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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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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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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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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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혼돈무제(混沌武帝) (13)

DUMMY

검기. 어찌 된 영문인지 색은 새카맣지만 저건 분명 검기다. 믿을 수가 없다. 프란츠는 신관이다.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 해도 고작 몇 년 안 본 사이에 검기를 발할 수는 없다. 소렌만 해도 소드마스터가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가.

이는 즉 프란츠의 힘이 정명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프란츠에게서 피어오른 검은 무언가가 갑옷이 된 것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엠펠로니아로 넘어간 건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적이 되었다는 전례를 떠올리고 나는 조심스레 검을 쥐었다.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생각이 없다. 토리나가 엮인 일에서 도망치는 짓 따위를 할 수는 없다.

“프란츠 너 정말로.....”

프란츠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쥬비가 하얗게 질려서 말을 잇지 못한다. 프란츠는 쥬비를 차가운 눈으로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나는 검은 별에게서 힘을 받았다. 도군 네놈이 그랬던 것처럼!”

프란츠가 검기가 넘실대는 검을 휘두른다. 강하다. 천의결로 공격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흘려내지 못했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다. 프란츠가 검격을 주고받으며 조소를 머금었다.

“검은 별에게서 이런 힘을 받고도 토리나를 지키지 못하다니. 이런 힘을 가지고도 도망치다니!”

프란츠의 공격이 점점 매섭게 변한다. 그러나 천의결 앞에서는 모두 무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전혀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이 싸움이 품고 있는 업보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뻔뻔하게 살아남아서는 저 건방진 계집하고 희희낙락하고 있다고?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네놈은 아무것도 몰라!”

밀린다. 믿기지 않지만 나는 편법으로만 구축된 저 검은 검사에게 사정없이 밀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소렌에 근접한 실력이다. 천의결이 아니었다면 진작 나는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토리나는 너를 믿었다! 그런데 너는 그걸 배신하고도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었던 거냐?”

프란츠의 검이 점점 강맹해지며 천의결이 요구하는 움직임이 내 기량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억지로 내공을 돋워 공세에 대항하려는 찰나, 프란츠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의 이름으로, 부정한 힘을 멸하노라.”

느닷없이 충만한 내공이 사라진다. 그 어떤 인과도 없는 갑잡스러운 일에, 천의결마저 미처 반응하지 못한다. 이에 마나 드레인으로 다시 내공을 모으려는 순간 성산에 잠든 기운이 나를 침범하려 든다.

[마지막 기회다.]

혼돈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오기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이런 위기도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오기가 치밀어서 나는 혼돈의 힘을 다시 한 번 거부했다. 그러나 곧 후회한다. 이 상황에서는 혼돈이 주는 힘을 무시하면서 마나 드레인을 운용할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힘이 없는 네놈은 아무것도 없는 쓰레기일 뿐이지!”

마침내, 분노가 가득 들어찬 일격이 오른쪽 어깻죽지를 강타한다. 그 통증을 이겨내며 억지로 검을 휘두르려는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싸늘하다.

“도군!”

쥬비가 처절하게 외친다. 그 외침 사이로 가죽 포대를 떨어트리는 듯한 묵직한 소리와 함께 미약한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따뜻한 빗방울 같은 것이 볼을 적시기 시작하고, 오른쪽 어깨로부터 한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마치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으아아악!”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피분수가 치솟는 어깨를 움켜쥐었다. 딱딱한 뼈의 감촉과 함께, 뜨끈한 피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프란츠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천천히 프란츠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저 한쪽에 널브러져서 꿈틀대는 오른팔을 본다. 오른팔은 아직도 검을 쥐고 있다.

구역질이 치솟는다. 마치 오른팔에 모든 투지와 자존심이 깃들어 있던 것처럼, 나는 순식간에 겁쟁이로 전락해서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죽음이 점점 시야를 좀먹어간다.

“신의 이름으로 죽음을 면하게 하리라.”

프란츠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솟아오르던 피가 멎고 시뻘건 상처에 살이 오른다. 죽음이 다시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나는 한심하게도 안도하고야 말았다.

“설마 팔 하나로 끝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프란츠가 희열과 냉정함이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검은 칼날을 내 눈앞에 가져댄다. 한심하다. 수치스럽다. 혀를 물고 자살이라고 하고 싶다. 한순간이나마 안도한 내가 밉다.

“우선 토리나를 죽이고도 따뜻한 식사를 처먹은 밥통.”

프란츠의 검이 복부를 꿰뚫는다. 나는 피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검에 맞아서 피를 토했다.

“그리고 감히 토리나를 두고 도망쳤던 두 다리.”

