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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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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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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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6)

DUMMY

의가제일이라는 이름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폐인으로 전락했어야 할 나나 한상염이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만 보아도 그 의술이 하늘의 뜻을 거스를 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알 터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의가에서 제일가는 의원이라는 의미보다는 의가에서 가장 무공이 뛰어난 이라는 경외 어린 별호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뻗어내는 일격과 일격을 막아낼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과연 누가 이 광경을 보고 심유환을 고작 의원으로 치부할까?


“크악!”


사이한 초식으로 공세를 퍼붓던 사내는 유수(流水)와 같이 파고드는 심유환의 왼손 주먹에 복부를 얻어맞고 단내나는 침 섞인 피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졌다.

한 수 재간이 있었던 사내였는지 호기롭게 정면에서 승부를 걸어왔지만, 절정과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실로 극명하다. 설령 기습을 가했다 해도 사내는 마찬가지로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후우......”


심유환이 크게 숨을 고르며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연달아 무공을 펼쳐내면 조금은 흔들리는 법이다. 절정고수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심유환은 호흡 한 줄기만으로 흐트러진 심기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것이 절정의 고수. 호흡을 한번 내쉬기도 힘든 실력자만이 심유환의 흐트러진 모습을 이끌어 내리라.


“대체 뭣들 하는 게냐? 저 늙은이를 무시하고 철검무룡과 소천검을 노려라!”


방금 쓰러진 사내보다 윗선의 고수였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던 장한이 마침내 심유환에게 칼날을 내밀었다. 사흘 내내 격전은 치른 심유환은 한눈에 보아도 몰골이 엉망이었지만 누구도 멀쩡한 모습의 장한이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심유화의 무위는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었다.


“감히 잡어(雜魚) 따위가 늙은이를 우습게 보는구나!”


심유환이 단숨에 앞으로 나아가 장한의 가슴팍에 수도를 박아넣는다. 육중한 격타음과 함께 장한이 묵직한 신음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실로 정교하고도 막강한 일격이다. 빠름과 힘을 겸비한 일격. 아니, 그 안에는 분명 수많은 무리(武理)가 숨어 있었다. 너무 현묘해서 나로서는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수준의 무공이다.


“쿨럭!”


장한이 땅을 구르다 날렵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고여 있던 피를 뱉어낸 것이 아니라 이제 막 터진 상처에서 나온 피다. 그 말인즉슨 일격으로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큭! 대형이 일격에 당할 줄이야...”


설초아의 검무에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들 중 하나가 눈에 띄게 동요한다. 이에 설초아가 눈을 빛내며 그 사내의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저건 함정이군. 내가 그 사실을 전하려는 찰나, 한상염이 한발 앞서 외쳤다.


“허(虛). 진짜는 뒤다!”


한 사람에게 공격이 집중된 차에 다른 이들이 일제히 설초아라는 방벽을 넘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저들에게 살아 돌아간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 그 열의는 나조차도 경의를 표할 만큼 찬연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앗!”


단숨에 승부를 낸 설초아는 연달아 나와 한상염을 향해 달려드는 무리에 검초를 날렸다. 그러자 신묘하게도 등 뒤에서 날아든 검에 적중한 사내들이 도로 설초아 쪽으로 끌려간다.

평범한 검초가 상대방을 밀어내는 반면, 이 검은 도리어 상대를 끌어당긴다. 절묘하게 균형을 흩어내 밀려나는 방향을 뒤틀었군. 보기 힘든 절초를 보니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간다. 상황은 급박하기 짝이 없건만 한가롭게 저 검을 흉내 내 보고 싶은 욕망이 나를 괴롭혔다.


“크악!”


심유환이 가볍게 마지막 적이었던 장한을 처치함과 함께, 한상염과 나를 지키던 심하령이 긴장을 풀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지금까지 본대로라면 심하령 역시 상당한 실력의 고수였다. 다만 비슷한 초식을 구사하는 심유환이 워낙에 눈에 띄기에 반대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유제강의 부드러움 속에는 묵직한 기세가 담겨 있어, 심가의 무공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군요. 혹시 그 무공으로 헤쳐가지 못할 것이 있었습니까?”


