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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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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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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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소문

DUMMY

'전하, 예로부터 군주가 여색을 총애하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려 나라에 액운이 닥친다 하였사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옛날 송나라 인종은 한 궁인을 총애하였으나 여색을 멀리하고 정사에 힘을 기울이라는 신하의 간언을 듣자 단번에 눈물을 흘리며 총애하는 궁인을 쫓아내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례이옵니까? 비록 소신이 신하로서 재질이 변변치 못하오나 전하께서도 송나라 인종의 선례를 본받으시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옥정이 숙원에 책봉되자 서인들이 철회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중에 한성우의 상소였다.


숙종은 크게 노하여 상소를 바닥에 내던졌다.


"고얀지고! 과인이 여색을 총애한다고? 감히 과인을 능멸하다니! 승지를 부르거라."


승지가 오자 숙종은 한성우의 상소를 읽게 한 후에 명을 내렸다.


"한성우가 과인을 능멸하였으니, 지금 당장 파직시키거라."


서인들은 한성우의 파직을 철회해달라 상소를 올렸지만 숙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옥정은 숙종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오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하, 서인들이 신첩을 궁에서 내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들었사옵니다. 전하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사오니, 부디 숙원의 첩지를 거두어 주신 후 신첩을 내치어 주시기 바라나이다."


옥정은 이 참에 숙종의 진심을 재차 확인할 생각이었다.


숙종은 눈물을 흘리는 옥정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옥정아, 심려치 말거라. 내가 어찌 너를 내칠 수 있겠느냐?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과인이 총애하는 너를 내치라고 하는 것은 과인을 능멸하는 일이니, 결단코 용서하지 아니할 것이다."


숙종의 진심을 다시 한번 확인한 옥정은 감격에 겨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정묘년(1687년) 여름.


"옛말에 이르길, 임금이 여인을 지나치게 총애하면 하늘이 노해 큰 수해를 내린다더니, 지금이 그 꼴이 아닌가 말일세!"


"임금이 중전마마의 처소엔 들리지도 않고 장숙원만 총애한다니,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일세!"


전국에 걸쳐 하늘이 뚫린 듯한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옥과 전답이 물에 잠겨 파괴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이 때문에 숙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옥정에 대한 나쁜 소문이 삽시간에 온 나라에 퍼졌다.


이러한 시기에 영빈 김씨의 종숙부로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인 김창협이 옥정에 대한 총애가 지나침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진노를 사서 파직당했다.


이에 김수항은 사직을 청했고, 숙종은 몇 차례의 반려 끝에 김수항의 사직을 받아들였다.


조정의 수장인 영의정 김수항이 사직하자, 좌의정 민정중과 우의정 이단하도 사직을 청해 물러나니 순식간에 삼정승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이날따라 숙종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삼정승이 한꺼번에 사직한 일도 마음에 걸렸지만, 무엇보다 옥정에 대한 나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어 숙종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숙종이 소문에 대한 상소를 읽고 있을 때 옥정이 대전을 찾아왔다.


"전하의 용안이 오늘따라 어두우신 것 같사옵니다.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으신지요."


"김수항을 비롯한 삼정승이 사직을 청하여 윤허하였는데 마땅한 후임을 정하지 못하였다. 일단 영의정을 먼저 정해야 할 터인데, 네가 보기에는 누구를 영의정에 삼는 것이 좋을 듯싶으냐?"


숙종은 소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연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숙종이 말 못할 근심이 있음을 직감한 옥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첩 불민하온데 어찌 나라의 일에 대해 알겠사옵니까? 전하의 종친이신 동평군께서는 인품과 덕망이 높으신 분이니, 동평군께 하문하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게 좋을 듯하구나."


바로 그 순간, 처소 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동평군께서 찾아오셨나이다."


숙종이 옥정에게 잠시 나가있으라 눈짓한 후 말했다.


"안으로 모시거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말처럼 때마침 동평군이 온 것이다.


동평군은 옥정의 주선으로 숙종과 형제처럼 가까워져 대전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조정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숙부님, 오늘 영의정 김수항이 사임하자, 좌의정 민정중과 우의정 이단하도 사임하여 삼정승 자리가 공석이 되었는데, 누구를 영의정에 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숙종이 묻자 동평군이 대답했다.


"소신이 듣건데, 근래 서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하께 숙원마마를 내치라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상소를 올린다 하온데, 이는 조정이 서인들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일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의 뜻에 부합한 인물을 영의정에 임명하시어 서인들의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숙부님께서 마음에 두신 사람이 있습니까?"


"대왕대비마마의 사촌 아우이시자 소신의 제종조이신 조사석 대감이야 말로 학식과 인품을 겸비한 인재로,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 전하의 뜻을 받들어 조정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 생각하옵니다."


문밖에서 숙종과 동평군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옥정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대감께서 영의정에 오르신다면, 날 내치라는 서인들의 빗발치는 상소를 막아주실 수 있을 것이다.'


이야말로 옥정이 바라던 바였다.


숙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남인인 조사석을 임명한다면, 서인들이 극렬히 반대할 것이 불보듯 뻔한데......'


