그러면 선생님. 한 수 부탁드릴 게요.”


내가 준비자세를 취하자 가만히 내 모습을 보던 킨이 한숨을 폭 쉬었다. 드디어 단념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드레이크님. 준비 되셨습니까? 전 전투에 관해선 아량을 베풀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시작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으니까.”


“···그럼, 들어갑니다.”


킨이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몸을 감싸던 봄 저녁 무렵의 시원함, 그 시원함마저 삼켜버린 싸늘한 기운이 갑자기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피부로 그 시원함을 느끼고 있던 내게 그 싸늘함은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 섬뜩한 건, 그 싸늘함이 다름 아닌 킨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면 너머로 가려진 킨의 눈동자는 먹잇감을 노리는 맑은 푸른색이 이채를 발했다. 그 이채로부터 전해지는 익숙지 못한 무시무시한 기세에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정말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킨의 기세에 한풀 꺾여버린 나는 엄습해오는 공포감과 본능이 말해주는 위험함에 방패를 몸 쪽으로 바짝 땅겼다.


내가 자세를 바꾸자 킨이 활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들어 조준점을 내게로 맞췄다. 그러자 킨의 활대와 시위 사이에 검은색의 빛이 빠른 기세로 뭉쳐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누가 봐도 명백한 검은색으로 빛나는 흑색 화살의 형체가 나타났다.


한 걸음 물러선 킨은 몸을 낮춰 안정적인 자세를 취했고, 내 몸으로 조준된 화살을 먹인 활시위를 하프의 현을 튕기듯 놨다. 그녀의 손을 떠난 화살은 맹렬한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왔고,



퍽!



“···옴마야.”


굵직한 파열음을 내며 방패에 꽂혔다. 심지어 화살대의 절반이 방패를 뚫고 들어오기까지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가슴팍에 구멍 하나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어째, 이거 심상치 않은데.


생각외의 위력에 식겁한 나머지 하마터면 목검을 놓칠 뻔했다.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복잡한 머리로 어떻게든 해석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무슨 이런 무지막지한 위력으로 대련을 한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련하다가 골로 가면 그건 대련이 아니라 결투였다.


“어이, 킨. 좀 살살하다고.”


나는 킨에게 위력 좀 낮춰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의 태도와 달라진 내 저자세가 창피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의 대련을 바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낙심한 마음을 풀 수 있도록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종목으로 위로해주려던 것뿐이었지 방패가 뚫릴 정도의 무식한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려고 이 일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부탁에 대답 대신 되돌아온 것은 여전히 엄청난 위력을 품은 흑색 화살이었다. 흑색 화살은 어김없이 방패에 박혔고 어느새 킨은 내게 날릴 또 다른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젠장. 내 말이 전혀 안 들리나보네.


이젠 몸으로 부딪혀야 할 듯싶었다. 말이 안 통하니 방도가 없었다. 완전히 지금 상황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다시 메겨진 세 번째 화살이 킨의 손에서 벗어나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화살은 방패에 박혔다. 의도적으로 방패에만 화살을 맞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워낙 위력이 세다보니 화살이 박히자마자 나무로 만들어진 방패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화살에 방패가 갈라지다니, 이거 완전 사기잖아!


애초에 방패자체가 튼튼해야지 제 구실을 하는 건데 고작 화살 세 대에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화살을 쏘면 이 지경이 되는 거지?


이대로 계속 화살만 막았다간 승산이 없었다. 화살 세 대에 이 정도라면 킨이 한 번 더 화살을 방패에 맞혔다간 방패를 뚫고 나를 맞힐 게 분명했다.


“이거 에누리가 없네.”


단 하나의 실수가 생사를 결정한다. 물론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죽을 만큼 아프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아픈 건 사절이었다.



잔꾀는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산전수전으로도 모자라 우주전까지 겪었을 킨에게 같잖은 수작은 통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내게 남은 건 전진뿐이다.