너무 무공에 심취한 탓에 그만 상념을 입 밖에 내고, 심지어 확인까지 청하고 말았다. 그 물음이 향한 곳은 바로 나와 한상염을 지키고 있던 심하령. 그녀는 뜬금없는 문답에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공자님? 설마 지금 대답을 들으시려는 건 아니시죠?”


“......물론 아닙니다.”


부끄러움에 못 이겨 난전 속으로 눈을 돌리려는 찰나, 한상염이 그간의 행보에서 얼마나 깊은 피로에 시달렸는지 말해주는 듯한 숨을 거듭 내쉬며 말했다.


“심가장의 비전은 단기결전에 치우쳐 있습니다. 투로에 담긴 묘리는 뛰어나지만, 그 초식은 여타 명가에 미치지 못하여, 장기전에 취약합니다.”


마치 전생의 나를 일컫는 듯한 수법이군. 나는 그 해법으로 더욱 강한 힘을 추구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길이다.


“장사꾼의 무공이 완벽할 필요야 없겠지요. 하앗!”


심하령이 그렇게 말하며 뻗어낸 일수에 이름 모를 사내의 신형이 붕 날려간다. 내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한 분노라도 담겨 있었을까?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강맹한 일격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다시 심가의 무공에 빠져들었다.

심하령의 일격과 일격은 거진 임기응변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초식이 심오하지 않기에 이런 난전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파훼법을 찾으려면 먼저 심하령이나 심유환의 일격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죽어라, 계집!”


그래도 개중에는 심하령의 일격을 견뎌내고 다시 달려드는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 기세는 이전의 반절만도 못해서, 나나 한상염도 별탈 없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제기랄! 후퇴해라!”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심유환의 신형이 도망치는 이들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얼핏 생각했을 땐 심유환이 자기 기세에 취한 것 같았지만, 재차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행동이었다. 저들을 돌려보내 봐야 더 많은 적과 함께 돌아올 뿐이다.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아야 우리의 위치도 발각되지 않을뿐더러, 조금이라도 쉴 시간이 생긴다.


“하압!”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 역시, 비틀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한 이들의 숨통을 끊기 시작했다. 병장기를 들 힘도 없는 패배자를 도륙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크를 처참하게 농락하던 내가 지금 와서 무슨 죄악감이라도 들까?


그렇게 반나절 동안 이어진 격전이 끝났다. 기적처럼 우리 모두 부상 하나 없이 깊은 산 속에 들어올 수 있었다. 생존자도 없고 산속에 들어온 이상, 꽤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승산이 보이는군.


“이쯤에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심하령이 딱딱한 어조로 잠깐의 휴식을 언급하자, 그제야 철벽같던 심유환의 기세가 돌연 흐트러진다. 그 광경에 가장 놀란 것은, 증손녀인 심하령도 아니고, 가장 가까이서 함께 싸우던 설초아도 아닌 바로 나였다. 멀쩡해 보였는데 큰 상처라고 입은 걸까? 아니다. 다행히도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듯 싶었다.


“하, 고작 이 정도로 늘어지다니. 나도 늙은 게로구나.”


심유환이 덜덜 떨리는 팔다리를 주무르고 심드렁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서 여유가 철철 넘쳐 보여서 걱정은 덜었지만, 역시 지친 건 분명해 보였다.

제아무리 절정의 고수라도 사람이다.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절정을 초월한 고수였던 나는, 마나 드레인과 혼돈이 준 힘을 받아 지칠 줄 모르고 싸웠었기 때문이다. 새삼 그 당시의 내가 얼마나 괴물 같았을지 실감이 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설초아가 심하령에게 물었다. 그 대답은 희망적이거나, 혹은 절망적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격전을 오래 치를 수는 없다. 농담처럼 말했어도 심유환이 지친 것은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온전하게 살아남기는 어려우리라. 대답을 듣는 것조차 두려웠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나아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속도대로면 닷새입니다. 닷새만 더 가면 사람들이 오가는 가도가 나오고, 노창성이 지척입니다.”