바로 이때 박세채의 상소가 숙종의 뇌리를 스쳤다.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진 조정의 당파싸움을 끝내려면 탕평책을 펼쳐야 하옵니다-


'인품이 후덕한 조사석이야 말로 당파싸움으로 어지러운 조정을 바로잡을 적임자가 아니겠는가.'


숙종이 숙고 끝에 입을 열었다.


"그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숙부님이 조사석에게 제 뜻을 전해주시지요."


대전에서 나온 동평군이 궁문을 나설 때 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와 마주쳤다.


"항(동평군 이름)이, 자네가 궁엔 어인 일로 왔는고?"


"전하께서 나라 일로 소제를 부르시어 방금 전하를 뵙고 나가는 길이온데, 누님께서는 어인 일로 오셨사옵니까?"


동평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숙안공주가 혀를 차며 나무라듯 말했다.


"듣자하니, 자네가 궁궐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하던데, 항간에 자네에 대해 망측한 소문이 떠돌고 있으니, 자중하게나."


이 무렵 항간에 옥정에 대한 괴소문이 퍼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옥정이 입궁하기 전에 동평군의 정인이었다는 소문.


정작 동평군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


동평군이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대관절 무슨 말씀이신지......"


숙안공주는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자네는 아직 소문도 못 들었는가?"


"소문이라 하심은......"


"차마 말하기 민망한 일이니, 자네가 직접 알아보게나. 그럼 이만 가보겠네."


집으로 돌아와 소문의 진상을 들은 동평군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필시 누군가 나를 음해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결단코 가만두지 아니하겠다."


이때 숙안공주는 김수항이 사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숙종에게 사직을 반려해달라 청하러 가는 길이었다.


숙안공주가 대전에 당도하니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전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숙안공주는 왠 여인이 대전에 있나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불쑥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옥정이었다.


숙안공주는 못마땅한 듯한 눈으로 옥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옥정은 숙안공주를 보자 화들짝 놀라 인사한 후 황급히 대전 밖으로 나갔다.


숙안공주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신첩, 아무도 사람이 없길래 감히 들어온 것이옵니다."


기별도 없이 임금이 거처하는 대전에 들어온 것은 궁중 법도에 어긋난 일이었다.


숙종은 내심 불쾌했지만 공손히 물었다.


"고모님께서 별안간 어인 일이십니까?"


"전하께 주청드릴 것이 있어 왔나이다."


"말씀해 보세요."


"신첩이 듣건데, 영의정 김수항이 사직을 청하였다 하온데, 김수항은 어진 신하이니 사직을 받아들이지 마옵소서."


"이미 김수항의 후임을 정하였습니다."


"누구를 영의정으로 삼았사옵니까?"


"조사석입니다."


조사석이라는 말에 숙안공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사석이 재주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나이다. 조사석이 좋은 명정감을 얻은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숙종은 숙안공주의 말투가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여 입을 꾹 다물었다.


숙안공주의 말이 이어졌다.


"전하, 항간에는 조사석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아다니고 있사옵니다. 수해로 인해 나라가 어려운 이때에 백성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을 영의정에 임명하시면 민심이 어지러워질 수 있사오니, 조사석의 영의정 임명을 재고하여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숙종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소문이라니 무슨 소문입니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정사가 흔들린다면 어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이미 정한 나라의 중대사를 소문만 듣고 재고할 수는 없는 일이니, 고모님께서는 이 점 숙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말문이 막힌 숙안공주는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숙종이 교지를 내려 조사석을 영의정에 임명하자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서인들의 반대 상소가 빗발치는 가운데, 조사석 본인마저 영의정의 자리를 극구 사양했다.


숙종은 어쩔 수 없이 서인 중 소론인 남구만을 영의정에 임명한 후 조사석을 좌의정에 임명했지만, 조사석은 이번에도 사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포 김만중이 숙종을 찾아왔다.


"소신이 듣건대, 요사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김수항의 사직을 받아들이신 것은 그의 아들 김창협의 상소 때문이라 하옵니다. 어찌 전하께서 아들의 죄를 아비에게 물을 리가 있겠사옵니까만, 이런 말이 나도는 것은 전하와 신료들 사이에 의심이 쌓여 간격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겠사옵니까? 또한 소신이 들은 바로는 조사석이 항간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불안하여 정승의 자리를 사양하였다 하오니,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지금 수해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 항간에 유언비어가 나돌아 민심이 동요하고 있사온데, 대개 유언비어는 궁안에 총애받는 궁녀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여색을 멀리하시고 수신제가의 도리를 닦으소서."


여색이라는 한마디가 숙종의 심기를 건드렸다.


'한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기껏 여색으로 치부하다니, 이는 나를 난봉꾼이라 모욕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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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살수를 고용해 이동현을 도모하거라 22.12.03 45 1 11쪽
38 38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기 마련 22.12.03 47 0 11쪽
37 37화 조대감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단 말인가! 22.12.03 44 0 10쪽
36 36화 소첩 태기가 있는 듯 하옵니다 22.12.03 48 1 11쪽
35 35화 자네 뜻대로 하게나 22.12.03 45 0 11쪽
» 34화 소문 22.12.03 44 0 11쪽
33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0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8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7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0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27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7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8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2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6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0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59 0 10쪽
15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2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7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10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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