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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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최근연재일 :
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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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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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쪽

2nd 06. 침묵의 천사(4)

DUMMY

"말 놔도 돼?"

내 물음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는 것과는 다르게 까다로운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로엘님의 말에 따르면...... 지난번에 자신의 오빠가 마황자를 막고 있었다고 했지.

"그럼... 지난번에, 그럼 마황자랑 싸웠던게 너야?"

그는 갑자기 말투가 바뀐 나에게 살짝 황당한 듯한 표정을 보내왔다. 아니, 말 놔도 된다고 했잖아? 그러나 곧 다시 표정을 굳이고 대답을 해 주었다.

"......"

끄덕. 하고.

"그럼... 설마 너 혼자서 마황자와 세키, 그 둘을 상대한 거야?"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파리아는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아아... 하나씩? 각개격파?"

끄덕.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마황자와 세키를 상대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르카보다 센 건가?’

자르카가 마황자에게 엄청나게 당했으니까......

"대단한데..."

게다가 천족도 세계의 거부를 받으니 마황자와 같은, 힘은 감소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도 안 되는 그런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둘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마황자를 이긴 거야?"

내 말에 그는 난처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응? 그럼?"

"......"

이 부분은 몸짓이나 표정으로 말하기가 굉장히 곤란한 부분인 듯, 그는 약간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웠다.

"뭐..."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고 할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머리카락을 저렇게 세우고 있는 한 뱀파이어에 대한 생각이.

"아아, 세키?"

끄덕.

......그냥 아까처럼 말로 하면 될 것 가지고.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말로 하면 안 돼?"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왜?"

"......"

얼굴에 다시 나타나는 곤란한 표정. 으음, 이건 그에게 조금 실례되는 말인가?

"......"

"......하지만 답답해. 그냥 말로 좀 하자. 응?"

내 말에 그의 얼굴이 더욱 곤란하게 바뀌었다.

"응? 응? 응?"

"......사실."

내 부탁에 그는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다.

"......천족은 말을 할 수 없다."

"......에?"

"......"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왜? 로엘은 말을 하던데?"

파리아는 내 물음에 살짝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

톡. 톡.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아아... 그러고 보니,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생각해보니, 엄밀하게 따지면 ‘말’이 아닌 건가?

끄덕.

"그럼, 파리아는 머리로 말을 할 수 없는 거야?"

"......"

내 물음에 살짝 미소를 짓고있던 파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끄덕.

그런 그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정말, 아주 약간의 움직임이었다.

"그래? 으음... 그럼 로엘도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거야?"

내 물음이 틀렸다는 듯 고개를 젓는 파리아였다. 그렇게 되면 생각해보자......

"그럼... 흐음, 원래 천족들은 말을 못하고 머리로 말을 하는데, 파리아는 그게 불가능하다 이거지?"

파리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히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내 말이 맞는 거겠지?

"그래? 그래서 뭔 상관인데?"

내 말을 들은 파리아의 얼굴에 놀람이 깃든다.

"오히려... 나는 머리에 울리는 소리보다 목소리를 듣는게 더 좋은걸."

뭐... 그거야 내가 인간이라서 그렇겠지만 말이다.

"......"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파리아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뭐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나......”

내가 집을 나왔을 때가 거의 달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였기에,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곳은 서쪽이기에 태양은 우리의 등에서 떠올랐다.

"어라? 그건 뭐야?"

태양에 의해 주변이 밝아지자 파리아의 옆에 있던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어두운 밤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

스윽.

대답 대신 옆에 있던 것을 하나 집어서 내밀었다.

"......"

그것은 과일이었다.

"......성의는 고맙지만. 안 먹을래."

로엘과 먹었던 과일의 충격이 너무 커서... 이대로 가다간 인간계로 돌아가도 과일은 못 먹을 것 같았다.

‘하지만 냄새는 달콤하네......’

꼬르르륵...

"......헉."

이놈의 배는 왜 하필이면 지금 말썽이냐!

“......”

혹시나 싶어 파리아를 바라보니 웃고 있었다. 살짝 눈꼬리와 입꼬리가 부드러워지는 정도였지만, 난 그것이 웃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리고는 어서 받아가라는 듯 손을 나에게 내민 채였다.

"......"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나. 받는 수밖에.

"......아야."

손에 무언가 따끔한 것이 박혔다. 자세히 보니 껍질이 마치 가뭄 때 땅이 갈라진 것처럼 생긴 과일이었다. 껍질을 눌러보니 딱딱하면서도 물렁한 것이... 조금 징그럽다. 그리고 꼭지 부분에는 녹색의 잎 같은 것이 있는데... 마침 여명이 비춰오는 중이라 약간 붉게 보였다.

