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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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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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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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01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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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혼돈무제(混沌武帝) (3)

DUMMY

비오스 자히넵이 도착하고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마법진을 통해 성산 므로아로 향했다. 오래 전 매칭을 위해 방문했던 곳이기에 조금 공기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뭔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화감의 정체는 아주 단순했다. 성산 한가운데 있던 기다란 탑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성산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장막도 사라져, 성산은 꽤 황폐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부 내가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정리는 끝났나?”

비오스 자히넵이 공간이동을 마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을 훑어보고는 말한다. 질문의 대상은 바로 마법진 옆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거구의 사내, 벨스터 공왕이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숨은 놈이...... 다섯 정도 된다. 이놈들까지만 처치하면 사흘정도는 조용하겠지.”

잠깐 눈을 감고 집중한 것만으로 성산의 몬스터를 감지해내고는 벨스터 공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야 알리오네에게 죽어버린 호비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것 같군.

비오스 자히넵과 벨스터 공왕이 따분한 전술적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나와 예전 생각에 젖어들었다. 그리고는 감회가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내뱉어서 유독 무거운 마음까지 달래 본다.

그때 벨스터 공왕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사내에게로 화제를 돌린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와 관련된 화제였기에 나는 내공까지 집중해서 대화를 엿들었다.

“그건 그렇고 네가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벨스터 공왕이 호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비오스 자히넵의 옆에 묵묵히 서 있는 사내를 부른다. 러스티 볼마르그. 라스탄트의 공왕이며 드래곤 슬레이어. 토리나를 잃고 칩거했던 그를, 비오스 자히넵은 대체 어떻게 바깥으로 끌어낸 것일까?

“오직 나만이 해야 하는 일이니 별 수 없었지.”

볼마르그 공작이 이전과는 달리 많이 거칠어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빌어먹을, 그 안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토리나의 죽음에 괴로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토리나의 배다른 형제들이 죽었던 자리에 오는 게 얼마나 불쾌한지도.

“그렇군. 그런데 저 아름다운 영애분은 혹시....”

벨스터 공왕이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소렌의 면면을 살펴보며 묻는다. 벨스터 공왕도 천상 무인이었던 걸까? 소렌의 경지를 알아보고는 호승심이 치솟는 모양이다.

“소렌 폰테일입니다.”

“호오, 대단하군. 그 나이에 소드마스터라니. 롤랜드 그 멍청한 녀석보다 나은 것 같은데?”

“과찬이십니다.”

과찬? 웃기는 소리다. 롤랜드 폰테일은 충분히 강한 이였고 나름대로 무재가 탁월한 이였지만 소렌은 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롤랜드는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지 못했지만 소렌은 결코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


하이스쿨로부터 병력이 모두 도착하고 마지막으로 제임스까지 도착하고 나서, 비오스 자히넵은 모두를 성산의 지하로 불러모았다. 공교롭게도 하이스쿨의 학생들이 자웅을 겨루던 그 장소로.

이 장소 역시 내게는 충분히 불쾌한 기억이 깃들어 있는 장소다. 에럴드의 껍질을 뒤집어 쓴 알리오네가 모두를 속이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도저히 감회에 젖어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 모였으니 이제부터 세상을 구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비오스 자히넵의 음성이 울려 퍼짐과 함께 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구체에 룸베르트 후작가의 문장이 떠올랐다가 비오스 자히넵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저것도 렌서스 후작가가 아니라 룸베르트의 것인가. 문득 내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친 룸베르트의 여식이 떠올라 쓴웃음이 배어나온다.

“제군들은 충분히 강한 자들이다. 지금까지 엠펠로니아와 싸워오면서 살아남아 공을 세운것만 보아도 나는 그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 허나.”

비오스 자히넵이 한쪽만 드러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면서 말을 잇는다.

“드래곤의 힘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지.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오랜 전쟁을 잠시라도 끝내기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존재에게 손을 벌렸다.”

비오스 자히넵이 꺼낸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러했다.

비오스 자히넵은 연합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즉, 이전처럼 무림의 힘을 빌 것이 분명하다. 이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비오스 자히넵은 이 세상 모든 존재라 했다. 단순히 엘프나 신관의 힘을 빌리려는 거였다면 대륙연합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런 표현을 마다하고 모든 존재라 했다는 건....

“지금 이순간부터 드래곤을 물리칠 때까지, 엠펠로니아는 우리의 우방이다.”

