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롤 : 중세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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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선
작품등록일 :
2016.03.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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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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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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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비병 (6)

DUMMY

옆에서 멋대로 뺏어가더니 그 종이카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종이라는 것은 희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도 아니다.


이 시대의 종이는 단가가 높다. 나무에서 식물 섬유질만 뽑아 겹겹이 압착하여 말리는 등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양피지는 더더욱 고가품이고, 지구대에서 사용하는 용지는 거칠고 품질 낮은 종이나 갈대의 줄기로 직물을 짠 뻣뻣한 파피루스지, 이 두 가지였다.


뒷면을 돌려보니 이름과 소속, 그리고 일련번호 같은 게 적혀있다.


“이건 명함이잖아. 래필드 경위. 경찰국 소속이네.”


“두께가 좀 있는 걸. 어? 두 겹인가? 갈라지는데?”


“내가 망가뜨리라고 했나?”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도로 뺏어와서 주머니에 넣었다.


“누가 흘린 거겠지.”


“모르면 됐어.”


관심은 곧 수그러들었다.


잭스필은 어젯밤의 불시감찰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까 하다가 관뒀다. 경찰서가 아니라 지구대들을 대상으로 방문한 것이리라. 지구대 소속이 아니라면 아는 게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다른 지구대에 아는 경비병은 없다. 어쨌든 한 번 돌아간 화제를 다시 꺼내들 마음은 없었으므로, 조사는 거기까지였다.


어젯밤의 일이다.





나는 왜 이 방으로 불린 거지?


끼이익——


방문이 탁 닫혔다.


바깥쪽의 불빛이 한 줄기로 사라지면서 방 안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서로 얼굴, 표정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어둠 속에서 경위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지금부터 하는 대화는 기밀이다.”


? 잠깐,


갑자기 무슨——


“너는 시경본부로 이동할 상황이 올 경우 나를 통해서 따로 보고해라.”


돌연 잭스필의 귀에 바짝 달라붙어오더니,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얘기를 시작했다.


“연락할 틈이 없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쪽의 명령이 우선순위다. 여의치 않으면 현지 지휘관의 통제에서 이탈해도 좋다. 파병군이니 그런 부담은 확실히 덜 하겠지.”


시경본부라는 건 시 경비대 본부?


로제카 시의 경찰서들 중 제1경찰서를 말한다. 1순위인 만큼 시 경비대 본부는 한 계급 더 높은 경령이 서장으로 있는 걸로 안다. 그런데,


“시경본부로 이동할 상황이라는 건···?”


무슨 얘긴지 너무 갑작스럽다. 아니.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껏 경비병 생활에서 자신한테 간부가 이런 식으로, 기밀이니 뭐니 하는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말려들었다는 느낌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가 닥치면 너도 이것을 말했던 거라고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서 보고해야할지 말아야할지 판단하려들지 말고 즉각 보고하라는 거다. 판단은 우리가 할 테니. 알겠나?”


아니, 모르겠다.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걸······


“왜 이런 얘길하냐고? 그건 궁금해하지 말라하고 싶지만, 역시 납득이 안되겠지. 사안의 심각성을 알려줄 필요도 있고.”


래필드 경위는 다시 잭스필과 거리를 두고 말했다.


“지금 이 시국 내에는 어떤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


불온한 움직임?


“집단적으로 무슨 일을 벌이려하고 있고, 그 손이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패트롤 내에서 누가 가담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내가 너무 겁을 주고 있나? 하지만 그들도 너희 파병군들과는 연관이 없다. 너희는 외부인이고,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로제카 시 내부의 일이니까. 그들의 목적—— 거기까진 말해줄 수가 없군. 너를 어디까지 신용해도 되는지 모르거든.”


