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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조회수 :
202,527
추천수 :
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6.07.03 06:00
조회
866
추천
16
글자
11쪽

61화-용(Dragon)(5)

DUMMY

음, 훌륭했다. 분명 아빠는 이럴 때에 한숨을 쉬었던 것 같다.

그녀가 그렇게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때 바이올렛의 눈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결계가 부서졌다? 공간이 열렸다?

지금 공간이 닫힌 곳, 결계가 펼쳐진 곳은 단 하나.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그녀의 몸이 튕겨지듯 일어섰다.


“마스터!”


문고리를 돌리고 밀자 과연 손쉽게 열린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필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방안을 훑었다.

어디지? 어디? 어디에? 그의 마스터는 어디에? 아, 그의 모습을 찾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일까?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스터!”


다급한 마음에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에게 무엇이 되었든 나쁜 일이 생겼다면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 스터?”


“바이올렛! 마스터는?”


“마스터!”


“스승님!”


뒤늦게 다른 이들이 뛰어 들어왔지만 그들이 볼수 있었던 것은 바이올렛의 뒷모습과 그녀의 의문에 가득 찬 외침이었다.


“이게 뭐야?!”


그녀의 시야에는 분명하게도 그의 품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빈약한 천쪼가리를 걸친 미녀가 비춰졌다.


* * *


고요함. 포근하게 감싸 않는 어둠과 그 사이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별의 흔적들. 위도 아래도 없이 별들이 유영하는 곳에서 그는 눈을 떴다.


“···...또, 여기인가.”


의식의 저변에 있는 근본의 세계. 세상의 근원과도 닿아있다는 그곳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후, 후후.”


분명 그때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 근래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빈도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기분이 나쁜가? 라고 물으면 그것은 또 아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그의 근본. 그의 모든 것이 파생된 가장 아래쪽의 뿌리니까. 이곳은 그에게 너무나 포근하다.

물론, 평범한 이들은 자신의 근본을 마주본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는 평범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아아, 좋다.”


온몸 구석구석을 적시는 이 안온한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가급적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집어삼켜지겠지.”


아무리 이곳이 그의 근본이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근본이라 더 위험하다. 이곳에서 근원에, 리에 도달하는 도(道)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이곳에 집어삼켜질 수 있다.

태초에 존재했던 모든 것의 근원이 혼돈이었듯 이곳 역시 그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항상 존재한다.


“생명은 흙으로, 흙은 먼지로, 먼지는 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각의 방향을 따라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그저 머릿속에서 흩어져가는 상념과 입 밖으로 뱉어지는 ‘언어’는 엄연히 그 무게가 다르다.

상념은 그저 상념으로 그치고 기억에서도 잊혀지지만 ‘언어’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세계에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쌓인 흔적들이 뭉치고 뭉쳐 마침내 무엇이 되었든 결정을 이루게 되면 그곳에서 ‘특별’한 것이 탄생하게 된다. 절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할 수 없는. 그런 것.


“그렇지 않아?”


그의 물음이 공허함 안을 퍼져나간다. 하지만 누구에게 하는 말인 걸까? 이 공간 안에 그 말고 발을 들일 수 있는 이가 또 있던가?


“나도 얼마 전에야 알았어. 그 전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


“그저 내 의지를 다지기 위해 과거를 곱씹었어. 그런데 의외의 현상을 발견했지.”


그의 손이 뻗어나가더니 별을 움켜 잡는 듯한 시늉을 한다.


“분명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해. 내게 주어진 힘이 나를 망각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았으니까.”


“······”


“그런데!”


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움켜쥔 손을 펼쳐보니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이곳을 가득 채운 어둠의 잔재뿐.


“어째서 내 기억에 공백이 있는 걸까.”


“······”


“망각과는 인연을 가질 수 없는 내 기억에 어째서 뻥 뚫린 공백이 존재하는 걸까?”


“······”


“대답해 보는 것이 어때?”


“······”


“아직도 모습을 보이는 것이 꺼려지나? 침묵(Tacitus)?”


“쯧.”


아인즈의 부름과 함께 어둠의 일부가 물러서며 자그마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색의 무표정한 얼굴을 한 가면을 쓰고 있는 일고여덟살 정도의 소년의 모습.

그 모습에 아인즈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을 인식한 것은 제법 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그래서 오늘, 그 이름을 불러 ‘존재’를 세계에 ‘인식’시켰다.


“설마 네가 이따위로 막무가내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 역시 너 같은 녀석이 내 안에 머무르고 기억을 집어삼키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네 어깨 위의 그것은 모자걸이인가? 어째서 생각이라는 것을 못하는 거지? 나쯤 되는 존재가 어째서 존재를 숨기고 잠들어 있었는지 너쯤 되는 존재가 생각을 못하는 거냐?”


그의 물음에 아인즈가 나직하게 실소를 지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나쯤 되는 존재라도 아직 인간이라 막무가내를 쓸 때가 있는 법이지.”


“하아.”


한숨을 내쉰 그의 목소리에서 은은하게 감정이 묻어 나왔다.


“너, 지금 이 짓거리가 너에게 무슨 영향을 미칠지 알고는 있는 거냐? 내가 깨어났다는 게, 자신의 안에 다른 인격체가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


“알게 뭐냐. 중요한 것은 나는 네 정체를 알고 싶고, 너는 내 앞에 있다는 것이지.”


