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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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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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20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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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극복하거나, 혹은 추락하거나. (9)

DUMMY

시간을 되감듯 회복되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루베르크가 혀를 차면서 투덜거렸다.

“칫 겨우 이 정도인가?”

아직 불그스름한 복부의 상처를 노려보는가 하면 채 돋아나지 못한 날개를 어루만지던 루베르크. 그 모습을 보고 소렌이나 나나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상처가 덜 아물고 날개가 없다 해도 체력이나 정신력은 모조리 회복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길....”

나는 과하게 힘이 들어간 다리를 의식하고 조금 발꿈치를 들어 긴장을 풀었다. 그래, 나는 더없이 긴장하고 있었다. 내 구명절초라 해도 좋을만한 천의결을 따라하는 루베르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굳이 희망을 찾자면 루베르크가 다시는 신의 힘을 빌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 뿐이었다.

“또 까불어봐라 썩을 애송이들아.”

루베르크가 기세를 한껏 부풀리고 걸음을 옮긴다. 도리가 없다. 방법이 보이지 않더라도 싸울 수밖에 없다. 근근이 버티다가 처참하게 쓰러질 거라는 확신이 머릿속을 울리지만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그것도 볼마르그를 모독한 이와, 그 긍지를 떠올리게 하는 소녀 앞에서는.

“가자 소렌.”

최후의 한마디일지도 모르는데 저런 무뚝뚝한 말을 내뱉다니. 새삼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소렌과 함께 루베르크의 좌우에 섰다. 그렇게 비극이 예정된 사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흥.”

한차례 공세를 흘려낸 루베르크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양 손아귀에 짧막한 봉 같은 것이 나타났다. 엘프를 떨어트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혀온 그 무기다. 역시나 하나가 아니었군. 기껏 무기를 박살낸 게 허사가 된 순간이다.

루베르크는 재차 달려드는 우리의 공격을, 양 손에 든 봉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히 받아쳤다. 연이어 공격을 감행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천의결 앞에서 협공 따위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거 참 대단들 하시군.”

루베르크가 심드렁하게 비아냥거리며 양 손에 든 봉을 대번에 연결해서 그것을 창처럼 휘두른다. 시커먼 섬광을 간발의 차로 피해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제기랄, 내가 아니라 소렌을 노린 공격이었구나.

뒤늦게 소렌에게 파고드는 새카만 봉을 쳐내려는 순간 소렌이 힘찬 기합과 함께 검기가 넘실대는 검을 비스듬히 세워 공격을 흘려내고, 이어서 검을 놓고 새로운 검을 빼들어 루베르크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스톰브링거 따위로 감히!”

제길, 접근해선 안 되는데. 소렌이 접근하기가 무섭게 루베르크가 마보자세를 취하고 봉을 쥔 채 단숨에 일장을 내지른다. 발을 구른 것도 아니건만 발을 딛고 선 곳이 움푹 들어가며 요란한 폭음이 인다. 소렌이 엄청난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폰테일의 그 구질구질한 검은 이미 수천 번도 넘게 지켜봤다. 스톰브링거로는 결고 날 해할 수 없지.”

기회다. 소렌을 공격하느라 생긴 빈틈을 발견하고 나는 온 힘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제대로 들어간다면 옆구리를 파고든 검이 반대편 날갯죽지로 튀어나올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그리고 네놈의 검도 마찬가지다!”

맙소사. 나는 익숙한 모양새의 공세에 경악하며 익숙하게 투로의 빈틈을 파헤쳐 몸을 피했다. 천의검문의 검마저 베껴 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런 가르침도 참오도 없이 초식을 그대로 베껴내고 심지어 검의마저 손에 넣은 듯하다.

“흥, 이제 와서 놀란 척을 하다니.”

소렌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동안, 나는 검을 떨어트릴뻔한 충격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천재. 아니, 괴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능력이다. 애초에 천의결을 훔쳐내지 않았더라도 이런 식이라면 나는 절대 루베르크를 이길 수 없다. 무공을 통째로 빼앗아버리는 저 괴물을 대체 누가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크하하핫!!”

루베르크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알 수 없는 기행에 깜짝 놀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배를 움켜쥐고 폭소하는 루베르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니다. 지금도 빈틈이 아니다. 지금 공격해봐야 다시 당할 뿐이다.

“하앗!”

오직 소렌만이 다시 공세를 퍼붓는다. 그러나 나는 소렌의 공격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실감하고 있다. 칼날로 이루어진 폭풍을 향해, 루베르크가 거칠게 창을 내지른다. 오직 강력함만이 깃든 공격에, 폭풍의 허리가 뚝 잘려나간다.

“제 아비처럼 멍청하기 짝이없군. 네 아비도 날 이기지 못하는데 고작 딸년이 날 이기려들어?”

바로 저것이다. 수많은 능력을 가진 루베르크가 천의결을 훔쳐낸 순간, 루베르크는 무조건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상대의 패를 전부 아는 데다가 모든 패를 가지고 있는 도박사가 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핫!”