한참동안 이어진 말들 중에 한 가지, 파병군은 연관없다는 대목에서 약간 마음이 놓였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이 대화는 기밀이다. 이 다음 밖으로 나가서도, 이 안에서 있었던 대화는, 너의 동료한테도, 너의 상관한테도. 우리가 지구대를 떠난 다음에도. 없었던 일처럼. 누설해서는 안 된다. 아니, 아예 오늘 여기에 우리가 왔었다는 얘기 자체를. 하지 마라, 알았나? 기밀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면 지금 얘기하면 된다.”


‘···얘기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잭스필은 그저 얼어있었고, 저절로 저 앞에 숨죽이고 있을 두 명에게 눈이 갔다.


모렌 경위. 저 말에 대체 뭐라고 해야···


“이상, 지령을 숙지했나?”


계속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어둠 속에서도 래필드 경위에게는 자신의 위치와 표정, 시선까지 다 들여다보일 것 같았으니까.


“대답해. 지령을. 기밀을 지킬 것인지.”


말이 없자 경위가 초조함을 드러냈다.


어지럽다. 순식간에 어려운 얘기들을 쏟아내서. 왜 이 사람은 나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게슈탈트 붕괴? 원론적인 의문마저 든다.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사고회로로 움직이는 존재 같았다.


잭스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종이. 잭스필은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끼이익


바깥의 빛줄기가 눈을 찌르고, 문을 연 경위가 먼저 나가면서 어깨를 탁 두드렸을 때는 얼떨떨함만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정과 경위는 지구대를 떠났다. 아까 전의 대화가 정말 없었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몇 분 사이에 신속하게 이뤄진 구두지시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리에 경위가 모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라.’


테이블은 이제 삼삼오오 나눠져서 잔을 부딪히며 한담에 빠져있다. 자신의 문제는 별 신경 쓸 일도 아니라는 양, 오늘 그런 태평한 모습들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전환됐다. 내심 찝찝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누구의 말마따나 우린 어차피 돌아갈 입장이다.


이제 이 생활도 얼마 안 남았다. 코스모폴리스로 돌아가서는 정말 도시민으로서 여유를 가진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이 생각만 하면 잭스필은 금세 속에서 들뜨고 부풀어올랐다.


“아직 파토 안 났습니까?”


그때 술집에 뒤늦게 나타난 한 명이 있었다.


“어이, 이쪽이야!”


“누가 왔어?” “환자분 아니신가.”


마침 소강상태던 테이블에 다같이 새로운 인물을 맞이했다. 잭스필도 반가움에 물었다.


“린델!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어디 갔다 온 거야?”


린델은 테이블에 한 명씩 다 아는 체를 해주고 잭스필의 옆 자리에 와서 앉았다.


“오랜만이지? 격리병동에 좀 들르느라.”


“뭐? 하하, 너 역병 옮아온 거 아냐? 저리 가.”


“이 자식 보게~”


둘이 붙어서 장난을 치는데, 다른 친구가 잭스필에게 말했다.


“아··· 넌 모르겠구나. 이 녀석 며칠 입원해있었어.”


“뭐?”


금시초문인 잭스필은 눈을 크게 떴다.


미드 구에 있는 격리병동은 바로 현재 유행하는 그 전염병의 감염자들이 가는 곳이다.


“왜?”


“왜긴. 전염병 증상을 보여서 조치한 거지.”


잭스필이 놀라서 쳐다보고 있자, 린델은 쩝쩝거리며 안주를 주워먹고 있었다.


“왜? 꼽냐?”


“너 지금 괜찮은 거야?”


“괜찮다던데. 다 나아서 퇴원시킨 거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멀리 피해있지 않아도 된다고 자식아.”


주먹질을 하는 게 평소의 린델이었다.


따로 떨어진데서 근무하다보니 이런 소식도 모르고 있었다.


“전염병 낫기도 하는 거였구나.”


자식, 죽다 살아난 거네.


아무튼 잘 됐다.


일단은 린델과 한 잔 기울이며 무난한 일상을 주고받았다.


잭스필은 그에게만 어젯밤 일을 전부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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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비병 (6) +1 16.03.19 118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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