프란츠가 내 옆구리를 걷어차서 나를 엎드리게 하고는 인정사정없이 양 다리를 짓밟는다. 아찔한 소리가 나며 다리뼈가 살갗을 찢고 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 어떤 상처에서도 출혈은 없다. 프란츠가 계속해서 나를 치료하고 있는 탓이다.

“다음은.....”

프란츠의 잔혹한 미소를 보니, 오래 전 보았던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 원한에 차서 오크의 위장을 찢었던 내가. 나도 그 오크 꼴이 되는 걸까?

“오크. 엠펠로니아.... 제피온!”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나는 내 본분을 다시 깨달았다.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되는데. 쥬비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게 한 다음 나는 제피온을 쓰러트리러 가야 하는데. 그런 상념도 잠시, 프란츠의 고문에 나는 변변한 상념도 잇지 못하고 비참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해 프란츠!”

보다 못한 쥬비가 만신창이가 된 내 앞을 가로막으며 외친다. 프란츠가 눈썹을 실룩이더니 이내 차갑게 쏘아붙였다.

“잘 됐군. 자카이야의 창녀도 영 마음에 안 들었었는데.”

프란츠가 무심하게 검을 들어올린다. 그러나 쥬비는 비켜서지 않는다. 오히려 프란츠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다.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그랬었지.”

프란츠가 냉정하게 검을 내리친다. 놀랍게도 쥬비는 언제 착용한지 모를 철토시로 프란츠의 검을 어렵사리 받아내고 말을 이었다.

“이제 제발 그만해. 토리나도 이런 걸 원하지 않을 거야.”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토리나를 부르지 마라!”

프란츠에게서 막대한 기세가 발출된다. 다 아물어버린 상처가 저려올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한순간에 투지를 잃고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는 내게는 너무나도 과중한 압력이었다.

“제발 떠올려 봐! 너는...”

쥬비가 덜덜 떨리는 몸으로 체술을 구사하며 프란츠의 검을 받아내는 한편 역공을 가한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프란츠의 힘은 소드마스터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었다. 쥬비는 절대 그를 막을 수 없다.

“무, 물러나!”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온 힘을 짜내서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일 뿐이다. 프란츠의 검이 하늘을 가리킨다. 쥬비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프란츠의 검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프란츠의 검이 내리꽂힌다.

“크으.....”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프란츠의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프란츠가 쥬비의 머리 위에서 검을 멈춘 것이다. 프란츠는 덜덜 떨리는 팔을 다른 쪽 팔로 움켜쥐고 있었다.

“쥬비 누나....”쥬비를 누나라 칭한 저 목소리는 분명 프란츠의 것이다. 내게 분노를 품기 이전의 그 목소리. 그렇다면 혹시 프란츠는 제피온에게 사술이라도 당했던 걸까? 그게 지금 깨진 걸까?“

“프란츠? 너 정신이 든 거야?”

쥬비가 긴장을 탁 풀고는 프란츠에게 달려간다. 프란츠는 천천히 검을 내리고 있다. 얼굴을 뒤덮은 검은 투구가 안개가 되어 흩어지고, 그 안에 땀범벅이 된 프란츠의 얼굴이 보인다.

“누나, 이건 대체...... 도와주세요. 저는 도군 형과 누나를 죽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팔이....”

“기다려. 아마 고도의 최면 같은 게 걸려 있는 것 같아. 우선 내가 최면을 걸어 볼게.”

쥬비가 제법 자카이야의 무녀다운 소리를 하며 프란츠의 이마를 훔쳐 주고는 프란츠의 얼굴을 마주본다. 극도의 긴장에서 풀려난 탓일까? 기력이 모조리 빠져나간 기분이 든다. 숨을 내쉬는 것도 버거울 정도다. 하지만 안도했다. 제피온의 수작은 여기서 그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한 찰나, 천의결이 번뜩인다. 아니다. 제피온의 수작은 끝난 게 아니다. 프란츠는 아직....

“저, 누나.”

프란츠의 목소리가 점점 평온해진다. 아니, 냉정하게 돌아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쥬비는 프란츠의 눈앞에 손가락을 가져대서 빙빙 돌리고 있었다.

“응, 왜?”

“혹시 기대했어요? 제가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 꺄아악!”

프란츠의 얼굴이 다시 검은 투구에 가려진다. 쥬비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넘어지려는 것을, 프란츠는 쥬비의 목줄기를 움켜쥐어 잡아챈다. 그리고는 프란츠가 미친 듯이 웃었다.

“크하핫! 역시 당신은 멍청해. 고도의 최면? 그 따위 것이 이런 복수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자카이야의 귀족 아가씨.”