결단이 서자 나는 방패를 치켜들고 킨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내 돌진에도 노련함을 발휘해 차분하게 화살을 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화살은 또 다시 내 방패로 쇄도했다.


화살이 방패에 꽂히자 예상했던 대로 위태위태했던 방패는 박살이 나는 소리와 함께 그 형태를 잃어버렸고, 역시 그대로 방패를 뚫은 화살은 거대한 반동을 주며 어깻죽지에 꽂혔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화살이 준 반동과 엄습해오는 고통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큭. 아프긴 아프구나. 실제로 맞아보니까 더럽게 아프네.


고통스러워도 몸에 위해는 없었다. 어차피 시체니까. 시체에 난도질한다고 시체가 과다출혈로 죽을 리 없다. 게다가 출혈로 흘릴 피 따윈 안젤라가 나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렸을 때 죄다 뽑아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나는 생존이라는 것에 얽매이기엔 너무 먼 존재였다.


피 한 방울 흐리지 않는 어깨에 관심을 끊고 차분히 마음을 다스렸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흥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었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머리는 차갑게 해야 했다.


한층 가라앉은 감각을 뒤로하고 목검의 끝을 킨에게 겨냥했다. 킨은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활에 다음 화살을 먹였다. 킨의 위협적인 태도는 대련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그녀의 방식이며, 그녀의 성격이었다.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것. 어떤 의도에서든 킨에게 배움을 청한 이상 이제 물러설 길은 없었다. 아마 그녀라면 내가 전투불능이 될 때까지 화살을 쏠 것이다.


나는 어깨로 전해지는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킨을 향해 전진했다. 이제 나를 지켜줄 무구는 없었다. 내가 목검으로 킨의 화살을 쳐내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젠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해야 할 때였다.


한쪽 어깨와 방패 하나를 희생하며 달린 결과, 나는 킨과 십여 걸음 정도까지 거리를 좁힐 수 있었고 그녀가 나 같은 실력의 조무래기는 상대도 안 되는 명사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명사수라도 그건 활을 쏠 수 있는 요건이 됐을 때 이야기다. 고작 몇 걸음 달려가면 좁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상 그녀의 능력은 이제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킨, 너 아주 가차 없구나? 이러다가 화살꼬치가 되겠어.”


“······.”


“하, 대답도 없구나. 그럼···.”


침묵을 유지하는 킨. 그녀는 나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 대련이 끝나기 전까지. 절대로.


킨을 한 차례 살펴보곤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시에 킨이 화살을 먹인 활시위를 당기며 내게 조준했다.


내가 킨에게 다가서는 게 빠를까, 아니면 그녀가 내게 화살을 맞히는 게 더 빠를까.



정답은, 내 발걸음이었다.



“나도 할 땐 하는 사람이거든!!”


죽기 살기로 지축을 밟으며 내달리자 킨이 활시위를 채 놓기 전에 내 목검이 그녀에게 쇄도했다.


이제 끝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라?”




목검이 허공을 가르기 전까지 말이다.




“뭐, 뭐야? 얘 어디갔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목검을 몸 쪽으로 회수하며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쪽입니다.”


그때, 좀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사라진 킨이 홀연히 목소리만 들려주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줬다.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지금만큼은 그 목소리가 등골을 타고 소름을 돋게 했다.


조심스럽게 킨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영혼을 잃은 뒤 간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몸이 굳어버린 것인지 그냥 고개를 든 것뿐인데 온몸에 힘을 줘야할 만큼 굉장히 힘들었다.


“···세상에.”


내 각막으로 들어온 킨의 자태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비춰졌다.


물속에서 유영하듯 허공에 뛰어오른 킨은 노을빛에 물들여진 듯 흰색의 털이 불그스름하게 빛났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활도 그녀처럼 붉게 물들여져 있었다. 오직 그녀의 손가락에 쥐어진 흑색의 화살만이 찬란한 빛깔을 유지하고 있을 뿐.


작가의말

두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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