“닷새......”


참담한 심정으로 중얼거린 순간, 일행에게서 밝은 분위기가 터져나와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닷새나 더 이렇게 미친 듯이 싸워야 하는데 희망이 생긴다고? 나는 다 죽어가는 조무래기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저들은 대체 어떻게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흥, 닷새나 노인네를 부려 먹으려고 하느냐? 사흘이다. 좀 더 속력을 내서 사흘 안에 결판을 내마”


심유환이 태연자약하게 불가능할 것 같은 위업을 논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눈앞이 일순 깜깜해지며 현기증이 이는 것 같았다. 분명 지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암담함과 저들이 품는 생각은 왜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단순히 내공의 우무일까?


“무리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소문주님도 그렇지만....”


설초아가 슬쩍 한상염 쪽을 바라본다. 그러나 한상염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도 당당한 기세로 단언했다.


“문제없습니다.”


한상염에게서 풍겨오는 기세를 느끼고서야 그 차이란 내공의 유무가 아님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그 차이란 마음의 차이다. 혼돈의 힘도, 마나 드레인도, 두 번째 삶도 없이 여기까지 온 이들은 영혼마저 수천수만 번 단련된 진짜배기 무인이다. 나처럼 어영부영 나아가던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인함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저도..... 괜찮습니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그렇게 말해 보았다. 지금은 이 정도가 고작이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도달했다 여겼지만, 실은 갈 길이 멀고 멀었다. 무인이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내공이나 육신의 힘이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기백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기호지세(騎虎之勢)다. 심유환이 장담한 사흘 중 하루가 지났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속력을 늦추면 죽는다. 죽음이 가져올 상실함과 암담함만은 그 누구보다도 잘 실감한 나라서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그간의 수련에 성과가 있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업힌다는 추태까지 각오했건만, 내 몸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옥 같은 하루를 견뎌갔다.


“자아, 오너라! 만년한철로 만든 비침이다!”


심유환이 노호성을 터트리며 둘째 날부터 꺼내 든 가느다란 침을 날렸다. 심유환이 쓰던 침이니만큼 상당한 가치가 있는 기물임이 틀림없었지만, 심유환은 그것을 회수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연신 비침을 날리고 있었다. 도리어 그것이 불편한 것은 심하령이었다. 유독 심유환이 비침을 날릴 때마다 시선이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기야 만년한철이라면 황실에서도 귀하게 여기던 물건이다. 차라리 금자를 던진다 해도 저것보다는 훨씬 부담이 덜하겠지. 물론 금자가 비침만큼 은밀한 결정타가 되지는 못하니,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심유환을 말릴 수는 없다는 의미다.


“비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알아두어라.”


기물을 소모하던 와중에 들려온 비보는 둘째 날 막바지에 암담함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어두운 감정은 현실이 되어, 싸움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심유환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느려졌고, 그럴수록 적은 점점 강대해졌다.


“죽어라 늙은이!”


“어딜 감히!”


장법의 고수와 심유환이 힘겨루기에 나섰다. 내공과 내공이 부딪치는 정면승부. 여태껏 벌어진 적 없는 격돌에 파공음이 일며 주위를 메우고 있던 잡병들이 일제히 나가떨어진다.


슈욱!


자세가 흐트러진 이들을 놓치지 않고 설초아의 검이 번쩍였다. 단번에 셋을 쓰러트린 검이 거칠게 회수되며 등 뒤를 노리는 적을 향해 설초아가 옆구리 사이로 검을 찔러넣었다.


“폭살공이다!”


그러나 그것은 설초아를 노린 함정이었다. 설초아가 황급히 한상염의 외침에 반응한 찰나, 복부를 꿰뚫린 무인이 싸늘하게 웃으며 설초아의 검을 움켜쥐었다. 죽어가던 무인의 피부색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퍼엉!