속았다. 프란츠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왜 그런 짓을 하려는 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쥬비를 온전한 모습으로 사로잡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걸 통해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다.

“쓰레기.”

프란츠가 쥬비를 땅에 내동댕이치고는 말했다.

“토리나도 지키지 못한 주제에, 이런 계집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프란츠가 우악스럽게 쥬비의 옷깃을 움켜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머리가 하얗게 질린다. 움직여라. 나는 그렇게 일갈하며 기력이 쇠한 몸뚱이를 꿈틀거렸다. 그러나 글렀다. 프란츠가 단숨에 쥬비의 상의를 찢어발기고 속옷까지 거칠게 끌렀다.

“네놈이 토리나 대신 지키려고 한 계집이 무슨 꼴이 되는 지 잘 봐라.”

본래 신실한 신관이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짓을 저지르려는 프란츠. 내가 프란츠를 저렇게 만들었다 해도 좋았다. 내 나약함이 이 모든 일을 자초했다.

“도군! 도군!”

쥬비가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부른다. 프란츠의 웃음소리가 쥬비의 비명을 가로막는다. 나는 더욱 힘껏 몸을 움직이려 애쓴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프란츠가 육신을 철저히 파괴한 탓에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다.

“안 돼...”

쥬비의 비명소리가 잦아든다. 프란츠가 갑옷을 벗고 마침내 쥬비 위에 올라탄 상태다. 늦어선 안된다. 단순히 강간으로 끝날 리 없다. 쥬비는 처참하게 능욕당한 다음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크하하핫!”

이젠 광기밖에 남지 않은 프란츠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심장소리가 점점 커진다. 죽음이라는 장막이 서서히 눈꺼풀을 뒤덮고 있다. 죽음이 다가왔다. 나는 죽는다. 곧 죽는다. 이것이 두 번째 죽음. 죽음을 맞이한 순간 나는 후회에 점철된 삶에 허탈함을 느꼈다.

문득 이번 삶도 전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실패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고결한 척 살다가 진정 정명한 무인 앞에서 나는 좌절하고 자포자기했다.

또한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도 실패했다. 나를 사랑했던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전생에서는 그렇게 일편단심이었던 심하령을 떠나보냈고, 이번에는 토리나를 시작으로 쥬비까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려 한다.

[화가 나는가?]

혼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린다. 저 한마디에 섞여있는 유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마치 다시 태어나기 전 혼돈의 물음에 답했던 것처럼.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나는 그제야 확신했다. 이제야 운명이라는 수레바퀴가 제 길을 찾았다는 것을.


“아.”

무심코 탄성을 내지르고 나는 왼팔에 안겨 있는 쥬비를 바라본다. 그녀는 이미 기절해 있다. 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이 순진한 아가씨가 나쁜 일을 당하기 전에 내가 그녀를 구해냈다는 점이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네.”

나는 쓴웃음과 함께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앞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리기 위해서다.

“네, 네놈은...”

프란츠의 갑옷이 상당부분 박살나 있다. 심지어 수복조차도 되지 않는다. 갑옷의 상처 곳곳에 서린 내 힘을 보고 나는 손쉽게 그 현상에 수긍할 수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도 순수한 의지의 결집을 이겨내지 못한 거구나.”

“대체 네놈은 어째서!!”

프란츠가 반파된 투구 사이로 격렬한 적의를 보이며 달려든다. 제법 강맹한 기세로 검은 칼날이 짓쳐든다. 그것을 무심코 오른팔로 막아내려다 나는 오른팔이 텅 빈 것을 보고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이걸 잊고 있었구나.

그러나 오른팔이 없어도 충분했다. 단지 막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나는 프란츠의 검을 막아낼 수 있었다. 내공을 통해 억지로 형성한 호신강기가 아니라, 진정한 호신강기가 내 주위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프란츠 네게도 사과를 하고 싶어.”

초탈한 목소리로 나는 그에게 사과를 건넨다. 당연히 프란츠가 들을 리는 만무하다. 프란츠는 더욱 악에 받쳐 검을 휘둘렀지만 그런 싸구려 공격이 먹힐 리는 만무하다. 똑같은 저열한 편법이라 해도, 내 힘은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천의천의 존재가 부여한 힘이다. 한마디로 격이 다르다.

“무림에 나타난 빙룡이 아니라 다른 용. 그 용의 심장이 성산에 봉인되어 있었군. 이 힘은 성산이 성스러운 힘과 용의 사악한 힘이 혼재된 그런 힘이었어.”

어째서 내가 성산에서만 힘을 얻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내 온몸을 가득 메운 힘이 박살난 육체를 수복하는 것을 느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른팔이 새로 솟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쉽지만 하는 수 없지.”