“너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냐! 내가 깨어났다는 것은 네 영혼이 부담해야 하는 업이 늘어났다는 거다! 이 내가 무슨 존재인지 너는 보지 못하는 거냐!”


감정이 격해진 것일까. 분노가 묻어 나오는 그의 목소리에도 아인즈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알지, 안다.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있어서는 안될. 비틀림으로 태어난 존재. 그것이 너다.”


“그걸 알면서도! 알면서도 나를 깨워? 내가 있음으로 네가 부담해야 하는 업이 얼마나 커지는지 정녕 이해 못해?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의 영혼은 세계라는 격렬한 흐름에 부딪히게 되는 거다!”


“안다.”


“뭐?”


너무나 무덤덤한 대답에 격렬한 분노가 끓어 올랐다. 그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토록 숨어서 홀로 외로움을 감당했던 이유가 무엇인데! 그토록 오랜 시간을 홀로 외로움에 떨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던 이유가 무엇인데!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나? 너는 지금 세계를 역류하겠다고 하는 거다! 그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고나 있나? 역천(逆天)이다! 역천! 너는 지금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으로 던지고 있는 거다!”


“그래, 맞아.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그리고 이어진 아인즈의 말이 그의 영혼을 두드렸다.


“그리고 너를 인정하는 길이기도 하지.”


“뭐, 뭐?”


아인즈가 그에게 다가섰다. 저 작은 모습. 하지만 익숙하다.

그래, 분명 자신이 어릴 적.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 알 수는 없지만 저 가면 아래에 솔직한 감정의 표현을 하는 아이의 얼굴이 화를 내다가 당황하고 있을 터이다.


“너는 그 오랜 시간 숨어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었겠지. 아무도 너를 긍정해주지 않고, 너 홀로 그 슬픔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렸을 거다.”


“너, 너!”


“하지만 나는 지금 너를 긍정할 것이다. 이 세계에 역류를 맞고 설령 쓰러질지라도 내가, 이 내가 나로 비롯된 이들을 책임지지 못할 정도로 나약해 보이나?”


“너!”


마침내 아인즈가 그의 앞에 도달했다. 가까이에 다가서면 멀리서와는 다른 것이 보인다. 가령, 그 감정의 격렬함과, 격동과, 눈물과 같은 감정의 산물들이.


“나는 내 주변의 이들과 내 울타리 안의 이들과 나로 비롯된 모든 이들을 책임진다. 나는 목동이다. 내 울타리 안의 이들을 이끌고, 보살피고, 대신 상처 입는 것이 목동이다.”


“······”


“설령 그로 인해 내 영혼마저 부스러질지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목동의 정점에 있는 자. 내가 걷는 길이, 내가 깨달은 이치가 책임을 지우는 거다.”


“······”


“뭐, 스스로 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인즈의 손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래된 그의 친밀함의 표시다. 그가 진정으로 아끼는 이들에게, 그의 품 안의 존재들에게 표시하는 최소한의 보답.


“너 역시 내 울타리 안에 거하는 이일 따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를 비롯한 그들과 모두의 행복.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내 행복도 버릴 수 있다.”


그 말에 침묵의 떨림이 격해진다. 분노일까, 아니면 다른 어떠한 감정일까.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이름인 침묵의 의무를 더 이상 수행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것.

탁.

제법 거친 소리와 함께 아인즈의 손이 내쳐졌다. 얼얼한 느낌에 이간을 약간 찌푸리자 침묵의 외침이 귓전을 때린다.


“알게 뭐야! 잘난체 하지 말고 나가! 여긴 내 자리야! 다시는 들어오지 마! 들어올 생각도 하지마!”


“어? 자, 잠깐!”


생각보다 훨씬 격렬한 반응. 아니, 애초에 저런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야, 야! 잠깐만······!”


“나가! 나가라고!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이 바보야!”


심지어 영력마저 실린 그 외침에 의식이 추방당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하기야 애초에 이곳의 주인은 그이니 그가 자신의 추방을 원한다면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이 바보 멍청아! 무뇌충!”


뭐랄까. 쑥스러움을 잘 타는 남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인즈는 피식 웃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틀림없이 후회할 터였다. 그때의 자신이 딱 그런 성격이었으니까.


“그럼 잘 있어라. 나중에 또 보자. 혼자서 무섭다고 훌쩍거리지 말고.”


“뭐래! 너나 울지마! 내가 온갖 업이란 업은 다 뒤집어 씌워버릴 테니까!”


끝까지 속내를 터놓지 못하는 그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어릴 적에는 저랬었던가 하고.


* * *


“비켜!”


“싫어.”


“비키라고!”


“거절한다.”


“이! 이이이익! 비켜! 어디서 듣도 못한 잡것이!”


“말 조심해라.”


‘뭘까. 뭐지?’


내면에서 깨어난 아인즈는 귓전을 때리는 날카로운 고성과 시야를 가리는 어둠에 눈을 끔벅거렸다.


“야! 너 같은게! 당장 비켜!”


“싫다. 어지간히도 말을 못 알아듣는군.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아아아아악!”


분명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목소리는 바이올렛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리도 없거니와 그녀의 성격상 밀린다면 오히려 더 격분할 터였다. 하지만 뭘까? 그녀를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는 목소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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