한차례 어수선한 분위기가 몰아친다.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려 했던 이들을 아군으로 받아들이라니. 나는 물론이고 소렌까지도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오직 볼마르그 공작을 비롯한 드래곤 슬레이어만이 비오스 자히넵의 말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길길이 날뛰어도 좋을만한 제임스와 볼마르그 공작이 말이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어찌되었든, 전체적인 분위기는 수그러질 기세가 아니었다. 이에 비오스 자히넵은 옆에 서서 수염만 쓰다듬던 제임스에게 눈짓을 한다. 제임스는 밍기적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헛기침을 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납득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보라.”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비오스 자히넵의 손짓에 따라 투명한 구체에 새로운 장면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그것은 드래곤을 상대하는 용사들의 모습이었다. 모두들 멍하니 구체에 떠오른 것들에 빠져들었고, 이윽고 냉막한 목소리가 공동(空洞)을 울렸다.

“이것은 오래 전 나를 비롯한 영웅들이 드래곤을 물리치는 모습을 제임스 공의 협력으로 재현한 것이다. 아니, 정정하지. 드래곤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이라 해야겠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앙이자 인세의 지옥이다. 뇌운(雷雲)으로 이루어진 드래곤의 거체는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조약돌만하게 보이는 이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시커먼 구름으로부터 쏟아지는 천둥번개에 무림에서 온 무인들이 한순간에 숯덩이가 된다. 한차례 크게 울부짖으며 비상할 때마다 엘프들이 먼지처럼 나부낀다. 비상한 드래곤이 활강할때 다시 뇌우가 몰아치며 소드마스터로 이루어진 정예병력이 한 움큼씩 줄어든다.

“현재 드래곤 슬레이어는 과거의 반절이라 해도 좋다. 버티고 있는 게 고작인 사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드래곤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이가 반절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대들의 힘으로, 우리 연합만의 힘으로 드래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보는가?”

소름이 돋는다. 이 광경을 보고도 엠펠로니아와의 전쟁을 논하는 자가 있다면 당장에 입이 찢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어제의 적을 오늘의 아군으로 대하는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미, 믿을 수 없군. 비오스 자히넵. 내 그대에게 전권을 넘겨주기는 했소. 그리고 드래곤이 엄청난 재앙이라는 건 알겠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걸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소? 대체 어떻게 몬스터를 믿고 싸우라는 말인지 설명을 해 보시오.”

누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갈한다. 제법 지체가 높아 보이는 귀족이다. 퍼스트 스타 게급장을 달고 있는 걸 보니 로베른의 전군을 통솔하던 이가 틀림없다.

“베들렌스 공작각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비오스 자히넵이 한숨을 쉬고 싶은 표정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찰나, 갑자기 공기가 변했다. 마치 칼날이 날아드는 듯 살기등등한 기세가 한차례 공동을 휩쓸고 비오스 자히넵의 눈앞에서 시커먼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탁상공론은 이쯤 하시지요. 지금부터는 실무자인 제가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실무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직함으로 자신을 자칭한 그를 보고 나는 무심코 검을 뽑아들 뻔 했다. 간이 부어도 한참 부었다고 해도 좋겠지. 볼마르그 공작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날아갈 정도로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엠펠로니아의 검은 별이 돌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실무자라.... 빌어먹을 농담이로군.”

벨스터 공왕이 으르렁대면서 분노를 삭힌다. 드래곤의 힘을 실감하고 어느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역시 제피온이 눈앞에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제피온은 별다른 위축 없이 싱글대며 비오스 자히넵에게 말했다.

“성산 근처에 병력이 준비되어 있다. 간이 큰 인간이군. 감히 황제에게 이따위 요구를 하다니.”

“그대가 아무리 위대한 황제라 해도 결국 꿀리는 구석이 있으니 여기 혼자 서 있는 거겠지. 아니면 드래곤을 혼자 물리치거나 여기 있는 모두를 상대할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비오스 자히넵이 코웃음을 치며 제피온을 비웃는다. 제기랄,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거목들이라는 게 실감된다. 눈앞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대계를 위해 자신을 억제하는 일 따위, 나는 그런 걸 모른다.

“제기랄.”

나는 격정을 참지 못하고 이 자리를 벗어났다. 소렌이 흠칫 놀라서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잰걸음으로 공동을 나섰다. 그러다 문득 제피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 복수의 대상이 눈앞에 있는데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선을 준 순간 제피온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머릿속에 제피온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곧 만나게 될 테지. 그날을 기대하겠다.]

전음? 아니면 마법인가? 제피온은 주절주절 엠펠로니아의 협력이 가진 정당성을 토로하면서도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의결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놈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이미 경공까지 펼쳐서 그 장소를 벗어나고 있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대괄호는 머릿속에 울리는 말 일체를 의미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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