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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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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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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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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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중전에 간택되다

DUMMY

나라의 국모인 중전이 승하한지 불과 두달 남짓 지난 지금, 새 중전을 간택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 수 없었다.


대비는 숙종이 옥정을 잊기 위해서는 일각이라도 빨리 중전을 간택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비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난 해 불미스럽게 일어난 환국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 나라가 안정되고 주상의 위세가 바로 서게 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주상의 뒤를 이을 원자가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주상, 부디, 이 어미의 말을 들으세요."


숙종은 옥정 생각 뿐이라 새 중전을 서둘러 맞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숙종이 고개를 저어 거부하려는 순간,


"어미가 듣자니, 민유중의 여식이 현숙할 뿐만 아니라..."


민유중의 여식이 현숙하다는 대비의 말이 숙종의 귀에 맴돌았다.


'그래! 민유중의 여식이 현숙한 여인이라면 옥정의 입중이 수월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숙종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자, 어마마마의 뜻을 따르겠사옵니다."


숙종은 민유중에게 승지를 보내 그의 딸이 중전에 간택되었음을 알렸다.


민유중은 딸이 걱정된 나머지 숙종에게 상소를 올려 혼담을 사양할 뜻을 밝혔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소신의 여식을 전하의 배필로 간택하여 주신 은혜, 백골이 난망하오나, 소신의 여식은 덕이 부족하여 중전의 재목이 못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숙종은 민유중의 상소를 읽자 내심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승지에게 교지를 내렸다.


"아비로서 딸을 걱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허나, 신하는 자식보다 군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과인의 뜻을 사양치 말라. 과인은 어마마마의 뜻에 따라 그대의 여식을 중전으로 간택하였나니, 그대는 과인의 뜻을 받들라."


승지로부터 숙종의 교지를 전해받은 민유중이 다시 상소를 올렸다.


'전하, 부재부덕한 소신의 여식을 중전으로 간택하신 은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하오나, 소신의 여식은 덕망이 부족하여 중전의 중책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사옵니다. 청컨대, 소신의 여식보다 현숙하고 덕망있는 여인을 중전으로 간택하소서.'


숙종은 민유중의 두번째 상소를 읽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교지를 내렸다.


"신하된 자는 마땅히 군주의 뜻을 받들어야 하거늘, 어찌 과인의 뜻을 연거푸 사양할 수 있단 말인가? 과인은 이미 그대의 여식을 중전으로 간택하기로 뜻을 정하였으니, 그대는 과인의 뜻을 받들라."


승지가 다시 민유중을 찾아가 숙종의 교지를 내렸지만, 민유중은 또 다시 상소를 올려 재차 사양의 뜻을 밝혔다.


민유중이 세 차례나 상소를 올려 사양의 뜻을 밝히자, 숙종은 몹시 불쾌하여 민유중에게 엄중한 교지를 내린 후 민유중의 형 민정중을 불러 호되게 꾸짖었다.


"신하된 자는 군주의 뜻을 받드는 것이 마땅하거늘, 그대의 아우 민유중은 어찌 과인의 뜻을 세 차례나 사양할 수 있단 말인가?"


민정중은 황공하여 고개를 조아리며 숙종에게 사죄했다.


송시열은 제자인 민유중이 세 차례나 상소를 올려 혼담을 사양했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민유중을 찾아가 준엄한 얼굴로 말했다.


"신하된 자로서 어찌 군주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자네의 심정, 모르는 것이 아니나, 신하는 군주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니, 더이상 사양하면 아니 될 것이네."


민유중은 스승의 준엄한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스승님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6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하여 금지옥엽 같은 딸과 떨어져 살았던 민유중으로서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딸을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었고, 무엇보다 숙종이 이미 총애하는 궁인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유중은 눈물을 머금고 인현을 불러 중전에 간택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중전의 자리는 가시방석과도 같은 어려운 자리라, 너를 보내고 싶지 않으나, 전하께서 이미 너를 중전으로 간택하셨으니, 신하된 도리로서 어쩔 수가 없구나! 이 아비의 뜻을 따르겠느냐?"


백부 민정중을 통해 숙종과의 혼담에 대해 들은 인현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가족을 떠나 살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소녀, 아버님과 어머님을 좀 더 모시고 싶사오나, 그것이 아버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민유중 또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딸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장하구나! 부디, 만백성들의 존경받는 국모가 되기를 바란다."


인현은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녀, 아버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백성들의 존경받는 국모가 되겠사옵니다."