'어떻게 먹는 거지?'

"......"

내가 과일을 들고 파리아를 바라보자, 파리아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쓰라고?"

끄덕.

그가 내민 것은 단도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니 상당히 좋은 물건 같은데, 겨우 과일 껍질 벗기는데 써도 되는 건가?

"그럼..."

푸욱!

아까 여신이 촉수가 있던 과일을 가를 때처럼 정 중앙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

그런 내 모습을 본 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든다.

"응? 이렇게 먹는거 아니야?"

나는 과일의 정 중앙에 단도를 꽂아 넣은 채로 물었다.

"......"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듯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달라고?"

끄덕.

다시 그에게 단도가 박혀 있는 과일을 건네주었다.

"....."

파리아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단도를 뽑아내더니, 과일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라락- 사라락-

"......"

소리를 들어보니 마치 종이를 베어내는 것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런데 설마, 이것도 종이 맛 나는 과일은 아니겠지?

"......"

파리아는 어느새 다 깎았는지 나에게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다음 벗겨낸 껍질 위에 놓은 과육을 내밀었다.

"......"

길쭉한 타원형의 과일은, 껍질을 벗기고 가로로 잘려서... 동그란 고리 모양으로 보기 좋게 껍질 안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의 깎는 소리를 듣고 어쩐지 먹기가 싫어졌다.

"......"

하지만... 파리아는 내 기분을 눈치 못 챘는지 계속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잘 먹을게."

이렇게 주는데 거절할 수도 없어서 결국 노란빛을 띄는 과일을 입에 넣어야 했다.

아직.

'응?'

그런데 의외로 먹을 만 했다. 비록 씹는 맛은 없었지만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입에 퍼졌다.

"이거 맛있네?"

이곳에 온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이 과일이 그만큼 맛이 있는 것인지, 정말 손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과일이 맛있게 느껴졌다.

"......"

내가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본 파리아는 다시 옆에 있던 과일을 꺼내들었다. 이것과 같은 과일이었다.

사라락. 사라락.

그리고는 단도로 다시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나에게 또 주려는 건가?’

내 예상이 맞아서 파리아는 다시 그 과일을 잘라서 나에게 건네주었고 과일을 다 먹어치우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거절할 여유도 없이 다시 받아들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고마워."

솔직한 감사에 파리아는 살짝 웃어주었다.

‘꽤 괜찮은 녀석이네......’

처음에는 너무 잘생긴 것 같아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는데 말이다.

‘슬슬 가야 되는 건가?’

이제 여신도 깨어났을 것 같은데......

아직.

내 눈치를 읽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하게 그도 돌아가야 하는 시간인 것일까? 그는 자신의 옆에 놓여있던 이 과일을 몇 개 내밀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 과일 고마워......"

싱긋.

그는 가볍게 웃어주고 먼저 걸음을 옮기려 했다.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로엘이 아침 차리고 있으니까 돌아와-

털썩.

"......!"

갑자기 그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지?

‘혹시 여신의 목소리를 들은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저렇게 놀랄 이유가 없었다. 마족도 아니고 천족이라면 신족과 동맹관계니까. 아니면 단지 무언가 생각난 건가?

"왜 그래?"

여신이 나를 불렀지만 난 집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제 보았던 것처럼 그... 냄새나는 과일이 있으면 입맛만 잔뜩 떨어질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아침은 이걸로 때우면 되니까...’

우물우물......

굳은 표정으로 내 모습을 바라보던 파리아는 이윽고 실례했다는 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파이라엘 프라스타. 파리아라...”

꽤나 좋은 녀석이었다. 먹을 것도 주고...

우물우물우물......

그렇게 아침을 그가 준 과일로 때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생각해보니까 그 냄새나는 과일도 저 녀석이 준거잖아?’

좋은 녀석이라는 말 취소다.

“흐음... 직업은 과일 채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과수원을 하는 건가......”

나는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야! 라드 슈발로이카!!"

'윽... 엄청 화난 모양이네'

결국 여신이 이곳까지 오자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여신에게서 어제 과일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 것을 보니... 들어가도 상관없겠지.

“윽.”

다리 저려. 너무 오래 앉아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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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nd 07. 아세니카르 더 다크(4) 11.10.15 523 10 67쪽
75 2nd 07. 아세니카르 더 다크(3) +1 11.10.15 528 6 74쪽
74 2nd 07. 아세니카르 더 다크(2) +1 11.10.14 578 14 64쪽
73 2nd 07. 아세니카르 더 다크(1) +1 11.10.14 622 8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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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2nd 06. 침묵의 천사(5) +2 11.10.12 563 7 66쪽
» 2nd 06. 침묵의 천사(4) 11.10.12 545 9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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