간발의 차이로 설초아가 몸을 날려 폭발에서 벗어났다. 피륙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광경은 정말로 낯선 광경이라 꽃잎이 흩날리는 평범한 광경으로만 느껴진다. 제길, 그런 순간 누군가 검을 잃은 설초아를 향해 살수를 펼쳤다. 다급하게 움직이려 해 봤지만 늦었다. 설초아의 코앞으로 섬전같은 빛이 번쩍인다.


카앙!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 설초아를 구해낸 이가 있었다.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한상염이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나아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한상염은 한계를 넘은 듯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꼬꾸라졌다.


“대주님!”


설초아가 한상염을 부축한다. 이젠 늦지 않는다. 뒤늦게 달려나간 나는 놀란 얼굴로 얼떨떨해하는 청년의 어깨죽지를 찔렀다. 약간의 반탄력과 함께 검이 육신을 꿰뚫는 느낌이 났다.


“감히!”


설초아가 검을 들지 않은 맨손으로 어깨를 꿰뚫린 청년의 가슴팍에 정권을 내질렀다. 일격에 가슴팍이 박살나며 청년은 그대로 절명했다.


“저건.....”


무서운 일격이다. 수천번 수련해온 내 권격보다 훨씬 깨끗하고 위력적이었다.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설초아는 게으른 천재였다. 게으름이 사라지고 처절함만이 남은 지금 그 재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질투와 같은 저열한 감정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 모르기는커녕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설초아의 권격은 위력적이었지만 분명 일절은 아니었다. 절정이란 경지에 취했던 내게는 그 일권마저도 어설픈 손짓으로만 보였다.


“제길.”


절로 험한소리가 나온다. 약해빠진 주제에 무슨 생각이냐? 그런 안일함은 무인에게 독이 된다. 정신 차려라.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고갯짓으로 지워버리고 주위를 분간할 땐, 이미 한 차례의 격전이 끝나 있었다.


둘째날이 끝났다. 심유환의 말대로라면 내일이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갖는 휴식은 그다지 달지 않았다. 오히려 첫째 날보다 기세가 덜한 습격이 이어졌음에도 헤쳐나온 우리는 첫날과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쳤다는 말도 지겨울 정도군.


“마지막 날에 결착을 지으려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둘째 날 모습을 드러낸 무인의 수효과 질을 따져가던 설초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누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한상염의 혈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더는 못 갑니다. 허를 찔러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설초아가 한상염의 수족을 주무르며 그를 돌보는 심유환을 도우며 한편으론 결론을 내렸다. 애절하게까지 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차가운 목소리다. 함정을 피해 허를 찌른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심하령은 탐탁치 않아 했다.


“방향을 사방 어느쪽으로 틀더라도 포위당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나마 포위망이 옅은 쪽으로 가고 있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다른 포위망을 구성하던 이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걸 모르시나요?”


“그럼 위험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무모하게 그리고 가야 하는 겁니까?”


설초아가 몸을 일으키며 심하령을 매섭게 내려다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심하령 역시 조용히 몸을 일으켜 설초아를 마주했다. 그러다가 심하령이 한상염에게 추궁과혈을 이어가던 심유환에게 눈을 돌렸다. 심유환이 그 시선을 알아채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추궁과혈을 이어가며 말했다.


“이 녀석은 이대로 더 가면 지쳐서 죽을 수도 있다. 대충 조치는 취해 두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을 가능성은 사할 정도 되겠구나.”


때쯤 한마디를 하면서 건재함을 내보이던 한상염은 이번에는 눈을 감고 신음하고 있을 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혈을 점하고 추궁과혈을 한다고 해도. 일절에 올랐던 무인이 정신조차 가누지 못하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결정을 내리시지요. 부상자를 업고 계속 싸우다 죽을 것인지, 아니면 활로를 찾아 나설 것인지.”


설초아가 서슬 퍼렇게 대답을 종용했다. 그렇지만 심하령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같은 대답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세상에 누가 저 살기를 받으며 태연하게 자기 뜻을 이어갈까?


“예정대로 갑니다. 제가 부상자를 업지요.”


“이대로는 죽는다고 듣지 않았습니까? 다른 분도 아닌 의가 제일의 의원께서 그리 말씀하셨다고요!”


