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롤 : 중세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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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선
작품등록일 :
2016.03.16 16:57
최근연재일 :
2016.03.29 16:56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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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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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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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 도로 (8)

DUMMY

그보다 사실 같이 얘기하고 싶은 건 이쪽의 일방적인 요구고, 그는 그냥 조용히 가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잠은 오늘따라 피곤했을 수도 있는 거고.


저렇게 사과하는 걸 보니 절대 나쁜 애는 아닌데.


다시 힐끔 쳐다보았다. 잭스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아으··· 완전히 축 처졌잖아.


이런 식이면 내일은 서로가 더 거북해질 뿐이다.


내가 싫어졌을까? ···어떡하지?


눈을 굴리던 안젤린 경위는 떠올렸다.


“아아, 맞다··· 연고 바르자.”


그녀가 분위기를 달리하고 일어나자 잭스필은 고개를 들었다. 안젤린 경위가 곧 가죽배낭에서 상비약 같은 통을 찾아내더니, 엉거주춤 서있는 그에게로 다가왔다.


“배급품으로 받은 건데 이걸 상처에 바르면 흉지지 않아. 재생력을 강화시켜서···”


“!”


손수 얼굴에 발라주며 설명한다. 잭스필은 당황한 기색으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려다가, 거부하면 토라진 것처럼 보일까봐 가만히 있었다.


서로 가까이 붙어서 안젤린 경위가 한쪽 손으로 그의 턱을 붙잡고 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문지른다. 그동안 잭스필은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고, 잠깐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안젤린 경위가 그의 기운없는 눈빛을 일부러 피했다.

3. 도로 (7) 삽화.png

이윽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볼에서 떨어졌다.


“됐다··· 다른 데 다친 데는 없니?”


“예.”


유난스럽게 그의 몸을 살펴보고는, 도중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너 옷도 젖은 채로···”


“아, 아직 갈아입질 못했네요.”


방 공기가 차서 약간 몸이 떨려오던 참이다.


“미리 말하지···”


목소리가 한 풀 꺾였다.


“바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아, 그래. 그럴래?”





* * *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잭스필은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달칵.


‘뭐야, 이 이상야릇한 기분···’


어두컴컴한 복도를 빠져나와 한숨 돌렸다.


우선 방으로 옷을 가지러가고, 얼굴 좀 식히자.


그 뒤로는 공중목욕탕에서 막 나오는 펠트로 경장과 마주치고, 혼자 남아서 돌벽으로 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물이 식어있어서 장작을 더 때야 했다.


‘그나저나 안젤린 경위는 저런 분이구나.’


동료 간의 원만한 관계라니. 적어도 모렌 경위한테선 듣지 않아도 될 얘기다.


놈은 휘하 대원들의 유대감 따위야 어떻든 하등 관심이 없으며, 단지 일이 잘못돼있을 때 분노조절장애처럼 날뛴다.


목욕을 끝내고, 다시 안젤린 경위한테 가봐야 할까?


──바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아, 그래···! 그럴래?


아까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고 봐도 되겠지? 오늘은 이만 가서 쉬고 싶다.


‘내일은 또 그 얼굴을 어떻게 봐. 하아··· 무슨 얘기부터 꺼내지?’


목욕을 하는 내내 떠올린 고민들은,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바로 무산됐다.


‘켁.’


날 기다린 건가, 아니면 우연히? 앞에서 안젤린 경위와 다시 마주친 것이다.


“마, 마실래?”


목욕시설 입구의 실내의자에 앉아 김이 피어오르는 나무잔을 감싸쥐고 있다. 그녀의 주위로 커피인지 핫초코인지 비슷한 달콤한 향이 퍼졌다.


본인이 마시려고 가져온 것 같은데, 날 주겠다고?


‘갑자기 왜 이렇게 상냥해···?’


주춤 경계섞인 눈으로 쳐다보자 선뜻 다가오려던 태도가 축 시들었다. 양손으로 안타깝게 들고서 눈치를 보는데 거부할 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그래! 자, 여기!”