금강퇴로 소렌의 목덜미를 걷어찬다. 미처 예상치 못한 회심의 일격에 소렌의 의식이 끊긴다. 빌어먹을. 이대로 두면 소렌은 죽는다. 멍청하게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루베르크의 힘에 완전히 질려버린 것도 잊고 나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래, 사내라면 계집을 구하러 와야지.”

검로가 틀어막힌다. 루베르크가 마나가 실린 맨손으로 검신을 거세게 움켜쥐자 마치 처음부터 검신과 손이 붙어있던 것처럼 옴짝달싹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객기 때문에.”

루베르크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와 함께 검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엄청난 열기에 검신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가 새까맣게 굳어버린다. 눈 깜빡할 새에 명검을 고철로 만들어버린 루베르크가 씩 웃는다.

“뒈지는 거다.”

막대한 양의 마나를 끌어 모으고 루베르크가 파성마장을 휘두른다. 견고한 성마저 일격에 부수어버리는 강맹한 장법이 공기를 가르며 눈앞으로 날아든다. 이를 악물고 허리를 뒤로 젖혀 거리를 벌리고 고철이 된 검을 휘두른다. 깡 소리와 함께 고철에 불과한 검이 자루만 남기고 산산조각이 난다.

“제법이군.”

천의결를 극한으로 운용해 파성마장을 받아쳤지만 이게 마지막 발악이다. 그때 소렌이 나를 부르며 그녀의 검을 던져준다.

“슬슬 지겹군.”

루베르크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니 바람을 가르고 날아들던 검이 마치 뙤약볕 아래의 눈덩이처럼 완전히 녹아내린다. 소렌이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검이 녹아내린다. 쾌검이기에 더욱 빠르게 여러 자루의 검을 잃고, 마침내 소렌의 활약도 끝을 맺었다.

루베르크가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두 연놈 덕분에 제법 즐거웠다. 쓸 만한 것도 손에 넣었고.”

천의결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다. 딱히 천의결에 집착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전생에서부터 온갖 일을 다 겪으며 터득한 심공을 빼앗긴 게 화가 났다. 그것도 긍지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형편없는 괴물이 천의결을 통해 더 강해질 거라는 게 화가 난다.

“그래서?”

은연중에 분노를 드러내며 나는 이를 갈며 되물었다. 이에 발끈해서 차라리 날 쳐 죽여라. 그러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잖아. 터무니없는 재능만으로 모든 걸 이루고 잘난체하는 개자식아!

“폰테일의 계집년.”

루베크르가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저 멀리 쓰러져 있는 부대원들을 가리킨다.

“저기 널려있는 시체고 뭐고 다 들고 꺼져라.”

수치다. 이런 수치를 느끼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화가 난다. 화를 못 이기고 맨주먹으로 루베르크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소렌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뭐라고? 소렌이 한 말이 맞는 건가? 나는 어리석게도 잔뜩 억누른 분노의 방향을 소렌에게로 돌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대로 끝낸다고?”

“그래.”

“말도 안되는 소리 마! 너도 검사라면. 폰테일의 검에도 자존심이 있다면 저런 녀석을.....”

가만히 버려둘 수 없다. 괴물 같은 능력으로 능력을 훔쳐내고 희희낙락하는 놈을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소렌은 한치의 동요도 없이 담담히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물러나자.”

“대체 왜?”

“이대로 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소렌의 한마디에 화가 쑥 가라앉는다.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잘못된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소렌도 긍지높은 검사다. 자존심이 없을 리 없다. 그런데도 옥쇄를 감내하지 않는 건 대체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죽으면 부대원까지 모조리 죽기 때문이다. 책임감. 검사로서의 긍지보다 귀족으로서의 책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선택한 그녀는 나와는 그릇이 전혀 다르다.

“그렇구나.”

어쩌면 내가 루베르크에게 화는 내는 건 유치한 열등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가슴에 달린 계급장을 뒤늦게나마 의식하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둔재란 단순히 무공을 잘 익히지 못해서 둔재가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뒤떨어져 있기에 나는 늘 스스로를 비하해왔던 것이다.

나는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수치심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소렌의 뒤를 따라 허탈하게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루베르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봐, 내가 언제 너까지 보낸다고 했던가?”

걸음을 멈춘다. 온갖 욕설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이런 빌어먹을 대가리 같으니라고. 나는 대체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단 말인가?

“너는 나와 함께 간다. 폐하께서 널 간절히 찾고 계시거든.”

제피온. 그래, 제피온 때문에 루베르크는 날 죽이지 않는다고 했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당당히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한순간이나마 안도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게 정말로 부끄럽다. 차라리 이대로 쓰러져버렸으면 좋았을 테지만 하필이면 이럴 때는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말짱하다.

“도군을 넘겨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소렌이 무뚝뚝하게 묻는다. 루베르크가 건들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소렌이, 긍지보다 책무를 택한 그녀가 할 말은 하나뿐이다. 그 말을 맨눈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나는 그저 소리로만 그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나를 포기한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인기척이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예상과는 다르다. 눈으 번쩍 떴을 땐 이미 소렌이 루베르크의 코앞에 서 있었다.

“협상은 결렬입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와아.... 늦었습니다. 면목없습니다. 변명도 없습니다.

ps 소렌짱짱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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