설초아가 처음으로 이성을 잃고 심하령에게 소리를 높였다. 그와 함께 상당한 기세가 터져나와 나는 물론이고 심유환마저 얼굴을 굳히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누군가 기척을 느끼고 다가오지는 않았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음에도 설초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상염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팔짱까지 낀다. 저쪽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이리라.


“고집을 피울 생각인가요?”


심하령도 슬슬 신경이 곤두서는지 점점 목소리에서 태연함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심유환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한상염의 상세를 살피고 있었다. 제길, 이럴 때야말로 소문주가 나서서 다스려야 하건만 어째 섣불리 나설 분위기가 아니다. 설초아가 슬쩍 눈을 뜨며 퉁명스럽게 대꾸햿다.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고집이라고 말씀하셨나요?”


“그건 제가 할 말이네요. 설 소저. 아니, 설 대원은 천검대의 일원이면서 누가 더 중요한지 모르시는....”


“잘 압니다.”


그 순간 설초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진심이다. 설초아는 나 도군을 위해 한상염을 위험에 던지기보다, 한상염을 위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당신은...... 천검대원이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가....”


심하령이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까지 치며 물었다. 이에 설초아는 품속에서 철패를 꺼내들더니 그것을 길가에 떨어진 잡돌처럼 휙 집어던졌다. 저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천의검문의 제자는 없다. 설초아는 지금 천검대는 물론이고 천의검문의 제자라는 이름 역시 버린 것이다.


“당신은!”


심하령이 발끈하며 멱살이라도 쥐려는지 다가가는 순간, 설초아가 눈을 번쩍 뜨고는 심하령을 노려보았다. 심하령이 흠칫 놀라서는 무형의 살기에 저항하기 위해 내공마저 끌어올렸다. 그와 함꼐 설초아마저 내공을 끌어올린다.


“그만.”


더는 안된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나는 무림 제일의 문파, 천의검문의 소문주다. 내 한마디에 두 여걸의 기세가 한층 꺾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다급히 다음 말을 꺼냈다.


“설 소저의 생각도 알고, 심 소저의 말도 알겠습니다.”


설초아의 파격적인 행보는 오래 전 보았던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한 사람을 위해 고집을 부리는 천재적인 재능의 소녀. 소렌 폰테일 말이다. 그래서일까, 설초아가 목숨을 잃더라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았다. 적어도 소렌은 그런 사람이었다.


“가십시오.”


“네?”


심하령이 반문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편이 나을 것이다. 억지로 납득시켜 봐야, 설초아는 검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야밤에 도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둘로 나뉜다면 저들도 혼란스러워할 테지요. 설 대주께서는 부상자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이목을 끌어 주십시오.”


아마 저들이 노리는 것은 나일 테니, 설초아는 안전하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목이 끌리기는커녕 그녀는 그럴 의지도 없겠지. 애초에 설초아는 한상염 때문에 길을 떠나온 사람이다. 남녀간의 정이든 무엇 때문이든 한상염이 위험할 일을 자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초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내게 예의를 차리지 않던 그녀는 지금 이 순간만은 포권을 쥐어 내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혼수상태가 된 한상염을 업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싸움이 끝나기까지 하루 전의 일이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대책없이 늘어지는 연재, 쌓여가는 피로.

더 연재가 늘어질 뻔 했지만, 최근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서 의욕에 불타 지친 몸을 채찍질해서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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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99 삼계탕
    작성일
    15.09.22 00:18
    No. 1

    오랜만에 올라왓네요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스킨크
    작성일
    15.09.22 00:30
    No. 2

    이 진도대로면 몇년 뒤에나 도군이 강해지겠네요. 그나저나 설초아가 언젠가부터 짜증나는 캐릭으로 변모했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림천
    작성일
    15.09.22 05:29
    No. 3

    무림편 전개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요. 1부에서 사건이 쓸모 없는 전개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제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 주인공을 변화시킨다 해도 설득력이 떨어질것 같습니다... 이제와서는 수습이 안되는 지점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이제 글적 재미는 무한 구르기나... 흔한 반전에 묘미뿐이 보이지 않네요...또한 주인공에 대응이나 행동패턴이 매번 비슷해서 다른 사건이라도 큰 틀에서 같은 사건이 되어버리네요... 뭔가 무한 반복 아침 연속극 보는 기분... 물론 작가적 역량을 발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고있습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혼연무객
    작성일
    15.09.22 21:26
    No. 4