아까 전까지 질책을 내리받던 관계였으니 한동안 서로 껄끄러울 수밖에 없지만, 나에겐 앙금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고··· 그와는 별개로 따뜻한 음료가 먹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공손히 받아든 컵 한 모금.


“앗 잠깐, 그쪽으로 마시지 마···.”


그녀의 입술이 닿았었나? 참 여성스러운 반응이네. 컵의 방향을 손잡이 쪽으로 돌려서 입을 댔다.


부드럽게 녹아든 초콜릿이 진하게 목을 감싸며 넘어온다.


쓴맛 속의 달달함. 나란히 앉아서 맛과 향을 음미했다. 경졸들에게 지급되는 기호품은 궐련과 싸구려 증류주 정도인데 간부층에게는 그 외에 티라든지 설탕 같은 호사품도 돌아가는 모양이다. 역시 혜택이 좋아.


천천히 한 잔 비우는 동안, 안젤린 경위는 계속 옆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한테 더 무슨 용건이 있나?’


잭스필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아까부터 너무 상냥한 것도 그렇고, 왜 이러는 거야, 이 여자.


설마 혼낸 것 때문에··· 미안해졌나?


‘그런 거야? 아하하···’


신경쓰이게 하고 있었네. 어쩌지? 여유롭게 홀짝거리며 생각했다.


‘이건 이것대로 싫지 않거든.’


초임이라해도 너무 착하다. 모렌 경위 같은 남자간부들은, 10분 전에 뺨을 갈긴 부하한테 거리낌없이 말을 거는 놀라운 심성을 지녔건만.


“연고 다시 바를래?”


목욕을 하면서 연고가 씻겨내려간 것을 보고 그녀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경위님은 이제 목욕하러 안 들어가십니까?”


그냥 한 말인데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 방금 했거든!?!”


“아, 그렇구나···! 그, 그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너무 금방 하셔서!”


볼이 잔뜩 부어서 떠나가버렸다. 촉촉한 물기에 찰랑이는 머릿결로 그제야 눈길이 갔다. 뒷모습도 이제보니 간편한 사복차림으로 바뀌어있다.


“아, 저, 이 컵은···”


돌아와서 팍 낚아채고는 씩씩거리며 다시 멀어져간다.


‘에라 모르겠다.’





펠트로 경장이 심하게 코골이하는 건 오늘 하루종일 피곤했을 테니 너그러이 봐주기로 해도, 딱딱한 목침을 베고 잭스필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 뒤척였다.


결국 일어나 역참 앞 마당으로 새벽산책을 나왔다.


3월의 푸른 위성 아래,


도시로부터 떨어져 외진 산기슭에 위치한 휴게소. 빨간 새 문양의 깃발이 외로이 나부낀다.


“무, 물 마실래?”


──또 나오셨다.


“···아니면 코코아?”


“아니요······”


카페인은 피해야한다.


“이 밤중에 어쩐 일로 나오셨습니까?”


안젤로 경위는 역사건물 외벽 위로 자기 방 창문을 가리켰다.


“우연히 네가 보였어.”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아직도 신경 쓰시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달밤 아래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저··· 아까는 제가 말실수를──아, 아닙니다.”


“으윽.”


바로 미간이 찡그려진다. 괜히 말을 꺼냈구나 싶었다. 씻고 나온 사람한테 넌 왜 안 씻냐고 했으니.


갑자기 안젤린 경위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홱 돌려서, 다시 화내려는 줄 알았다.


“경위님···?”


쿡, 쿡···


얼굴을 저쪽으로 하고선 애써 웃음을 참고 있다.


“아니 짜증나는데··· 웃기잖아···.”


웃어 넘어가주는 건가. 다행이다.


“앞으로 임무에 대해서 궁금한 건 없니?”


잠시 생각해봤다.


“제가 뭘 알아야 하는지부터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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