"어려운 점이 생기면, 대비마마께 상의를 드리거라. 대비마마께서는 어지신 분이시니 네가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왕대비마마께서도 인자하신 분이시니, 성심을 다하여 잘 모시거라."


민유중은 호랑이 같은 대비의 성미와 심통을 잘 부리는 대왕대비의 성미를 알고 있지만,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두 중궁전 어른에 대해 좋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대비마마와 대왕대비마마를 섬기겠나이다."


"마땅히 그래야지. 대비마마와 대왕대비마마께서는 나라의 웃어른이시니, 모시는데 한치의 소흘함도 없어야 될 것이다."


"아버님의 말씀, 명심하겠사옵니다."


민정중에게 숙종과의 혼담이 결정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집을 나서는 민유중에게 인사를 올리고 방으로 돌아온 인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녀, 아버님을 이토록 일찍 떠나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이다. 아버님을 좀 더 오래 모시고 싶사오나, 더 모시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나이다. 아버님,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부인 조씨는 딸이 떠나기 전에 친지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친지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민유중의 친척들은 자신의 가문에서 중전이 간택되었다는 소식에 모두들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집밖에 있던 인현의 오라비 민진후와 민진원은 누이동생이 중전으로 간택되었다는 소식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애가 깊은 민진후와 민진원은 누이동생이 집을 떠나 살 것을 생각하니 서글프지 않을 수 없었다.


인현을 각별히 아껴온 민진후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동안 오라비로서 네게 해준 것이 없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비록 이 오라비가 네 곁에 없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아버님, 어머님, 여기 진원도 마찬가지일 터, 너무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거라."


인현도 눈물을 글썽였다.


"오라버니,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오라버니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사온데, 어찌 소녀에게 해주신 것이 없다 말씀하시옵니까? 소녀야말로 오라버니들께 해드린 것도 없이 보살핌과 사랑을 받기만 하여 참으로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민진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우리가 그간 세상 일에 몰두하느라 네게 소흘하였으니, 참으로 미안하구나. 허나, 앞으로라도 네게 좋은 오라비 노릇을 하고 싶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우리를 부르거라."


인현은 목이 메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인현은 밤새 하염없이 흐느꼈다.


이때 조씨가 딸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인현은 방문이 열리자 흐느낌을 멈추고 자는 척했다.


'잠꼬대를 한걸까?'


조씨는 인현이 잠든 줄 알고 다시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조씨는 인현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긴 한숨을 쉬었다.


'그토록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를 떠나살아야 하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나 또한 시집올 때 이승을 떠난 아버님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지. 이 아이는 효성이 지극하니 그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


조씨는 민유중의 첫번째 부인 송씨가 세상을 떠난 후 시집온 인현의 계모로, 조씨와 인현의 나이 차는 불과 여덟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현은 조씨를 친어머니처럼 공경하며 따랐고, 조씨도 인현을 친딸처럼 사랑했다.


조씨는 이제 겨우 스물셋의 젊은 부인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터라 인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조씨는 곧 시집갈 인현의 고충을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때 민유중이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민유중은 오랜 귀양살이로 권력의 무상함을 깨달은 바, 인현을 평범한 사대부 집안에 시집보내려고 생각해 왔는데, 실로 뜻밖에 중전으로 간택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왕대비마마와 대비마마께서 고부간 갈등의 골이 깊으시니, 내 딸이 중전이 되면 중간에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하께서는 궁에서 쫒겨난 나인 옥정을 총애하셨다 하니, 몹시 걱정이 되는구나!'


민유중은 딸과 곧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심경이 복잡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딸이 잠자는 모습이라도 볼까 하여 딸의 방으로 가다가 방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씨를 보았다.


민유중은 딸을 깨울까 말없이 손수건을 꺼내 조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인현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님께서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신 것이로구나! 어머님, 소녀는 괜찮을 것이오니, 심려하시지 마옵소서!'


인현은 조용히 흐느끼다 문득 세상을 떠난 어머니 송씨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얘야, 세상에 영원한 만남이란 없단다. 인간의 명은 하늘이 주신 것이고, 여자가 혼기가 되면 집을 떠나 시집가는 것이 마땅하니, 부모와 자식도, 형제와 자매도, 언젠가는 이별하게 마련이란다. 몸이 떠나도 마음만 함께 할 수 있다면, 함께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가족과 이별한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가 없느니라. 어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인현은 이제서야 송씨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과 만리길을 떨어져 살아도 자식만 행복하다면 여한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자식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도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만 지극하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현은 송씨의 가르침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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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소문 22.12.03 44 0 11쪽
33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1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9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8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0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27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7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8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2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6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1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59 0 10쪽
»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2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7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10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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