    다시 오셨군요.
    ...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아키라나
    작성일
    15.09.24 06:28
    No. 5

    림천님이 아주 정확한 조언을 해주셨네요. 제가 느끼고 있는 심정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아침기상
    작성일
    15.09.25 10:00
    No. 6

    뭐 지금은 주인공이 일보후퇴인 상황이니까요. 작가님이 알아서 플랜 짜셨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늘희망
    작성일
    15.09.27 10:46
    No. 7

    도군이 내적 성장을 하는거 같긴한대 얼른 마음을 다잡았으면..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고지라가
    작성일
    15.09.29 15:55
    No. 8

    주인공의 맨탈이 너무 약한데요. 일을 하다보면 윗사람이 막 흔들리는경우 아래사람도 같이 흔들리게 됩니다. 주인공의 무공의 재능여부를 떠나 마음자체가 주인공에서 벗어나고 있는것 같아요. 목표인지 성장인지.. 하고싶은게 무공인데.. 적성에 안맞는거 같고 위치는 높은데 그것도 적성은 아닌거 같고.. 이제와서는 무공이 하고 싶은건지 절대고수가 되고 싶은건지.. 되봤으니 꿈을 이룬건데.. 자꾸 오락가락한다는건.. 지표가 없달지.. 이걸 손에 넣으니 저걸 놓게되고.. 저걸 집으니 이걸 놓게되고.. 이것도 저것도 하고싶은데.. 능력은 안되고.. 음.. 놓는게 왜 잘못된것지는 모르겠지만.. 가지고 있는것중 하나만 온전히 해도 인생이 무난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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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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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8. 등하불명(燈下不明) (2) +7 15.10.04 827 15 14쪽
200 8. 등하불명(燈下不明) (1) +9 15.10.01 917 13 20쪽
»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6) +8 15.09.22 846 11 20쪽
198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5) +5 15.08.07 831 16 14쪽
197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4) +9 15.06.28 944 23 12쪽
196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3) +5 15.05.09 928 18 16쪽
195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2) +4 15.04.26 858 16 14쪽
194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1) +5 15.04.11 977 24 18쪽
193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3) +6 15.03.31 1,058 20 14쪽
192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2) 15.03.27 924 15 12쪽
191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1) +2 15.03.24 751 26 13쪽
190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0) 15.03.20 845 17 11쪽
189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9) 15.03.17 791 14 18쪽
188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8) +2 15.03.13 830 15 14쪽
187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7) +3 15.03.10 844 17 11쪽
186 1. Superior Progress : 암중의 음모 +3 15.03.06 902 17 12쪽
185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6) +4 15.03.03 812 17 15쪽
184 외전 1. Superior Progress : 흑마법사 +1 15.02.27 671 10 15쪽
183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라스탄트 공습 +4 15.02.24 585 12 14쪽
182 외전 1. Superior Progress : 회동(會同) +2 15.02.20 764 17 11쪽
181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5) +4 15.02.17 814 22 13쪽
180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대접전 +5 15.02.13 754 14 17쪽
179 외전 1. Superior Progress : Highest Overwhelm +4 15.02.10 779 14 20쪽
178 외전 1. Superior Progress : 깨달음. 그리고 비극. +5 15.02.06 714 14 14쪽
177 외전 1. Superior Progress : Before Dawn 15.02.03 654 14 20쪽
176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4) +7 15.01.30 863 15 14쪽
175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변화 +4 15.01.27 693 15 18쪽
174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모든 게 처음이었다. +6 15.01.23 684 13 24쪽
173 외전 1. Superior Progress : 소렌이 나아갈 길 +6 15.01.20 728 10 17쪽
172 외전 1. Superior Progress : 폰테일 공작의 고뇌. +4 15.01.13 748 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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