조금 꼴사나운 모습이지만 이건 내 업보다. 할 일이 태산인지라 목숨을 가져다 바쳐서 속죄를 청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속죄를 미루도록 하자.

“허억, 허억.”

프란츠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나운 적의를 선보인다. 그러나 내 마음은 평온하기만 하다. 오히려 죄책감 때문에 연민마저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또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나!”

숨기고 있었다는 말에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영 후회만 떠오르는 인생이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손아귀에 쥔 검을 왼손으로 쥐어 본다. 조금 낯설지만 나쁘지는 않다.

“제기랄, 알터메이스!”

프란츠가 그렇게 외친 순간 땅 속에서 검은 웜이 솟아오른다. 드래곤을 닮아있는 최강의 몬스터다. 아니, 조금은 다르군. 웜은 웜이지만 해츨링과 뒤섞여 있는 것이 느껴진다.

“다크 나이트여, 저자와 싸워서는 안된다.”

웜이 웜 특유의 발성기관으로 용케 말을 전해온다. 이에 프란츠는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면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감행한다. 즉, 후퇴다.

“확실히 나보다 나아. 나보다 강해도 이상할 건 없었겠어.”

점액이 흘러내리는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웜을 바라보며, 나는 왼손에 든 검을 힘을 쥐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살려둘 생각은 없어.”

강력한 존재에게 보내는 경의 따위는 없다. 어차피 프란츠 역시 편법에서 태어난 가짜 소드마스터. 그리고 저 해츨링 역시 마나 드레인을 응용한 괴물에 불과하다.

서서히 날아오르는 저들에게 나는 힘껏 검을 휘둘렀고, 그 일격이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며 웜의 날개가 잘려나간다.

“신이여!”

프란츠가 신성력을 발휘한다. 예전 같았으면 저런 신관에게 힘을 빌려주는 신을 원망했겠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신이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였음을 알고 있기에.

프란츠의 신성력이 웜의 날개를 다시 수복하고, 웜과 프란츠가 저 멀리 날아간다. 그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어떻게 저들을 따라잡을지 궁리했다. 어지럽게 뒤섞인 무공이며 오의에 눈살을 찌푸리다, 나는 적당히 그것들을 하나로 취합해 하나의 말로 묶었다.

“월공(越空).”

그렇게 말한 순간 혼란스럽게 어지러진 무공이 일부 질서를 가지며 하나의 절대적인 무공으로 화한다. 그와 함께 나는 한순간에 저 멀리 날아가버린 프란츠의 코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니!”

프란츠가 재빨리 검을 뽑아들려는 차에, 나는 과거 펼쳐냈던 무공 중 하나를 선보였다.

“천뢰종쟁.”

수천 수만 번이나 되는 검격.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줄기처럼 압도적이고 빠른 검격이 웜을 도륙한다. 그리고 웜을 잃고 추락하는 프란츠에게 몸을 날린다. 이렇게 끝나나 싶은 차에, 프란츠가 숨겨둔 패를 선보인다.

“팬텀 스티드(Phantom Steed)!”

프란츠의 갑옷이 다시 검은 안개로 화했다가 사악한 기운이 넘실대는 말의 형상을 취한다. 그 말에 올라탄 프란츠가 웜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내게서 멀어지려 한다.

인간을 초월한 안(眼)력으로 나는 프란츠의 얼굴에 잔뜩 두려움이 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이런 식이다. 편법으로 점철된 무인은 더욱 강한 편법을 만났을 때 이렇게 일그러질 뿐이다.

“나랑 똑같아 결국.”

나도 그랬지만 너도 역시 토리나를 구하지 못했지. 단지 프란츠 너는 그 책임을 내게 전가하고 있었을 뿐이야. 마치 과거 어리석었던 나를 벌하는 것처럼 나는 더없이 불쾌한 마음으로 편법으로 치장한 검은 기사에게 일격을 가한다.

“도월(到月).”

달을 베기 위해서는 저 멀리 있는 달에 닿아야 하는 법. 달을 가르는 단월이 달의 그림자를 벤다면 도월은 진정 달을 베기 위한 첫 번째 검이다.

도월로 흑마를 베어내고 월공으로 거리를 좁혔다. 프란츠가 당황해하서 나를 올려다본다. 프란츠의 두려움을 직시하며 나는 단호하게 검을 내리쳤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5천자에서 자르려다 그냥 올려봅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주인공이 강해졌습니다. 캐릭터 하나가 또 죽는건가 싶었던 분들도 이제는 안도하세요.이제 자존심 따위는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초반에 한번 강해질 기회가 있었는데 참 많이도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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