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롤 : 중세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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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선
작품등록일 :
2016.03.16 16:57
최근연재일 :
2016.03.29 16:56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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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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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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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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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로 (7)

DUMMY

현재 이 역에 투숙 중인 무역상들의 짐마차 수십 대가 일렬로 주차돼있어 한참을 지나쳐야했다. 그중에는 말이 8마리나 달라붙어서 끌어야하는 대형 화물마차도 대어져있다. 말들은 마굿간으로 보내져 쉬고 있을 것이다.


패트롤 관용마차에서 각자의 짐을 꺼내고 있을 때,


“?”


잭스필은 옆에서 꾹꾹 잡아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안젤린 경위가 가죽배낭을 들고서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다.


“아, 제가 들겠습니다.”


약간 갸웃했지만 그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짐을 대신 들어주는데 그리 무겁지도 않았다. 잭스필의 옷은 펠트로 경장이 방에 가져다놔주기로 하고, 잭스필은 안젤린 경위와 둘이서 그녀의 호실로 향했다.


역참의 실내는 전체적으로 밋밋한 목재에 번호가 달린 각 방의 문들이 늘어서있는, 여느 여관과 다를 게 없는 모습.


프론트에서 받은 램프로 안젤린 경위가 앞장서서 길을 밝히고, 잭스필이 그 뒤를 따라 좁은 복도를 서로 말없이 걸었다.


‘···앞질러 갈까.’


눈앞이 굉장히 신경쓰인다. 특히 계단에 오를 때. 두터운 버프코트 자락에도 굴곡이 드러나보인다. 뒤태가 예뻐서 자꾸 볼록한 부분으로 눈이 갔다.


찰칵─


방에 도착해서 안젤린 경위가 먼저 램프 조명을 천장에 걸었다.


“여기에 올려두면 될까요?”


“어, 응? 아! 그래.”


탁자에 내려놓고 둘 뿐인 방 안을 한 번 둘러본다.


경위에게 제공된 방은 간부용 1인실인지, 푹신해보이는 침대에 실크커튼과 유리거울까지 좀 더 인테리어가 세련되었다. 혜택이 좋군.


“······.”


안젤린 경위가 침대에 걸터앉은 채 말이 없어, 잭스필은 그대로 나가지 않고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다리를 꼬고 앉아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쓸어넘기고. 뭔가 꼼지락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그제서야 각오한 듯 자세를 반듯이하고 말을 꺼냈다.


“원래 말을 잘 안하는 편이니?”


“예?”


“오늘 낮에 마차에선 왜 그렇게 혼자 있었어?”


그녀의 어조가 바뀐 것을 느끼고 잭스필도 바로 섰다.


“경장이, 나름대로 먼저 말도 걸고 했잖아.”


어째··· 화난 것 같다?


그간의 경험으로 눈치챘다. 느낌이 쌔하다 했는데, 상관의 질책이 떨어질 전조였다. 일부러 둘만 있을 자리를 만든 것이다.


“둘이 사이가 안좋은 건 아니지?”


어쨌든 묵비권은 안 되니 자기변호를 해야 한다.


“제가 사실 펠트로 경장과는 이번이 처음이라 좀··· 어색합니다.”


“음··· 그래, 사람끼리 친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어. 원래 그런 성격인 사람도 있고. 하지만 조직에서 동료간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필요한 일이야. 사회생활이고.”


조곤조곤 이르다가,


“근데 넌 노력이 전혀 안 보였어.”


혼난다··· 하지만 이쪽도 할 말은 있다.


“근데 개인적 친분 같은 건 사적인 일이지 않습니까? 공적인 업무에서 지장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지장이 안 가지? 이제부터 같이 일할 거잖아? 그러려면 서로 의사전달에 불편함이 없어야되고. 아니, 같이 좀 얘기하면서 가는 게 어렵니?”


잭스필은 더 해명해보려던 입을 다물었다.


“계속 창밖만 보고 있고. 책 같은 것만 보고. 동료는 마부석에서 계속 비 맞아가면서 마차 몰고 있는데. 잠만 자다가, 다치기까지 해?”


얼굴에 난 생채기가 시큰거렸다. 악수다. 해명이 변명이 됐다. 아니, 넘어서 말대꾸가 됐다.


평소에 남자간부 상대로는 아예 처음부터 귀를 닫고 다 흘려듣다가 예 알겠습니다 하고 끝냈었다. 내가 사족으로 반론을 달다니, 여자라고해서 은연중에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것일까?


따끔한 충고가 이어지는 동안, 경위는 말을 쏟아내면서 제풀에 격앙됐는지 뺨이 살짝 상기되었다.


들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도 있다. 오전에는 그녀가 마차를 몰았고, 오후에는 경장이 몰았다.


저녁이 내 차례였던 것이다. 내가 자고 있으니까 배려해서 경장이 내내 운전했던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말로 할 말이 없어졌다.


‘내가 세심함이 부족했어.’


조수석에 앉았으면 말동무라도 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상관, 동료한테 마부역을 맡겨놓고 편하게 뒷좌석으로 가고 있었으면서, 자각조차 없었다니.


안젤린 경위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추고 이쪽에서 눈길을 돌렸다.


새침하게 땋은 머리를 넘기고 입술을 사리문다. 그 와중에도 예쁘다.


‘···라니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이 차이는 얼마 안 나도 지휘관은 지휘관··· 그리고 이건 엄연한 훈육이다. 이런 태도는 정말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여성이기에 오히려 더.


“죄송합니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싹싹 빌자.


“무시하거나 귀찮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무래도 제가 제일 계급이 낮다보니 끼어드는 건 무례가 아닐까, 제멋대로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됐던 것 같습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안젤린 경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동안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잭스필은 그 앞에서 벌 서는 것처럼 서있어야 했다. 미동 없이 서서 기다리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게 얘기해준 편이지.’


애초에 이번 건은 잘못 자체가 그리 중한 게 아니고, 내일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면 될 일이다. 대꾸만 안했어도 이렇게 심각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텐데. 아 증말, 그 한 마디 때문에.


과거에는 간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당한 적도 있던 그였다.


그랬을 터인데.


‘이거··· 왜 이렇게 기운 빠지냐···.’


나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지? 표정관리 안 된다. 낙심을 감출 수가 없다. 처음 그녀에게 지적당했다는 사실 자체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심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인가. 관문지구대의 꽃이고, 어떤 경비병들에겐 높은 절벽의 꽃일 그녀가, 나는 어떤 인상으로 봐줄지 한 번쯤 궁금했던 적도······


‘개뿔, 이미 폐급으로 찍힌 것 같다.’


끝내 고개가 떨어졌다.


조용해진 방 안.


두 사람 사이로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약간 표정이 풀린 안젤린 경위가 자기 앞에 세워둔 남자를 살며시 쳐다보았다. 고개는 돌리지 않고 곁눈질로만.


“프후···”


찬찬히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좀 과했나?’


사실 이렇게까지 나무랄 거리는 아니잖아.


그보다 사실 같이 얘기하고 싶은 건 이쪽의 일방적인 요구고, 그는 그냥 조용히 가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잠은 오늘따라 피곤했을 수도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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